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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초기부터 근로·교육·의료 혁신…G7 참여 모색해야"

[만났습니다]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①
현금복지→복지서비스…여성고용률 높이고 저출산 해결
코로나 계기로 근로·교육·의료분야서 리셋 모색해야
미·중 갈등 큰 도전…G7 참여 위해 美 설득방안 찾아야
재정승수 높여 단순 복지 아닌 역량증진형 국가로 가야
  • 등록 2021-11-02 오전 6:47:00

    수정 2021-11-02 오전 6:47:00

[이데일리 이정훈 이윤화 기자]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은 노동과 교육, 의료분야에서 우리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엄청나게 좋은 기회입니다. 내년에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초기부터 강하게 추진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안전성 제고를 최우선 과제여야 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최근 글로벌 의사결정의 핵심이 된 주요 7개국(G7) 틀 내에 들어가기 위해 반도체 등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사진=이영훈 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로 있는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지난 달 2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내년 대통령선거 이후 출범할 새 정부에 조언하는 정책과제로 이 같은 현안들을 제시했다. 이 부의장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수장이다.

아울러 그는 더이상 복지국가의 프레임에 갇혀 있지 말고, 각 민간 경제주체들의 역량을 높이는데 나랏돈을 투입하는 역량증진형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다음은 이 부의장과의 일문일답.

-문재인 정부도 끝을 향해 가는데, 이 기간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공과가 모두 있다고 본다. 일단 한일 간 무역분쟁 이후에 소부장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일을 성공적으로 했고, 제2 벤처 붐을 일으켜서 다수의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 냈다. 한국판 뉴딜도 좋은 프레임이었다고 본다. 스마트 팩토리 등도 잘 확산시켰고,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리쇼어링도 2018년 이후 완전히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리쇼어링과 스마트 팩토리를 결합하는 정책은 좋았다. 반면 노동시장 개혁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무리하게 하다 보니 공정성 시비가 이어졌고, 최저임금이나 원자력발전과 같이 과속으로 인해 문제가 된 정책들도 있었다. 아울러 연금 개혁도 미래 세대를 생각하면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정권 내에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대선 국면에서 기본소득 등 현금성 복지 공약이 넘쳐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현금지원 정책은 코로나19 하에서 여러 나라들이 썼다. 특히 국내 상황에선 대기업들은 잘 버티는 반면 대부분 피해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에게 집중됐다. 그들을 타깃으로 상당한 규모의 지원을 집중하는 식으로 갔어야 했다. 직접 피해를 보는 대상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데, 소비진작 차원에서 전 국민에게 현금성 지원을 하는 건 정공법은 아닌 것이다. 복지정책을 보면 크게 현금 복지와 현물 복지가 있다. 서구 복지국가들의 경험을 보면 전통적으로 현금 복지로 갔는데, 그런 정책이 경직적이고 재정에 부담을 주면서도 효과는 크지 않다 보니 육아와 출산, 보육 등에 대해 지원하는 현물 서비스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선제적으로 학습해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 복지보다는 경제주체들에게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현물 복지로 가야 한다. 우리 고용률이 낮은 것은 기본적인 사회서비스 부족으로 여성들이 고용시장에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고용률은 60% 수준으로, 북유럽 등 서구 북구 선진국에 비하면 20%포인트 정도가 낮다. 출산할 때 돈을 주기보다는 직장에서 출산과 육아휴직을 충분히 제공하면 더 많은 여성이 일하고 출산할 것이다. 또한 복지정책을 연령층별로 나눌 때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와 근로연령층에 대한 복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서구에서는 취약계층 위주에서 근로연령층 복지 강화로 가고 있다. 일하는 부모에 대한 지원을 늘린 것이 효과적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연령층에 대한 복지를 늘려야 한다. 복지국가의 트렌드는 현금 보다는 현물이다.

-코로나 이후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이나 ‘중대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린 뭘 해야 하나.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몇 가지 기회가 있다고 본다. 비대면이 확산하다 보니 재택근무를 비롯해 근무방식이 다양해졌고 환자를 대할 때 직접 만나지 않아도 원격으로 진료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도 생겼다. 교육에서도 비대면 학습이 늘어났다. 이는 엄청나게 좋은 기회다. 이 모두가 그동안 이해당사자들의 반발 등으로 풀기 어려웠던 숙제였는데, 이제 코로나19를 핑계로 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근로도, 교육도, 의료도 모두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술적으로도 모두 가능한 여건이 돼 있는 만큼 리셋이 필요하다. 사실 지방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바로 교육과 의료서비스다. 이 문제만 잘 풀면 지방 소멸에도 선제 대응할 수 있다. 지방에서 생활하기 위해 맞춤형 교통수단도 필요하다. 이 모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뒤 초기부터 강하게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차기정부의 가장 우선적인 경제정책은 무엇이어야 할까.

△앞서 얘기했던 과제들인데, 무엇보다 복지와 노동시장을 연결해 고용에서의 유연안전성을 높이고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또 연금 개혁이 필요하고 주거 안정도 필요하다.

-대외적인 정책 과제는 어떤 것들이 있나.

△최근 다자간 자유무역체계가 작동하지 못하면서 미국이 유럽과 손잡고 동맹형 글로벌 공급망(GVC)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다자간 체제가 완전히 죽은 건 아니지만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 세계무역기구(WTO)나 주요 20개국(G20)의 역할이 이젠 주요 7개국(G7)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젠 G7 내에서 합의하면 전 세계에 통용되는 식으로 다자간 틀이 바뀌었다. 중국이 없는 G7 내에서만 합의하면 G20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식이다. 최저 법인세와 디지털세 합의가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이뤄진 것 아니냐. 이들 두 합의는 세계 경제질서의 주도권이 G7으로 넘어갔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룰 세팅이 새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틀에서 한국도 참여해야만 한다. 지난 G7 정상회의에선 한국과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초청국으로 갔는데, 우리는 호주와 함께 G7 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반도체와 배터리 등에서의 협력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이에 정치적, 외교적 명운을 걸고 우리 몫을 확보해야 한다. 선진국들의 관심이 반도체 등의 공급망 개선에 쏠려 있는 만큼 우리는 충분한 협상력이 있을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우리도 국제적 룰 세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사진= 이영훈 기자)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최근 보면 중국시장 내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는 거의 없다. 대부분 최종재 조립 공장은 베트남 등 중국 밖으로 나가고 있고 경쟁관계인 중국 기업들의 성장으로 우리 기업들의 설 땅이 없다. 삼성만 해도 반도체와 배터리,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외에는 중국 공장이 없다. 최종재시장도 중국 기업들이 잡고 있으니 삼성전자와 현대차라고 해도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기술은 서방에 의존하고 시장은 중국에 의존하는 이중구조였다면, 이제는 기술도 시장도 서방에 의존해야 할 상황이 왔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이를 가속화시켰다. 이 때문에 중국도 결국 ‘메이드 인 차이나’를 가속화 할 수밖에 없다. 이제 몇 년 만 더 지나면 중국은 한국 중간재를 안 쓰게 될 것이고, 우리 기업도 중국에 팔 것이 없어질 것이다. 히토류처럼 오히려 중국 기업으로부터의 각종 재화 수입에 의존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 우려가 커지는데 뭘 해야 하는가.

△성장을 견인하는 건 노동과 자본, 혁신 3가지다. 최근에는 자본적 요인보다 노동 요인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독일도 잠재성장률 하락을 이런 노동시장에 대한 대응으로 극복했다. 사회 안전망이나 사회서비스를 확충해야 여성을 통한 고용률 제고나 고용의 유연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정년 연장보다는 고령층이 현재 있는 직장에서 새 계약을 통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팬데믹 이후 고용관계가 다양해지고 있고 근무공간도 바뀌고 재택과 같은 근무형태도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방식의 고용을 통해 노령인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파트타임 정규직과 같은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 제도적 혁신을 정착시키려는 정부의 의지와 노사정 타협이 과제다.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가 크다.

△방향은 거스를 수 없다. 우리도 국제 공조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도 제조업 강국이라 탄소배출이 많아 빨리 줄여 나가야 한다. 속도만 잘 조절한다면 우리 기업이 잘 적응해 갈 것이고, 일부 서구 선진국을 빼면 탄소중립 기술 등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나라도 사실 우리나라 정도다. 다만 탄소중립과 같은 이슈는 우리 제조업에 굉장히 큰 도전이다. 우리 기업들이 잘 적응하겠지만, 과속하진 말아야 한다. 적절한 시간과 재원 배분이 필요하니 너무 빨리 가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이 분야에서 아직까진 충분한 전환전략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 같다. 큰 기조는 공감하지만 어떤 식으로 구체적으로 추진할 지가 잘 나와 있지 않다. 제대로 된 스케줄과 계획을 만드는 게 우선 시급하다. 우리 기업들의 역량과 부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기업들과의 대화 채널을 잘 활용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 급격히 늘어난 나라 빚을 둘러싸고 공방이 있다.

△요 몇 년 간 세수가 예상치 않게 늘어나면서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국가채무가 너무 가파르게 늘어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양 측 공방이 있지만, 우리는 국제결제통화국이 아닌 만큼 선진국에 비해서는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옳다고 본다. 사실 현재 국제결제통화 국가들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평균 100% 수준이고, 비결제통화국 평균은 60% 수준인데 적정선이 다른 것이다. 우리도 50%를 넘어서는 만큼 우려할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는 건 맞다. 선진국들에 비하면 낮다고 안심할 문제는 아니다.

-내년에도 정부는 재정확정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국가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개발독재, 복지국가를 지나 ‘역량증진형’ 국가로 가고 있다. 역량증진형 국가라는 표현은 재정을 통해 물고기를 직접 주는 게 아니라 각 경제주체들이 역량을 높이도록 하는데 재정을 쓰자는 것이다. 경제주체들의 역량을 높여야 성장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국가채무비율도 낮아지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기업과 개인의 역량, 복지 시스템도 역량을 높이는데 돈을 써야 재정승수도 높아질 수 있다. 현금성 복지정책은 돈을 줘도 어디 쓰는지 알 수도 없다. 그래서 복지정책은 현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에서도 대기업의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가 아니라 ‘역량공유제’로 가서 대기업이 가진 노하우와 역량을 중소기업에게 전수하고 공유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최근 삼성그룹이 스마트 팩토리 등에서 중소기업들을 많이 지원하는 방식도 그런 것이었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률이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온다.

△미중 간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 코로나19 확산 영향, 사재기 등이 겹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은 단기간 내에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또 미국이 우리나라 등에게 현지 공장을 지으라는데, 이렇게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제품 단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고 과잉설비 우려도 있다. 이처럼 공급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은 더 지속할 것 같다. 다만 보복소비로 늘어난 수요가 줄어들면서 내년부터 성장률은 낮아질 것이다. 중국이 2008년 등 과거처럼 글로벌 수요 견인차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 경제 큰 호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경기 악화까지 갈지는 두고 봐야겠으나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는 근거는 있다고 봐야 한다. 공급 측면에서의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처럼 공급 측면에서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진짜 온다면 전통적인 거시경제정책으로서는 약발이 안 먹힐 것이다. 공급이 문제라면 공급 측의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노동시장에서의 효율성을 높여서 고용을 늘리고 그를 통해 공급량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 공급 부족의 장기적 해결책인 혁신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케인즈보다 슘페터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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