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갤러리] 뭉치면 섬 솟으면 산 펼치면 땅…이윤정 '기억의 층'

2019년 작
붓 대신 끈으로…먹물 적셔 한지에 찍고
얽히고설킨 흔적따라 환상적인 색 입혀
세월이 할퀸 주름 존재에 덮인 구김으로
  • 등록 2021-02-11 오전 3:30:02

    수정 2021-02-11 오전 3:30:02

이윤정 ‘기억의 층’(사진=성남문화재단)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바위섬에 기러기 몇 마리가 내려앉았다. 날갯짓 쉬는 모든 새에게 기꺼이 제 몸 내주는 섬의 풍경. 그런데 대개 이런 장면에서 기대하는 그림이 아니다. 옅기보단 진하고, 멈추기보단 움직이고, 정체보단 변화가 인다. 하물며 새보다 화려한 섬이지 않은가. 끝도 안 보이는 긴 끈이 얽히고설켜 환상적인 색과 덩어리를 이뤘다.

작가 이윤정은 끈으로 끈을 그린다. 하얀 레이스끈을 먹물에 적셔 꼬이고 구겨진 채로 한지에 찍어낸 뒤, 그 흔적을 좇으며 색을 입혀 나가는 거다. 흔적이 뭉치면 섬이 되고 솟으면 산이 되며 펼치면 땅이 된다. 그렇게 작가는 섬도 띄우고 산도 짓는다. ‘기억의 층’(2019)은 그 작업 어디 틈에 들인 주름이고 구김일 터.

얼추 20년이다. 인생의 굴곡과 관계의 엇갈림을 비유하자고 꼬인 끈을 꺼내 든 것이. 참 풀기도 끊기도 어려운 끈이었다. 그러던 게 바뀌었다. “산악여행 중 단층이 드러난 험준한 산에서 그동안 그리던 끈이 겹쳐 보였다”고 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끈은, 의미를 찾기보다 산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됐다. 그렇게 붓 대신 끈이다. 여전히 세월이 할퀸 주름이고 존재에 덮인 구김이지만.

6월 27일까지 경기 성남 분당구 성남대로 성남큐브미술관서 김호민·안현곤·이나영·이지연·이현배·장은의와 여는 ‘2020 신소장품전’에서 볼 수 있다. 한지에 수묵채색. 151×160㎝. 작가 소장. 성남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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