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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걸쭉한 입담과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 현실의 모순을 해학과 풍자로 꼬집는 묘미까지. 1981년 ‘허생전’으로 시작해 30년간 3000회를 공연한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에 350만명의 관객이 울고 웃었다. 해마다 ‘별주부전’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이춘풍전’ 등 우리 고전 속 ‘문제적 인간들’을 끄집어내 펼쳐보였다. 윤문식·김성녀·김종엽 3인방은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로 불리며 긴 세월 마당놀이의 인기를 이끌었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다.” 30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무대를 지켜오던 이들은 2010년 고별무대를 끝으로 마당을 떠났다.
“허얼?” “대박!” “아니 절에 시주한다고 장님이 어떻게 눈을 떠?” 지난달 26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내 연습실에서 ‘심청이 온다’의 연습현장이다. “인당수 뱃머리에 서서 내가 그렇게 하소연하고 넋두리를 해도 그 많은 뱃놈들 중 ‘이건 아니다’ 하는 놈 하나 없고….” 심청의 연기가 끝나기도 전에 손진책 연출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돈 많은 사람들의 인색함에 대한 불만이 묻어나야지. 목소리만 크다고 중요한 게 아니야. ‘자기 의지’가 나와야 한다고.” 심봉사는 가만히 앉아있다 잔소리를 들었다. “눈을 뜰 수 있단 말을 들었는데 앉아서 듣겠어?” 손 연출의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는 것으로 장면이 다듬어졌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마당놀이가 4년 만에 부활한다. 10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가 오른다. 고전소설 ‘심청전’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심봉사는 능글맞고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로, 악녀 뺑덕은 심봉사의 과대포장에 낚여 속아 넘어간 피해자로, 심청은 당돌한 15세 소녀로 그려진다.
△극장 안으로 들어온 마당놀이
기존 천막극장이나 체육관에서 펼쳐졌던 마당놀이를 생각한다면 이번 공연이 생소할 수 있다. 공연 장소가 극장이라서다. 1500석 규모의 프로시니엄(액자형) 무대에 3면의 가설 객석을 세우고 11m의 대형 천으로 감쌀 예정이다. 이 대형 천은 스크린으로도 활용돼 용궁장면 등에서 360도 투사되는 영상으로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손 연출은 “마당은 물리적 흙바닥이 아니라 두 발을 딛고 있는 지금 여기”라며 “마당놀이가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정착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성녀·박범훈·국수호 등 원년멤버 의기투합
새로운 마당놀이의 부활을 위해 원년멤버들이 의기투합했다. 각 분야에서 대가로 불리는 이들이다. 손 연출을 비롯해 수년간 마당놀이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며 ‘마당놀이의 여왕’으로 불렸던 김성녀 예술감독이 이번엔 연희감독으로 참여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초대 단장을 지냈던 박범훈 작곡가가 곡을 썼고, 승무의 대가로 알려진 국수호가 안무를 맡았다. 김 예술감독은 “마당놀이 2세대에게 노하우를 물려줄 수 있는 멘토 역할이라 무척 흥분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 작곡가는 “새롭게 편곡한 28곡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새로운 마당에서 제대로 한번 놀기 위해 베이스기타와 드럼, 일렉트로닉 기타 등도 활용했다”고 기대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