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이 없다…미국 미친 집값發 '악성 인플레'[미국은 지금]

극한의 공급 부족에 뒤틀린 미 주택시장
임대 매물 사라져…가격 천정부지 '폭등'
모기지금리 올라도…너도나도 매수 행렬
가계 경제에 큰 비중 차지하는 주택비용
비정상적 주택시장, '악성 인플레' 주범
  • 등록 2022-04-03 오후 3:45:49

    수정 2022-09-07 오후 9:30:01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매물이 아예 씨가 말랐다.”

미국 뉴저지주 북동부 버겐카운티에 위치한 테너플라이는 인구 1만500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그러나 뉴저지주 내에서 좋은 학군으로 손꼽히는 데다 뉴욕 맨해튼 출퇴근이 용이해 주거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테너플라이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주택 공급이 부족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아예 매물 자체가 없는 수준이다. 매매와 임대(렌트) 모두 마찬가지다.

2020년 7월께 테너플라이로 이주한 A씨. 그는 최근 가까운 부동산 중개인과 대화하다가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A씨는 단독주택을 월 3900달러(약 475만원)에 월세로 살고 있다. 계약했을 때는 다소 비싼 가격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구하려 했다면 월 4500달러는 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중개인은 전했다. 그마저도 매물 자체가 없어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주택 문에 매도 표지판이 걸려 있다. (사진=AFP 제공)


공급 부족에 뒤틀린 주택시장

미국 최대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로 검색해보면 현재 테너플라이에 임대로 나온 단독주택은 단 한 건도 없다. 버겐카운티에 속한 인근 도시인 크레스킬, 데마레스트, 클로스터, 노우드 등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재택 수요가 늘면서, 방이 하나라도 더 있는 도심지 인근 교외의 단독주택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뉴욕 현지의 한 기업 주재원은 “주재원을 교체해야 하는데, 올 사람이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대 물건이 극한의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건 실거주 목적의 매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사서 세를 놓는 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낮아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를 등에 업고 너도나도 주택을 구입해 눌러앉는다는 의미다.

주목할 건 모기지 금리가 올라도 주택시장 초 활황이 꺾일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 늦기 전에 사자’는 심리에 매물 부족은 더 심각해졌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 부동산 중개인은 “모기지 금리가 현재 4%대로 올랐지만 지금 집을 사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며 “금리가 7~8% 이상 폭등하지 않는 이상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 국책 모기지업체 프레디맥에 따르면 현재 30년 만기 고정금리는 평균 4.67%다. 2018년 12월 이후 가장 높다.

부동산 현장에서는 이례적인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뉴저지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택 실제 매도 가격은 매물로 올린 희망가보다 더 높은 추세라고 한다. 수요자는 매물을 확인한 후 매도 희망자에게 매수 희망가 등을 쓴 제안서를 내는데, 그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동산업계 인사는 “통상 매도 희망가보다 조금 낮은 가격에서 집값이 이뤄졌다”며 “그러나 이제는 더 써내야 계약이 가능할 정도로 (집을 사려는 수요자간)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악성 인플레’ 야기하는 주범

미국은 한국처럼 서울 같은 특정 지역만 국지적으로 집값이 오르는 게 아니다. 미국 전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 지수 등에 따르면 올해 1월 뉴욕의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계절조정치)는 전년 동월 대비 13.5% 올랐다. 뉴욕의 상승 폭은 전체 평균(19.2%)보다 오히려 낮다. 피닉스(32.6%)와 탬파(30.8%)의 주택 가격은 1년새 30% 이상 폭등했다. 마이애미(28.1%), 댈러스(27.3%), 샌디에이고(27.1%), 라스베이거스(26.2%) 등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았다.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베스 아베이타는 뉴욕타임스(NYT)에 “지난해 이 지역 집값이 30%나 올랐지만 최근 매수자들이 걱정하는 걸 보지 못했다”며 “주가 하락은 우려해도 모기지 금리 상승에 부담을 느끼는 수요자는 없다”고 전했다. 프레디맥의 샘 카터 수석이코노미스트 샘 카터는 “높은 대출금리가 구조적인 공급 부족 문제를 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악성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라는 점이다. 주택 임대 계약만 해도 최소 1년, 길면 3년까지 이어진다. 한 번 형성된 가격이 수년간 지속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주택 임대료가 비싸다. 그래서 다수는 소득의 상당 부분을 여기에 쓴다. 아울러 집을 살 때 받는 대출은 집값의 최대 80%에 달한다. 이는 곧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이 가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다른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내린다고 해도, 지금 같은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에서는 물가를 잡기 어렵다는 진단이 많다.

월가 금융사의 한 채권 어드바이저는 “당분간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이냐고 묻는다면, 부동산과 임금 두 가지부터 보라고 답할 것”이라며 “특히 주택 시장은 ‘끈적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있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는 최근 한 연설에서 “집값 급등이 금융 안정에 위험을 초래할지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며 “미국이 겪는 인플레이션에서 주택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적절한 통화정책을 위해 부동산을 면밀히 관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뉴저지주 북동부 버겐카운티의 한 마을에 주택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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