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가 지난 2015년 12월 수년간 아동학대를 받아오며 집에서 감금됐던 인천 지역 초등생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장기결석 및 미취학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시작하자 친부모가 아동 감금·폭행, 살해 후 암매장 등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드러났다. 아동학대 예방과 종합대책 시스템이 2년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올해를 ‘아동학대 근절 원년’으로 삼고 전 생애주기에 걸쳐 아동학대 관련 부모교육을 실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아동학대 근절책을 내놨다. 정부는 위기아동 발굴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학대아동쉼터 등 아동보호를 위한 인프라 확충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동학대 교육은 권고사항이어서 강제가 어렵다. 아동학대 관련 인프라 확충은 예산안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정부가 아동학대 방임 논란이 일자 또다시 ‘사후약방문’을 꺼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 발견율 천명당 1.3명…美 10% 수준
29일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학대 발견율은 2015년 기준 아동인구 1000명당 1.3명이다. 2년 전인 2013년 0.73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여전히 미국(9.1명), 호주(7.8명)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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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기준 아동학대 의심사례는 1만 6650건으로 2013년에 비해 5793건(53.4%)이 늘었다. 하지만 이 기간 교사, 의료인, 아동복지시설, 아이돌보미 등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의한 학대 신고비율은 2013년 34.1%(3706건)에서 2015년 29.3%(4885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는 호주(73.3%), 일본(68%), 미국(58.3%) 등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작년 말 기준 아동학대 신고의무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한 건수도 32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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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아동학대를 사전에 예방하고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생애주기별로 부모 교육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결혼 이전에는 초·중·고 교과과정부터 대학 교양과목, 군대 정훈 교육 등에까지 올바른 아동양육 교육 등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결혼 이후부터는 산전검사나 출생신고, 양육수당·보육료 신청, 입학설명회, 건강검진 등 모든 생애 접점에서 부모교육을 실시한다.
김미숙 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학대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계속해 발견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복지부는 다소 애매하고 소프트한 대안을 내 놓았다”면서 “위기 가정에 대해 우선 타켓팅을 잡고 학대 아동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안전망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유관기관과의 협력으로 진료정보, 양육수당 등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학대 고위험 아동 가구를 예측·발굴하는 ‘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내년 이후에나 도입된다. 지역아동전문보호기관 추가 설치와 전문인력 확충 관련 예산은 기재부와의 협의를 통해 빨라야 올 하반기에나 이뤄질 예정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동학대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스크리닝(screening)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핀란드와 같이 초등학교 이후부터 보조교사를 충분히 확보해 행동 발달이 부진하거나 우울해 보이는 아이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며 “학생이나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 역시 시간때우기용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직접 토론을 하거나 역할 바꾸기 등과 같이 정확한 교육방식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