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 유산 조선 왕릉들 '러닝족' 발길에 몸살

도심 한복판 녹지대서 운동 즐기는 시민 들어
왕릉서 소란행위 금지돼 있으나 단속 어려워
이씨 종친회 "문화재 가치 훼손·조상 모독" 불쾌
  • 등록 2014-01-27 오전 7:30:00

    수정 2014-01-27 오전 7:30:00

서울 노원 공릉동의 강릉(조선 명종·인순왕후 능) 봉분 전경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유선준 기자]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거주하는 박모(33)씨는 매일 퇴근 후 집 근처에 있는 선·정릉 화장실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왕릉 주변을 한 시간씩 달린다. 도심 빌딩숲 속에서 찾기 힘든 녹지대여서인지 박씨 외에도 운동복을 입고 몸을 푸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박씨는 “강남 한복판에 이만큼 공기가 깨끗한 곳은 없을 것”이라며 “관람권도 싸 나 처럼 이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시대 왕릉들이 ‘러닝족’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휴일 저녁 시간대엔 달리기를 즐기는 러닝족들과 일반 관람객들이 얽혀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전주 이씨 종친회와 시민단체들은 세계적 문화유산인 조선 왕릉이 러닝족들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조선시대 왕릉과 왕비릉은 서울·수도권과 강원도에 걸쳐 총 40개소다. 관리를 책임지는 문화재청 왕릉관리소는 일일관람권(1000원) 외에 1개월 관람권(1만원)과 연간 관람권(3만원)을 발급하고 있다. 값싼 관람권으로 자주 왕릉 관람을 즐기라는 취지에서다.

문제는 도심 주변에서 찾기 힘든 넓은 녹지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을 악용, 일부 시민들이 왕릉 주변에서 달리기나 체조 등을 즐기며 관람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왕릉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친 담장에 기대어 스트레칭을 하는 등 문화재 훼손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시민단체는 정부의 관리 소홀로 왕릉의 권위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대홍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기획팀장은 “문화재청이나 자치구에서 왕릉이 공원 취급을 당하지 않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이씨 종친회도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종친회 관계자는 “조상이 누워 계신 묘소 주변을 뛰어다닌다는 게 말이 되냐”며 불만을 털어놨다.

왕릉 관리를 맡고 있는 문화재청은 난감한 표정이다. 문화재를 직접 훼손하는 게 아닌 한 주변에서 운동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규제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관리인들이 왕릉 주변에서 운동하는 시민들을 적발해 퇴거 조치하거나 조용히 관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인력이 부족해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970년대 정부가 녹지공간 조성을 이유로 왕릉을 공원으로 인정한 적이 있어 아직까지 왕릉을 공원으로 잘못 알고 있는 시민들도 많다”며 “왕릉은 공원이 아닌 문화재로 전 지역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관리되는 만큼 왕릉을 훼손할 수 있는 행위는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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