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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오징어 그 후]①[르포]오징어 돌아오면 사람도 돌아올까

오징어 산지 동해안 산지 및 도매 업체 르포
새벽 고생 무색하게 적자감수…어획량 줄자 주민 떠나
올해부터 혼획 새끼 오징어도 일절 판매않기로 인식변화
거센 소비자 요구…"총알오징어 유통 돈버는 시대 지나"
어민끼리 다툼 늘었다지만 "항구 불 꺼지는 것보다야…"
  • 등록 2021-04-22 오전 5:30:00

    수정 2021-04-22 오전 5:30:00

[경북 영덕, 포항=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여명과 어둠이 씨름하던 지난 9일 새벽 4시반께 경북 영덕군 축산항. 환한 등을 밝힌 광명호가 밤샘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접안하면서 어둠을 밀어냈다. 그럴수록 선장 얼굴에 내린 어둠은 짙어져 갔다. 어창이 가벼웠나 싶었는데 역시였다. 경매를 마친 광명호 선주 정희태(59)씨는 “오늘도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하루에 최소 100만원치는 잡아야 남는데 오늘처럼 30만원에 그치기가 예사”라고 했다.

해양수산부 동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들이 9일 새벽 경북 영덕군 축산항으로 들어온 어선을 대상으로 금어기 및 금지체장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항구를 추억하는 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한때는 밀려드는 생선으로 주민보다 외지인이 많을 만큼 항구가 북적였다. 모닝커피를 파는 다방이 등대만큼 새벽 항을 밝혔다. 조업의 고단함을 달래려는 이들로 붐비던 다방은 이날 불 꺼진 곳이 여럿이었다. 조업을 나선 배(8척 남짓)보다 정박한 어선(40여 척)이 많은 탓을 하기도 뭣하다. 요새 어획량이 받쳐주지 않은 데다가 오징어 금어기(4~5월)와 거센 풍랑까지 겹치자 나가지 않는 게 돈을 버는 일이다.

뱃일이 32년 됐다는 선주 A씨는 “경매에 잡은 오징어를 내려고 배들이 새벽항에 줄을 서는 광경이 사라진 지 오래”라며 “크는 속도보다 잡는 속도가 빨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덕군 축상항에서 9일 새벽에 만난 정치망 선주 정희태씨(왼쪽 두번째)가 기자(왼쪽)와 해양수산부 동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에게 되레 강력한 단속을 주문하고 있다. 정씨는 “트롤과 채낚기 어선의 공조 조업을 우선 단속해야 오징어 개체수를 보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항구를 낀 축산항초등학교는 마을의 부침을 보여준다. 한때 800명이 넘던 학생 수는 지금 13명이다. 시골 학교 학생 수가 감소하는 건 비단 여기 얘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37년째 축산항에서 정치망 어업을 해온 정씨는 “명태가 사라지면서 애들이 줄기 시작했고, 오징어가 잡히지 않자 마을에서 사람이 떠났다”고 말했다.

마을은 자취를 감추는 오징어를 붙들고자 안간힘이다. 축산항 위판을 도맡는 영덕 북부수협은 올해부터 새끼 오징어는 일절 위탁판매(위판)하지 않기로 했다. 전에는 현행법상 허용한, 혼획 새끼 오징어(어획량의 20%)는 위판을 맡았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출신과 성분을 따지지 않고 잘은 오징어는 일절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다. 영덕 북부 수협 경매사(23년 경력) 임학송 과장은 “이제는 20% 미만 혼획물도 취급 안 한다”며 “어떻게 잡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속이 바다 곳곳까지 미치지 못하는 실정을 반영한 조처다. 어민의 선의에 기대기보다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는 편이 마을을 살리는 길이다. 사실 수협은 어민들이 모인 조직이다 보니, `좋은 게 좋은 것`이었다. 그런 수협이 합법적인 수준인 20% 혼획물까지 배격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인식 변화는 단속반을 헛걸음으로 돌려세웠다. 이날까지 사흘 일정으로 단속을 나온 해양수산부 동해어업관리단 소속 김황년 어업지도과 계장은 “산 오징어는 한 마리도 못 봤다”며 “한치 서너 마리를 본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비단 축산항 얘기만은 아니다. 전날 만난 포항 대승해물마트 최한두 대표는 “아무리 금어기라도 뒷방(불법)으로 생물 오징어가 유통되기 마련인데 올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동해안 전역에서 나는 오징어를 받아서 16년째 도매하고 있다.

경북 포항에서 수산물을 도매하는 최한두(가운데) 대승해물마트 대표가 8일 기자(왼쪽)와 동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에게 오징어 유통 실태를 전하고 있다. 최 대표는 “오징어 금어기를 맞은 이달 생물 오징어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며 “예전에는 뒷방(불법)으로 유통되곤 했는데 요새 인식이 바뀌어서 그랬다가는 큰일”이라고 말했다.
변화를 부른 것은 유통과 소비자다. 자신이 “전국에서 총알 오징어를 처음 다뤘다”는 최 대표는 “총알 오징어를 팔아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요새 소매상인로부터 들어오는 오징어 주문은 두 가지다. 금지체장(외투장 15cm)을 지키고, 수협 위판 증명서를 동봉해달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한다고 한다. 포항 도화수산의 정승용 대표는 “새끼 오징어를 눈치 보면서 파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며 “먹을 것을 팔고 욕먹느니 아예 안 파는 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동해어업관리단이 9일 찾은 경북 포항 대승해물마트의 냉동창고에 보관돼 있는 냉동오징어. 냉동돼 있는 제품 특성상 내부까지 점검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금지체장(외투장 15cm) 미만 오징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인식 변화가 일으킨 나비효과는 거세다. 올해 들어 동해어업관리단으로는 들어오는 신고 건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금어기·금지체장을 어기는 어민이나 상인을 신고하면 최대 600만원 포상금을 준다. 단순히 포상금을 노리는 신고와 결이 다르다. 강영준 동해어업관리단 주무관은 “오징어 관련 신고 상당수는 어민과 상인이 넣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법을 지킬 테니, 모두가 지키게 하라`는 요구이다.

이런 신고가 늘어나는 것은 반길 일이다. 일선에서 이뤄지는 신고라서 구체적이고 정확해 단속에 도움이 된다. 신고 의식이 퍼지면 예방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사실 단속이 모든 어민과 상인을 아우를 수는 없다. 그래서 적발보다 중요한 게 인식 전환이다. 혹자는 “오징어 때문에 동네 사람끼리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법이 서로를 이간질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새벽 항에 불이 꺼지는 것보다야 나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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