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 정구호 "5초내 비주얼 안떠오르면 작업 안해"

공연연출하는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
영화의상·공연연출 등 다방면 활동
총연출 맡은 국립무용단 '향연' 전석 매진
"패션·무용연출…다같은 비주얼작업"
전통에 현대 가미…K패션 가능성 무궁무진"
  • 등록 2015-12-07 오전 6:06:00

    수정 2015-12-07 오전 6:06:00

지난 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패션디자이너 겸 공연연출가 정구호는 “기존의 틀을 깨려면 누군가는 도전을 해야 한다. 그 도전을 보면서 또 다른 도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작업을 계속해서 제안하는 게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첫인상 5초의 법칙.’ 상대에게 나의 이미지를 각인하는 데 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리다. 디자이너 정구호에게 ‘5초’는 작업을 의뢰받았을 때 머릿속에 해당 프로젝트가 그려지는 시간이다. 정구호는 “5초 안에 그 일에 대한 비주얼이 떠오르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않는다”며 “고깝게 볼 수 있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복 ‘구호’로 잘 알려져 있는 정구호는 국내에서 가장 바쁜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맡고 있는 패션업계 직책은 서울패션위크 총감독과 휠라코리아 크리에이티브디렉터 겸 부사장. 여기에 영화의상과 인테리어 디자인, 무용극 연출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정구호에게 이 모든 일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바로 ‘비주얼 디렉팅’이다. 정구호는 “잘못 보면 문어발처럼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겐 한가지”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현하는 작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구호는 동갑내기 현대무용가인 안성수와 호흡을 맞추며 일찍부터 무용극 작업에 참여했다. 1993년 미국 뉴욕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자신들을 ‘오드보드’(ODDBOD·괴짜)라 부르며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를 위해 협업한 ‘초현’을 비롯해 ‘포이즈’ 등을 함께 만들었다. 2013년에는 국립무용단의 ‘단’ 작업을 함께하면서 한국무용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같은 해 윤성주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안무한 ‘묵향’을 통해 무용연출가로도 나섰다.

최근 다시 한번 국립무용단과 손잡고 ‘한국무용 종합선물세트’라고 자신한 ‘향연’(5·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마무리했다. ‘향연’은 국립무용단이 국빈방문 등 국가 주요 행사에서 선보이는 대표 레퍼토리 ‘코리아 환타지’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56명의 무용수가 출연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봄·여름·가을·겨울을 테마로 한국을 대표하는 춤 12종을 엮어 4막12장으로 구성했다. 단 이틀간 펼친 공연은 전석 매진을 넘어 객석점유율 120%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향연’의 첫 무대를 앞두고 리허설 준비에 한창인 정구호를 지난 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정구호는 “‘향연’을 끝으로 올해 모든 프로젝트를 끝내고 잠시 휴식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이후 내년 3월에 있을 서울 패션위크 준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향연’에서 무대디자인·음악 등을 총괄하는 총연출을 맡았다. 계기는

△우연히 국립무용단의 ‘코리아 환타지’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공연에선 궁중무용·종교무용·민속무용을 동시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했다. 오방색을 해체해 각 장마다 단색으로 전개한다든가, 악기편성을 줄여 전체적으로 음악을 단순화했다. 그러면서도 10m가 넘는 대형 매듭을 무대 위부터 내리는 등 디테일에 신경썼다. 전통무용을 새롭게 정리하고 비우고 재정립하는 현대화 작업을 했다.

-여러 공연장르 중 특히 무용에 꽂힌 이유가 있다면

△연극·뮤지컬·오페라 등 모든 장르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무용은 비주얼이 꽃과 같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인체가 가지고 있는 몸을 이용해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보여주고 조명과 무대가 조화를 이뤄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매력에 꽂혀서 시작하게 됐다.

-전통에 ‘모던’을 입히는 작업 중이다.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향연’에도 나왔지만 ‘전폐희문’(왕의 문공을 찬양하는 춤)을 보면서 너무 현대적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궁중악과 어우러져서 큰 덩어리로 보이는 것을 춤만 따로 덜어내서 정리하면 정말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도 사물을 어떻게 ‘아이솔레이션’(분리)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가령 화장실 변기를 박물관에 옮겨놓으면 예술이 되듯 말이다. 전통무용 역시 어떻게 분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도 전통성은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으로 새롭게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패션디자이너 겸 공연연출가 정구호(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무용과의 인연은 이어갈 계획인지

△사실 패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공연의상 등을 제작하며 무용을 먼저 접했다. 옷은 나의 직업이고 무용은 친구같다. 무용을 하면서 나름의 힐링을 한다. 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돌파구 같은 거다. 직업은 버릴지언정 친구는 버리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다.

-일할 때 영감은 어디서 얻나

△휴가가 따로 없으니 작업이 끝날 때마다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머리를 비우는 시간에 역설적으로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 예전부터 스케치는 따로 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프로젝트 하나가 끝날 때마다 이번에는 내가 상상한 아이디어가 몇퍼센트나 실현됐는지를 점검한다.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일하면서 계속 다음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바쁜 중에 첫 개인전도 열었다

△오는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조은숙갤러리에서 개인전시회를 연다. 영화 ‘황진이’에서 아트디렉터를 담당하면서 전통공예를 하는 인간문화재를 많이 봤는데 작업이 너무 멋있었다. 전시에선 크기가 다른 23점의 반닫이를 새로 만들어 쌓아올린 ‘백골동’을 선보인다. 전통공예를 현대화한 첫 전시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시리즈로 이어갈 예정이다.

-본업은 디자이너다. 국내 패션계와 ‘K패션’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K패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그 기회가 온 것 같다. 디자이너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잘 표현해낸다면 글로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디자이너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국내 패션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 콘텐츠를 글로벌화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단축키 하나로 우리의 옷을 볼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자기만의 세계와 철학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패션디자이너 겸 공연연출가 정구호(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디자이너 정구호는

세계 3대 패션스쿨 중 하나인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다가 국내서 독립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1997년 자신의 이름을 건 여성복 브랜드 ‘구호’를 만들었고 2003년 제일모직이 구호를 인수한 후 10년간 제일모직 여성복 디자인을 담당했다. 2000년 ‘F&F KUHO’ 이사, 2000년 패션 브랜드 쌈지 대표, 2001년 제일모직 전무를 거쳤다. 2004년과 2005년에는 MBC 영화대상 미술상, 대종상 영화제 의상상, 아시아패션연합 한국협회 디자인디렉터상 등을 수상했다. 2008년 이후에는 영화 ‘정사’ ‘스캔들’ 등의 의상디자인을 담당했고, 2012년부터는 국립발레단의 ‘포이즈’, 국립무용단의 ‘단’ 등의 무대디자인과 연출도 맡았다. 현재는 휠라코리아 부사장과 서울패션위크(SFW) 총감독을 맡고 있다.

정구호가 총연출한 국립무용단 ‘향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장).
정구호가 총연출한 국립무용단 ‘향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장).
정구호가 총연출한 국립무용단 ‘향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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