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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커피음료점, 편의점, 제과점, 부동산중개업….
얼핏 보면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업종들이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공통점도 있다.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자영업종이라는 점이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지난 4월 기준 커피음료점 개인사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9.22% 급증했다. 국세청이 집계하는 전(全) 업종을 통틀어 단연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동네마다 커피가게가 우후죽순 생기는 건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의 한 대기업에서 퇴직한 50대 후반 A씨가 딱 그런 경우다. A씨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를 첫 타깃으로 한 회사의 명예퇴직 방침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제2의 인생’을 결심했다. 그렇게 퇴직금에 대출까지 받아 수억원을 들여 연 게 유명 브랜드 커피가게다.
과거부터 커피에 조예가 깊었던 게 아니다. 진입장벽이 비교적 높지 않다는 판단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A씨의 한 옛 동료는 “인근에 커피가게가 갑자기 많이 생기고 있는 데다 가게 위치도 외진 곳이어서 잘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한다.
‘나이 지긋한’ 편의점 주인을 어렵게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비슷한 흐름이다. 편의점 개인사업자는 매달 10%(전년 동기 대비)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제과점(4월 기준·7.51%)과 부동산중개업(8.66%)도 부쩍 늘고 있다.
레드오션 몰리고, 폐업 증가하고
예정처가 통계청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지난해 자영업자가 가장 많이 증가한 산업은 숙박·음식업이다. 전년 대비 3만5000명 급증했다. 숙박·음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 비중도 11.0%로 전년과 비교해 0.6%포인트 상승했다.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자영업자도 1년새 2만2000명 늘었다.
박승호 예정처 경제분석관은 이들 업종을 두고 “자체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은 업종”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레드오션(경쟁이 매우 치열해 붉은 피를 흘려야 하는 시장)’이어서 그 유입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반면 전문화된 자영업종은 오히려 줄고 있다. 과학·기술서비스업과 교육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는 전년 대비 각각 5000명, 1만1000명 감소했다.
최근 자영업자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전년 대비 -0.8%를 기록했다. 지난 2013년(-2.4%) 이후 3년 만에 다시 마이너스(-) 증가율로 하락한 것이다.
한국은행의 한 금융통화위원은 “자영업자 대출은 과도한 경쟁 등을 감안할 때 대출 건전성이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韓 자영업 비중, OECD 최고 수준
또다른 문제는 A씨처럼 마땅한 노후 소득이 없는 고령자가 창업에 나서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체 자영업자 중 60대 이상의 비중은 26.8%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증가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50%에 가까운 수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단연 최고치다.
전세계로 시야를 넓혀봐도,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은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은 21.4%(2015년 기준)로 OECD 평균인 14.8%보다 6.6%포인트 높다.영국(14.7%) 독일(10.4%) 일본(8.5%) 등 웬만한 선진국의 자영업 비중은 OECD 평균 이하다.
통상 경제학계는 한 나라의 산업이 고도화 할수록 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영업자는 감소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예외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나라는 그리스(30.8%) 멕시코(26.7%) 이탈리아(23.3%) 등에 불과하다.
박승호 경제분석관은 “(레드오션 시장에 대한) 자영업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창업 이전단계에서 유망 업종으로 진입을 유도해야 한다”면서 “컨설팅, 교육 지원 등을 통해 고령 자영업자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