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①한평에 1만 7000원…배나무 과수원이었던 압구정

  • 등록 2018-02-16 오전 10:00:00

    수정 2018-02-16 오전 10:00:00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체신부는 전화가 없는 서울시내 변두리 65개 동에 공중전화 또는 전신전화취급소를 6월 말 안에 설치키로 했다. 체신부에 의하면 이제까지 전화가 가설되지 않은 65개 동은 대부분 편입지역으로 서울시내와의 전화도 시외전화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1967년 3월 22일 동아일보에 실린 단신기사이다. 이 65개 동 가운데는 자석식공중전화가 설치될 동으로서 성동구의 압구정(이후 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분리)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조선시대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압구정은 본래 경기도 광주구 언주면 압구정리에 속했다. 당시에는 한강 남쪽의 풍치지구로 배나무가 많이 자라 과수원이 많이 들어선 농촌지역이었다.

2007년 9월 중앙일보 기사에는 현대백화점부터 현대아파트 78동 자리까지 1만 6500㎡ 규모의 땅에 3대째 배밭을 일궜던 이윤현 씨의 기사가 나온다. 압구정 개발이 시작될 즈음 그는 그곳 배밭을 3.3㎡당 1만 7000원에 팔고 경기도 화성군에 다시 배밭을 마련했다고 한다. 현재 이 땅은 2018년 표준지 공시지가 기준 3.3㎡당 4323만원(3종 주거지역 기준)에 이른다.

△1967년 7월 출퇴근시간 제1한강교 모습[사진=서울사진아카이브 제공]
당시 강남의 약점은 지대가 낮아서 자주 물에 잠긴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강의 강폭은 변화가 심해서 최대 1800~2000미터에 이르렀다가도 갈수기가 되면 50~100미터까지 물이 줄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한강 개발이 필수적이었다. 마침내 한강을 서울의 중심 생활권으로 만들기 위한 한강개발이 1967년 제1한강교(지금의 한강대교) 건설로 시작됐다. 한국 최초의 자동차 전용도로이자 최초의 유료도로로 한강 제방의 건설과 매립, 도로 건설이 병행되며 지금의 한강이 만들어졌다.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고 더욱 박차를 가해 제방과 강변도로가 건설됐다.

또 하나 함께 병행된 것이 공유수면 매립사업이다. 당시 성수대교와 동호 대교 사이에는 한강 본류와 중랑천이 만나면서 형성된 저자도라는 작은 섬이 있었으나 현대건설이 압구정 공유수면을 매립하는 데 이 섬의 흙을 채취하며 현재는 수몰됐다. 1968년 현대건설은 ‘건설공사용 각종 콘크리트 제품 공장 건설을 위한 대지 조성 및 강변도로 설치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명목으로 압구정 일대에 대한 매립 면허를 신청해 허가를 받았고 매립지는 곧 택지로 변경해 그 유명한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가 세워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보면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은 아파트 건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나 당시 부장이던 이 전 대통령이 적극 주장해 아파트를 짓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70년 초반 반포와 잠실에는 공공 주택 단지가 조성된 것에 비해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43평형, 54평형, 65평형, 80평형 등 중대형 평형 위주로 구성된 민영아파트라는 점이 더해져 분양 초기부터 분양권에 보통 아파트 한 채 값의 프리미엄이 붙으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압구정현대 아파트가 고급 아파트 중에서도 고급 아파트로 자리매김한 계기는 1977년 11월 ‘특혜분양사건’이었다. 1977년 11월 청와대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에 대한 투서가 올라가자 검찰에 수사에 나선 결과 무주택 사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아파트 952가구 중 291가구만 사원들에게 분양되고 600여가구는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기업인, 언론인, 현대그룹의 임원 친척, 동창 들에게 돌아간 사실이 밝혀졌다. 정몽구 당시 한국도시개발 사장, 곽후섭 서울시 부시장 등 5명이 구속되고 특혜분양을 받은 고위공직자가 징계처분을 받는 등 후폭풍이 거셌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으로 인해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높으신 분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자리매김했다.

△현대아파트 분양광고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처음에는 1562가구로 계획됐으나 5909가구까지 넓혀졌다. 1977년 9월 착공한 5차분은 준공도 되기 전 3.3㎡당 분양가가 30만원에서 3배 이상 뛰어올라 평당 100만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1999년 5월 동아일보에 실린 ‘건축가 서현의 우리 거리 읽기’ 기사에서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풍경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도 있다.

<압구정은 강을 북쪽에 끼고 있다. 거실이 강을 면하느냐, 해를 면하느냐라는 딜레마에서 건설사는 아파트는 남향이어야 한다는 계명을 지켰다.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부엌이 됐다. 시원하게 한강을 바라보고 싶지 않은 이가 누가 있으랴. 입주자들은 부엌 벽을 뜯고 강을 향해 대형 유리창을 내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다른 인테리어업체를 불러 망치를 들이댔으니 윗집과 아랫집이 같을 수 없다. 크고 작은 창들이 한강변에 제멋대로 등장한 한강변에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입주해 산다고 해도 믿을 풍경이 됐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비롯해 이 일대 아파트가 준공된지도 어연 40년이 넘어섰다. 재건축연한을 훌쩍 뛰어넘은 대부분 아파트는 보통 집주인과 사는 사람이 다른 것과 달리 여전히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비롯한 한양아파트, 미성아파트 등에는 아직 적지 않은 집주인들이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다.

한양아파트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내고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이승호(31) 씨는 결혼을 해 자기 가족을 꾸리더라도 압구정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와 지금 아파트 광경을 보면 거의 변한 것이 없어요. 아직 어렸을 때 친구들도 많이 살고 있고요. 오히려 변하지 않고 조용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압구정의 큰 강점같아요”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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