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판 '유전무죄 무전유죄' 비극[생생확대경]

中企 처벌 집중…중대재해법 맹점·기업 현실
대형로펌 컨설팅받는 대기업엔 면죄부 역할
중소기업은 그림의떡…올해 사례 쏟아질 듯
  • 등록 2024-02-06 오전 5:45:00

    수정 2024-02-06 오전 5:45:00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느 새 시행 3년차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27일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 전체로 확대 적용됐다. 안타깝게도 확대 적용 일주일만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 재해가 3건 발생했다. 모두 영세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인들은 지난달 31일 국회를 찾아 준비할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절규했지만 국회는 끝내 외면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중대재해법 시행 2년간의 흔적을 살펴보면 확대 적용에 따른 부작용이 훤히 예상된다. 심하게 말하면 2024년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비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1월~2023년9월 기준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 사고 418건 중 검찰이 수사를 마치고 재판에 넘긴 사건은 38건. 이 가운데 36건(94.7%)이 중소기업 사례다. 현재까지 법원의 1심 판결이 내려진 13건 모두 유죄가 인정됐는데 처벌대상 모두 중소기업이었다.

사고 자체가 중소기업에서 많이 일어났기 때문일까? 그렇지도 않다. 기업규모별 발생사고 비중은 대기업 46%, 중소기업 54%로 거의 반반이었다.

이쯤 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설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법의 맹점과 우리 기업 현실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 중대재해법은 제4조를 통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크게 보면 9가지, 세부적으로 보면 최대 13가지다. 그 중에는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사항도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안전관리자를 둔다든지,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다든지, 재해 예방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다든지 등이다.

중대재해법은 이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 의무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경우엔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로펌들을 통해 사전 컨설팅을 받고 의무사항을 이행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로펌이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중대재해법의 처벌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사전 대응은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법 시행 초반에 비해 로펌의 컨설팅 비용이 다소 낮아졌다는 풍문도 들리지만 여전히 중소기업들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영세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는 첫해인 2024년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례가 쏟아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또 하나 삐딱하게 볼 수 있는 건 고용노동부 공무원들과 현장 안전관리자들의 몸값 상승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예년보다 많은 고용부 공무원들이 대형로펌이나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현장 안전관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안전관리기사 자격증 보유자들의 급여도 상당 부분 뛰었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올한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영세업체들은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2일 경기 포천시의 한 기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찾아 현장 수습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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