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생태계 강화vs재벌세습 악용…복수의결권 도입 놓고 '진통'

국회 산자위, '복수의결권' 공청회
벤처 복수의결권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 계류
벤처업계, "창업가 경영권 보장 위해 필요"
일각에선 "향후 대기업도 요구할 것…부작용 커"
  • 등록 2021-04-13 오후 4:40:33

    수정 2021-04-13 오후 9:39:19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복수(차등)의결권’에 대한 공청회에서 진술인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김병연 건국대 교수, 박상인 서울대 교수,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창업가의 혁신 역량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입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재벌 세습에 고속도로를 뚫어주는 격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부가 벤처 생태계 강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복수의결권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벤처업계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받아 지분 희석을 우려하는 혁신 창업가들의 경영권을 방어해줄 장치로 도입을 주장한 반면, 학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재벌 세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국회 내에서도 찬반 견해가 팽팽히 맞서는 만큼 향후 법안 통과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벤처 생태계 강화”vs“재벌 세습 고속도로”

13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복수의결권 공청회를 열었다. 복수의결권은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가진 주식에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복수의결권을 통해 상장 이후에도 창업주가 경영권 희석 우려 없이 과감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구글이 지난 2004년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으로 창업주의 지배권을 유지하며 회사를 키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쿠팡도 김범석 쿠팡 의장에게 1주당 29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클래스B’(Class B) 주식을 발행하기도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2벤처붐’ 활성화를 위해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10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벌 세습이나 경영주의 사익 추구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존속 기간 10년 △상장 3년 후 보통주 전환 △창업주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질 때만 발행 등 구체적인 요건을 개정안에 명시했다.

벤처업계는 이런 정부의 복수의결권 도입 방안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과도한 제약 조건으로 제도의 실효성이 낮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존속 기간 10년 규정이 이미 있는데, 상장 후 3년 보통주 전환 조건까지 둔 것은 과도하다”며 “복수의결권주식 발행 조건인 ‘창업주 지분 30% 이하’ 규정 역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부설연구소 부소장은 “정부안에 따르면 복수의결권주식은 총 주식 4분의3 이상 찬성이 필요한 ‘가중된 특별결의’를 통해 발행이 가능한데, 이러한 요건은 너무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복수의결권이 재벌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당장은 벤처기업에만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더라도, 향후 대기업도 이를 요구해 제도를 확대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복수의결권은 재벌 세습에 고속도로 뚫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소유-지배 간 괴리를 불러오는 ‘경영 참호화’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재벌 후계자가 벤처기업을 설립해 복수의결권을 발행한 뒤, 기업 총수가 가진 지주회사 보통주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세습이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도 “창업가의 의결권 희석을 방지할 수 있는 의결권 배제 또는 제한 주식 등 다양한 수단이 있다”며 경영권 방어를 위한 복수의결권 도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굳이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하지 않더라도 창업자와 벤처캐피탈(VC) 간 사적 계약을 통해 얼마든지 경영에 대한 여러가지 권한과 의무, 지배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며 “창업가의 경영권을 방어하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정 역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복수(차등)의결권’에 대한 공청회에서 진술인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김병연 건국대 교수, 박상인 서울대 교수,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여야, ‘벤처 생태계 강화’는 공감…법안 세부 논의는 난항 예상


이날 대다수 여야 의원들은 복수의결권이 벤처 생태계를 강화할 것이란 의견을 내비쳤다. 보안 벤처기업 ‘테르텐’을 이끌었던 이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분율 희석을 감수하더라도 투자를 받아야 하는 게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현실”이라며 “실효성 있는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미국, 중국, 인도, 영국 등 선진국들은 모두 창업·벤처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힘을 보탰다.

다만 일부 의원들은 복수의결권이 재벌 세습 악용 등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 만큼 법안 처리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재벌의 경영권 승계나 대기업 순환출자를 통한 영향력 확대 가능성만으로도 ‘빨간불’이 켜진다”며 “벤처가 아닌 기업도 복수의결권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할 텐데, 이를 막을 논리가 있느냐”고 했다.

중기부는 복수의결권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장치를 법안에 담은 만큼, 법안 통과에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재벌 세습 악용이나 경영권 남용을 막기 위한 내용이 법안에 들어가 있다”며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계속 소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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