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된 해장국집 청진옥, 이사가도 가마솥은 그대로"

  • 등록 2008-07-14 오전 8:30:00

    수정 2008-07-14 오전 8:30:00

[조선일보 제공]

재개발에 인근 새 점포로 옮기는 3代 사장 최준용씨 "송해·남보원·엄앵란 씨 등 원로 연예인들 지금도 자주 찾아"
 
족발 하면 '장충동'을, 떡볶이 하면 '신당동'을 떠올리듯이 서울 사람들은 해장국 하면 종로구 '청진동'을 생각해낸다.
 
71년 동안 청진동 골목을 지켜온 터줏대감 '청진옥'이 이달 말까지 손님을 맞고 다음 달부터 인근 새 건물로 자리를 옮긴다. 옛 정취를 간직해온 서울의 대표적인 맛집이 도심 재개발에 밀려 옛 터전을 잃게 된 것이다.
 
청진옥은 구태여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집이다. 1960~1970년대 명동과 종로 일대가 지금의 강남과 홍대앞처럼 한창 '물 좋은 시절' 새벽까지 고고장에서 몸을 흔든 청춘남녀들이 허해진 속을 채우러 이곳을 드나들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주당(酒黨)들의 '마지막 차수' 자리가 되기도 하고, 밤을 새운 야근자나 아침을 거르고 나온 새벽 근무자들이 따뜻한 국물을 마시던 곳이다.
 
식당 한편에 붙어 있는 원로 영화배우 엄앵란씨의 젊은 시절 빛바랜 사진 한쪽에 지난 2005년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엄씨가 "한국인의 맛! 44년 단골"이란 사인을 남겨놓았다.
 
최준용 대표는 "송해·남보원·배일집씨 등 원로 연예인들은 지금도 자주 발걸음을 하신다"며 "오랜 단골들이 자녀들과 손주들을 데리고 올 때면 '가업(家業)'을 이어온 것이 참 잘했다는 뿌듯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05년 MBC TV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방영 이후에는 "여기가 김선아와 현빈이 식사했던 곳이냐"며 일본 관광객들이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청진옥은 일제시대인 1937년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번듯한 정식 간판도 없이 일대에 나무 시장이 들어설 때 나무꾼들을 상대로 새벽부터 술국을 내는 좌판을 벌여오다가 장사 규모가 커지면서 가게로 바뀌었다.
 
창업주 최동선(1984년 작고)씨와 아들 최창익(2005년 작고)씨의 대를 이어 지금은 손자 최준용(40) 대표까지 이어지며 '3대 가업'이 됐다. 직원 22명에 최상복(48) 주방실장 등 30년 넘게 이곳에서만 일해온 '평생 직원'들도 여럿이다.
 
1980년대 통행금지가 풀린 뒤부터 '365일 24시간 영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 원칙이 깨진 것은 노태우 대통령이 한때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야간 영업 업소들을 옥죄었던 때뿐이다.
 
대표 메뉴는 선지와 양, 우거지 등을 밥과 함께 말아내는 '해장국'을 비롯, 밥은 따로 주는 '따로국', 그리고 술안주용으로 국물과 건더기를 푸짐하게 넣은 '술국' 등이다.
 
내장 부위만을 따로 건져내 수육처럼 접시에 담아낸 '내포'도 별미다. 선지의 씹는 맛을 위해서 소의 피와 소금 외에 막걸리도 넣어준다.
 
SBS TV의 인기 드라마 '식객'의 한 장면처럼 최준용 대표 역시 식당 청소부터 시작해 국물 내는 법, 마장동 가서 고기 보는 법 등을 아버지에게서 하나하나 배워나갔다고 한다.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하고 기업 사보 사진편집 일을 해오다 좀 늦게 가게 일에 나섰어요. 가업을 이어받은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두 딸 아이들에게도 이어가도록 해야죠."
 
3년 전부터 청진동 일대의 도심 재개발 얘기가 본격화됐지만, 마땅한 가게자리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이사는 3주 전에야 결정됐다. 원래 가게에서 50여m 떨어진 종로1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1층에 새로 자리를 잡는다.
 
청진옥이 있던 자리에는 24층 쌍둥이 빌딩 건립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중순에는 강남의 단골손님들을 위해 서초구 양재2동 삼호물산 뒤편 먹자골목에 직영점을 내기로 했다.
 
단골손님들은 "이 자리를 떠나면 과연 예전 맛과 분위기가 나겠느냐"고 걱정하지만, "그래도 청진동을 떠나지 않아 참 다행"이라며 덕담들을 건네고 있다.
 
최준용 대표는 "내 본적지가 바로 청진옥 주소라서 마치 눈앞에서 고향 땅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라며 "가마솥과 그릇 등 주방용구들은 지금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가 옛집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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