(아시아가 中心이다)⑧류시원 "나는 아직도 꿈 꾼다"

[SPN 창간3주년 특별기획]아시아류 스타 인터뷰
-위기의 한류, 일본 열도 지켜낸 비결은···
-이웃나라 일본, 알면 알수록 다른 나라
  • 등록 2010-05-28 오전 10:20:07

    수정 2010-05-30 오전 8:15:28

▲ 류시원

[이데일리 SPN 최은영 기자] "일본에서 이룬 단독공연의 꿈, 내년이면 100회 채워요."

2005년 일본 부도칸.

한국에서 온 한 미남 가수는 무대에서 큰절을 올렸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엔 이슬이 가득 맺혔다. 일본 도쿄 부도칸을 채운 1만여 팬들의 가슴도 저렸다. 이들의 볼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는 “꿈이 이뤄졌다”며 흐느꼈다.

◇ "한류 1세대 후발주자, 지금도 나는 진행형"  

‘자국에서 실패한 스타가 외국에서 성공할 확률은? ’
‘0.0000001%’

요즘 유행하는 모 광고의 카피 얘기가 아니다. 바로 한류스타 류시원 이야기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이웃 나라 일본에서 실현해낸 류시원은 사실 연기자로선 1994년 드라마 '느낌'을 시작으로 '프러포즈'(1997) '순수'(1998) '진실'(2000)을 거쳐 '아름다운 날들'(2001)에 이르기까지 줄곧 정상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가수로서는 순탄치 못했다. 내놓은 음반은 예상외로 고전했고 콘서트 한 번 해보지 못했다. 한 번으로 부족해 거듭 음반을 내며 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연예활동을 하면서 승승장구했던 그였기에 충격은 남달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춘다. 2004년 일본 NHK에서 이병헌 최지우 류시원 주연의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이 방영되면서부터다. 류시원의 말에 따르면 그는 2002년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 1세대 끝자락에 일본을 찾았다. 말하자면 후발주자였던 셈이다.

남들처럼 계기는 드라마였고, 시작은 팬미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류 관계자들은 류시원만한 스타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일본에서 세운 기록은 하나 둘 열거하기도 힘에 부칠 정도다.

일본에서만 싱글 11장에 정규 앨범 7장, 베스트앨범 2장을 더해 총 19장의 앨범을 냈다. 그리고 이 모든 음반을 일본의 공신력 있는 음악차트인 오리콘에 이름을 올렸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 여겼던 단독 공연의 열망도 일본에서 이뤘다. 2005년 부도칸 공연을 시작으로 5년간 일본 18개 도시에서 74회 공연을 펼쳤고 전회 매진을 기록해 총동원 관중만 45만 명에 육박한다.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도 류시원은 18회에 걸친 일본 전국순회공연을 진행 중이었다. 잠시 짬을 내 한국을 찾은 그는 "내년이면 100회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전 세계 두 번째로 큰 음반시장을 보유한 일본에서도 최정상급 아티스트만이 설 수 있다는 도쿄돔 공연도 한국인 남자 솔로가수 가운데는 비 다음으로 두 번째를 장식했다. 하지만 5만석에 달하는 대규모 공연장을 2회 연속 채운 한국가수는 류시원이 유일하다.

일본에서 류시원의 인기는 'KPR'이라 이름 붙여진 건물만을 봐도 알 수 있다. 'KPR'은 '코리아 프린스 류시원(korea Prince Ryusiwon)'의 약자로 이곳에선 류시원이 이제껏 발매한 음반들을 비롯해 그가 한일 양국에서 출연한 드라마 DVD, 류시원 관련 기념품 등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일본에 외국 스타의 건물이 생기기는 '류시원 빌딩'이 처음으로 이런 건물이 5층 규모로 도쿄 록본기와 간사이에 모두 세 개가 있다. 아무리 MD 시장이 발달한 나라라지만 쉬 믿기 어려운 광경임엔 분명하다.  
 
▲ 류시원


◇ 지피지기 백전불태···"끼와 열정, 한국인의 강점 살려야"

류시원이 파악한 일본은 "알면 알수록 한국과 다른 나라"다. 그곳의 엔터테이너 시장은 철저히 자본력과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전문화되고 체계화된 마케팅 없이는 결코 성공에 이를 수 없다.

류시원은 이 같은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체질개선이 필수라고 봤다. 신인의 자세로 새롭게 시작한 건 바로 그래서다. 성공에는 현지화 전략도 주효했다. '아름다운 날들'에서 부른 노래 '약속'을 일본어로 바꿔 선보였고 한국의 스타들이 출연을 꺼리는 오락프로그램에도 스스럼 없이 나갔다.

“일본의 전 에이전시를 돌며 직접 인사를 다녔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먼저 인사부터 하는 등 신인처럼 일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일본 팬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또 팬미팅 등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를 줄이고 대신 자신만의 차별화된 공연으로 일본 대중과의 스킨십을 늘렸다.

노래와 토크쇼로 어우러지는 류시원의 콘서트는 최소 3시간, 길게는 4시간까지도 이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콘서트가 끝나는 말미에는 직접 캠코더를 들고 팬들 사이를 누비며 교감한다. 이 같은 열성에 지난 2009년에는 전국 투어 30회 공연을 마치고 허리에 탈이나 수술을 받기도 했다.

동시에 철저한 기획력으로 완벽을 꾀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일본 취향에 맞게 일본 스태프와 일을 했다. 국내에서 10년 넘게 소속사 없이 일했던 그는 일본에서 매니지먼트사와 처음으로 전속계약도 체결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저변확대와 더불어 인지도 상승의 효과를 동시에 불러왔다.

지난 2004년 일본에 진출해 올해 6년째를 맞은 류시원은 “데뷔 때만 해도 여성 팬들이 100%였는데 요즘엔 남성 팬들이 크게 증가했다”면서 “40~50대 중년이 주류를 이뤘던 여성 팬들의 나이 층도 10~20대까지 넓어지고 있다”고 달라진 변화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류 위기에 대한 지적도 했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졌어요. 한류 스타의 일본 오락프로그램 출연이 현저히 줄었으며 방송관계자들의 한류스타 섭외도 맹목적이 아닌 선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그런 점은 안타까운 부분으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한국스타들의 일본진출에 대해 “외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활동에 앞서 그 나라를 조사하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인의 최대 강점인 끼와 끈기, 열정 여기에 현지화와 약간의 운까지 따라준다면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 류시원의 상징색인 주황색 풍선을 들고 그의 무대에 연호하는 일본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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