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훈, "한국도 일본도 차별… 그냥 편히 살 수 있었으면"

  • 등록 2008-02-23 오후 7:10:22

    수정 2008-02-23 오후 7:10:22

[조선일보 제공]지난 17일 김포공항에서 만난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 지난해 생긴 코의 흉터가 선명하다. 추성훈의 홈페이지(www.judo-saiko.com)에는 'I♡Korea-한국말을 배워보자' 한국어 강좌 코너가 있다. 이 동영상에서 그는 "쥬도는 '유도', 사이코는 '최고'라고 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아주 비슷하다"고 했다. 그의 강좌는 2006년12월26일 이후 멈춰 있다. '다음 강좌를 할 계획이 있냐'고 묻자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현재는 민감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작년 마지막 날 종합격투기 '야렌노카' 대회가 열린 일본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 태극기와 일장기가 붙여진 유도복을 입은 선수가 등장하자 2만5000여 명의 일본 관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왔고 7년 전 일본으로 귀화한 '아키야마 요시히로'였지만 일본인은 그를 '반쪽 일본인' 추성훈으로 몰아쳤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일본 국적을 가지게 된 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일교포 4세 종합격투기 선수 아키야마 요시히로, 혹은 추성훈(33). 지난 17일 하루 일정으로 한국에 온 그를 출국 한 시간 전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까만 얼굴에는 지난해 12월 경기 때 생긴 코 흉터 자국보다 피로감이 더 깊이 패인 듯했다.

2006년 일본 선수에게 반칙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1년 넘게 일본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그였다. 오히려 이렇게 일본에서 궁지에 몰린 상황이 한·일 관계와 맞물려 한국에서 더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됐다. 한국계 캐나다 격투기 영웅 데니스 강(31)까지 꺾으며 최홍만·윤동식과 함께 스타가 됐지만 한 달이 넘도록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했어도 대화 내내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가 2002년 일본 대표로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한국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땄을 때 "조국을 메쳤다"고 몰아친 나라도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추성훈이 처음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된 때는 1998년이었다. 1974년 재일교포 유도대표로 전국체전에서 우승했던 아버지 추계이(58)씨 영향으로 세 살 때부터 유도를 배운 추성훈은 중·고교 대학시절 일본 전국대회에서 이름을 날렸다.

대학을 졸업한 그에게 일본실업팀의 고액 스카우트 제의가 잇따랐지만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부산시청 유도팀에 입단했다. "제일교포로 한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일본 대표 선발전에는 못 나갔습니다. 국가대표가 돼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한국에 왔던 겁니다." 그런 그에게 심심치 않게 '애국(愛國)'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추성훈은 2년7개월 만에 '태극마크' 도전을 거두고 2001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반쪽 한국인'이라고 불이익을 당한다"는 게 이유였다.

"실력이 아니고 판정 때문에 많이 졌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도 그랬죠. 평소 동료들이나 아는 분들은 저에게 잘 대해줬지만 대회 판정은 달랐습니다. 2001년 아시아선수권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나가 우승했지만 2진이 나간 대회였습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도 (국내 대회 판정은) 차이가 없었죠."

그 후 잠시 잊혀졌던 추성훈은 1년 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나타났다. 유도 인생의 국가대표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인으로 귀화했던 것. 그가 81kg급 결승에서 한국 선수를 이기고 금메달을 땄을 때 한국 여론은 그를 '추성훈'이 아닌 '아키야마'로 내몰았다.

"그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건 아닌데…. '저는 원래 한국 사람이니까 국적에 관계없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는데…."

함께 인터뷰에 응한 어머니 유은화(54)씨가 말을 이었다. "부산 사람들은 사정을 어느 정도 아니까 응원해주는 사람도 꽤 됐어요. 하지만 한 스포츠신문에서 '조국을 메쳤다'고 나오니까 가슴이 아팠죠. 성훈이는 일본 국적을 가졌지만 한국 사람이니까 응원해줄 걸로 알았는데 (언론이) 그렇게 나왔으니까요."

추성훈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이유를 묻자 "돈 때문은 아니었다"고 했다. "지도자도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좋아하는 걸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선수 생활은) 할 수 없으니까요."

유도 선수 출신이지만 타격(打擊) 기술도 강했던 추성훈은 정상급 선수로 급성장했고, 2006년 12월 멜빈 맨호프(32·네덜란드)를 상대로 1회 KO승을 거두고 K1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일본으로 귀화는 했지만 한국에서 종합격투기 대회가 열리면 외국팀이 아니라 한국팀으로 출전했다. "저는 이제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일본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제 몸에 흐르고 있는 것은 한국의 피입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추성훈'으로 일본에서는 '아키야마'로 동시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일 양쪽에서 함께 환영 받는 시간은 짧았다. 2006년 12월 일본 격투기 영웅 사쿠라바 가즈시(40)를 꺾었을 때 몸에 로션을 바르고 출전했다는 이유로 무기한 출장정지를 받았다. 일본 언론은 한국 혈통을 문제 삼아, "앞으로 경기에 출전할 때 계속 추성훈이라는 이름을 쓸 것인가?"라는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기자는 "당신에게 '누루누루 야로(미끄러운 놈)' '반칙의 유도왕' '흑마왕' '사탄(satan·악마)'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추성훈은 답하지 않고 한동안 기자 눈을 빤히 쳐다봤다.

"(기분은) 좋지 않죠. 제 스스로 붙인 별명도 아니고…. 관중 가운데 저를 응원하는 사람이 단 몇 명이라도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마지막 날 일본 복귀 무대에서 추성훈은 미사키 가즈오(32)에게 코뼈가 부러지는 패배를 당했다. 미사키는 피를 흘리며 퇴장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일본은 강하다"는 노골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미사키가 무릎과 양손이 땅에 닿아있는 추성훈의 얼굴을 발로 때려 '사커킥' 반칙 논란이 일었다. 결국 협회에서 반칙으로 인정돼 무효 경기 처리가 됐지만, 추성훈은 경기 후 한동안 항의하지 않았다. "그전 경기 때 반칙 의혹이 나왔잖아요. '너도 반칙했는데 반칙패 당했다고 왜 뭐라 하느냐'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아서…."

꿈에 대해서 묻자, "한 경기 한 경기 격투기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입니다. 일단 미사키 선수와 재경기를 가진 후에 새로운 목표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장기적인 목표가 뭐냐고 질문하자 한동안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냥… 편안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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