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11>`미국판 동학개미` 이끄는 로빈후드

7년차 로빈후드, 온라인증권 넘어 금융서비스 변혁
`돈 많은 백인 중장년` 전유물 美증시에 젊은피 수혈
무료수수료로 개인투자자 몰이…1300만계좌 확보
핵심 테크주 랠리 기여, 값싸진 가치주 베팅도 먹혀
투기우려·지수조정에 투자자·로빈후드 변화 불가피
  • 등록 2020-06-19 오후 5:20:45

    수정 2020-06-19 오후 5:25:39

‘로빈후드’ 모바일 앱 다운로드 창 (사진=블룸버그)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최근 우리는 금융서비스산업에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은 금융시장이 자신들을 위해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시장이 자신들까지 포용하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미국판 동학개미운동`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미국의 무료 주식거래 플랫폼인 `로빈후드(Robinhood)`를 만들었고 지금은 이 플랫폼 운영회사인 로빈후드 마켓(Robinhood Markets Inc.)의 공동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바이주 바트(35)는 17일(현지시간)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로빈후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식시장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는 이 로빈후드가 금융서비스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니, 허풍이 심하다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한국 상황도 비슷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뉴욕증시는 사실 `그들만의 리그`라고 할 정도로 돈 많은 백인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미국 대표 조사업체인 퓨리서치가 지난 3월 내놓은 미국 소비자금융 서베이에 따르면 35세 이하 젊은층 가구 중 직간접적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가구는 41%에 불과합니다. 또 연소득 3만5000달러(원화 약 4240만원) 이하 가구 중 불과 19%만 주식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백인 가구 61%가 주식에 투자하지만, 히스패닉과 흑인 비중은 각각 28%와 31%에 불과합니다.

올 3월 퓨리서치가 발표한 ‘미국 소비자금융 서베이’에서의 미국 가계 주식 보유율과 보유액 중간값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데이터를 봐도 미국 소득 최상위 20%(소득 5분위) 계층은 전체 자산의 15.1%를 주식에 직접 투자하고 14.6%를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반면 소득 하위 20%(소득 1분위)는 전체 자산의 91%를 부동산에 투자할 뿐 주식 비중은 1%도 채 안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주식시장 폭락은 증시의 판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의 한복판에 로빈후드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빈후드는 지난 2013년 4월 블라디미르 테네브(33)와 바이주 바트라는 이민자 2세들이 공동으로 창업한 금융서비스 회사로, 온라인 웹사이트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옵션,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수수료 없이 거래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스탠퍼드대를 나온 이들은 한때 월가에서 알고리즘을 활용한 초단타매매(high-frequency trading) 플랫폼을 개발했었는데요.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에서 영감을 얻어 `부자들만이 아닌, 누구든지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의적(義賊) 로빈후드의 이름을 내건 트레이딩 플랫폼을 만듭니다.

다양한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에 고객들이 맡겨둔 예탁금에서 발생하는 이자나 회사가 제공하는 마진 트레이딩(일종의 신용융자 거래)에 부과하는 이자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로빈후드는 이 `수수료 없음`이라는 강점을 이용해 꾸준한 성장을 보여왔습니다.

지난 2017년 평균 연령 28세의 젊은 등록 유저 200만명을 확보한 로빈후드는 이듬해인 2018년 계좌수를 370만개까지 늘려 대표 온라인 증권사인 이트레이드 계좌를 추월하는 역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는 찰스슈왑이나 TD아메리트레이드 등 증권사 수수료 인하 경쟁을 촉발시켰고 급기야 TD아메리트레이드가 찰스슈왑에 팔리고 이트레이드가 모건스탠리에 팔리는 등 업계 구조조정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작년말에 1000만개 남짓했던 로빈후드의 계좌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뉴욕증시 폭락을 계기로 300만개 이상 급증해 최근 1300만개를 넘어섰습니다. 이 1300만개 계좌를 가진 유저들의 평균 연령은 여전히 31세로 매우 낮은 편입니다.

S&P500지수와 실제 주식에 투자한 로빈후드 활동 계좌수 추이


사실 이 로빈후드에 계좌를 만든 젊은이들은 주식투자 경험이 일천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신규계좌 중 40% 이상이 첫 주식계좌 개설이라고 답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보니 이들은 증시 급락에 따른 가격 메리트에 흥분했고 과감하게 `분노의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이렇다보니 UC버클리대 테렌스 오딘 교수 같은 분은 “이들은 정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이나 주당 600달러씩 제공하는 추가 실업수당 등을 주식시장으로 가지고 온다”며 “이처럼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이들은 주식투자를 현명한 투자보다는 투기적인 놀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IT에 친숙한 로빈후드 투자자들은 애플과 구글 알파벳, 페이스북, 아마존 등을 적극적으로 매수하기도 하지만 지난달 파산보호(Chapter11)를 신청한 허츠나 한화가 투자해 유명해졌지만 올해에도 매출이 거의 없는 수소트럭 개발업체 니콜라, 유가 하락에 어려움이 커진 오아시스 페트롤리엄, 다이렉시온 데일리 S&P 오일가스 ETF, 밸라리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아메리칸 에어라인과 델타에어라인, 카니발 등을 집중 순매수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매수 폭발력이 큰 탓에 투자 구루(Guru)들에게 맞서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워런 버핏이 미국 빅4를 포함한 항공주를 모조리 처분한 후 로빈후드 투자자들은 항공주를 집중 순매수하며 주가를 밀어 올렸습니다. 미국내 최대 항공주 ETF인 미국 글로벌 항공주 ETF(US Global JETS ETF) 가격은 무려 55%나 폭등하고 있습니다. 또 `월가 대표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허츠 지분을 주당 72센트에 모두 팔아 버린 뒤 로빈후드 투자자들이 매수에 가담해 400% 이상 주가를 끌어 올렸습니다.

바클레이즈가 분석한 S&P500지수와 로빈후드 계좌 보유액, 로빈후드 투자 증감과 지수 등락률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로빈후드 투자자들은 반등장에서 상당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23일 이후 S&P500지수가 36% 상승하는 동안 헤지펀드와 뮤추얼펀드가 주로 순매수한 종목은 45% 올랐는데 개인투자자 선호 종목은 무려 61%나 뛰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골드만삭스는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가격이 하락한 부분이 주목하며 가치주에 대한 투자에 집중한 반면 기관들은 여전히 성장주에만 올인하는 방식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개인들의 가치주 투자가 시장 반등국면에서 주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투자자들의 베팅이 성공적이라 말하긴 이른 감도 있습니다. 최근 바클레이즈 분석에 따르면 S&P500지수 상승에 맞춰 로빈후드 증권계좌의 평균 주식 보유액도 늘어나고 있지만, 로빈후드 계좌의 주식 보유액 증감과 S&P500지수 등락률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례로, 다국적 화장품업체인 코티(Coty)는 지난 3월13일 바닥을 찍은 후 로빈후드 투자자들이 무려 5배 이상 보유량을 늘렸지만 주가는 오히려 S&P500지수 내에서 최악의 수익률을 내고 있구요.

이제 진정한 승부는 지수가 오를 만큼 오른 현 시점에서 결정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더이상 가격 메리트가 있는 종목을 찾기도 수월치 않습니다. 순환매의 사이클은 충분히 돌아갔으니까요.

그리고 로빈후드 역시 기로에 섰습니다. 옛말에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나요. 좋은 일에는 반드시 이런저런 탈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요. 의적처럼 시작했지만 이제 주류로 편입돼야 할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몰려든 개인투자자들 덕에 환호도 질렀지만, 갑작스레 몰려든 매매주문에 3월에만 세 차례 거래장애를 일으켜 미국에서만 3건의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려 있습니다.

지난주엔 미국에서 올 봄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했던 스무살 청년이 투자 실패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로빈후드를 통해 옵션거래를 하다가 큰 손실을 내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청년은 로빈후드 앱에 표시된 `바잉파워(buying power) -73만달러`를 자신의 실제 투자손실로 착각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를 둘러싸고 직업도 없는 20세 청년이 어떻게 레버리지가 이렇게 큰 옵션거래를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실제 투자손실과는 다른 바잉파워가 잘못 기재됐던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로빈후드에게 제도권 금융회사에 준하는 시스템과 고객 보호를 요구하는 압박이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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