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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숱한 ‘정액 테러’, 고작 재물손괴?…성범죄 적용 못한 이유

7급 공무원 A씨 6회 걸쳐 텀블러에 몰래 정액 넣어
재물손괴 혐의로 벌금 300만원 선고…현재 퇴직처리
음란행위지만 대상따라 혐의 갈려…물건은 '재물손괴'
"스토킹도 20년 만에 제정…법이 현실 뒤늦게 따라가"
  • 등록 2021-05-07 오전 11:00:00

    수정 2021-05-08 오전 10:19:40

[이데일리 이소현 이상원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 소유의 텀블러에 여섯 차례에 걸쳐 정액을 넣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40대 남성에게 1심 법원이 재물손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성범죄로 보이지만, 재물손괴 혐의만 적용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홍순욱 부장판사는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A(48)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지난달 29일 선고했습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1일을 10만원으로 환산해 노역장 유치를 처분했습니다. 벌금에 상당한 금액의 가납(임시로 납부) 명령도 내렸습니다.

7급 공무원인 A씨는 서울 강북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피해자 B씨 소유의 텀블러를 6회에 걸쳐 ‘망가뜨린’ 혐의를 받았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월 20일 시간 불상 오후부터 다음날 오후 12시 55분 사이 사무실에서 피해자의 책상 위에 있던 피해자 소유의 텀블러를 화장실로 가져가 텀블러 안에 정액을 넣거나 텀블러에 담긴 물 안에 성기를 넣어 정액을 담았습니다.

A씨의 범행은 무려 6개월간 6회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그해 7월 14일까지 같은 방법으로 6회에 걸쳐 피해자의 텀블러 안에 정액을 넣는 일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텀블러에 정액을 넣어 그 효용을 해했다고 판단해 재물손괴 혐의로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범죄 행위가 성범죄 성격이 다분하지만, 재물손괴 외에 적용할 법 조항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선희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현행법은 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라며 “법률로 특정행위를 포섭해야 하는 데 목적은 누구나 아는 목적이지만, 그 행위를 적용할 적당한 법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진희 성폭력 전문 변호사도 “대법원 판례 중에 어떤 엄마가 식당에 가서 국그릇에 아기 소변을 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과 똑같다”며 “행위 자체가 음란하지만 실제 그 행위의 음란성은 별건으로 판단하고, 그 때문에 이 재물의 효용을 해한 것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대해서 심리적으로 피해를 줬을 수는 있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처벌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조계에서는 텀블러 효용을 고려했을 때 재판부가 비교적 높은 형량을 선고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수개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오 변호사는 “혐의가 재물손괴이고, 텀블러 값을 고려하면 벌금 300만원은 무거운 형량인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법의 공백이 있는 만큼 처벌을 강화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김재련 성폭력 전문 변호사는 “300만원을 줄테니까 그 텀블러를 마시라고 하면 어떻게 마실 수 있나”라며 “재물손괴에도 최고형이 3년 이하로 징역형이 있는데 이 행위는 사람의 재물 자체의 효용을 해하는 의미보다 단기로라도 실형을 청구를 했어야 한다. 300만원은 너무 경미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상 형사재판에서 재물손괴를 워낙 별것 아닌 것으로 보기 때문에 약식기소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실제 이 텀블러 ‘정액 테러’ 사건도 지난해 9월 북부지법 형사7단독 재판부에 배당됐는데 약식재판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약식재판은 공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피고인을 법정에 출석시키지 않은 채 수사기록 서류만으로 재판해 벌금·과태료를 부과합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검찰의 약식기소가 부적절하다고 판단, 정식재판에 넘겼습니다. 이에 A씨는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했으며, 작년 11월과 지난 3월에 두 차례 걸쳐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습니다.

당시 사건 발생 후 공무원인 A씨는 직위해제 되면서 다른 사업소로 발령이 났으며, 현재는 퇴직처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오 변호사는 “공무원이 재판 중인데 자의로 사표를 쓴다고 바로 사표를 수리했다면 이것 자체로 서울시의 문제”라며 “재판 결과가 나왔으니까 해임이나 파면이 돼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음란행위지만…사람에 ‘강제추행’, 물건은 ‘재물손괴’ 적용

엽기적인 ‘정액 테러’ 사건에서 혐의를 성범죄가 아닌 재물손괴만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작년 동국대 캠퍼스에서 20대 남성이 여학생의 신발에 정액을 넣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지만, 성범죄로 적용할 만한 법 조항이 없어 경찰은 재물손괴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검찰은 벌금 50만원으로 약식기소했습니다. 법정에도 출석하지 않는 약식재판으로 끝난 것이죠.

2019년에는 수원대 도서관에서 20대 남성이 공부하고 있던 여학생의 가방과 입고 있던 옷에 정액을 묻힌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이 사건은 사람에게 위해를 끼쳤다고 판단, 수원지법 형사11단독 최혜승 판사는 강제추행과 공연음란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와 함께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도 명령했습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정액 테러 사건에도 대상에 따라 혐의 적용이 갈린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면 성범죄로 인정돼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되지만, 물건에 하면 재물손괴 적용에 그친 것이죠.

신 변호사는 “담당했던 사건 중에서 자신의 정액을 그릇에 담아서 지나가는 여성에게 뿌린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강제추행 혐의를 받았다”며 “나머지 텀블러, 신발, 그릇 등 물건에 대해서는 혐의 적용이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민사소송 ‘피해 입증’ 난관…국가가 보호할 수 없는 法 공백 한계

피해자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같은 직장 내에서 일어났다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 근로기준법 일부 법률에서 별개로 다룰 수 있으며, 이런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피해를 구제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피해자 입장에서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의견입니다. 피해자가 얼마만큼 피해를 입증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신 변호사는 “재물손괴에 대해서 유죄 판결이 선고됐으니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되는데 사실상 물건값밖에 안 된다”며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면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고, 관련 소송에 수천만원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 변호사도 “물건값에 정신적 피해를 더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할 수 있겠지만, 금액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피해 입증의 문제이기 때문에 위자료 규모를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는 법이 없으며,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도 스토킹의 형태를 규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20년 만에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나”며 “법이 항상 현실을 뒤늦게 따라가기에 이런 특수한 형태의 범죄들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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