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만든 19금의 세계, 술 [물에 관한 알쓸신잡]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 등록 2022-02-26 오전 11:30:30

    수정 2022-02-26 오전 11:30:30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언제 밥 한번 먹자’, ‘언제 술 한 잔 하자’라고 합니다. 설문에 응한 사람들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요. 설문 결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공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뜨끔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실 이 말의 의미는 밥 먹고 술 마시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가끔씩 얼굴 좀 보고 살자는 뜻이지요. 우리 민족은 조만간 만나자는 의미를 술 한잔하자고 표현할 정도로 술을 좋아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은 단연 소주입니다. 소주의 어원을 찾아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전인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물론 당시 우리 조상들이 마시던 소주는 지금의 희석식 소주와는 다른 증류주였습니다. 소주(燒酒)에 쓰인 한자 소(燒)는 ‘불태우다, 사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류주인 전통 소주는 소주를 내릴 때 쓰는 재래식 증류기인 소줏고리에 불을 때서 안에 담긴 밑술을 증류시켜 받아내는 술입니다.

지금도 이 방법으로 만드는 도수 높은 소주가 있지만 우리가 오늘날 즐겨 마시는 소주는 대부분 희석식 소주입니다. 알코올 원액인 주정에 물을 타서 희석한 소주라는 의미입니다.

희석식 소주가 없었던 조선시대에도 증류주를 의미하는 술은 소주라고 했습니다. 과거 문헌에는 ‘소주는 술덧을 증류하여 이슬처럼 받아내는 술이라 하여 노주(露酒)라고도 하고 화주(火酒) 또는 한주(汗酒)라고도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노주는 소줏고리를 이용해 이슬처럼 받아낸다는 의미와 탁주라고 불렸던 막걸리에 비해 이슬처럼 맑은 술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주 브랜드인 ‘참이슬’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조만간 만나자는 얘기를 술 한잔하자고 표현할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십니다.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소주 출고량은 360㎖ 소주병 기준으로 약 24억병 정도입니다. 20세 이상 성인 인구 4300만명 기준으로 환산하면 1인당 56병을 마신 꼴이 됩니다.

성인 중 술을 마시는 비율이 절반 정도 된다고 하니 그 비율을 고려하면 술을 마시는 성인은 1년에 100병을 넘게 마시고 3일에 한 병씩 마시는 셈이네요.

반가운 지인과 만남에도, 직장 동료와의 회식에도 술이 빠질 수는 없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의 쌓인 이야기, 어색한 사람과의 만남,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도 술과 함께라면 술술 풀려 나갑니다.

이렇게 어울리는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다 보니 우리는 같이 마셔야 하고 같이 취해야 합니다. 술자리에서의 절제는 자제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동료애와 동질감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져 오해받기 십상이죠.

희석식 소주와 증류주인 전통 소주. (이미지=최종수 박사)


우리가 알고 있는 수작이라는 단어도 바로 술자리의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수작이라고 하면 ‘개수작’을 떠올릴 정도로 나쁜 일을 꾸미는 의미로 알고 있지만 사실 수작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작(酬酌)의 ‘수(酬)’는 잔을 돌리고 술을 권한다는 뜻이 있고 ‘작(酌)’은 술을 붓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두 한자를 합쳐보면 잔을 돌려 술을 권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술잔을 권하면서 만들어진 좋은 분위기가 정도를 넘으면 자칫 나쁜 일을 꾸미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한 말입니다.

술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지만 물을 의미하는 ‘수’와 불을 의미하는 ‘불’을 합친 ‘수불’이라는 단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불→수울→술로 변화됐다는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아마도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것이 마치 불로 물을 끓이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술은 정확한 기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인류의 역사는 술과 함께 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세계 거의 모든 민족이 술을 즐기지만 우리 민족의 술에 대한 사랑과 음주문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별납니다.

개인의 주량과 무관하게 술을 강권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두가 ‘원샷’을 외치며 같이 마셔야 하고 같이 취해야 합니다. 배려가 부족하고 폭음을 조장하는 이런 음주문화는 그간 꾸준히 개선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술 마시는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덕분에(?) 고질적이었던 우리나라의 음주문화가 한방에 해결됐습니다.

음주문화가 개선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사람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못내 아쉽습니다.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은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그것이 없어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알 수 있나 봅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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