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1년 살림, 국회 심사는 고작 한 달…결말은 '깜깜이' 쪽지예산

[반복되는 '졸속' 예산 심사]
국회 예결위 상정서 본회의 의결까지 37일뿐
5년 평균 예산 조정규모 3% 하회…'겉핥기'
상임위·분야별 지출한도…사전심사 도입 고려할 만
예결위, 일반상임위 전환도 거론…국회 논의는 지지부진
  • 등록 2024-01-15 오전 5:30:00

    수정 2024-01-15 오전 5:30:00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2014년 이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상정된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6.7일이었다. 한 달여 만에 수백조원에 달하는 국가 살림살이가 결정된 셈이다. 그마저도 여야 지도부 극소수만 참여하는, 이른바 소(小)소위에서 ‘깜깜이’로 ‘손질’된 예산안이 처리됐다. 국회의 예산안 심의권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2월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1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촉박한 심사…대안은 사전심의제·일정 조정

예산국회는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는 9월부터 시작한다. 국회는 소관 상임위원회에 예산안을 회부하고 예산안을 설명하는 대통령의 시정연설도 듣는다. 10월 중 소관 상임위가 예비심사보고서를 제출하면 예결위 심의, 본회의 의결을 거쳐 예산안을 정부로 이송한다.

지난 10년 동안 예산안이 예결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로 상정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예결위가 11월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다음날인 12월1일 정부 예산안을 본회의에 부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자동부의제 영향도 있겠지만 예산안을 심의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정기국회가 열리는 90일 동안 국회는 예산안 심사뿐 아니라 국정감사, 결산 심사까지 모두 마쳐야 한다. 물리적으로 예산안 심의에만 쏟을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실질적으로 예산을 심사하는 예결위 소위는 11월 초중순 이후에나 가동됐다.

그러다보니 예산 심사는 ‘수박 겉핥기’로 이뤄지기 십상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지난 5개년 동안 정부 예산안 대비 조정 규모는 평균 3%를 밑돌았다. 윤석열 정부로만 좁혀도 2023년도 예산안은 639조원 편성됐다가 증액 13조5000억원, 감액 13조8000억원 등 27조3000억원(4.3%) 조정됐고 2024년도 예산안은 656조9000억원 편성됐다가 증액과 감액이 각각 4조5000억원, 4조7000억원 이뤄져 9조2000억원(1.4%) 조정됐다.

정부의 예산 편성권과 국회의 예산 심의권이 균형을 이루도록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하기 전 미리 국회와 예산안 방향을 조율하는 ‘사전예산심사제도’ 필요성이 제기된다. 영국과 스웨덴, 뉴질랜드, 캐나다 등은 본예산안을 제출하기 3~5개월 전에 사전예산안을 보고하는 절차가 있다.

류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담은 사전예산서를 본예산 심의에 앞서 국회가 심의하는 과정을 통해 국회가 중장기적 관점으로 심사할 수 있고 정부가 독점하는 재정정보의 공개가 촉진되고 재정 운용의 투명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했다.

국회가 예산안 심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국정감사와 결산 심사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발간한 ‘국회의 예산안 심의권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과제’에서 “국정감사는 원칙적으로 정기국회 전에 실시하도록 규정돼 있고 결산도 정기국회 이전에 심사를 마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심사 기한이 늦어진다”며 “결산 심사와 국정감사 조기 실시를 위한 국회 운영 일정을 수립하고 관례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예결위서 지출 총한도 결정해야” 주장도

예산안 심사 과정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는 총 예산안 규모를 정하고 그에 맞춰 분야→부처→사업별 예산을 정하는 하향식(top-down)인 반면, 국회는 각 상임위에서의 예비심사를 거쳐 예결위가 종합심사하는 상향식(bottom-up) 구조다. 예결위가 개별 사업까지 들여다보면서 상임위 심사와도 겹치기도 한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예결위는 총량과 분야·상임위별 한도를 정하고 각 상임위는 제한된 총량 범위 안에서 예산을 심사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결위가 각 상임위나 분야별 예산 총한도를 정한다면 현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재정준칙도 지킬 수 있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총지출 규모와 상임위 지출한도를 미리 결정하면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늘리기 위해 다른 지역구 예산을 깎아야 한다”며 “의회에 예산편성권을 맡겼을 때 우려되는 ‘지역구 예산 챙기기’ 관행이 없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결위를 1년 내내 운영되는 상임위로 전환하는 방안도 개선안으로 거론된다. 상설특위인 예결위는 소속 위원 임기가 1년으로 상임위 위원 임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다른 상임위와의 겸임이 가능하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2년 동안 꼼꼼하게 살피는 것과 달리 임기가 짧고 전문성이 떨어져 지역구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청회도, 정개특위도 열렸지만…멀고 먼 협의

다만 국회에서 예산안 심의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가 헌법 개정을 추진하며 국회의 예산 심의권 강화를 토대로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법률안을 의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개정은 불발됐다.

21대 국회에서 꾸려진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022년 9월 국회 예산·결산 심사 기능 강화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고 2022년 11월, 지난해 2월 두 차례 국회선진화소위원회도 열어 관련 내용을 논의했지만 법 개정까진 이르지 못했다. 현재 국회의 예산안 심의권과 관련해 김진표 국회의장, 맹성규 민주당 의원,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한 ‘국회법’·‘국가재정법’·‘국회예산정책처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정창수 소장은 “국회의원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더 키울 수 있는데도 번번이 논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안타깝다”며 “국회의 정책적 전문 역량을 키워 정치 경쟁이 아닌 정책 경쟁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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