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공매도에만 돌을 던지랴

  • 등록 2016-07-06 오후 12:12:29

    수정 2016-07-07 오전 11:28:06

[이데일리 이정훈 증권시장부장] 지금으로부터 무려 400여년전 네덜란드는 아시아를 침략하고 무역권을 차지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라는 최초의 주식회사를 만든다. 그 주식을 사고 팔기 위해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인 암스테르담거래소가 세워졌다. 그리고 1609년 한 네덜란드 상인은 영국 함대가 동인도회사를 공격한다는 정보를 듣고 미리 동인도회사 주식을 빌려서 팔아치워 큰 돈을 남겼다고 한다.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공매도(short selling)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수십년 후 그 유명한 네덜란드 튤립 버블붕괴에도 공매도는 등장한다. 튤립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튤립 뿌리를 대신하는 보증서(=증권)가 거래소에서 거래됐고 튤립값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들은 이 보증서를 빌려 매도하는 수법을 썼다고 한다. 이처럼 공매도는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와서 판 뒤 나중에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값에 사서 주식을 되갚는 방식은 그 만큼 자연스러운 투자전략 중 하나인 것이다.

공매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특정 기관이나 개인이 개별기업 주식을 0.5% 이상 공매도하면 투자자 신원과 잔고내역을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돼 지난 5일 처음으로 대량 공매도자들의 실명이 공개됐다. 예상했던대로 공매도 주체의 97% 가까이가 외국계 투자자였고 개미(개인투자자)들은 `이들 때문에 주가가 못 올랐다`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부 개인들은 공매도 거래가 없는 증권사로 계좌를 옮기자며 단체행동에까지 나서고 있다. 사실 공매도가 몰리는 종목의 주가는 그렇지 않은 종목에 비해 더 강한 하락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공매도를 주로 활용하는 헤지펀드들도 단기 차익을 노리는 탓에 특정 종목을 집중적으로 공매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약세장에서 늘상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초래한 원흉으로 지탄받아왔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위기 등 비상사태 때마다 공매도 금지가 증시 안정책으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더구나 국내에선 불과 10년전만 해도 전체 시장 거래의 3%도 채 안됐던 공매도 비중이 10% 수준까지 빠르게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빠졌다`고만 말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유시용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가 지난 2014년 논문에서 밝힌대로 코스피시장 공매도 금액은 변동성과 부(-)의 관계를 갖고 있다. 공매도 거래로 시장 변동성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뜻이다. 에케 부머 싱가포르경영대 교수가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대상으로 행한 연구에서도 공매도가 주식의 가격정보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실제로도 공매도 세력은 대부분 업황이 악화되거나 실적 전망이 어두워진 기업들을 타깃으로 했다. 결국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빠졌다`라기보다는 `기업 내용이 나빠지고 주가가 빠지면서 공매도 증가를 부추겼다`고 하는 편이 타당하다.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공매도 공시제도를 통해 주가 하락을 막겠다는 건 그래서 적절치 못한 정책대응이다. 또한 공매도 공시제가 시행되면서 이를 활용한 추종매매가 나오거나 `어떤 종목에 숏커버링(공매도 청산을 위해 주식을 매입하는 일)이 나온다더라`는 식의 루머까지 양산되며 시장에 또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공매도에만 돌멩이를 던지는 건 쉬운 일이다. 오히려 공매도를 부추기는 우리 기업들의 체질 약화나 기업 지배구조 악화, 주주친화정책 부재를 바꿔놓는 게 더 시급한 일이다. 또 블록딜 등과 연계돼 공매도로 시세를 조작하는 세력을 근절하는 등 시장규율을 바로 잡는 일도 우선돼야 한다. 더구나 자본시장 기능 강화나 헤지펀드 활성화를 외치는 현 정부가 이에 역행하는 공매도 공시제를 꺼내든 것 자체가 일종의 자기부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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