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상해임시정부 헌법의 조세관

  • 등록 2017-12-11 오전 6:00:01

    수정 2017-12-11 오전 6:00:01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늦가을에 찾은 상해임시정부청사는 옛 시가지 골목길에 위치한 3층 양옥집이었다. 역사책에서나 보았을 김구 선생의 집무실을 직접 목격하고,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열정과 숭고한 혼을 만날 수 있었다. 식사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청사 안에 부엌까지 두고 있었다. 당시 궁핍한 생활이 짐작되어 맘이 아렸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불법적인 병탄조약(倂呑條約)으로 인해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후 조선인이 각성하여 3.1운동이 일어났고, 그 영향으로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비유하자면, 1910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조선이란 이름의 한반도가 9년이 지난 1919년에서야 상해임시정부를 통해 겨우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의식이 돌아온 셈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국호(國號)도 이 때 정해졌다. 국호가 있으면 당연 국가의 조직과 구성을 규정하는 헌법이 있어야 할 터. 국호가 정해진 이튿날 요즘 헌법 격인「대한민국 임시 헌장(大韓民國 臨時 憲章)」이 공포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 여러 곳에 설치되었던 임시정부가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되면서 1919년 9월 11일「대한민국 임시헌법(大韓民國 臨時憲法)」으로 개정되었다. 이 헌법은 대한민국의 국가 형태를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였다. 500년 동안 지속되었던 조선의 왕정체제와는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이 헌법의 조세관(租稅觀)은 무엇을 담고 있었을까? 헌법을 만들었지만 정작 헌법이 집행되어야 할 한반도는 일본이 불법으로 강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세관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substance)이라고 했던가. 상해임시정부가 만든 헌법은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것을 굳게 믿으면서 그곳에서 펼쳐질 세금의 밑그림을 훌륭하게 그리고 있었다. 현대 선진국가의 조세관, 즉, 조세법률주의(세금을 국회가 만든 법률에 따라 부과되어야 한다는 원칙)와 조세평등주의(세금은 소득이 많을수록 많이 부담하고 적을수록 적게 부담한다는 원칙)를 모두 담고 있었다.

이 헌법은 제48조에서 “조세를 新課(새롭게 부과)하거나 세율을 변경할 시는 법률로써 次(이)를 정함”이라고 적었고, 제4조에서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일체 평등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현행 헌법 제58조의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과 제11조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규정과 비교할 때 하등 다를 바 없다.

특히, 제10조에서 납세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국민에게 의무가 있다는 것은 동시에 국민에게 권리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얘기다. 아울러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무차별적이라는 얘기도 된다.

최근 EU는 한국을 외국자본에만 특혜를 주는 규정(조세특례제한법)을 폐지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조세회피처 리스트에 올렸다. 그 전 OECD도 외국자본에 대해서만 특혜를 준다면(Ring Fencing Rule) 조세회피처에 해당된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했었다. 대처를 잘 못한 정부가 아쉽다.

해방 이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도 건국절 논란이 있는 것은 유감이다. 이는 상해임시정부가 한반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못했던 시절, 그들의 친일 또는 매국 행위를 애써 감추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 없는 역사도 만들어서 보존하려는데 있는 역사마저 부인하고자 하는 시도는 몰염치하다.

100여 년 전 나라를 잃고 중국 상해로 피신하여 경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 만든 헌법 조항에 독립할 나라의 국가 형태와 선진국 못지않은 조세관을 만들어서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 까지 이르게 한 선열들의 수고와 혜안에 한없는 고마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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