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10년②)"삼성에서 배워라"..진정한 리더로

"양보다 질" 선언, 국내 대기업 경영철학 일대 변화 촉발
  • 등록 2003-06-05 오후 2:29:58

    수정 2003-06-05 오후 2:29:58

[edaily 김수헌기자] "처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꿔라. 이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지난 9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언한 삼성의 질중심 신경영은 삼성 뿐 아니라 재계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최고기업으로 자타가 인정하던 삼성전자를 "말기암 환자"로 진단한 이회장의 독설에 가까운 질타는 어떻게 보면 삼성보다는 여타 기업에 더 큰 충격을 던졌을 수도 있다. 때문에 신경영의 성공으로 이건희 회장은 재계 최고의 지도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회장의 발언은 단순히 정신자세를 새로이 가다듬자는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회장 스스로 삼성도 이대로가면 망할지 모른다는 엄청난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특유의 위기의식과 사업감각으로 재계에 화두를 던져왔다. "잘 나갈 때 자만하지 말고 항상 위기에 대비하라"면서 "준비경영"을 제시했고, "천재 한명이 천명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로 "인재경영"을 강조했다. 이같은 이회장의 지시는 삼성의 경영 전반에 녹아들어, 경영전략으로 시스템화된다. 삼성은 이것이 바로 경쟁력의 근원이라고 설명한다. 삼성의 이같은 삼성의 전략은 여타 기업들의 방향설정에도 큰 영향을 끼쳐왔다. 이회장의 발언들은 단순히 우리나라 최고 그룹의 수장이기 때문에 무게가 실린다기 보다는, 다독에 따른 간접경험, 삼성을 이끌어 오면서 국내외 현장경험에 기초한 깊은 통찰력으로 그 시점에서 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구적으로 제시해 왔기 때문에 재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3년동안의 이회장 신년사 가운데 일부를 보자. 이회장은 신년사에서 삼성만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국가경제와 사회의 전반적 상황을 예리하게 꼬집고 비판하다. 뜻밖에도 재계 총수로서 건드리기 어려운 정치와 정부 정책비판도 빠뜨리지 않는다. 삼성이 베스트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베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크로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경제력이 국력을 대변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기업 활동에 규제가 많고 법과 제도적인 장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 또한 선진 기업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브랜드, 디자인, 지적재산권과 같은 소프트 부문의 경쟁력은 매우 취약한 현실이다. 안으로는 신정부의 출범이 희망과 기대를 불러오는 한편 계층과 세대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제몫을 찾으려는 이기주의가 거세질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2003년은 기회와 위협,희망과 불안이 함께 하는 전환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인재와 기술이 있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경영자들은 핵심 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21세기 경쟁력의 핵심인 소프트 부문의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03년 신년사) 이같은 올 신년사의 한 대목을 지금 시점에서 읽다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해지고 있는 집단 이기주의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진단했음을 잘 알 수 있다. 2002년 신년사에서는 재계를 대표하듯 "정치논리"의 득세를 경계하고 있다. "올해 치르게 될 두 차례의 선거는 지역간, 이념간, 계층간의 대립과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여론에 영합하려는 무책임한 정치 논리가 상식과 순리의 경제 원칙을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05930)를 비롯해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빼어난 실적을 냈던 2000년을 마감한 뒤 2001년 새해 벽두에 이회장은 삼성, 아니 재계에 "제2 경제위기"를 우려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경기호전의 겉모양에 취해 위기를 마치 극복한 것으로 착각하여 고통이 따르는 구조조정을 뒤로 미루었던 안타까운 한해였다. 아직은 정부, 기업, 국민이 힘을 합쳐 "미래의 몫"을 키워나가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더 노력해야 하는 데도 저마다 오늘의 "내 몫 찾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경제논리로 풀어 나가야 할 경제와 기업문제에 사회 일각의 무분별한 여론과 무책임한 정치논리가 개입함으로써 경제원칙과 시장질서가 크게 훼손되기도 하였다. 우리 사회 전체에 이러한 위기 불감증이 만연하고 원칙과 책임감이 사라진 결과, 지난해 부풀었던 세기말의 기대와 희망은 좌절과 불안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제는 제2의 경제위기를 우려할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예언같은 진단과 당시 경제사회의 병리에 대한 질타는 재계가 움직여야 할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자신감과 의지마저 느껴진다. 93년 이회장이 선언한 신경영은 지난 10년동안 해마다 삼성의 변화를 규정하는 틀이 돼왔다. 그리고 이같은 틀에서 이뤄지는 삼성의 변화는 다른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왔다. 지난해 삼성의 경쟁자인 LG의 한 계열사 사보에는 삼성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요지는 이렇다. "글로벌 경쟁이 날로 격화돼 가고 경영의 불확실성이 증대돼가는 가운데, 삼성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준비와 혁신을 외치는 마당에 우리가 느슨해 질 수는 없다." LG가 사보에 삼성을 언급하는 일을 극히 드문 일이다. 이회장은 삼성 내에서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다. 뒤에서라도 이회장을 비판하는 삼성맨은 거의 없다. 한번쯤이라도 오너회장을 비판할만한데도 그렇지 않다. 이회장의 능력은 적어도 삼성 내에서는 보통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천재급으로 분류된다. 지난 87년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고비를 맞았다. 4메가 D램 개발을 스택(stack, 쌓는 방식)으로 할 것인가, 트렌치(tench. 파는 방식)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두 기술은 서로 장단점이 있어 양산에 들어가지 전에는 어느 쪽이 유리한지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회장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고 한다. 이회장은 당시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시켜야 한다. 회로를 고층으로 쌓는 스택방식이 수월하다"고 언급, 스택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결국 삼성이 D램 분야에서 세계 초일류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트렌치 방식을 채택한 도시바가 양산과정에서 생산성 저하로 D램 선두자리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미국 출장 중 일제와 삼성 VCR을 직접 분해해보고는 삼성 경영진을 호통친 일화도 유명하다. 지난 93년 이회장은 LA의 한 호텔에 짐을 푼 후 동행한 경영진들에게는 자유시간을 준 뒤 자신은 인근 백화점에서 일제 도시바 VCR을 사와 직접 분해했다. 외출에서 돌아온 경영진을 모아놓고 회장을 이렇게 일갈햇다고 한다. "일본 제품의 부품 수가 삼성 것보다 20%가량 적은데도 비싸게 팔린다. 부품수가 많으면 원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제품 무게가 무거워져 물류비가 올라갈 뿐 아니라 고장율도 높아진다. 부품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후 삼성이 야심작으로 내놓은 것이 "선 없는 VCR 위너"로 히트작이 됐다. 많이 만들어 파는데 급급했던 90년대 초반 이회장이 질경영을 주창하고 나선 것도 결국은 양 중심 성장은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엇다. 당시 대다수 기업들은 질보다는 양적 성장에 급급한 와중에 이회장은 질적으로 성장하면 양적 성장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자면 불량을 척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회장은 당시 3만명이 만들어 6000명이 애프터 서비스해야 하는 삼성전자 시스템은 도저히 경쟁력을 도저히 가질 수 없다고 평가했다. 95년에는 시판한 휴대폰 중 불량품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즉각 전제품 회수를 지시, 15만대의 휴대폰을 세 제품으로 교환해 주고 150억원어치의 휴대폰을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소각토록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회장은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화면의 20%를 시청자들이 못 본다는 얘기를 듣고 "숨겨진 1인치를 찾았다"는 광고카피로 유명한 TV(플러스 원)를 개발토록 지시했다. 또 휴대폰에서 가장 많이 쓰는 SEND와 END버튼이 왜 다른 버튼과 크기도 같고 기판 하단부에 있어야 하느냐고 지적,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디자인의 모델이 나오도록 지시했다. 손이 큰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인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크기를 적당히 키우고 조약돌 같은 유선 디자인을 갖춘 "T-100 모델" 개발 아이디어를 제공, 시판 8개월 동안 총 600만대 이상 팔리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삼성이 올해부터 진행하는 2기 신경영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중심가치가 된다. 이는 이회장이 수년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이다. 재계 여타 다른 그룹들도 삼성 못지않게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재확보전을 치르고 있다. 이회장은 5일 신경영 10주년 기념 만찬에서도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할 예정이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이순동 부사장(홍보팀장)은 "삼성의 신경영은 중단없는 개혁이며, 언제까지나 현재 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인재경영 뿐 아니라 세계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신경영 정신은 끊임없이 삼성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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