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에 잊힌 관동대로…옛 42번 국도를 아시나요

강원도 횡성 걷기 좋은 '옛길'
신사임당 율곡 손잡고 한양 오가던 '역사의 길'
장동뱅이 쉬려 들르던 안흥의 '찐방' 유래도
정상부까지 5㎞…성인걸음 3~4시간 왕복
  • 등록 2013-10-08 오전 7:05:30

    수정 2013-10-10 오전 8:16:07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에서 방림면 운교리를 이어주던 옛 42번 국도. 청태산과 사자산 사이에 있는 고개인 문재를 넘어가기 위해 이용하던 길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끊겨 잊힌 길이 됐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횡성=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가을이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거리에는 이 계절을 기다려온 가을옷이 넘쳐나고, 길옆 코스모스는 어느 때보다 우아하게 한들거리며 가을바람을 맞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산이며 들이며 온세상을 물들였던 초록이 서서히 색깔을 잃으며 붉은 옷으로 갈아입을 거다. 이내 곧 동장군이 찬바람을 내뿜을 텐데 가을의 아름다움을 방구석에서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지 아니한가.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도로 위를 가르는 가을 운전의 참맛을 느껴보고 싶지는 않은가. 강원도 횡성은 이미 가을로 가득 차 있다. 저녁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이때, 신을 꿰어 신고 길을 나서보자. 인적이 끊긴 옛길을 걷다 보면 현실에 쫓기며 길을 잃은 이에게 좋은 방도(方道)가 생길지도 모른다.

▲잊힌 옛길 ‘42번 국도’를 아시나요

가을이야말로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습기 없는 쨍하게 높은 하늘이 말해주듯 연중 가장 쾌적한 걷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 강원도 횡성에 바로 이 가을, 걷기 좋은 옛길이 있다.

횡성읍에서 42번 국도를 따라가다 안흥에서 평창 방림으로 가는 길에 문재라는 고개가 있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길이 직선화됐지만 예전에 이 고개를 넘어가려면 사자산 끝자락에서부터 시작되는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지나가야 했다. 문재를 넘어가기 위한 우회로였던 셈이다.

바로 이 길이 ‘옛 42번 국도’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관동지방과 한양을 이어주던 대로였으나 그 쓰임새가 다해 지금은 임도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의 42번 국도는 1995년 터널이 뚫리며 만들어진 새길. ‘빠름’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새길은 정말 빠르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옛길을 지웠다. 괴나리봇짐을 메고 걸어 다녔을 이 길의 생이 그렇게 다한 것이다.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옛 42번 국도는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길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문헌은 이 길의 원형을 ‘관동대로’라고 적었다. 관동대로는 경북 울진 평해를 출발해 삼척·강릉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이곳 횡성을 거쳐 서울의 흥인지문(동대문)에 이르는 천리길. 나라에서 행정용으로 관리하던 길이기도 했지만 선비와 보부상 등이 넘나들던 숱한 사연을 안고 있는 길이기도 했다. 또 역사의 길이다. 강원도 관찰사 정철이 이 길을 지나 ‘관동별곡’을 쓰고, 한국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여섯 살밖에 안 된 아들 율곡의 손을 잡고 이 고개를 넘어 한양을 오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길은 장돌뱅이들이 이용하던 교역로였다. 영동지방에서 생산되는 해산물·농산물이 이 길을 통해 영서지방으로 넘어갔고, 영서지방에서 생산되는 토산품이 이 길로 구산리의 구산장·연곡장·우계(옥계)장 등으로 팔려나갔다. 이 길은 조선 초기만 해도 사람 한둘이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였으나 조선 중종 때 강원관찰사인 고형산이 사재를 털어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혔다고 한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에서 방림면 운교리를 이어주던 옛 42번 국도. 청태산과 사자산 사이에 있는 고개인 문재를 넘어가기 위해 이용하던 길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끊겨 잊힌 길이 됐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구불구불 넝쿨 같은 ‘칡사리고개’

인근 지역 사람들은 이 길을 ‘칡사리고개’라고 불렀다. 지금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 길은 불과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평창과 강릉을 오가는 지름길이었다. 박순업 횡성군 문화관광해설사는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완행버스와 화물차들이 주로 이용했다. 당시에는 험난한 이 길을 지나면서 안흥에 들러 잠시 허기를 달래거나 쉬어 갔다. 안흥찐빵은 이 길을 지나던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지금으로 치면 패스트푸드인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상부까지 대략 5㎞다. 성인 걸음으로 3~4시간 정도면 왕복이 가능할 정도. 정상까지는 완만한 경사가 이어져 걷기에 불편함이 없다. 더욱이 길 폭도 차량이 지나가기 충분할 정도로 넉넉해 천천히 차를 몰고 올라도 좋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도 좋다. 물론 걸어서 가는 것이 가장 좋다. 울창한 자작나무 숲이 초입부터 반겨준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산림청에서 조성한 ‘명품 숲’ 길도 있다. 총 3코스로 조성된 이 숲길은 일제강점기 국도변에 심었던 낙엽송과 소나무가 세월이 흘러 숲으로 거듭난 것이다.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고 나무로 만든 전망대와 야외무대도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1993년 산림청에서 임도를 만들었다는 표지가 있고 오른쪽으로 빠지는 임도가 있다. 지도에서 끊어진 것으로 보이는 임도의 종착지는 구봉대산 자락 보리소골.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부다. 정상부의 고도는 대략 800m다.

정상부는 네 갈래 길이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기 시작한 이정표가 ‘18㎞ 직진하면 방림면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반대쪽으로는 횡성군 안흥면에 진입했다는 이정표도 있다. 칡사리고개를 넘어 방림면 운교리 평창유스호텔 뒤편으로 내려가면 새로 뚫린 42번 국도와 만난다. 왼쪽 임도로 계속 가면 청태산 자락 웰리힐리 파크(구 성우리조트)가 나온다. 오른쪽은 백덕산을 타고 도는 길이다.

명품 숲 전망대에서 바라본 옛 42번 국도. 지금은 산림청이 산을 보호하기 위한 임도로 사용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에 보이는 도로는 현재의 42번 국도이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여행수첩

▶가는 길-42번 국도를 따라 새말 교차로에서 안흥 방면으로 좌회전 후 전재터널을 지나서 서동로를 따라가다 상안리 방면으로 들어가면 된다.

▶주변 가볼 만한 곳

▷우천 코스모스 축제=횡성군은 우천면 새말IC 일대에 대규모 코스모스 꽃밭을 조성, ‘우천 코스모스 축제’를 10월 말까지 개최한다. 현장에는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원두막·허수아비·바람개비 등이 어우러져 기억 저편에 방치된 어린 날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호반길= 횡성호는 남한강 제1지류인 섬강의 물줄기를 막은 횡성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총 저수량 8690만t, 유역면적 209㎢인 횡성호를 한 바퀴 도는 호반길은 모두 6개 구간이다. 총 27㎞ 거리에 가장 짧은 코스는 3구간(1.5㎞), 가장 긴 코스는 4·6구간(7㎞)이다. 이중 걷는 내내 호수를 옆구리에 끼고 가는 5구간은 길이 평탄하고 원점 회귀할 수 있는 유일한 코스라 인기가 높다.

▷태기산= 서울에서 주문진을 잇는 6번 국도는 10월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주목받는 드라이브 코스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횡성군과 평창군을 잇는 구간에서 길이 험해진다. 바로 태기산(1261m)이 버티고 있기 때문. 태기산은 여행을 좀 다녀본 이들이 가을에 꼭 한번 찾아가봐야 할 산 중 하나다. 가을철 일교차 큰 날 새벽이나 해 질 무렵에 넘실대는 구름을 뚫고 정상까지 솟구쳐 오르면 고산준령이 섬처럼 떠 있다. 특히 태기산의 가을 낙조는 두 번 보기 힘들 만큼 최고의 장면을 선사한다.

▷미술관 자작나무숲= 우천면 두곡리 둑실마을에 자리한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사진작가 원종호 관장이 20여년 전에 조성한 전원형 미술관이다. 4000여그루의 자작나무숲에 파묻혀 작품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가을을 만끽하기에 좋다.

태기산의 가을 낙조. 넘실대는 구름이 산봉우리를 넘어가지 않아 시야를 방해했지만 가을 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는 최고의 장면이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먹을거리

장가네막국수(033-343-8377), 박가네더덕밥(033-344-1116), 원조수구레해장국(033-343-6489), 강남해장국(033-345-5900), 면사무소앞 안흥찐빵(033-342-4570), 심순녀 안흥찐빵(033-342-4460), 큰터손두부(033-342-2667) 등

▶머물자리

청태산 자연휴양림(033-343-9707), 둔내 자연휴양림(033-343-8155), 성우리조트(033-340-3000), 코레스코 치악산 콘도미니엄(033-343-8073), 코지호텔(033-343-3000) 등

안흥면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안흥찐빵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태기산의 가을 낙조. 넘실대는 구름이 산봉우리를 넘어가지 않아 시야를 방해했지만 가을 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는 최고의 장면이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산림청이 조성한 명품 숲길. 옛 42번 국도변에는 일제강점기 심은 낙엽송과 소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산림청이 조성한 명품 숲길. 옛 42번 국도변에는 일제강점기 심은 낙엽송과 소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사진에서 보이는 큰 도로가 현재의 42번 국도. 사진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는 사잇길이 바로 ‘옛 42번 국도’로 들어가는 길이다. 1991년 문재터널이 뚫리고 난 후 옛 42번 국도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잊힌 길이 되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기 시작한 이정표가 18㎞ 직진하면 방림면이 나온다고 알려준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옛 사람들이 문재를 넘어가던 옛 42번 국도 초입. 길 옆으로 조성된 자작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옛 사람들이 문재를 넘어가던 옛 42번 국도 초입. 길 옆으로 조성된 자작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횡성호 주변으로 조성된 호반길에는 코스모스 길이 2㎞가량 이어져 있다. 호반길은 총 6개 구간으로 27㎞ 가량 조성돼 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횡성군은 우천면 새말IC 일대에 대규모 코스모스 꽃밭을 조성, ‘우천 코스모스 축제’를 10월까지 진행한다. 횡성을 거쳐 다른 목적지를 향하는 행락객들도 횡성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만개한 코스모스와 가을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사진=강경록 기자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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