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의 세 여성…경제학적 관점서 고르라면"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기상천외 면접질문
이케아 경영진이 국가 운영한다면?
공정무역 바나나는 정말 공정한가?
의견설득력·사고유용성 판단
최고 명문대 살아있는 교육법 알려
………………………………………
옥스브리지 생각의 힘
존 판던|278쪽|알에이치코리아
  • 등록 2015-11-04 오전 6:17:10

    수정 2015-11-04 오전 6:17:10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여기는 영국 옥스퍼드대다. 면접시험이 있는 날이다. 지구인 1% 최고의 지성에게만 허락한다는 이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해보겠다고 모여든 학생들이 잔뜩 긴장한 채 앉아 있다. 그들 앞에 이름만으로 많은 이들을 기죽였던 한 석학이 나섰다. “세 명의 벌거벗은 여성이 있습니다. 누구를 고를지 경제학적 관점에서 답해 보십시오.”

짧은 웅성거림 끝에 나타날 반응 몇 가지가 눈에 선하다. ‘장난이겠지’ 싶어 키득거리고 있는 부류, ‘정말 그 석학이 맞나’ 시니컬한 부류, ‘정답이 뭘까’ 머리를 굴리기 바쁜 부류. 아마 개중에는 황급히 책을 들춰보는 학생도 있겠지. 도대체 그 질문과 그 자리가 의도하는 것이 뭐길래 수재소리 꽤나 들었을 학생들을 단체로 바보로 만드나.

이 장면은 상상이다. 하지만 충분히 그림이 그려지는 상상이다. 목적은 당연히 면접을 통과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그 형식적인 절차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질문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 명문대의 인재로 크는 진짜 필요한 사고법이란 걸 알리는 일이다. 책은 그 숨은 뜻을 전달하는 매개쯤으로 보면 된다. 세계 지성의 산실로 꼽히는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가 시도한 기상천외한 면접질문 37가지를 뽑아 근거와 해석, 풀이를 붙였다. 철학·과학·수학·문학·예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100여권의 저술로 파격적인 논리전환을 시도해온 저자가 나섰다.

취지는 이렇다.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900년 대학역사 속에서 파닥파닥 살아온 교육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것. 그런데 공개하지 않은 게 있다. 정답이다. 왜냐고?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37가지 질문에 꼼꼼히 붙인 해설 역시 추론일 뿐이다. 대신 광범위하고 깊이가 남다른 추론. 만만치 않은 질문에 붙인 만만치 않은 판단이다.

▲벌거벗은 여성을 통해 경제학을 뚫어보는 법

잠깐 앞으로 돌아가 그 문제의 질문을 뜯어보자. ‘나체 여성’을 운운한 의중에는 고의적인 도발로 경제학 아니 경제학자의 본질을 꿰뚫어보라는 ‘가시’가 숨어 있다. 가공의 상황을 설정하고 선택을 종용하는 엇나간 정통경제사상 말이다. 이를 파악하려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까지 거슬러야 한다. 시장을 자유롭게 놔두면 항상 적당한 재화를 생산하게 돼 있다는 것이 핵심. 사리사욕의 보이지 않는 손의 안내를 받을 수 있어서란 건데, 결국 이는 인간의 선택이란 논리다. 자유로운 선택을 하게 놔두면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는 도식인 거다. 인생의 선택은 욕망의 합리적 추구일 뿐이고.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오히려 드물다. 게다가 타인과의 관계와 우호를 중시해 이기적 욕망을 자주 능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경제·정치이론의 기본체계가 그 정통경제학 위에 세워졌다. 그러다 종국에 2008년 금융위기의 재앙을 불러오게 된 거고.

저자에 따르면 ‘나체의 세 여성’은 미끼다. 말도 안 되는 이 같은 보기를 던지고 여기서 고른 답이 현실 속 대중의 선택이라고 믿는 경제학자가 여전히 많은 게 문제란 얘기다. 다시 말해 질문의 의도는 정통경제학과 딜레마를 내세워 질문 자체가 지닌 부조리에 도전케 하는 거였단 말이다.

▲질문의 행간을 이해하는 게 관건

특히나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충실하게 공부했다면 평생 처음 봤을 ‘어처구니없는’ 질문 몇 가지만 뽑아보자. ‘달은 생치즈인가(수의학), ‘공정무역 바나나는 정말 공정한가’(지리학), ‘경찰에 들키지 않고 누군가를 독살할 방법을 계획해보라’(약학), ‘남편이 달걀에 오렌지 잼을 발라먹는 게 이혼사유가 될까’(법학), ‘국가의 운영을 이케아 경영진에게 맡기면 어떨까’(사회·정치과학).

관건은 질문의 행간을 이해하는 일로 보인다. 가령 ‘달걀에 오렌지 잼을 발라먹는 이혼사유’의 경우를 보자. 질문의 의미는 이렇다. 이혼법률과 관련한 낯설고 모호한 지점을 들여다보라는 거다. 이혼을 하려면 반드시 사유가 필요한데, 이런 문제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영국에서 ‘무과실 이혼’이 가능하겠느냐는 거다. 여기서 무과실은 ‘달걀에 오렌지 잼을 발라먹는 행위’다.

‘이케아 경영진에 맡겨보자는 국가 운영’ 문제도 다르지 않다. 질문 자체에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이케아 경영진은 수익을 내는 데 선수일 테고. 질문의 속내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비즈니스로 국가를 운영해도 괜찮겠느냐는 것이다. 국가 운영은 수익을 내는 일 그 이상일텐데.

▲정답? 있을 리 없다…열의로 설득해야

포장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유도질문’을 던진다. 사실 이런 질문은 정당하지 않은 추정에 근거한다. 덫에 걸리지 않고 답변을 하기는 어렵단 소리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복합오류질문’이라고 한단다. 그러면 어떻게 대처할 건가. 자연스럽게 걸려들면 된다. 꼬리처럼 물고 늘어지며 생각의 입체적 확장을 보여주는 거다. 다만 가미해야 할 덕목은 있으니 전공에 대한 이해와 열의, 사고의 민첩성과 유용성, 의견을 설득력 있게 펼치는 힘이다.

원제는 ‘여전히 스스로를 영리하다고 생각하니?’(Do You still Think You’re Clever?) 정도가 된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영리함’은 지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라니까. 저자는 머릿속 생각을 “휘어보고 꼬아보는” 자질을 영리함이라 단정했다. 허둥대며 답부터 찾으려 들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실수를 한 거다. 그 과오를 알아채기만 해도 한결 말랑해진 뇌가 만져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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