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작가 "300년 전이라고 박경리 같은 작가 없단 법 있나요"

장편소설 '대소설의 시대 1·2' 출간
다섯 번째 '백탑파 시리즈' 이어가
"여성중심 서사…페미니즘 관심 많아
지금 상황과 겹쳐 보면 재미 2배일 것"
  • 등록 2019-07-24 오전 5:04:30

    수정 2019-07-24 오전 5:04:30

김탁환 작가는 “지금까지 ‘백탑파 시리즈’로 원고지 1만매를 썼는데 앞으로 1만매는 더 쓰고 싶다”며 “많은 이들이 백탑파 시리즈를 함께 읽고 같이 즐기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사진=이윤정 기자).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백탑파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덕후’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고 돈과 시간과 모든 걸 쏟았다. 나 역시 소설 덕후다. 기본적으로 성향이 비슷하고 나보다 덕질을 잘하는 선조 느낌이라 더 애착이 간다. 하하.”

18세기 무렵 원각사지10층석탑을 배경으로 한양의 진보적인 북학파 지식인들이 이웃해 살며 이른바 ‘백탑파’를 형성했다. 이들은 신분과 나이의 벽을 넘어 우정을 나누면서 조선사회 변혁의 꿈을 키웠다. 정약용·박지원·박제가 등 흔히 실학자 중 북학파로 알려진 이들이 바로 ‘백탑파’다.

이들의 이야기가 21세기 소설에서 되살아났다.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김탁환(51) 작가를 통해서다. 김 작가는 2003년 ‘방각본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열하광인’ ‘열녀문의 비밀’ 등 16년간 5종 10권을 출간하며 ‘백탑파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각각 다른 역사적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이야기를 이끄는 게 특징이다.

최근에는 18세기 말에 활발하게 활동한 여성작가들을 주목한 다섯 번째 시리즈 ‘대소설의 시대 1·2’(민음사)를 펴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작가는 “지금 시대에만 ‘토지’의 박경리 같은 작가들이 있으란 법은 없다”며 “300년 전 조선에도 장편소설을 쓴 여성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산해인연록’ 중심의 조선 소설사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 임두는 궁중 여인들을 위해 23년째 대소설 ‘산해인연록’을 써서 매달 혜경궁 홍씨에게 바치고 있다. 199권까지 잘 써 오던 임두가 5개월째 200권을 쓰지 못하자 궁에서는 김진과 이명방을 호출해 작가의 상황을 알아보라고 지시한다. 특정 시점부터 오류가 늘어나고 있음을 눈치챈 김진은 임두의 치매증상을 읽어내고, 작품의 결말을 기록해 둔 수첩 ‘휴탑’을 두고선 제자 수문과 경문이 다툼을 벌인다.

“‘대소설의 시대’를 쓰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캐릭터를 언제 또 만나겠나’ 싶더라. 임두가 장편소설 작가로 살아가면서 고민하는 걸 녹여냈기 때문에 내 인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시대 독서와 관련한 논문만 200편가량 읽었다고 한다. ‘엄씨효문청행록’ ‘유씨삼대록’ ‘완월회맹연’ 등 소설의 목차는 모두 실존하는 대소설들의 제목이다. 대소설의 상당수는 연작인데 100권인 ‘명주보월빙’이 105권인 ‘윤하정산문취록’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7년 정도 걸렸다. 책 안에는 실존하는 22권의 작품이 들어 있는데 그걸 공부하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독자에게는 제목들이 낯설어 도전적일 수도 있다. 사실 10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는 짧아진 거다.”

이번 소설에는 여성들이 서사의 중심이다. 노파인 임두를 비롯해 혜경궁 홍씨, 필사 궁녀에 이르기까지 조선후기 소설과 더불어 숨 쉬고 즐기며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다. ‘황진이’ ‘열녀문의 비밀’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썼다. 항상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보면서 질문을 하고 소설에 반영한다. 이번 ‘대소설의 시대’ 역시 여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짚어본 거다. 300년 전 이야기로만 읽어도 괜찮고 지금의 상황들과 겹쳐서 보면 두 배로 재밌을 거다.”

△“죽을 때까지 ‘백탑파 시리즈’ 쓸 것”

사실 2000년대 초반 백탑파 시리즈를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구상했던 이야기는 10가지였다. 이제 5종을 펴냈으니 아직 5개의 이야기가 남은 셈이다.

“처음에는 연암 박지원을 다룬 장편소설을 쓰고 싶었다. 천천히 2~3년을 들여다보니 ‘백탑파’ 인물들의 면면이 너무 매력적이더라. 그래서 노선을 바꿨다. 한 편이 아니고 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백탑파 시리즈’를 이어가며 현대소설로도 독자를 만날 생각이다. 적어도 3~4년에 한 번은 시리즈를 낼 생각이라고 한다.

“‘백탑파 시리즈’는 죽을 때까지 계속 쓸 거다(웃음). 책이 나온 뒤 조선후기 서사문학 전공자들이 좋아했다. 이번 소설을 통해 중세와 근대의 벽, 연구자와 일반 대중의 벽을 깨고 싶었다. 당대 사람들도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갔기 때문에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날것이지만 소중한 거울 같은 느낌으로 소설을 즐기면 좋겠다.”

김탁환 작가(사진=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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