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첨밀밀과 블랙먼데이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당시 홍콩 청년들에게도 '눈물'
2020년 가을 서울 청년들의 삶 역시 팍팍할 듯
  • 등록 2020-07-11 오후 12:00:00

    수정 2020-07-11 오후 12:00:00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아, 내 3만달러..,’

낯선 홍콩으로 이주해 패스트푸드 점원, 학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던 여주인공 ‘이요’는 절망에 빠집니다. 3만홍콩달러였던 자신의 잔고가 불과 몇 주만에 89홍콩달러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1987년 이요가 투자했던 상품은 주식과 마르크화였습니다. 1987년 10월 전까지 비교적 높은 수익을 안겨줬던 자산입니다. 그해 10월 미국 주식 시장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전세계 시장에서 투매(던지듯 매도) 현상이 발생하면서 주식과 마르크화는 속절없이 떨어집니다.

앞선 이요는 ‘I`m still loving you’라는 노래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영화 첨밀밀에 나온 주인공입니다. 대륙에서 넘어와 힘겹게 홍콩 생황을 하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당찬 그가 희망의 사다리로 기대했던 게 바로 주식과 외환 투자였습니다.

이들의 꿈은 1987년 10월 19일 뉴욕주식거래시장에서 발생했던 불가사의한 주식폭락으로 깨집니다. 훗날 ‘블랙먼데이’로 일컫는 폭락입니다. 이날 하루에만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22.61% 급락했습니다.

블랙먼데이가 왜 발생했는지 아직도 분분합니다. 그 전 주까지 별 이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식 시장은 계속 오름세를 유지했고, 경기도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로 호황이었습니다. 쌓이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적자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블랙먼데이의 직접적인 원인은 ‘프로그램매매’의 극단적 부작용으로 보입니다. 프로그램매매는 쉽게 말해 인간이 하는 거래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하는 거래입니다. 주식 거래에 있어서 손실을 키우지 않고, 꾸준한 이익을 보도록 설계돼 있는데 하락장 예상에 대한 매도가 쌓이면서 폭락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이날 폭락에 대한 직접적 원인은 뚜렷하진 않지만, ‘내려가야할 이유’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 자산시장 거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블랙먼데이는 1985년 플라자합의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습니다. 플라자합의는 막대한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우리 좀 어려우니까 상황좀 봐줘’라면서 일본과 독일의 팔을 꺾은 합의로 보면 됩니다. 미국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무역 흑자국 일본과 독일의 통화 가치를 높이라고 강요한 것이죠.

미국 입장에서는 재정적자 고민도 큰 상황에서 무역적자가 상당히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2020년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죠. 다른 게 있다면 1980년대에는 말 잘듣는 일본과 독일이 있다면, 지금은 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2차세계대전 전범국가로 미국의 원조와 방위 협조로 고도 성장을 구가했던 일본과 독일은 차분하게 미국의 요구에 따릅니다. 미국의 동생 격인 영국도 합세했죠.

그러나 사람 일이 생각대로 안되는 것처럼 나랏일도 예상외로 엇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달러화 가치가 지나치게 낮아진 것이죠. 수출이 예전보다 힘들어진 일본과 독일도 곡소리를 냅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높았고요. 기준금리를 높여야 하는데 자칫 전세계적인 수요감소가 예상됐고요. 이러자 미국이 일본과 독일을 다시 부릅니다. 플라자합의에 대한 수정된 재합의를 한 거였죠.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일본과 독일도 응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의가 1987년 루브르 합의입니다.

요 합의의 골자도 미국 위주입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높이면서 발생할 충격을 일본과 독일, 영국이 흡수해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미국 기준금리가 높아지면 전세계 달러는 다시 미국으로 향할테고, 그렇게 되면 여러 나라에서 달러화 부족에 따른 비명을 지를 수 있으니까요.

이걸 일본과 독일, 영국이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기준금리를 낮춰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고, 자신들의 통화로 글로벌 유동성 공급량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달러화 이탈을 메워준다는 계산이었던 것이죠.

일본과 독일 입장에서도 기준금리를 낮춰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게 되니 크게 손해볼 것 같지 않은 제안이었습니다. 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지나친 자산 거품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일본과 독일 입장에서는 부담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30년 장기 불황을 맞게 되는 단초가 됩니다.

독일은 1차세계대전 패전후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서독(통일전 독일)은 기준금리를 높이고 인플레이션 관리에 들어갑니다. 서독 마르크화의 가치는 높아지게 됩니다.

이때 첨밀밀의 이요가 투자했던 자산이 마르크화였습니다. 이요는 1987년 10월까지 쏠쏠한 수익을 맛봅니다.

1987년 8월에는 영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1987년 10월 독일이 추가로 인상합니다. 국제 공조는 깨집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미국말고 다른 나라들도 했던 것이죠.

각국 공조 와해는 글로벌 자산 시장내 불안감을 높입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달려왔던 호황이 끝날 것이라는 불안감도 작용합니다. 전세계가 주식과 같은 변동성이 큰 자산을 매도하고 채권처럼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를 합니다. 홍콩 사는 가난한 청년 ‘이요’ 입장에서는 “악” 소리를 낼 만한 상황이 됐습니다.

2020년 지금으로 돌아와볼까요.

지난 3~4월 코로나19 쇼크 이후 세계 증시는 많이 안정된 상황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 지수만 놓고 봤을 때는 코로나19 이전을 회복했습니다. 글로벌 은행들도 하반기 회복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안전 자산으로 분류됐던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설 것으로(달러 수요가 줄어드니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이일드본드에 대한 수요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을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코로나19가 재유행할 가능성이 높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미국 대선까지 앞두고 때문이죠.

(지난 2008년 10월 글로벌금융위기도 미국 대선이라는 중요 이벤트를 앞두고 일어났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야당이 정부의 재정확장정책에 비협조적으로 나서면서 위기를 키웠다는 설도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 간의 국제 공조가 깨진 상황이란 점도 리스크입니다. 1980년대 당시에는 미국과 일본, 독일·영국 등 세계 경제를 이끌던 국가들은 서로가 우방이었습니다. 공조와 협조가 가능했던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깨졌죠.

실물 경기가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 시장 가격만 어느정도 회복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 상황도 고질적인 무역수지 적자에 증시 시장만 활황을 달리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1987년 홍콩의 젊은이였던 ‘이요’는 그해 10월 눈물을 흘렸습니다. 2020년 서울의 젊은이들은 올해 10월 어떻게 될까요. 두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상황과 여건은 다르나, 이들의 삶이 언제나 팍팍하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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