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전 총리 별세…文대통령 "통합의 큰 흔적" 애도(종합)

내리 6선에 원내대표·부의장·장관까지
‘DJP 공조’ 총리…헌정사상 첫 인청 거쳐 임명
대화와 타협 존중…대권과 연 닿지 않아
與野, 애도 물결…“협치 중시한 의회주의자”
  • 등록 2021-05-10 오전 12:00:00

    수정 2021-05-10 오전 12:00:00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현대 정치사에서 대표적인 정치 거물로 꼽혔던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지난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이다.

9일 故 이한동 전 국무총리 빈소가 마련된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조문을 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전 총리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보수정치의 상징적 인물로 통했다. 입법·사법·행정 3부에서 화려한 관록을 쌓았다. 특히 5공 군사정권 시절부터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金) 시대’까지 정치 격변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내리 6선을 했고 내무장관과 여당 사무총장과 원내대표, 국회부의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경기도 포천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서울지법 판사와 서울지검 검사를 거친 뒤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인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처음 당선됐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맡았다. 대화와 타협을 존중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이한동 총무학’이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다만 대권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1997년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른바 ‘9룡’(龍)의 한 명으로 이회창 이인제 후보 등과 맞붙었으나 이회창 대세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JP)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로 변신했다. 이른바 ‘DJP연합’으로 출범한 김대중(DJ) 정부에서는 김종필 박태준 전 총리에 이어 3번째로 총리직을 맡기도 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 임명된 국무총리였다. 2002년에는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해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한나라당에 복당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오후 유영민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을 이 전 총리의 빈소에 보내 고인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유 실장에게 “대통령을 대신해 우리나라 정치에서 통합의 큰 흔적을 남기고 지도력을 발휘한 이 전 총리님을 기리고, 유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해달라”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유 실장이 설명했다. 여야의 애도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8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40여년 정치인생 동안 초당적 협력과 협치를 중시했던 의회주의자”라고 평가했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같은 날 구두논평에서 “국민통합과 포용의 정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 의회주의자로서 많은 후배 정치인들의 귀감이 되어주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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