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한국은 이미 일본식(式) 장기 저성장의 위험에 당면해 있습니다.”
이창용(61)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은 향후 10~20년을 볼 때 일본과 같은 저성장 구조로 들어갈 위험은 이미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국장은 한국인으로는 국제금융기구 최고위직을 맡고 있는 ‘빅샷’이다.
|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사진=IMF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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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한국 경제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고령화다. 그는 “고령화가 시작되면 복지, 의료와 관련한 경직적인 지출을 줄이기 어렵다”며 “일본의 예는 시사점이 많다”고 말했다. IMF에 따르면 1990년 63%였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20년 254%로 30년 만에 191%포인트 급등했다. 그런데 이 중 대부분인 178%포인트분은 의료, 연금 등의 지출로 나타났다. 재정적자의 원인은 고령화라는 뜻이다.
이 국장은 “한국은 신성장산업 육성 등 산업정책에 재정 투입을 많이 해왔다”며 “그러나 고령화 지출 때문에 이런 여력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돈을 지원해)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힘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고령화 외에)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가 오면 지출이 불가피할 때가 있다”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예로 들었다. 이 국장은 “(강도 높은 방역으로) 자영업자가 폐업하면 추후 복지 예산으로 돈이 더 든다”며 “그런 점에서 몇 차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했던 재난지원금은 자영업자에게 선별적으로 하는 게 더 바람직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한국 대선 국면의 잇단 돈 풀기 공약을 우회 비판한 것으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 국장은 “정부는 쓸 수 있는 돈이 줄고 기업보다 (신성장산업을 선별할) 능력도 떨어진다”며 “그러나 제도는 바꿔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컨대 한국에서 한 번 실패한 기업가는 평생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힌다”며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같은 장기불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부가 성장 정책의 틀을 확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