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죽음은 무뎌질 뿐 여전히 두렵다"[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③

충남 청양소방서 이은성 소방관, 외딴 산속 마을 신변 확인 요청 건 접수
구조·구급 대원들 일사분란한 조치로 CO 중독 사고서 일가족 3명 모두 살려내
"단란한 한 가족 삶 끝나지 않게 도움 줬다는 뿌듯함 훈장으로 남아"
  • 등록 2023-11-24 오후 5:18:07

    수정 2023-11-25 오전 10:02:45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편집자 주]‘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 가량 숨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약 1년에 걸쳐 연재한다
.
이은성 소방관 등 소방관들이 지난 2021년 8월 22일 수로에 추락한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은성 소방관 제공.
지난해 3월 중순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의 오전이었다. 충남 청양소방서 이은성 소방관(33)에게 심상치 않은 구조&구급 출동 벨소리가 들려왔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불러도 대답이 없다”는 신변 확인 요청 건이었다. 이 소방관은 최악의 경우 중증의 환자가 생겼을 것을 가정하고 구조·구급 동료들과 함께 신속히 출동에 나섰다. 외딴 산속 집이었다. 너른 마당에 주차돼 있는 차량,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 태풍의 눈 같은 고요함이었다.

먼저 구조 대원들이 문 개방을 시도했다. 이중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곧바로, 안에 있을 사람들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애먼 전화벨 소리만 계속 울렸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구조 대원들은 창문을 뜯기 시작했다. 이 소방관은 집밖 아궁이에서 불완전하게 연소된, 타고 남은 장작을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일산화탄소(CO) 질식 사고가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창문을 개방해 집안으로 진입했다. 신속히 모든 문을 열었다. 매캐한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신속히 방 구석구석을 수색해 3명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60대 부부와 그들의 30대 딸이었다.

그들을 불렀으나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팔을 꼬집었을 때 비로소 미세한 통증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곧 중증의 의식 장애 상태를 의미했다. 구급차 두 대를 추가로 요청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고농도 산소를 주입했다. 휴대용 고농도 산소통 한 대에 추가로 구급차에 두 대의 산소통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구조 대원들은 들것을 준비했다. 추가로 구급차 두 대가 도착하자 구조 대원들이 3명의 환자들을 각기 다른 구급차에 태웠다. 구급 대원들도 각각 구급차에 나눠 탔다.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치료 가능한 병원을 수배했다. 구급 대원들은 고압 산소 치료가 가능한 대학병원급 병원들로 분산 이송 중에 환자들의 혈관을 잡아 생리식염수를 투여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신속하게 약물을 투여할 수 있도록 경로를 뚫어 주는 작업이었다.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는 한두 시간 이내에 최대한 고압 산소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소방관 등 청양소방서 소방관들의 일사분란한 조치 덕에 일가족 3명은 모두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 현재는 건강을 회복했다.

이 소방관은 “8년의 구급 대원 근무 기간 중 많은 사건·사고를 경험했지만, 일산화탄소 중독에 빠진 일가족 3명 모두를 살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덧붙였다. “‘우리가 한 단란한 가족의 삶이 끝나지 않도록 도움을 줬구나’하는 뿌듯함이 가슴 속 깊이 뭉클하게 훈장처럼 남게 됐다”고.

수많은 죽음을 마주 대하는 소방관. 소방관 생활 8년이 지난 이 소방관이지만 여전히 그는 타인의 생사 기로에서 좌절하고 안타까워한다. 8년 아닌 80년의 시간이 흘러도 적응할 수 없는 죽음의 무게다. 그에게 죽음의 무게를 다스리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답했다. “죽음에 무뎌질 뿐이지 여전히 죽음은 두렵다. 소방관들끼리 서로 감정 얘긴 안 한다. 그저 속으로 안고 갈 뿐이다”라고...

이 소방관은 오늘도 대기 시간엔 구급 술기 훈련에 매진한다.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맞닥뜨렸을 때, 더 능숙하고 의연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기 위해서다.
이은성 소방관.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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