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장재현 감독 "아껴둔 무속신앙 피날레, 여기에 다 쏟았죠" [인터뷰]

"100년 넘은 관을 들어 올려…어린 시절 기억 뚜렷해"
"'검은 사제들', 무속 정체성으로 만든 가톨릭 영화"
"호러 DNA 없어…어두운 세계의 밝은 인물에 끌린다"
  • 등록 2024-02-23 오전 10:49:09

    수정 2024-02-23 오전 10:55:48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보면 위험할 것 같은데도 보고 싶은 호기심, 이 실체를 파헤쳐 확인해보고 싶은 지적 탐구심. 그로테스크함과 신비로움을 관장하는 오컬트 미스터리의 두 근원적 감정이다.

‘파묘’. 묘를 파헤친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오컬트 미스터리의 본질을 의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파묘’는 장재현 감독이 어린 시절 동네 뒷산의 오래된 묘를 이장하는 모습을 봤던 기억에서 비롯된 영화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뒷산이 없어지게 돼 묘를 옮긴 거예요. 땅을 파내고, 100년이 다 된 썩은 관을 꺼내 올리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해요. 충격이었어요. 보고싶지 않은데 보고 싶은 이상한 감정이었죠.” 장재현 감독은 당시 파헤쳐진 묘의 흙냄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장재현 감독은 영화 ‘파묘’가 개봉하던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세대를 대표하는 톱배우들이 데뷔 이래 처음 도전한 오컬트 장르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까지 오컬트 색채가 강한 장르 영화들로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던 장재현 감독이 5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23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파묘’는 개봉일 하루동안 33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극장에 모았다. 2024년 개봉작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임은 물론, 천만 영화 ‘서울의 봄’과 오컬트물로서 국내에서 가장 큰 흥행을 거둔 ‘곡성’의 오프닝 성적까지 능가한 기록이다. 2024년 새해 한국 상업 영화들의 부진을 딛고 관객들이 제대로 ‘파묘’들기 시작했다.

장재현 감독이 가톨릭 신부의 구마사제 의식을 다뤘던 입봉작 ‘검은 사제들’, 사이비 종교 집단을 추적한 ‘사바하’에 이어 한국의 무속신앙을 소재로 한 ‘파묘’를 내놓은 건 단순 우연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었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부터 사실 무속에 빠져 만든 가톨릭 영화였었다. 주인공이 두 신부이지만, 무속인의 정체성으로 두 사제의 이야길 풀어나간 게 작가적 의도였다. 그 때부터 무속신앙에 관심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때부터 무속인들을 많이 만났고, 그분들에게 ‘사바하’를 만들 때도 도움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무속신앙의 피날레를 하고 싶어 아껴뒀던 아이디어를 이번 영화에 다 쏟아낸 것”이라고도 표현했다.

‘파묘’에 출연한 최민식부터 장재현 감독과 함께 작업한 배우들 대부분은 그가 CG를 병적으로 싫어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확한 목적을 갖고 ‘진짜’를 찍어내는 것. ‘검은 사제들’ 때부터 쭉 이어진 장재현 감독만의 연출 스타일이다. 장 감독은 “굿 같은 무속 퍼포먼스나 기술 장면들을 찍을 때 가끔 다른 미디어를 보다 보면 그냥 멋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비주얼적인 매력을 위해서 말이다”라며 “그런데 난 정확한 목적 없이 찍을 방향이 없다. 아직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비주얼을 위해서라기보단 정확히 목적을 위해 굿 장면들을 만들어나갔다”고 설명했다.

예고편에 공개됐던 초반부 화림(김고은 분)의 대살굿부터 ‘파묘’엔 굵직한 굿 장면이 총 세 개 정도 등장한다. 장 감독은 “대살굿은 퍼포먼스만 보면 공격적으로 보이나, 묘를 파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위한 역할이다. 화림이 자기 얼굴에 피를 묻히는 것도 신을 받는 행위로, 무당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무속인들이 굿하며 칼로 자신의 몸을 긋는 것도 퍼포먼스가 아닌 확인 절차다. 칼로 몸을 그어 상처가 나는지를 통해 내 몸에 신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이를 설명했다.

오컬트 외길을 걸어온 그가 호러 DNA를 지닌 감독은 아닌 것 같다는 뜻밖의 고백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 영화가 호러였다면 주인공이 풍수사가 아닌 묘를 옮겨달라 의뢰한 인물이었겠죠. 생각해보면 전작의 주인공들도 전부 문제를 해결하러 간 전문가들이었어요. 호러를 만들어야 했다면 ‘검은 사제들’의 주인공은 김윤석, 강동원이 아닌 박소담이고, ‘사바하’의 주인공은 이정재, 박정민이 아닌 이재인 배우가 돼야 했을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그런 무섭고 답답한 분위기를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막상 극장에 공포영화가 개봉하면 잘 안 보러 간다. 뒷맛이 안 개운한 이야기를 언제부턴가 극장에선 안 보게 되더라. 내가 호러 DNA까진 아닌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베를린영화제에서 만난 외신기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도 털어놨다. 장 감독은 “그 기자가 내 작품들을 다 봤더라. 그 분이 내 작품들을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이라고 표현해줬다. 내 생각도 그런 걸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엔 동아시아적인 느낌으로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에 몰두한 것 같다”고 떠올렸다. 또 “어두운 세계의 밝은 인물들에 끌리는 듯하다. 밝은 세계에 밝은 인물들만 들어가는 것도 상상이 안되지만, 어두운 세계에 어두운 인물만 들어가는 건 더 상상이 안된다”고도 덧붙였다.

이른바 ‘묘벤져스’로 불리는 극 중 인물인 풍수사 상덕(최민식 분), 무속인 화림(김고은 분)과 봉길(이도현 분), 장의사 영근(유해진 분)의 이미지도 그만의 캐릭터 철학을 철저히 반영한 결과였다. 장재현 감독은 “다크하지 않다. 돈 때문에 먹고 살자주의의 사람들”이라며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보는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사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더라”고 부연했다.

“‘귀신잡으러 가자’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 자체가 제겐 안 와닿아요. 풍수사와 장의사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는 격에 가깝죠.”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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