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권 팔린 책 작가료 1850만원...양도출판계약 범위 정해야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 리포트] 박주희 변호사
'제2의 구름빵' 막기 위해 21대 국회가 나서야
출판사가 수익 독점하는 매절계약 개선 필요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관련 문제도 재정비해야
  • 등록 2020-05-12 오전 6:00:00

    수정 2020-05-12 오전 11:40:04

[박주희 변호사·고규대 문화산업전문기자] ‘제2의 구름빵’을 막기 위한 국회 입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명 ‘구름빵 방지법’으로 불리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21대 국회 개원에 발맞춰 서둘러 통과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책 ‘구름빵’
최근 그림책 ‘구름빵’ 원작자 백희나 작가가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문학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면서 출판사와 작가 간 매절 계약의 폐해를 없애는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미 2015년 이와 관련된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이 민간 관계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법안에 반대 입장을 보였고, 결국 19대 국회 임기 내에 법안이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18년 발의된 개정안도 입법기관의 관심에서 밀려 20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 수순을 밟을 조짐이다.

현재 발의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장래 창작물에 대한 포괄적 양도를 금지하고, 저작자가 받은 대가가 저작물 이용자의 수익에 비해 정당하지 못한 경우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담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백희나 작가가 ‘구름빵’의 출판사인 한솔수북 등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2억원을 지급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촉발됐다. 백 작가는 2003년 ‘구름빵’ 출간 계약 당시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출판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 저작재산권의 모든 권리를 출판사 등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일체의 권리를 양도하기로 하는 해당 계약은 불공정하고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구름빵’은 그림책 자체만으로도 15년간 40여 만부가 팔렸으며,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이뤘지만 원작자인 백 작가가 출판사로부터 저작권료 및 지원금 명목으로 받은 금액은 1850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양도계약과 출판계약 구분 확실해야

백 작가와 출판사 간 갈등의 핵심에는 ‘매절(買切)계약’이 있다. 매절계약이란 출판사가 저작물의 이용에 대한 대가를 책의 판매부수나 발행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앞으로 저작물 이용을 통해 얻는 수익을 출판사가 모두 독점하는 출판계의 관행을 말한다. ‘구름빵’ 사건이 논란이 되면서 ‘매절계약’의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이 일며 구습을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만 매절계약 자체가 무조건 불공정하다거나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 책의 판매부수나 발행부수에 따라 인세를 계산하기 어려운 경우도 존재하고 오히려 작가가 매절계약을 원하는 경우도 있어서다. ‘구름빵’ 출판사의 반론처럼 무명의 작가에게 얼마나 책이 팔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비용을 지출하는 일이기에 매번 출판사만 비난할 수도 없다.

‘매절계약’의 ‘매절’이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법적 용어도 아니어서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순히 저작권료를 일괄 지급하고 판매량에 따라 인세를 지급하지 않는 형태의 ‘출판 계약’인지 저작권까지 넘기는 ‘양도 계약’인지 작가와 출판사가 이를 분명히 약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분쟁이 발생하면 대개 출판사는 ‘매절’의 의미에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법상의 권리 및 법률상의 지위 등을 모두 넘긴다는 뜻을 가진 ‘양도’의 개념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다. 법원은 저작권료인 인세금액이 통상적인 인세를 현저히 초과하는 큰 금액일 경우에만 양도계약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단순히 이용허락인 출판계약으로 판결하고 있다(서울북부지법 2008. 12. 30. 선고 2007가합5940판결). 그러나 ‘매절계약’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첫 출발은 해당 계약의 조건과 범위를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지급함으로써 서로간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는 것이다.

◇ 중국어권 저작권, 또 다른 논란 낳아

또 다른 문제는 ‘매절계약’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비롯한 저작재산권을 양도한다는 명백한 특약이 존재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백 작가와 한솔수북 간 체결한 계약 내용 안에는 2차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양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솔수북은 강원정보문화진흥원과 디피에스 등에 7년 기간의 2차적 저작물 작성 계약을 맺었고, 이들 업체는 ‘구름빵’을 가공한 뮤지컬,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등의 2차 저작물을 공동제작했다. 그런데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가진 국가기관 강원정보문화진흥원은 2016년 중국에서 ‘구름빵’ 캐릭터를 활용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중국어권에 대한 ‘구름빵’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이용허락계약을 중국 기업과 맺었다. “‘구름빵’ 캐릭터가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중국 국기를 흔들어도, 한국의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계약을 국가 기관인 강원정보문화진흥원이 나서서 체결한 것”이라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저작권법 제45조 제2항에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 특약이 없는 때에는 제22조에 따른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는 포함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되어 있다.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양도 여부를 원저작자가 별도 특별계약을 통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출판 분야의 불공정한 약관을 수정하고, 문체부는 표준계약서를 만들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약관도 표준계약서도 강자가 제시하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양도 특약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갑을’의 현실을 막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가에게 저작권 양도 특약이 있는지 확인하고 동의하지 말라고 주의를 줘도 갑인 출판사가 제시하는 조건에 거부할 무명의 작가는 현실적으로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홀로 외로이 싸우는 제2의, 제3의 백희나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무명의 작가라도 자신의 권리를 함부로 양도하지 않고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과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박주희 변호사
◇박주희 변호사는 저작권법 전문가로서 미술·무용·콘텐츠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예술가를 위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고, 2019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포상 공로상을 받았다. △제52회 사법시험 합격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 △서울지방변호사회 예술법커뮤니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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