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6개월)①소통정부에서 `뚜벅이 정부`로

`결과로·행동으로` 연일 강조..소통은 피곤해?
2R 키워드는 `뚜벅뚜벅`..전통지지층 결집 시도
  • 등록 2008-08-24 오후 3:01:00

    수정 2008-08-24 오후 3:01:00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25일로 취임 6개월을 맞는다. `다사다난` 했다는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만큼 치열하고 험난했던 반년이었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 6개월을 `시행착오`로 간주하고 노트에서 아예 페이지째 뜯어내버리는 수준의 `새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남은 4년6개월의 국정운영 기조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그 시행착오들이 이명박 정부의 손에 어떤 군살로 자리잡았는지, 이제 새 출발을 시작할만큼 정책이 정리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이데일리가 취임 6개월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시리즈를 기획한 이유다.[편집자]
 
 
대통령 취임 후 6개월은 권투로 치면 1라운드, 영화로 치면 도입부다. 몸을 가볍게 풀고 상대를 탐색하는 데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영화라면 등장인물을 소개하기에도 벅찬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1라운드는 처음부터 치열한 난타전이었다. 카운터 펀치를 맞고 그로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취임사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대국민 사과문을 몇번씩 읽어야 했다.

취임 초에는 으레 고공행진을 하기 마련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마치 작전에 실패한 종목의 주가 그래프처럼 휘청거리며 흘러내렸다. 영화의 도입부라기보다 주요 장면만을 모아 만든, 박진감(?) 넘치는 예고편을 보는 듯 했다.

◇ 지금까지는 연습..이제부터가 진짜?

그래서일까. 청와대 주변에서는 `지금까지는 연습, 이제부터는 진짜`라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이어서 `새출발`이라고 표현하기조차 민망스럽다는 뜻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취임 6개월은 뭘 해보지도 못하고 흔들렸던, 지워버리고 싶은 시기"라며 "새 출발이라기보다는 지금부터가 진짜 출발"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한나라당 당직자를 청와대를 불러모은 자리에서 대통령이 한 말은 이런 국정기조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은 "정권이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다"며 "이제 많은 것을 결심하고 행동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하여간 2라운드부터는 달라지겠다는 결심이 뚜렷하게 배어있는 발언이다.

어떻게 변하겠다는 뜻일까. 국정운영 변화의 방향성을 짐작케 하는 단서는 지난 달 23일 춘추관을 불시에 찾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은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차근차근 다 잘될 것"이라며 "언론에 어떻게 나든 간에 행동으로 보인다고 했으니까 결과를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그러면서 "실용적인 정부라고 했으니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대세력들이 뭐라고 하든 대통령은 나`라는 자신감의 결과이기도 하고 `미리 계획을 밝혀봐야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갈등만 커지고 일을 하는데는 도움이 안된다`는 실용적 판단의 발로이기도 하다. 실제로 쇠고기 파동이 마무리된 후 청와대는 모든 사안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목소리를 줄였다. 그러면서 각 부처들은 각종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정책의 방향성을 `예측`하던 시기에서 정책의 세부내용들 속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추측`해내야 하는 시기로 변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 쇠고기 사태의 교훈은 `소통`이 아니었다

쇠고기 사태의 원인을 `소통 부족`으로 진단하고 청와대 참모진도 `소통에 강한` 정치인과 관료들로 물갈이했던 대통령이 오히려 소통의 반대개념에 가까운 `행동과 결과`를 자꾸 강조하는 모습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대통령 측근들의 입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거나 `뚜벅뚜벅 가겠다`는 말이 자주 튀어나오는 것도 `국민과의 소통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약속과는 주파수가 다른 발언들이다.

지난 12일 이북도민 초청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쇠고기 시위를 벌인 사람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던 사람들"이라고 언급한 것 역시 해외 교포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이 쇠고기 사태의 본질을 `소통부족`이 아니라 `반대세력의 조직적 저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쇠고기 사태가 대통령 임기의 첫 6개월을 짓누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면, 이 사건을 청와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앞으로의 국정운영 방향성을 짐작케하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가볍게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쇠고기 사태 초기에는 소통부족을 원인으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시위가 격화되고 재협상 요구가 거세지면서 청와대의 판단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지율이 떨어진 상당부분은 전통 지지층이 등을 돌렸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쇠고기를 수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이눈치 저눈치를 보면서 좌충우돌하는 이미지를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통보다는 결단과 행동을 중시하는 행보는 이미 곳곳에 눈에 띈다. 8.15 사면에 재벌그룹 총수들을 예외없이 포함시킨 것과 KBS 사장 해임을 강행한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여론과 소통을 중시했다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이럴 거면 왜 정무라인을 강화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무모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격적이기도 한 결정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촛불정국 이후에 오히려 청와대에서는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취임 첫날 시민들과 악수하는 李대통령(왼쪽사진). 이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적은 계속되고 신화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16일 장관들과 새출발 다짐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대통령. 이날 대통령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좌고우면 말고 뚜벅뚜벅..지지층 결집 시도

청와대의 이같은 내부기류에는 올림픽 바람을 타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의외로 빨리 반등하고 있다는 데서 힘을 얻는 측면도 강하다. 청와대는 15%에서 30%로 지지율이 올라간 요인을 촛불시위에 엄정하게 대응한 것에서 찾고 있다. `반대세력과의 어설픈 소통시도`가 오히려 전통적 지지층을 떠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청와대 내부에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뚜벅뚜벅 추진하는 것이 왕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새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를 법이 정한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임명을 강행했지만 지지율에 별 타격이 없었다"면서 "당분간은 법과 원칙이라는 키워드가 실용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안마다 `법과 원칙`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법과 원칙이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함께 나오는 것이 묘한 아이러니다. 8.15 사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법치주의의 확립은 오히려 보수층이 강조하는 가치지만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는 엄격함과 공정함을 모두 갖춰야 하는 법치주의의 기본원칙과 거리가 있다"면서 "대기업과 특권층에게만 온정적인 법치주의"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법치주의는 각종 규제완화의 핵심가치"라면서 "출총제 등 제한을 완화하는 이명박 정부의 명분이 사전적 규제를 푸는 대신 사후규제를 엄격하게 하는 것인데 지난 6개월의 행보는 이러한 사후 규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통`대신 `뚜벅뚜벅`을 선택한 청와대의 전략은 다시 취임 초기의 키워드인 `실용`으로 돌아간 셈이기도 하다. 소통해서 설득하기 보다 결과로 보여주는 게 깔끔하지 않느냐는 개념이 바로 실용이다.
 
그래서 "쇠고기 시위하던 사람들도 결국 그 쇠고기를 먹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은 실언이 아니라 오히려 취임 2라운드를 맞는 이명박 정부의 방향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발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국민들이 이를 `쇠고기 시위자들도 쇠고기가 안전한 것을 알면서 정권에 저항하려고 그런 것이니 그들과는 소통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그들을 설득하려고 애쓸 게 아니라 그들도 미국산 쇠고기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위생관리를 잘 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지가 관건일 뿐이다.  `소통의 거부`와 `소통의 생략`간의 이같은 미묘한 차이를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해 내느냐가 2라운드를 시작하는 이명박 정부의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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