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31년(1894) 반봉건·반외세를 외치며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단순한 민란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등·인권 등의 가치를 위한 투쟁이자 자주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외침이었다. 봉건제도에는 불평등한 신분제도와 불균형한 토지제도가 바탕에 깔려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신분 차별과 일부 특권층의 토지 소유 및 농업생산의 독점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였다. 불평등하고 불균형한 제도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 봉기는 역사의 추진 동력이 됐다.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개혁 없이는 평등과 인권을 추구하는 근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책은 지난 3월 18일 향년 84세로 타계한 역사학자 이이화가 평생에 걸쳐 동학농민운동 연구에 매진한 결과물이다. 그는 동학농민운동이야말로 한국 근대사를 밝힌 상징이라고 말하며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책은 19세기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해 전파하기부터 21세기 동학농민운동이 재평가되고 이를 기억하기까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총 망라했다.
동학 농민군의 행동준칙에서는 인명 존중을 엿볼 수 있었다. ‘적을 맞설 때 지킬 약속 네 가지’를 보면 칼에 적의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첫째 공으로 삼았고 어쩔 수 없이 전투를 벌이더라도 일체 인명을 손상하지 않는 것을 귀중히 여긴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분단의 현실과 민족 모순을 청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우리에게 동학농민운동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강조한 저자는 연구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재평가를 위한 작업에도 몰두했다. 동학 농민 혁명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낸 그는 2004년 국회의 특별법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공식 명칭이 생기고 2019년 5월11일이 동학농민운동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는 과정도 책에 기록했다. 그는 “동학 농민군의 정신은 미래의 역사적 자산이자 통일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