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란다]창작자 위한 '영상물 공정보상제' 도입 필요

이윤정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부대표 기고.
"국내 콘텐츠의 글로벌 시장 확대로 중요성 부각"
"열심히 작업하는 창작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 등록 2022-03-14 오전 7:00:00

    수정 2022-03-14 오전 7:00:00

이윤정 감독(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 (사진=이데일리DB)
[이윤정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부대표] 새 정부가 ‘영상물 공정보상제도 도입’을 문화 정책으로 채택해줄 것을 바란다. 영상창작자들의 생계와 권리를 보장하고 대한민국의 백년대계를 이끌어갈 콘텐츠 산업의 기둥이 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제도의 용어는 생소하겠지만, 그 뜻은 간단하다. 음악을 만든 작사가나 작곡자들처럼 영화·영상물을 만든 작가와 감독들도 작품 이용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뜻한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Residual’(잔여 작업)이라고 부르고, 유럽과 남미 등에서는 ‘Fair Remuneration’(공정 보수)이라고 부르며 보장하고 있다. 한국어로는 아직 공인된 번역어가 없어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공정보상권’, ‘공정보상제도’라고 명명해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평범한 지인들은 나를 비롯한 영화감독들이 이미 저작권료를 받는 줄 안다. 그래서 방송에서 한 번씩 저의 예전 영화가 나오거나, OTT에서 감독의 영화를 플레이해서 보면 해당 감독에게 저작권료가 들어갈 거라고 생각을 한다. 음악에도 저작권료 제도가 있는데 영화/영상물이 그렇지 않은 이유를 선뜻 떠올리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아직 영상물에 저작권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것은 1980년대 저작권법이 만들어지던 시절, 영화정책은 문화예술적 관점보다는 산업진흥의 관점에서 짜였기 때문이다. 저작권에 관한 이해관계 조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제작/사업자들의 목소리가 창작자의 목소리보다 당시 더 크게 반영됐다. 음악 분야에서는 90년대 말 인터넷망을 통한 광범위한 음원 이용을 경험하면서 창작자에 대한 저작권 보호의 틀이 정비됐다. 영화/영상물 분야의 경우 최근에서야 글로벌 규모의 디지털 시장 확대를 목도하며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해 관계 조정의 어려움 또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 덕분에 데이터 수집의 행정 비용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더이상 반대의 이유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칸과 오스카를 석권한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전세계 1위라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을 세운 ‘오징어 게임’ 등을 떠올려 보면 한국의 영화/영상 산업은 과거 어느 때보다 영화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그 영광의 이면엔 꿈과 재능을 담보로 위태로운 생계 끝에 내몰린 수많은 창작자들이 있다. 20여년 전 결혼식에서 만난 사람에게 쌀을 전해받았다던 봉준호 감독의 추억은 성공한 이의 미담이 되고 있지만, 쌀을 건네줄 귀인이 없던 무명의 창작자에게는 한으로 남을 것이다. 그 사이 우리는 이 냉험한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지금도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창작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 돼 줄 어떠한 제도도 마련하지 못한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창작자들의 노력 덕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폭넓은 계층의 아이들이 영상물을 언어로 삼아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있다. 말이나 글보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먼저 배우는 미래 세대들에게 영상 콘텐츠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 됐다. 그들이 창작자로 성장해 영상 산업의 구조 안에 들어왔을 때, 적어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작품 창작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만들어 달라.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었다”던 “높은 문화의 힘”은 국가대표식 성과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세계 수준에 걸맞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보장하고 그 토대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작품들을 아낌없이 향유하고 지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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