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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계를 이끄는 CEO들 1> 오정석 싸카스포츠 대표
  • <한국 스포츠계를 이끄는 CEO들 1> 오정석 싸카스포츠 대표
  • ▲ 오정석 싸카스포츠 대표이사(사진=베스트일레븐)[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축구계가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프로야구와는 달리 K리그와 국가대표팀 A매치 경기에는 팬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축구 소식이 화두가 되는 일도 대폭 감소했다. 가히 '위기'라 부를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축구용품 업계의 사정은 다르다. '보는 스포츠'로서 축구가 관심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 달리 '하는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꾸준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는 국내 굴지의 스포츠용품 유통업체 싸카스포츠가 있다. 이 업체는 1994년 창업과 동시에 첫해 매출액 2억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올해 예상 매출액은&nbsp;320억원이다.&nbsp;15년만에 무려&nbsp;160배나 성장을 하는 셈이다. 싸카스포츠를 이끄는 선장은&nbsp;'마이더스의 손' 오정석 대표이사(47)다. 그를 만나 성공의 노하우와 향후 비전을 들어봤다. ◇ 치밀한 분석과 도전정신으로 성공을 일구다 오 대표가 축구용품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건 32세이던 지난 1992년의 일이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지인이 운영하던 스포츠용품점을 매입해 사업 전선에 발을 들이밀었다. '내 사업체를 갖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준비 없이 무턱대고 새 분야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오 사장은 "개업에 앞서 동종 업계 매장에 직원으로 취업해 고졸 초임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업무 방식과 흐름을 익혔다"고 회고했다.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는 "당시 유명 브랜드의 축구 용품을 한 곳에 모아 판매하는 '총판'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기였다"며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오 대표는 과감한 도전 정신과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꾸준히 경쟁력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회사 규모 또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98년 나이키의 축구용품 공식 판매사업권을 따낸 데 이어 아디다스, 푸마, 엄브로 등 굴지의 스포츠 브랜드들과 줄줄이 계약을 맺으며 성공 신화를 일궈냈다. 당시 2~3년간 1800%대의 기록적인 매출 신장을 이뤄낸 건 아직까지도 동종업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한 싸카스포츠는 지난해 216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에는 320억원을 목표로 잡는 '알짜 회사'로 거듭났다. 15년간 무려 160배에 달하는 고속 성장을 이뤄낸 셈이다. 향후 싸카스포츠는 '국내 200대 기업 진입'을 목표로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펼쳐나갈 예정이다. ◇ '나눔의 삶'을 실천한다 오정석 대표가 운영 중인 싸카스포츠는 체계적인 유통시스템을 갖춘 회사로 각광받는다. 전산과 물류,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특유의 회사 운영 시스템은 경쟁업체들에게도 주목의 대상이다. 효율성과 체계성을 인정받아 2006년에는 정부로부터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됐고, 'ISO 9001' 인증도 받았다.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총 45명 정도로 운영되는 회사가 연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니 효율성 면에서 흠잡을 곳이 없다. 이에 대해 오 대표는 "축구계가 불황이라지만 축구용품 시장 만큼은 꾸준히 호황을 유지하고 있다"며 "야구는 관람 문화인 반면, 축구는 참여 문화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아울러 그는 "근래 들어 신제품의 발매 주기가 단축되는 데다 고급화 현상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전망도 밝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건 싸카스포츠의 독창적인 운영 기법이 동종업계 후발주자들에게 무상 공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정석 대표는 이에 대해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도 있고, 동업자 의식의 실천이기도 하다"며 "누구든 '꼭 배우겠다'는 의욕을 보일 경우 운영 시스템을 무료로 알려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종업계 관계자들에게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아니다. 싸카스포츠는 축구와 관련된 곳에서 보이지 않는 선행을 지속하고 있다. 2002한일월드컵 당시 네팔과 부탄에 축구화 2002켤레를 기증했고, 2005년에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5억원 상당의 축구용품을 북한에 지원했다. 중등축구연맹 공식 후원업체이며, 2006년부터 자체 런칭한 스페인 브랜드 '아스토레(Astore)'를 활용해 프로축구팀 전남드래곤즈의 유니폼 스폰서로 활동 중이다. 올해&nbsp;초에는&nbsp;제주유나이티드와도 2년간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관련해 오정석 대표는 "싸카스포츠가 성공을 이루기까지 축구계의 신뢰와 격려가 큰 힘이 됐다"며 "앞으로도 수익 여부를 떠나 어떤 방식으로든 축구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 더 큰 꿈을 꾸다 최근 오정석 대표는 새로운 분야에 출사표를 던졌다. 39년 역사를 자랑하는 굴지의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 주식 51%를 인수해 대표이사 겸 발행인으로 취임한 것. 오 대표는 "축구 산업 종사자로서 한국축구에 기여할 방법을 찾던 중 축구전문지를 생각해냈다"며 "40년 가까이&nbsp;이어져 온 베스트일레븐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리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세계적인 축구전문지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매체로 키워나갈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nbsp;이어&nbsp;그는 "베스트일레븐의 네임밸류를 활용해 머지 않은 장래에 축구꿈나무 장학금 지급, K리그 주간 MVP 선정 등의 이벤트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nbsp;마지막으로 오대표는 "내가 축구계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축구가 지닌 가치와 가능성, 경쟁력 등을 믿었기 때문"이라며 "누구든 자신이 올인할 가치가 있는 일을 찾아 매진한다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nbsp;더불어 "축구는 내가 가장&nbsp;좋아하는 스포츠이자,&nbsp;항상 즐기는 스포츠"라며 "축구와 함께&nbsp;한 내 인생의 도전기는&nbsp;언제나 즐거웠고 흥미진진했다"고 회고했다. '200대 기업 진입'과 '세계적인 축구전문매체 육성'을 목표로&nbsp;쉼 없는&nbsp;도전을 지속하고 있는 오정석 대표와 싸카스포츠의 발걸음에 축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오정석 싸카스포츠 대표이사(사진=송지훈 기자)
2009.08.27 I 송지훈 기자
  • (김前대통령서거)박영숙 "민주주의 상징인 당신이 그립습니다"
  • [이데일리 김보리기자] 박영숙 23일 한국사회환경정책이사장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는 당신의 피와 눈물 속에 피어났다"면서 "당신께서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고인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박 이사장은 "우리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게 하고 있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라며 덧붙였다.다음은 추도사 전문이다.추 도 사김대중 대통령님, 우리의 선생님! 이제는 더 이상 얼굴을 뵈올 수 없고, 말씀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우리와 정말 영영 이별하시는 것인가요? 대통령이 계셔서 든든했는데, 선생님이 계셔서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우리 곁을 떠나신다니 승복하기 어렵습니다.지난 세월 동안 한두 번이 아닌 죽음의 고비를 기적적으로 극복해 내신 대통령님이시기에 병세에 대한 보도와는 상관없이 `대통령님을 한번만 더 돌려주시라는` 이희호 여사님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아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날 줄을 의심치 않고 있던 우리에게 서거의 비보는 큰 충격이었습니다.우리의 기도가 부족했나요? 아니면 하늘의 뜻이 있어서인가요.대통령님의 서거는 우리에게 이별의 슬픔만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우리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게 하고 있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오랜 고난의 세월이 있었기에 더욱 간절했던 둘이 종일 같이 있는 기쁨도 잠시,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내 없이는 살기 힘들다고 하신 대통령님께서 어떻게 여사님을 혼자 두고 떠나실 수가 있습니까? 지금 지구촌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세계인이 대통령님 영전에 꽃을 바치고 있습니다.갈라진 남과 북의 산하가 흐느끼고 있습니다.대통령님의 꿈을 키웠던 저 남쪽 바다가 울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그리고 선생님.독재정권 아래에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희망이었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총과 칼이 가슴을 겨누어도 님께서는 의연하게 일어나셨습니다. 숱한 투옥, 망명, 연금을 당하시고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뜻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셨습니다.대통령님께서는 역사와 국민을 믿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대통령님을 인동초라 불렀습니다. 가을에 익은 열매가 겨울 눈 속에서 더욱 붉었으니, 인동초는 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가장 험한 곳에 계셨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은 강철 같았습니다.그리고 대통령님의 믿음대로, 예언대로 이 땅에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고난을 받으실 때 우리는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습니다.죄송합니다.그러고도 당신이 고마운 줄 몰랐습니다. 이제 살펴보니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과연 누가 산보다 우람한 거목이 떠나간 자리를 채울 수 있겠습니까.사회적 대원로를 잃은 우리는 이제 나라의 큰 일이 나면 어디로 달려가야 합니까. 국민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입니까.당신께서 떠나니 이제 알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 당신의 삶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한번도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았던 진정한 민주투사였습니다. 온갖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불굴의 정치인이었습니다.사상 초유의 외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해낸 준비된 대통령이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남과 북의 미움을 녹여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핍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들을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용서와 화해`라는 귀한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대통령님은 버마, 동티모르 등 세계의 인권을 신장시키고 남과 북의 화해를 이뤄내 노벨 평화상을 받으셨습니다. 용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지구촌의 평화를 지키셨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당신의 피와 눈물 속에 피어났습니다. 당신께서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신이 일구어낸 민주 사회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진정 국민이 주인인 세상을 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고,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여성부를 신설하고, 정보고속도로를 완성하여 정보기술(IT)강국을 만들었습니다.대통령님께서는 주변을 맴돌던 한국 외교를 국제무대 한 가운데로 끌고 나가 나라의 격을 높이셨습니다.국민의 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하여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 재임 시절에 한류가 지구촌 구석구석에 흘렀고, 월드컵 4강의 함성에 세계인이 놀라고, 문화를 개방하여 국민의 자긍심을 높인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님의 우리 문화에 대한 혜안과 인류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던 식견을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그리고 선생님. 대통령님께서는 저 격동의 세월을 실로 쉬지 않고 달려오셨습니다. 퇴임 후에도 민족의 내일과 전 지구적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와 세태를 꾸짖고 곳곳에 평화를 심었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모여 대통령님의 업적을 헤아린다는 것이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크기와 무게를 가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로 많은 것들을 이루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그리고 선생님.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습니다. 말씀대로 깨어 있겠습니다.우리들이 깨어 있으면 당신이 곁에 계실 것을 믿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지난날들은 진정 위대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김대중이란 이름은 불멸할 것이니 이제 역사 속에서 쉬십시오. 대통령님, 당신의 국민들이 울고 있으니 하늘나라에서라도 저희를 인도해 주십시오. 김대중이 없는 시대가 실로 두렵지만 이제 놓아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25일 6&#8228;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매일 밤 이희호 여사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신다고 하시면서 목이 메어 말씀을 한참 잇지 못했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님, 벌써 그립습니다.늘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 지난날은 진정 고단했으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
2009.08.23 I 김보리 기자
화제만발 '스타일', 시청률 주춤 왜?
  • 화제만발 '스타일', 시청률 주춤 왜?
  • ▲ SBS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스타일'.[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SBS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스타일'이 높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면에선 주춤하는 양상을 보여 그 이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스타일'은 22일 방송에서 17.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16일 6회 방송이 기록한 19.6%에 비해 2.1%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이로써 '스타일'은 인기 드라마의 기준이 되는 20% 돌파의 꿈을 또 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스타일'은 1, 2회에서 각각 17.6%로 출발, 3회와 4회에서 잇따라 19.5%와 19.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20% 돌파에 대한 기대를 높였으나 이후 시청률 널뛰기를 반복하며 제작진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스타일'은 40%를 웃도는 시청률로 종영한 '찬란한 유산' 후속에 김혜수, 이지아가 여자 주인공으로 나서 패션과 연기 대결을 펼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다. 이와같은 호재를 감안할 때 최근 '스타일'의 시청률은 분명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표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가 나쁜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경쟁작들의 동반 약진과 함께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으로 자리잡은 '30~40대 여성'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스타일'의 시청층을 들고 있다. '스타일'보다 20분 가량 앞서 시작, 방송시간이 40여분 겹치는 '세바퀴'는 지난 주보다 0.7%포인트 상승한 14.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스타일' 보다 15분 늦게 시작해 50여분 간 맞대결을 벌인 '천추태후'는 전회보다 2.1%포인트 상승한 17.0%의 시청률로 마감했다. 유사 시간대 방영되는 타사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경쟁력을 갖추고 나선 점이 '스타일'의 상승세를 위협하고&nbsp;나선 셈이다. 또 '스타일'은 20~30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패션 등 '쿨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칙릿 드라마다. 하지만 이처럼 뚜렷한 시청층이 동시에 시청률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칙릿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타일'이 '세바퀴'와 '천추태후'의 협공을 따돌리고 시청률 면에서도 '엣지 있는' 성적표를 받아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련기사 ◀☞'스타일' 김혜수, '3억' 페라리 몬다…'차도 엣지있게'☞'스타일' 김혜수, "실제 잡지사 편집장 경험 있어"☞'스타일', '세바퀴'와 '천추태후' 협공에 상승세 주춤☞'스타일' 김혜수-류시원 '동상이몽' 키스 '화제'☞박솔미, SBS '스타일'서 톱여배우로 깜짝출연
2009.08.23 I 최은영 기자
비·이효리·지드래곤이 밝힌 나의 20대는?
  • 비·이효리·지드래곤이 밝힌 나의 20대는?
  • ▲ 비 이효리 지드래곤 신민아[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가수 이효리가 자신의 20대를 KTX에 비유해 눈길을 끈다. 이효리는 최근 케이블 채널 엠넷이 주최하는 여름 시상식 '2000 엠넷 20's 초이스'(이하 20's 초이스)와 진행한 '20인 20's' 스타 릴레이 인터뷰에서 "빨리 지나가고 나면 뭔가 아쉬움이 남는 느낌이 비슷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스무살 핑클로 시작해 스물 여섯살에 '텐미닛'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다고 나를 말하지만 29살에는 혼란스럽기도 했고 30살에는 두려움과 혼란도 있었다"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이어“20대에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효리 외 비, 구혜선, 서인영, 지드래곤, 신민아 등이 밝힌 '나의 20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이다. -비 나의 20대는 '고통'이다. 스무살 어머니의 일을 비롯해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끝 없는 노력과 인내, 겸손이 필요한 시기가 20대고 나 역시 그렇게 노력하고 기다리며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한다. -구혜선 스무살 때는 가수가 되고 싶은 꿈밖에 없었다. 얼짱으로 유명했지만 실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기도 했다. 나의 20대는 기적이다.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기적이 아닐까? -신민아 스물 네살은 여자가 가장 예쁠 나이고 그때 많은 활동을 했었던 것 같다.=진지하지만 원숙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것이 20대에 하고 싶은 소망이다. 일과 사랑, 열정 모든 것에 빠져들 수 있는 집중이 20대의 매력이다. 스물 여덟살에는 꼭 아름다운 멜로 영화를 찍고 싶다. -지드래곤 난 지금 스물 두살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일본 활동도 성공적으로 진행한 올 해를 최고의 해로 기억한다. 나에게 20대는 '사다리 타기'와 같다. 10대에 진로를 선택하고 무언가를 결정했다면 20대에는 그 목표를 위해 어떻게 사다리는 타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꽝이 될 지 잘 될 지는 이제 내 몫이다. 한편, '20's 초이스'는 오는 28일 서울 잠실동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다.
2009.08.22 I 양승준 기자
남상미 "파격변신 보단 한 걸음씩 다르게"
  • 남상미 "파격변신 보단 한 걸음씩 다르게"
  • ▲ 남상미(사진=한대욱 기자)[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올해 선 보인 한국 공포영화 중 이용주 감독의 데뷔작 '불신지옥'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광신과 믿음, 그리고 개인의 욕망을 소재로 한 '불신지옥'의 공포는 감각적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의 가슴을 서서히 압박해와서다. 이제 갓 데뷔한 이용주 감독은 치밀한 화면구성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로 관객들에게 색다른 공포영화의 체험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장점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들린 동생 소진(심은경 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자신도 빙의가 되는 주인공 희진 역의 남상미는 그런 면에서 '불신지옥'의 영화적 성패를 좌우하는 키를 쥐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2002년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교 앞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약 얼짱스타로 화제가 되어 연예계에 데뷔한 남상미는 '불신지옥'이 배우로서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간 발랄하고 씩씩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어요. '달콤한 스파이'나 '식객' 등에서 제 모습은 제 실제 모습과도 비슷해 연기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죠." 하지만 '불신지옥'의 희진은 이전까지 맡아왔던 캐릭터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가장 가까운 피붙이인 엄마까지 의심하며 스스로 붕괴되어가는 희진의 모습은 단순히 비명만 지르면 되는 평범한(?) 공포영화의 주인공과는 확실히 다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번 캐릭터를 통해 감정을 폭발하는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새로웠어요. 욕설도 해보고 머리채를 잡고 싸워보기도 하는 등 내 안에 무언가를 다 끄집어낸다는 느낌이었어요" 희진은 실종된 동생을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만 오히려 여러 가지로 의심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희진은 주변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자신 역시 이유를 모를 공포로 내면이 잠식되어간다. "희진은 스스로 믿고 있던 가치들이 무너지면서 스스로에게 공포를 느끼는 인물이에요. 그러면서도 동생에 대한 애정으로 여러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가죠. 그런 희진의 심리적인 움직임과 감정들이 저에게는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희진의 그 불안한 심리적 움직임과 감정들은 영화 ‘불신지옥’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남상미는 이러한 희진의 모습을 통해 이전의 자신이 맡았던 ‘발랄하고 명랑한 20대 여성 캐릭터’의 틀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남상미가 바라는 연기자의 로드맵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갑자기 파격적으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계단씩 차곡차곡 변화하고 싶어요. 그래서 삼십대 중반이 넘어가면 성숙미와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배우가 제 꿈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불신지옥’의 희진은 제가 꼭 해보고 싶었던 캐릭터였습니다.” ▲ 남상미(사진=한대욱 기자)영화를 촬영하며 가장 아쉬웠전 점을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너무 겁이 없어서 귀신 같은 것을 못 본 것이 가장 아쉽다"고 한다. 공포영화 촬영현장에서는 주연배우가 귀신같은 걸 봐야 흥행이 잘 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란다. "영화가 흥행이 잘 되면 정말 좋겠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객들의 선택이니 배우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죠. 다만 이 작품이 영화사 아침의 고 정승혜 대표님의 마지막 작품이니만큼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는데...잘 되겠죠?"
2009.08.22 I 김용운 기자
  • (김前대통령서거)3김 시대의 물리적 종언
  • [이데일리 김세형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우리나라 정치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3김` 시대도 `물리적 종언`을 맞게 됐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정착에 이들이 기여한 것에 대해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지만 이들은 `지역 할거주의`라는 고질적인 병폐도 양산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을 계기로 이들은 모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3김 시대는 공식적으로 마감했다. 하지만 이들이 남겨 놓은 지역주의가 여전히 한국 정치판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호남권의 맹주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권에 `지역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문화가 형성될 지 관심이다. ◇ 3김의 태동..`서울의 봄` 김대중 전 대통령(1924년생), 김영삼 전 대통령(1927년생),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1926년생)를 한묶음으로 일컫는 `3김`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통상 지난 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직후로 볼 수 있다. 그전까지 이들이 정치 일면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박정희 대통령의 피격당하면서 이들이 권력의 최상층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늘상 야권의 대표주자들이었다. 이승만 정권 붕괴와 5·16 군사 쿠데타로 약화된 해방 이후의 정치권을 대체하는 신세대의 기수들이었다. 둘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 그들의 경력을 쌓아갔고, 야권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서로 맞붙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심해질 때 핍박을 받았던 것 역시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살해 위험에 처하기도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박정희 정권 말기에 국회의원직에서 영구제명되기도 했다. 이에 비해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군사 쿠데타에 가담해 정치권에 등장한 인물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것을 필두로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두 차례 지냈을 정도로 실력자였다. 그러나 항상 2인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총격에 의해 사망하면서 대한민국은 정권에 공백이 생겼다. 이른바 `서울의 봄`이다. 이같은 공백기에 부상한 것이 이들 3김이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권의 대표주자로서, 김종필 전 총재는 전 정권의 지분 보유자격이 감안됐다. 작고한 종교계 지도자 강원용 목사의 중재 아래 이들 3김의 권력 분점이 막바지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권리를 주장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사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 버렸다. 이때 3김이 권력 분점에 합의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대가 좀 더 빨리 왔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는 게 사실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이들 3김은 정계 은퇴와 가택연금 등 정권의 탄압을 받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다만 이때는 지역주의 색채가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 민주화와 함께 열린 3김 시대..`지역분할과 야합` 87년 정권 막바지에 이른 전두환 정권은 장기집권을 시도하고 국민들은 피로 얼룩진 6월 항쟁으로 결국 직선제 개헌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 내게 된다. 이는 3김 시대가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됐다. 정치 활동 금지가 풀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손을 잡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해 정권 창출에 나섰고, 김종필 전 총재도 미국에서 귀국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뒤 정계에 복귀했다. 이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계자격인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와 그해말 대통령 선거에서 대결하게 된다. 이때 대통령 당선에 가장 앞서 있던 것은 통일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때 평화민주당을 창당, 대통령 선거에 나섰는 데 이것이 결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남,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남, 그리고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충청도 등 지역 할거주의가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각자 후보마다 100만명 넘는 지지파를 동원해 여의도에서 유세를 가진 것은 지역 할거주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은 했지만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은 매우 강렬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민정당은 국정 안정을 위해 야권에 손을 내밀게 된다. 이것은 3당 야합으로 일컫어지는 1990년의 민정당, 통민당, 신민주공화당의 전격 합당으로 귀결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표라는 직함을 얻었고, 김종필 전 총재는 내각제라는 꿈을 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안정적 국정운영이라는 소득을 얻었다. 이때부터 분할과 야합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얻었다. 서로 각기의 지역 기반을 갖고, 정권 획득에 전력하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권 경쟁에서 승리한 김영삼 후보가 민자당 후보로 나온다. 영남과 충청권을 등에 업은 김영삼 후보는 호남을 기반으로 재차 출마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의 꿈을 이루게 된다. 김대중 후보가 선거 패배 여파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런던으로 갔지만 3김 시대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김종필 전 총재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으로 김영삼 정부 초기 집권 민주자유당의 대표가 됐지만 결국 불화를 참지 못하고 1995년 2월 자유민주연합이라는 독자정당을 다시 창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를 전후해 정계에 복귀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여권과 김대중, 김종필의 야권이라는 3각 분할구도가 이뤄진다. 이때가 3김의 절정이랄 수도 있다. 97년 대선에서는 재차 합종연횡이 이뤄진다. 3당 합당시 야합이라고 극렬 비난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측과 김종필 전 자민련측이 일명 DJP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후보로 내세운 것. 때마침 불어닥친 IMF 경제위기라는 시대 상황도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네번의 도전끝에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3김도 한풀 꺾였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3년 퇴임하고 2004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국회의원 선거 참패를 이유로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3김 시대는 막을 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남권 출신의 호남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스스로도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등을 제안하면서 3김 시대 종식에 앞장 서기도 했다. ◇ 김대중 서거..지역주의 끝나나노무현 정부시절 3김이 완전히 끝난 줄 판단했지만 3김의 지역주의 유산은 2007년 대선에서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 영남권을 기반으로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막판까지 접전을 벌이는가 하면 정계밖에 있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후보가 충청권을 등에 업고 재차 정계에 들어 왔다. 집권 여당도 마찬가지였던 터라, 열린우리당은 전주 출신의 정동영 의원을 후보로 내세우면서 여전히 지역주의의 한계를 표출했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한 지 1년반으로 접어 들고 있지만 이런 지역주의는 여전한 모습이다. 지역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인물에, 그 인물이 현직에 있건 이선으로 후퇴해 있건 정치인들이 줄을 대는 양상이다. 이명박 대통령마저도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지역 갈등을 척결대상으로 꼽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실상 막을 내렸던 3김 시대는 이제 물리적으로도 종언을 맡게 됐다. 하지만 가장 손쉽게 지지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는 이상, 지역주의 척결까지는 아직 멀기만 해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90년 3당 합당을 계기로 완전히 등을 돌린 뒤 최근까지도 화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 병상을 직접 찾아 화해를 모색했다. 이 둘의 화해가 양편으로 갈라섰던 대한민국의 갈등을 봉합하는 계기가 될 지 지켜볼 일이다.
2009.08.18 I 김세형 기자
  • (미리보는 경제신문) 현정은 회장 체류 또 연장
  • [이데일리 민재용기자] 다음은 8월14일자 경제신문들의 주요 기사입니다.(가나다순) ◇매일경제▲1면 -SK텔, IT종합상사도 한다-그린카 이젠 가격 경쟁-쌀가공식품 늘어난다-서울 아파트 동간거리 축소 -방북 현정은회장 체류 하루 또 연장▲트렌드 -골프족 패션거품 빠진다-안철수,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다-삼성 신입사원 선발때 영어회화 기준 올린다▲종합 -김정일 위원장 남측 손님 만날때 패턴있다-현회장 3일간 전화 두 통 `용건만`-美 경기회복 자신감에 출구전략 카드 만지작-미국發 훈풍에 아시아증시 희색-한국 부실채권 털기..정부-은행 줄다리기-국고채 5년물 8개월만에 5%대▲정치·외교안보 -박희태 출마 `지원사격` 나선 親朴-이한구 "세종도시, 유령도시될수도"▲국제 -유엔 홀대하던 미국, 태도 달라지나-日 외교축, 아시아로 대전환 포석 -오렌지값도 크게 올라 -美 영화·음악 中 시장 휩쓰나-美 의보개혁 타운홀미팅 `진흙탕`▲금융·재테크 -금리 오르는데 보험사 주택대출 받아볼까?-외화예금 첫 300억달러 넘었다-CMA로 자금이탈을 막아라-은행 인턴들 다시 실직 위기 ▲기업과 증권 -SK텔, IT종합상사로 변신..콘텐츠 판매 중심 -대우 망갈리아, 루마니아 정부에 SOS-삼성 LCD TV가 단돈 9.99달러? -GM대우노조-민노총 `충돌`-대한전선, 트라이브랜즈 매각▲유통 -제주 면세점 최대 큰손은 중국인 -집중호우로 채소값 상승 과일값 하락-호텔들 "빈방 없어요"▲부동산 -4대강 보상비 연내 6천억 풀려-9월 분양시장 `큰장` 선다-고덕주공 4·6·7단지 재건축된다◇서울경제 ▲1면 -어깃장 놓는 금속노조-배수진 친 기아자동차 -현정은 회장 北 체류 또 하루 연장 -`서민물가` 심상찮다▲종합 -예비당첨자 제도 `구멍` -수출입 교역조건 크게 개선됐다 -CD금리 2,45%로 급등-MB "남는 쌀 가공용으로 싸게 공급을" -냉장고등 에너지 다소비 4대 가전제품..내년 4월부터 개별소비세 5% 부과-FRB `양다리 통화정책` 펴나-미국 경제지표 잇따라 `파란불`-IMF "한국 2014년 재정측자 달성"-하반기 SOC투자 급감할듯-두번째 유전발견 가능성 크다-지난달 거주자 외화예금 300억불 넘어 사상최대▲정치 -박희태, 재보선 출마지 양산行 -정세균 "등원 논의할때 아니다" -병상서 `도쿄 피랍` 생환 36주년 맞은 DJ▲금융 -외환은행 매각협상 "환율이 발목"-수출입은행, `1000억대 탄소펀드` 투자자 모집-저축은행중앙회 차기회장 주용식 재정부 국장 유력 ▲국제 -"中, 美 영화·출판물 수입 규제 부당" -美 재정적자 사상최대-BHP빌린턴 순익 62% 급감 -日 도매물가 하락..디플레 우려 커져▲산업-쌍용차 평택공장 "회사 살리자" 비장한 결의도-산업은행, 내주초 구조조정 비용 1300억원 지원-소니·하이얼 "한국 가전시장 재공략"▲부동산-고덕지구 1만 3000가구 매머드 단지로-잠실주공5 재건축 일정 또 지연될듯-4개강 보상비 10월부터 지급◇한국경제 ▲1면 -美, 경제 안정 진입..양적확대 10월 중단 -녹색경영 평가지표 만든다-수도권 골프장도 그린피 인하 추진 -현회장 체류 또 연장..김정일 면담 귀띔?▲종합 -김창준 전 미국하원의원 "쌍용차 농성 피해액 1원까지 배상시켜야" -이영희 노동장관 "노사분규는 집안문제..정부개입 최소화"-동해 심해저 1차탐사.."유전발견 가능성 높다"-세계 곳곳 `출구전략`신호..금리인상 앞서 유동성 공급 축소-한은의 출구전략, 이미 17조원 회수..미국보다 한발짝 앞서가-현대·기아차, 전차종 연비 20% 개선▲경제 -은행 인턴 1천명 다시 백수로 -백용호 국세청장 취임 한달..정중동 개혁 진행중-재고쌀 공급가격 30% 인하..이대통령 "쌀라면 먹겠다" ▲금융 -CD금리다시 꿈틀..주택대출 이자 부담 `주의보`-KB금융, 푸르덴셜증권 인수 추진-실손의보 보험료 최대 20% 내린다-저축은행중앙회장 주용식씨 내정-수출입은행, 1000억원 탄소펀드 조성▲정치 -대통령도 못말리는 `박희태의 꿈` -투쟁 고삐 쥔 정세균, 차기 노리나 -靑 개편 설·설·설.. "일손 안잡히네" ▲국제 -7달러 조세피난처 비밀금고 열린다 -WTO "中 음반·서적 족쇄 풀어라"-베트남에 日 `신칸센` 고속철도 깔린다▲사회 -"협상 못하겠다" 기아차 사측 교섭위원 사의 -힘 빠지는 금속노조-美·日 포르노업체, 국내 네티즌 1만명 고소▲산업 -삼성전자 "불황 공습경보 1단계 해제" -쌍용차 직원들 "일하는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대한전선 `트라이`매각-`불안한 거인들` 노키아·MS 스마트폰 제휴-유화업계, 대한유화 인수 `군침`▲부동산 -오세훈 "용산지구서 주민반대 3개 아파트 빼겠다" -다음달 2만여채 분양..올들어 최대-고덕주공 4,6,7 단지 3700세대로 재건축-다음달 2만여채 분양..올들어 최대▲증권 -기관이 사는 중소형주 수익률 좋네 -연기금·사학재단 최대 9천억 집행 임박 -`옵션마녀` 막판 심술..고스피 반등 무산 -공모펀드에 거래세 매기면 연 2% 손해
2009.08.13 I 민재용 기자
`이성관계는?`...100개 검증항목 빼곡 "이럴바엔 장관 안해"
  • `이성관계는?`...100개 검증항목 빼곡 "이럴바엔 장관 안해"
  • [조선일보 제공] 청와대가 최근 인사대상 후보자들에게 요구한 엄격한 자기진술서가 개각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앞두고 청와대가 후보자들에게 요구한 자기진술서엔 '과거 10만원 이상 접대를 받은 적이 있는가', '사채(私債)를 가장한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 '사회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부금을 낸 적이 있는가' 등의 질문이 담겨 있다. 최근 이 진술서를 본 후보자 중엔 "난 공직에 관심이 없다"며 후보군에서 제외해달라고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청와대 주변에선 "중도실용주의 이념에 맞아 입각 후보에 오른 모 대학 교수가 진술서를 보더니 꿈을 접었다", "여권의 모 인사가 누구를 추천했는데 진술서 작성을 꺼린다더라"는 등의 얘기들도 나온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개각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인선(人選) 난항이 꼽히는데, 여기에는 까다로운 진술서도 한몫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 이후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변화 중 하나가 강화된 검증진술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만든 이 진술서는 재산형성 과정을 비롯해, 세금·병역·논문·국민연금·의료보험·위장전입 등 위법 가능성을 후보자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돼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체크 항목이 무려 100개가 넘는다"며 "이 대통령이 평소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관련 항목이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과거 10만원 이상의 접대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후보자들은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받고 또 냈는지 등을 써내야 한다. 과거 부적절한 이성관계 유무를 묻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이 진술서 양식 초안이 안건으로 올라왔을 때 "이런 것까지 검증하면 안 걸릴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인생 전반에 대한 고해성사와 비슷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우리나라는 과거 산업화 시대와 현재의 도덕성 기준이 큰 괴리를 보이고 있어 공직후보자들이 인사검증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특히 스스로 위법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어 이를 스스로 체크해서 자기검증을 해 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검증과정에서 요구받는 진술서가 사생활 침해이자 범죄수사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해서 논란이 된다. "낙태를 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여성후보자가 공직 진출을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 진술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재의 풀이 좁아져 한번 공직을 거친 사람들만 계속 고위직을 차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비판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은 채 청와대에 머물렀다. 8·15 광복절 메시지를 점검하는 한편 개각 및 청와대 인사 문제를 집중 고민했을 거란 관측이 많다.
'교통사고' 대성, 뮤지컬 프레스콜 '불참'…입원 치료중
  • '교통사고' 대성, 뮤지컬 프레스콜 '불참'…입원 치료중
  • ▲ 빅뱅 멤버 대성[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교통사고를 당해 팬들의 걱정을 산 빅뱅 멤버 대성이 12일 예정된 뮤지컬 프레스콜에 부득이하게 불참한다. 빅뱅 소속사 관계자는 12일 "대성은 부상으로 인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다"며 "승리만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대성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승리와 함께 주연을 맡은 뮤지컬 '샤우팅' 프레스콜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대성은 지난 11일 오후 4시께 SBS ‘일요일이 좋다’의 ‘패밀리가 떴다’ 촬영을 마치고 매니저가 운전하는 카니발 차량을 타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평택 고속도로 터널에서 빠져나오다 사고가 나 코뼈와 척추 횡돌기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에 대성은 12일 오전 현재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한편, 대성과 승리가 출연하는 '샤우팅'은 스타의 꿈을 가지고 방송국 스태프로 일하는 젊은이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오는 12일부터 23일까지 서울 한전아트홀에서 상연될 예정이다.▶ 관련기사 ◀☞'교통사고' 대성, 코뼈와 척추 횡돌기 골절☞이효리, 대성 교통사고 접하고 '큰 걱정'☞'패떴' 제작진, "대성부상 파악중…방송녹화는 완료"☞빅뱅 대성, 빗길 교통사고☞'패떴' 대성, '꽃남' 구준표 변신 큰 웃음
2009.08.12 I 양승준 기자
  • 하일성 "기다림·대역전… 야구는 삶과 닮은꼴, 해설은 대화다"
  • [경향닷컴 제공] 하일성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의 별명은 '하구라'다. 국민해설가로 불릴 만큼 감칠맛나는 야구해설은 물론 방송에서도 주부프로에서 시사프로에까지 등장해 고부갈등부터 금연문제까지 무슨 주제건 거침없다. 또 사석에선 사고뭉치였던 학창시절이나 월남전 참전 당시의 무용담, 깡패부터 전직 대통령 등 각계 인사와의 일화를 전하며 좌중을 압도한다. KBO 사무총장 시절엔 제8구단 창단,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금메달, WBC 결승 진출, 프로야구관객 500만명 달성 등 한국 야구 르네상스에 기여했다. 올해로 야구해설 30년을 맞는 그를 만나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 야구해설가, 행정가, 가발CF 모델, 방송패널, 강사 등 다양한 인생을 살아온 그의 삶과 한국 야구계의 미래를 들어봤다. &nbsp;-언제 다시 방송에서 '하일성표 야구해설'을 들을 수 있나요. " 현재 각 방송사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대우 문제, 즉 몸값을 협의중이에요. 제가 심장병수술을 받을 때도 기다려주고 기회를 준 KBS엔 무료라도 일해야하는데 주위에선 그게 이기적인 생각이라는군요. 다른 동료나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야한답니다. 그래서 방송사들이 어렵다고 하지만 후배 해설가들을 위해서라도 연봉 등을 협상중입니다. 요즘은 조용히 표사서 야구장에 들어가 외야석에 앉아 야구관람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는 등 해설준비를 하고 있어요. " -주변에선 연임설도 많았는데 KBO 사무총장을 지난 3월 31일에 미리 그만 두셨습니다. " 연임은 제 의지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사무총장은 꼭 하고 싶은 일이라 의욕이 너무 앞서 실수도 많았고 욕도 원없이 들었어요. 제 진심이 안통하는 것 같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정도였죠. 그래도 그만 두고 처음 한달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너무 바쁘다가 갑자기 실업자가 되니 공황상태가 되더군요. 산에도 가고 절도 다니며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그동안 일에 대한 철학이 없어 일을 즐기기보다 일에 집착해서 그런가봐요. 그러다 김연아 선수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인터뷰를 하는데 '상대 선수 컨디션이 좋다던데 어떠냐'고 묻자 '난 상대편과 싸우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4분 동안의 연기 시간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왔다'고 당당히 말하더군요. 무슨 일을 하건 집착하기보다 즐겨야죠. 스무살인 연아보다 환갑 넘은 제가 더 철학이 없는 것 같아 인생 공부를 새로 합니다. " -그래도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보람도 컸죠. " 그럼요.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대표단 단장격으로 선수단을 뒷바라지해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긴장감, 짜릿함,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제가 선수때나 교사때도 금메달을 딴 적이 없는데 이번엔 헹가래도 받아보고…. 또 WBC에서 우승은 못했지만 결승에 진출했고 어린이 야구단이나 야구동호회도 늘어났고 프로야구 관객도 500만명을 돌파했으니까요. 제 묘비명에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야구대표팀 단장'이라고 써달라고 했어요. " -만약 사무총장을 연임했다면 뭘 꼭 더 하고 싶은가요. "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할 일은 너무 많지만 무엇보다 야구장 시설을 현대화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제가 총장에 취임할 땐 새 돔구장을 신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일하면서 보니 새시설을 짓기보다 현재의 야구장을 깨끗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게 시급해요. 아무리 야구시합이 재미있어도 악취나는 화장실이나 곳곳이 위험한 야구장에서 어떻게 야구를 즐기겠습니까. 또 요즘 프로야구 노조가 결성된다는데 제가 협회측과 선수측의 중재를 맡으면 갈등 요인도 줄어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합니다만 새 집행부가 잘 하겠죠. " -지금은 한국야구계의 대부이고 명사인데 학창시절엔 그렇게 문제아였다면서요. " 제가 외아들인데 아버지는 나중에 장군이 된 군인이셨고 어머니도 사업을 크게 해서 유복하게 자랐어요. 그러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어머니는 외국가시고 아버지는 지방부대에 근무해 가족과 떨어져 거의 혼자 지내면서 방황하고 환경에 대한 분노도 커서 불량서클도 가입하고 싸움도 많이 했죠. 오죽하면 제가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는데도 어머니가 교장선생님을 찾아와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며 촌지를 드리고 가셨겠어요. 학생때 말썽을 부리면 봉투들고 학교 찾아오던 습관 때문이죠.(웃음) " -그런 문제아가 선생님이 된건 좀 뻔뻔한(?) 일이 아닌지요. " 공부 잘하고 순종적인 모범생보다 저같은 문제아 출신의 선생이 학생들에게 교육상 효과적이죠. 이 선생님도 노력해서 이렇게 됐으니 너희들도 마음먹으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희망을 주니까요. 선생님 말이라면 잘 들어주고 존경해주는 순박한 학생들과 지낸 5년동안 제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고 아이들에게 알기 쉽고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연습을 한 것이 야구해설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야구해설은 어떻게 시작한 겁니까. " 오관영 선배님 덕분이죠. 그분은 환일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시면서 배구 해설도 하셨는데요. 당시에 TBC라는 동양방송의 김재길 체육부장님이 야구가 프로화가 된다는 전제하에 대비해서 앞으로 5년 동안 해설자를 좀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오관영 선배가 저를 추천하셨어요. 그 때 조건이 싸움 잘하고, 여자 사랑할 줄 알고, 술 잘 먹는 선수 출신을 찾아서 제가 발탁된 거라더군요. 저는 환일고에서 근무하며 일본유학을 준비중이었어요. 일본 유학 다녀와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야구해설을 맡아 교사직도 교수꿈도 포기했죠. " -처음부터 해설을 잘 했나요. " 웬걸요. 거의 말도 못하고 버벅거려 잘릴 뻔했어요. 1979년 청룡기 경기로 제가 첫 해설을 시작했죠. 그 당시 저와 처음 같이 하셨던 아나운서 분이 박종세·유수호·이장호 아나운서 세 분이셨어요. 기라성같은 아나운서 옆에 있으니 입이 안열려요. 해설자가 말을 해야 해설자 아닙니까? 긴장을 해서 너무 말을 안하니까 PD가 컵에다가 술을 따라 왔어요. 술이라도 마시고 진정하고 말 좀 하라고요. 그런데 긴장이 풀리는 게 아니라 술까지 취해서 그냥 " 네, 네, 네 " 란 말만 했어요. 완전 방송사고 수준이죠. 그후에도 계속 나아지지 않아 동양방송 간부회의에서 하일성은 해설자로서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내리자고 했는데, 그 때 김재길·박종세 두 선배님이 진짜 사표를 걸고 저를 옹호했어요. 6개월 만 기다려보자면서요. " -그후에 어떻게 살아남으셨나요. " 공부했죠. 똑같은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설명했는데, 우리 선배님들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하는 식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정말 피나게 공부를 했죠. 그랬더니 정말 달라지더라고요. 야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 -한국 최고의 야구해설가, 국민해설가로 인정받은 비결은 뭔가요. " 전 해설은 대화라고 생각해요. 한번도 해설을 위한 해설은 안했어요. 보통사람들이 맥주집이나 회사 근처 식당에서 '어제 야구시합 봤어?'라고 떠들 때의 수준으로 편하고 쉽게 선수나 시청자들과 이야기하듯 한 게 친근감을 준 것 같습니다. 또 권위의식을 버렸어요. 모르면 뭐든 물어봤죠. 해설하다가 이해 안가는 룰이 있으면 심판에게 찾아가 물어보고, 선수들에게도 '그때 왜 그런 플레이를 했냐?' '뭐가 힘드냐' 등을 물어봤어요. 어린 선수들과 더그아웃에서 장난치듯 물어본 것들이 다 자양분이 되더군요. " -'예상해설'의 선구자이기도 한데요. "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빨간 장갑의 마술사라고 하는 김동엽 선배님이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그분이 '우리가 여지껏 했던 해설은 어떤 상황을 쫓아가는 해설이다. 너는 그러지 마라. 해설에 승부를 걸어라. 네가 정확하게 예상이 되면 과감하게 말해라'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전에는 예측해설보다는 벌어진 상황에 대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를 많이 설명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저는 김동엽 선배님의 조언을 듣고서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쪽으로 바꿨죠. 워낙 기라성같은 선배님들이 해설을 하고 계시니까 그분들과 경쟁해서 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도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에서 패턴을 바꿨는데 호응을 얻었습니다. " -예상이 빗나갈 때도 있잖습니까. " 당연하죠. 전엔 예상이 빗나가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거나 왜 그런 예상을 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말을 많이 했어요. 이젠 제가 잘못 판단한 거라고 사과를 해요. " -KBS TV < 아침마당 > 은 물론 각종 프로그램의 인기 초대손님인데 일상 대화도 맛깔스럽게 하는 비법이 궁금합니다. " 우선 누구와 만나도 제가 편안한 마음을 가져서 그럴 겁니다. 무엇보다 진솔한 것이 제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감정 표현을 잘 감추지 못하고 저나 가족이 부끄러운 이야기도 솔직하게 말하거든요. 뭐 방송에 이미 소개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딸들이 호주에서 유학할 때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았어요. 방송에 나가 '내 자식이 아니면 담배 피우지 말라고 야단칠 텐데 막상 내 자식에겐 뭐라 할말이 없더라. 이젠 자식에게 질 때다. 지더라도 멋지게 지는 법을 배워야할 것 같아서 공공장소에서는 피우지 말라고 했다'라고 했죠.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방송에 출연하는 이들을 보면 다 도덕적인 성인군자이고 절대 죄라고는 안짓는 천사들뿐인데 저는 실수담이며 남부끄러운 이야기도 털어놓으니 재미있나봅니다. " -한국 주먹을 상징하는 김태촌씨부터 한국의 석학이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도 친분이 두터운데요. " 인간관계 폭이 넓긴 합니다. 김태촌씨 아들이 장가갈 땐 그 사람이 옥중에 있어 제가 혼주 역할도 했죠. 사람들은 누구나 배울 게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면 그분들도 마음을 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다보면 다양한 삶을 관찰할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주니 좋죠. 제 취미가 독서와 술입니다. 환할 땐 책보고 깜깜해지면 술 마셔요. 매일 술만 마시다 보니 60평생 < 맘마미아 > 같은 유명한 뮤지컬은 물론 연극 한편 보러간 적ㅔ이 없어요. 남들이 다 즐기는 문화생활을 제대로 못해본 게 후회스럽습니다. " -그렇게 술드시다 결국 죽을 고비도 넘기셨잖아요. 주변에서 술많이 드신다고 걱정하면 '내 간은 심심산골 주지의 간보다 깨끗하다'고 자랑하시더니…. " 간은 아직도 말짱해요(웃음). 어느날 방송중에 가슴 통증이 너무 심해 곧바로 병원에 갔다가 여섯시간에 걸쳐 심근경색 수술을 받았죠. 그 후에도 위의 종양절제술, 담낭제거술, 연골수술, 손목수술 등을 몇년 사이에 받았어요. 심장수술받고는 술과 담배를 끊고 조신하게 살았는데 다시 위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고 조직세포 검사하느라 1주일을 기다리는데 그때가 가장 무섭고 고통에 시달렸어요. 결국 양성으로 밝혀졌는데 그게 악성이라고 판정났으면 인생이 달라졌죠. 글자 하나 차이에 생과 사가 오가듯 어찌 보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술, 담배는 적당히 즐겨요. 제가 월드컵때는 토론프로에 흡연자 대표로 나갔다가 심장수술을 한 후엔 금연자대표로 나갔는데 KBO 사무총장하면서 다시 담배를 피웁니다. 인간이 이렇게 간사한 거에요. " -다섯번이나 수술을 한 분이 야구때문에 다시 담배를 피우셨군요. 그렇게 평생을 매달린 야구의 매력이 뭡니까. " 야구가 우리 인생과 가장 닮았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마다 다 특징이 있지만 야구는 테니스나 농구처럼 공으로 하면서도 공에 승패가 달려있지 않고 사람이 하는 운동이라 매력적이에요. 또 선수가 공을 쳐서 1루, 2루,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죠. 감독의 지시, 동료들의 투혼 등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오면서 삶의 지난함을 체험합니다. 또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까 기다려야 하는 등 기다림의 미학도 배울 수 있고 다 죽어있던 팀들이 펄펄 살아나 대역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야구만의 매력입니다. 야구만큼 철학적이고 드라마틱한 운동도 드물죠. 반항아에 말썽꾼이던 소년에게 야구가 멋진 인생을 선물한 것에 감사해 제 여생도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 ▲하일성은 누구인가 고교 체육교사로 사회생활…79년 TBC서 해설위원 입문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고·경희대학교 체육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포 양곡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 당시 제자와 결혼해 두딸을 두었다. 1979년부터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위원으로 방송계에 입문, 1982년 한국방송 스포츠국에 야구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각종 방송프로그램 출연은 물론 이장호 감독의 < 공포의 외인구단 > (1998년),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 (1998년) 등 야구영화에도 특별출연했다. < 하일성 없이도 프로야구를 10배 재미있게 즐기는 책 > < 하일성의 나는 밥보다 야구가 좋다 > < 인생은 1%의 싸움이다 > 등의 책도 펴냈다. 어느 일도 5분 만 설명하면 남들에게 50분 동안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순발력과 재담이 뛰어나다. 최근에야 돈에 눈떠 부자가 되어 야구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결심을 했단다.
  • (VOD)`발`로 그린 그림 "끝내주네"
  • [이데일리 김수미기자] 우리는 흔히 글씨를 잘 못 쓰는 사람에게 ‘발로 쓴 글씨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필리핀에는 발과 입으로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여는 화가가 있어 화젭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 &nbsp;조비 사수토나 씨는 화갑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처럼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사수토나 씨는 17살 때 교통사고로 척추가 마비되면서 손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그 이후 입으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고, 화려한 색채는 얼마나 그가 기술적인 대가인지 보여줍니다. (인터뷰) 조비 사수토나 / 입으로 그림 그리는 화가 “그림은 저의 무너진 꿈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직 신체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그림을 그릴 때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사수토나 씨처럼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지만, 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잔 세계 74개국 72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구족미술협회 회원들입니다. 필리핀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제한적인 곳이지만 드물게도 이 화가들은 매달 천8백 달러의 지원을 받습니다. 지원금으로 집도 사고, 두 딸을 대학에 보낸 사람도 있습니다. (인터뷰) 아만도 둘누안/ 발로 그림 그리는 화가 "제 상태를 감안해봤을 때, 이 직업이 제일 쉬운 것 같습니다. 붓은 사용하기에 가벼운 편입니다. 상상력과 이 발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이들은 무엇보다 장애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과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이 뿌듯합니다. 특히 존 페루엘로 씨는 그림을 시작하고 나서 부인과의 관계가 더 좋아졌습니다. (인터뷰)존 페루엘로/ 입으로 그림 그리는 화가 “이것이 저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이유입니다.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얼마든지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이것에 제 철학입니다.” 협회는 회원들의 작품들을 인사 카드나 달력 그림으로 판매해 수익을 거둡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들을 위한 시장이 언젠가는 더 커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월드 리포틉니다.
2009.08.07 I 김수미 기자
동방신기 3인, "부당한 전속계약이 갈등원인" 공식입장 전문
  • 동방신기 3인, "부당한 전속계약이 갈등원인" 공식입장 전문
  • ▲ 동방신기[이데일리 SPN 장서윤기자] 소속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동방신기 멤버 3명이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전속계약의 부당성"이라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동방신기 멤버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3일 오전 각 언론사로 보도자료를 배포, "화장품 사업 투자는 연예활동과는 무관한 재무적 투자로 이번 가처분 신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멤버들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간의 부당한 전속계약 관계가 본질적 원인"이라고 전했다. 앞서, 시아준수(본명 김준수, 22) 믹키유천(본명 박유천, 23) 영웅재중(김재중, 23) 등 3명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한편, 이들 세 멤버는 이번 보도자료 이외에 별도의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는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동방신기 멤버 3명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밝힌 보도자료 전문. &nbsp;가수 동방신기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의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입장1. 데뷔 후 5년간 세 멤버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수립하여 진행한 일정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쳤습니다. 김준수, 김재중, 박유천은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로 2004년 초 데뷔 이후 지금까지 SM의 지시에 따라 한국,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1년에 일주일을 제외하고 하루 3-4시간 정도의 수면 시간 밖에 가지지 못하고 스케줄을 소화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은 건강은 크게 악화되고 정신적 피로감 역시 극에 달하였으나, SM은 동방신기의 해외 진출을 시도하면서 갈수록 더욱 무리한 활동 계획을 일방적으로 수립하였습니다. 결국 위 세 사람은 더 이상 SM에서는 아티스트로서의 꿈을 이루기보다는 회사의 수익 창출을 위한 도구로 소모되고 말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각자의 비전에 따른 연예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2. 13년이라는 전속 계약 기간은 사실상 종신 계약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전속 계약에 의하면, 계약 기간이 무려 13년에 이르고 군 복무 기간을 포함할 경우 15년 이상으로 아직까지도 10년 가까운 시간이 남아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할 때까지를 의미하였고, 전속 계약을 해제할 경우 총 투자금의 3배, 일실 수익의 2배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부담하는데다 합의로 계약을 해제할 경우에도 위약금을 물어야 하도록 되어 있어,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는 위약금 조항으로 계약 해제도 사실상 불가능하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SM에 속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 멤버들은 SM으로부터 노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멤버들이 계약 기간 동안 SM으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계약금이 없음은 물론, 전속 계약상 음반 수익의 분배 조항을 보면, 최초 계약에서는 단일 앨범이 50만장 이상 판매될 경우에만 그 다음 앨범 발매시 멤버 1인당 1,0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50만장 이하로 판매될 경우 단 한 푼도 수익을 배분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조항은 2009. 2. 6. 에 이르러서야 개정되었는데, 개정 후에도 멤버들이 앨범 판매로 분배받는 수익금은 앨범판매량에 따라 1인당 0.4%~1%에 불과합니다. 4. 멤버들은 부당한 계약의 시정을 수 차례 요구하였으나, SM은 멤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 사람은 SM에 전속 계약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전속 계약의 효력에서 벗어나 각자의 비전에 따른 활동을 하게 해 줄 것을 수 차례 요청하였으나, SM은 이번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화장품 사업 투자를 거론하며 본질을 흐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최대한 원만히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최종적으로 양측이 만나 대화를 통해 가장 원만한 사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협의의 장을 마련하여 줄 것까지 요청하였으나 SM은 이조차 응하지 아니한바, 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SM이 보여준 태도는 더 이상 대화를 통한 해결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기에 결국 세 사람은 법원에 이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 화장품 사업 투자는 연예활동과는 무관한 재무적 투자로서 이번 가처분 신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이 사건의 본질은 전속 계약의 부당성입니다. 한편 SM에서는 멤버들이 화장품 사업 투자로 인해 이번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였지만, 멤버들이 화장품 사업에 투자한 것은 이번 가처분 신청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SM이 거론하는 화장품 사업은 중국에 진출하는 화장품 판매 회사에 세 사람이 주주로 투자한 건으로, 연예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재무적 투자일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중국에 진출하려고 하는 화장품 회사에 1억 원 정도의 금액을 투자한 것 때문에 그 동안 동방신기로서 일군 모든 성과를 포기하여야 할 수도 있는 이번 일을 감행하였다는 것은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멤버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전속 계약의 부당성이며, SM은 계약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화장품 사업을 거론하여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를 즉시 중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6. 멤버들은 결코 동방신기의 해체를 원하지 않으며 부당한 계약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뿐입니다. 많은 팬 여러분께서 이번 가처분 신청으로 동방신기의 해체를 우려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가처분 신청은 절대로 동방신기의 해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비록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세 사람만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지만, 멤버들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언제까지나 하나이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멤버들의 마음은 모두가 한결같습니다. 이번 일로 계약의 부당성이 시정되고 마음껏 우리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모두가 하나되어 팬 여러분들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용기를 내게 된 것입니다. 7. 더욱 성숙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동방신기를 아껴주시는 팬들께는 세 사람의 이번 가처분 신청으로 크게 놀라고 실망하셨을 수 있어 안타깝고 죄송스럽지만, 더 큰 꿈을 위한 도약으로 생각하고 응원해주신다면 더 멋지고 성숙한 모습으로 성원에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09. 8. 3. 가수 동방신기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 관련기사 ◀☞동방신기 재중·유천·준수, "별도 기자회견 계획없어"☞동방신기 3인 "계약기간 13년, 사실상 종신계약" 입장표명☞SM 급락...'동방신기 어쩌나'☞[윤PD의 연예시대②]동방신기·유진박 사건, 그들은 이미 알았다?☞[윤PD의 연예시대①]H.O.T에 동방신기까지···'대한민국 아이돌 잔혹사'
2009.08.03 I 장서윤 기자
문희준 사촌동생 ''쎄미'', 세미 트로트로 가수 전격 데뷔
  • 문희준 사촌동생 ''쎄미'', 세미 트로트로 가수 전격 데뷔
  • ▲ 쎄미[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가수 문희준의 이종사촌 동생이 가수로 전격 데뷔한다. 올해 23세의 쎄미(본명 이승진)가 그 주인공이다. 3일 소속사 TI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쎄미는 오는 10일 퓨전 세미 트로트 ‘내 남자니까’의 음원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TI엔터테인먼트 측은 “문희준의 어머니가 쎄미의 막내 이모”라고 설명했다. 쎄미는 소속사를 통해 “어려서부터 가족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했던 (문)희준 오빠의 노래와 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워왔다”며 “오빠와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함께 비디오 게임도 하는 등 절친한 사이”라고 밝혔다. 쎄미는 또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조심스럽게 가수 데뷔 사실을 털어놓았다. 오빠가 정말 좋아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해줘 큰 힘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쎄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수를 꿈꾸며 꾸준히 트레이닝을 해왔다. 드럼, 기타, 건반 등 악기 연주는 물론이고 작곡과 랩 메이킹에도 능하다고 소속사 측은 전했다. 뿐만 아니라 5인조 댄스 그룹의 메인보컬로 연습생 시절도 보냈다. 미사리와 수원 등지의 라이브 카페 무대에서 실력을 닦던 중 트로트의 매력에 빠져 트로트 솔로 가수 전격 데뷔를 결정했다고 소속사 측은 설명했다.
2009.08.03 I 김은구 기자
LG이노텍 사장 "글로벌업체 도약 준비 끝났다"
  • LG이노텍 사장 "글로벌업체 도약 준비 끝났다"
  • [이데일리 류의성기자] "IT부품업체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꿈의 숫자는 매출 10조원과 영업이익률 10% 입니다. LG이노텍은 2015년께 7~8부 능선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LG마이크론과의 통합을 마무리한 허영호 LG이노텍(011070) 사장(사진)이&nbsp;일본 기업과 어깨를 겨룰 글로벌 부품기업으로 도약할 채비를 마쳤다고 강조했다.허영호 사장은 지난 29일 저녁 간담회를 통해&nbsp;"부품사업으로 성공한 회사들을 보면 어느 단계에선 외형 확대가 이뤄졌다"며 "복싱을 하더라도 어느정도 몸집과 맷집이 있어야 되는거 아니냐"고 말했다.허 사장은 "회사 외형이 2조~3조 정도는 되어야 글로벌업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임계치`라 본다"며 LG마이크론과 통합 의미를 부여했다.&nbsp;◇LED BLU사업 역량 집중LG이노텍은 오는 2012년까지 디지털 튜너, 소형모터, 테이프 서브스트레이트 (Tape Substrate), 포토마스크, LED용 BLU 등 5개 부문에서 세계 1위를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이 가운데 튜너와 테이프 서브스트레이트, 포토마스크 부문에서는 톱 수준에 근접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LG이노텍은 무엇보다 LED용 BLU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목표다.허 사장은 "노트북용이나 모니터용 LED BLU의 기반은 꽤 잘 갖췄다고 자부한다"며 "현재는 LED TV용 BLU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투자 규모나 계획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다만 내년까지 광주공장에 1500억원 투자하겠다는 기존 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외 경쟁사들도 LED사업을 가속화하고 있으니 우리도 대비하고 있다"며 향후 대규모 투자의 뜻을 내비쳤다.◇향후 추가 투자 시사.."결정된 것은 없어"그러나 유상증자 등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박희창 LG이노텍 CFO는 "재무구조를 개선시키면서 자금도 조달해야한다. LED 시장이 계속 변하고 있어 투자해야할 규모도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연내 유상증자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며 "현 상황에서는 무리없이 2000억~3000억원은 조달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허 사장은 "부품사업은 `先투자 後회수`가 돼야한다. 한국 부품사업이 일본 등에 뒤쳐진 것이 이런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며 "투자를 미루다보면 자꾸 뒤쳐지게 된다"고 강조했다.LG이노텍은 LED BLU 사업 비중을 차차 높여 매출 비중을 2분기 6%선에서 4분기에는 10%선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다.LED BLU사업에서 현재 적자가 나고 있어도 미래를 위한 투자가 필요한 만큼 길게보고 대비하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외에도 외판 비율 비중을 높여 해외 전략적 고객선을 3군데 이상 확보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LG그룹의 LED사업에 대해 허 사장은 "그룹 차원에서 LED TV는 LG전자, 패널은 LG디스플레이, LED 칩 패키징은 LG이노텍이 한다"며 "다만 가격 경쟁이나 리스크 등을 고려하면 누구든지 1곳 기업에서 다 조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일부 물량을 외부에서 조달한다고 해서 이걸 확대 해석하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LED조명사업 진출 여부에 대해선 "LED조명 사업을 전혀 안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특화해서 잘 할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미래 성장 동력 확보 박차LG이노텍은 현재 향후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박막 솔라셀 프로젝트 ▲ 차량 모터관련부품 ▲ 반도체 관련 주변 부품 ▲소재가공쪽 ACF(Anisotrofic Conductive Film)에 R&D를 진행하고 있다.ACF의 경우 LS엠트론의 사업부를 인수해 LCD 장비부품 역량 확대에 나서고 있다.경기 회복과 한국 기업 경쟁력에 대해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달러 기준으로 보면 매출이 크게 늘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율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또 "환율은 1200원 중반대에서 움직이면 한국업체들이 경쟁력을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디스플레이나 휴대폰, TV는 세계 경기 침체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걸 가지고 침체가 끝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허 사장은 "위기탈출이라고 하기엔 불확실요소가 많다. 우선 미국 소비와 중국 공장 가동률이 회복되면서 긍정적인 사인이 나와야 경기회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그는 "부품업체에게는 꿈의 숫자가 있다. 매출 면에서 1조가 첫번째 단계다. 이를 달성하면 3조 규모에 올라서서 덩치를 키워한다"고 말했다.이어 "가장 이상적인 꿈의 숫자는 매출 10조와 영업이익률 10%로 오는 2015년께 이에 근접할 수 있도록 임직원들과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간담회를 마쳤다.▶ 관련기사 ◀☞LG이노텍, `밸류에이션 부담+주가희석 우려`-메리츠☞LG이노텍 "새도우마스크 등 구조조정 계획"-IR☞LG이노텍 "2015년 매출 8조, 영업이익률 10% 달성"
2009.07.30 I 류의성 기자
'연기도전' 유노윤호, 대본 '삼매경'…韓日오가며 '구슬땀'
  • '연기도전' 유노윤호, 대본 '삼매경'…韓日오가며 '구슬땀'
  • ▲ 동방신기 리더 유노윤호[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그룹 동방신기 리더 유노윤호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첫 연기자 도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유노윤호는 오는 9월9일 첫 방송될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의 주인공 차봉군 역에 캐스팅됐다. 2004년 동방신기로 데뷔한 후 연기 도전은 이번이 처음. 유노윤호에게는 이번 작품이 가수에서 연기자로 보폭을 &#45335;힐 수 있는 분수령이 될 수 있는 만큼 드라마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27일 소속사 관계자에 따르면 유노윤호는 소속사 내 연기 담당 선생님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며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동방신기 일본 스케줄이 겹쳐 연기 연습에만 전념할 수없지만 손에서 대본을 놓지않으며 캐릭터 분석에 여념이 없다. 유노윤호 측은 "유노윤호가 감독과 작가와 자주 전화를 하며 캐릭터 상의를 하고 있다"며 "운동선수 역인 몸 만들기에도 땀을 흘리고 있는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유노윤호는 제작진과의 개인 대본 리딩은 이미 몇차례 진행했고 전체 대본 리딩은 지난주 처음 마쳤다. 박성수 PD는 유노윤호와 대본 리딩 후 "가능성 있어 보인다. 일취월장해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맨땅에 해딩'은 가진 것 없지만 가슴이 뜨거운 축구선수 차봉군이 이뤄내는 기적 같은 성공스토리를 통해 삼류 인생의 인간승리와 휴머니즘을 그려낼 드라마. 유노윤호가 맡은 차봉군 역은&nbsp;보잘 것 없고 불운한 삶을 사는 축구선수로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승리는 물론 국가대표라는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한편, 유노윤호의 첫 연기 도전은 한국은 물론 동방신기의 아시아 팬들에게도 폭발적인 관심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2009.07.28 I 양승준 기자
이순재 ''어르신의 쓴소리에는 경계가 없다''
  • 이순재 ''어르신의 쓴소리에는 경계가 없다''
  • ▲ 이순재[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이순재가 최근 연예계 어른으로서 각 분야마다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순재는 오는 30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업'(UP)에서 주인공인 78세의 노인 칼 프레드릭 역의 더빙을 맡았다. 이순재는 이번 달 초 ‘업’의 언론시사회에서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이상한 만화만 보게 된다"며 “요즘 TV에서 하는 만화영화는 아주 살벌하고 전투적이고 강렬한 만화만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순재는 “과거의 만화들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만화들이 많았다”며 “환상적이고 꿈을 주어야 할 만화들이 많이 변질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순재는 영화 촬영 현장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이순재는 최근 ‘굿모닝 프레지던트’ 공개촬영현장에서 “몇 년 전에 영화를 촬영하는데 필름을 낭비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그때 필름을 함부로 쓰는 것을 보고 ‘요즘은 필름값이 싸졌냐’고 나무랐다”고 밝혔다. 이순재는 당시 그런 촬영 현장을 보고 한국영화가 힘들어질 것을 예감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순재가 마지막으로 영화를 촬영한 2006년 이후 한국영화 제작현장의 거품론이 대두됐다. 이순재는 지난 3월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연기자 최초로 헌정되었을 때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연기자의 기본적 자질이 확립돼서 어느 정도의 기초 훈련이 된 사람들을 선발하는 게 아니다”며 “외모를 보고 뽑는 경우들이 많다”고 최근 연예계 신인 선발풍토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또한 이순재는 소위 막장드라마 논란에 대해서도 “시청률 지상주의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아쉬움이 있다”며 “얼마든지 작품의 품격을 유지해 가면서도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요즘은 시청률 만능 시대가 되다 보니까 방송국들이 그런 방향으로 자꾸 유도를 하는데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고 각 방송사에 직격탄을 날렸다. 1934년생인 이순재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극배우로 시작, 1956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데뷔 이후 지난 40여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자로 명성을 쌓아왔다.
2009.07.27 I 김용운 기자
박지성, 맨유 사커 스쿨 통해 일일교사로 나서
  • 박지성, 맨유 사커 스쿨 통해 일일교사로 나서
  • ▲ 박지성 [사진=한대욱 기자][이데일리 SPN 김영환기자] '오늘은 선생님입니다'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맨유 사커 스쿨(ManU Soccer School)이 개최한 일일 축구 교실에서 축구 꿈나무를 직접 지도하는 일일교사로 변신했다. 박지성은 23일 오후 4시 30분부터 서울 중구에 위치한 청구초등학교에서 파트리스 에브라, 페데리코 마체다, 조란 토시치 등 맨유 동료들과 함께 청소년 축구 선수 36명을 지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5:5축구대회인 '나이키5'의 지역별 상위팀 선수들로 구성된 36명의 꿈나무들은 오후 3시부터 맨유 사커 스쿨 코치들과 가볍게 몸을 풀다 뒤이어 합류한 박지성 등과 함께 30분여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박지성을 비롯, 4명의 선수들은 각각 패스, 드리블, 전술 훈련으로 나누어진 운동장을 돌아가며 선수들에게 기술을 전수했다.&nbsp;박지성은 "참여한 선수들이 분명히 다른 목표가 생겼을 것이다. 나중에 이런 일들을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다"라고 꿈나무들과 함께 땀을 흘린 소감을 밝혔고, 에브라도 "오늘의 기회는 소중하다. 어린 선수들이 자라나서 차세대 박지성이 될 수 있다. 행복하게 연습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축구교실에 참가한 즐거움을 전했다.
2009.07.23 I 김영환 기자
이파니, "학비 못내 ''왕따''...항상 쓰레기였다"
  • 이파니, "학비 못내 ''왕따''...항상 쓰레기였다"
  • ▲ 모델 출신 가수 이파니[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난 항상 쓰레기였다." 모델 출신 가수 이파니가 학창시절 '왕따'에 얽힌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방송에서 털어놨다. 이파니는 최근 케이블채널 tvN 'E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공개했다. 이파니가 돈 때문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집이 없어 교회에서 자기도 하는 등신문배달, 우유배달 등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는 것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사실. 이파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학교의 끈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며 "하지만 학비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선생님은 돈을 안 냈으니까 뒤에 가서 청소나 하라며 구박해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지난 일을 씁쓸히 떠올렸다. 이어 “영화 보면 '선생님 학비가 없습니다' 이러면 '그러냐 그럼 내가 어떻게 도와줄게' 그런 거 있지않느냐. 그런데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파니는 또 "선생님이 구박하는 애들은 왕따가 된다”며 집단 따돌림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밥에 모래가 뿌려져 있고, 화장실에 가면 물 뿌리고 대걸레 던지고, 꿈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며 "진짜 난 바닥에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고 가슴아픈 속내를 털어놨다. 이파니는 스무살, 우연한 기회에 참가하게 된 플레이보이 모델 선발대회에서 당당히 꿈을 이루게 된다. 이후 그녀는 국내 최초의 플레이보이 모델로 거듭났다. 이파니는 “항상 나는 쓰레기였고 아무것도 아닌 그런 존재였는데 빵 하고 뭔가 터진 기분이었다"며 "나도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게 처음이었다"고 당시를 흐뭇하게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 앞에 놓인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누드화보'로 구설수에 오른 것. 이파니는 “저한테 분명히 이 화보는 그냥 섹시화보다.옷은 다 입고 찍을 거라고 말했는데 현장 가니까 그게 아니었다"며 "죽으려고도 해봤다"고 속상해했다. 이어 “제멋대로 살고 있는데, 제가 가수하고 싶어서 가수하고 있고 내가 연기 하고 싶어서 연기했고 내가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했고 내가 이혼하고 싶어서 이혼했고 내가 이런 걸 다 하고 있는데 누가 어떻게 봐주길 어떻게 원해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밖에 이파니는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의혹을 비롯 '격투황제' 표도르와의 염문설, 가슴성형 등 자신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 관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방송은 21일 오후 9시.
2009.07.21 I 양승준 기자
바비킴, 데뷔 16년 만에 전국투어 성황리 마무리 '눈물'
  • 바비킴, 데뷔 16년 만에 전국투어 성황리 마무리 '눈물'
  • ▲ 가수 바비킴[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솔의 대부' 바비킴이 전국 투어 공연을 끝낸 뒷풀이 장소에서 눈물을 훔쳐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눈길을 끈다. 바비킴은 지난 18일 제주 한라 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을 끝으로 데뷔 16년 만의 첫 전국투어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1일 소속사 관계자에 따르면 바비킴은 이날 공연을 끝낸 뒷풀이 장소에서 "투어 공연을 하면서 전국에 많은 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좋은 음악으로 팬들에게 보답하겠다. 대장정의 공연을 끝내고 나니 팬들의 성원에 눈물이 난다"며 공연을 함께한 스태프들과 팬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바비킴은 12개도시 31회 공연의 전국 투어에서 4만 관객을 동원하며 공연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바비킴은 이번 전국 투어 공연을 통해 자신의 데뷔 과정과 험난했던 음악 인생을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팬층을 더욱 두텁게 했다. 특히 '타짜' '패션 70' '쩐의 전쟁' '하얀거탑'의 O.S.T 음악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노래와 자신의 히트곡을 선보였고 특유의 보컬로 관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아냈다. 투어 공연중에는 트럼펫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던 바비킴의 아버지 김영근씨가 무대에 직접 나와 '고래의 꿈'을 아들과 협연하는 인상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전국 투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비킴은 오는 연말께 자신의 정규음반을 발표할 예정이다.
2009.07.21 I 양승준 기자
2PM에 궁금한 열 가지···'최고의 짐승 아이돌은?'
  • [아듀 인터뷰②]2PM에 궁금한 열 가지···'최고의 짐승 아이돌은?'
  • ▲ 리더 재범(사진=한대욱기자)[이데일리 SPN 박미애기자]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2PM은 다른 아이돌그룹과 달리 강한 남자의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이들이 '짐승 아이돌'로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멤버 중 '짐승 아이돌'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멤버들은 누구일까. 또 2PM 멤버들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며 이들의 이상형 및 롤모델은 누구일까. 2PM에 궁금한 열 가지를 다음과 같이 물었다. Q1.태몽은? ▲외할머니께서 꾸셨는데 험한 산을 오르던 중&nbsp;나무에서 감을 발견하고 한가득 따셨다고 해요.(준수) ▲어머니는 큰 황소가 나오는 꿈을 꾸셨고, 아버지는 바다를 항해하다 무지개 사이를 지나는 꿈을 꾸셨대요. 무지개가 일곱 빛깔이니까 멤버수가 일곱 명인 2PM과 연관 있는 꿈이 아니었을까요?(준호) ▲태몽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꾸셨는데 꿈에 나온 물건들이 하나같이 다 컸대요.(찬성)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데 크기가 거대했대요.(우영) ※태몽에 관한 물음에 멤버들은 당황해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멤버들은 '태몽'의 의미를 몰라 답답해 했고,&nbsp;들은 바가 없다는 멤버들은 '엄마한테 물어봐도 되요?'라며 인터뷰 중간 집에 전화까지 걸어&nbsp;확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준수(사진=한대욱기자)Q2.별명은? ▲'바가지 머리' 때문에 딸기(캐릭터)라는 별명이 있었고 행사 및 공연 때 애드리브를 곧잘 한다고 해서 '준드립'으로도 불려요.&nbsp;또, 팬들이 사복 입은 모습이 보기&nbsp;좋다며 '사복간지'라는 별명도 붙여줬죠.(준수) ▲제가 용띠거든요, 근데 어렸을 때 많이 통통해서 아버지께서 돼지용이라고 부르셨어요.(닉쿤) ▲성이 옥씨라고 옥수수라고 불렸어요.(택연) ▲이름이랑 통통한 볼살 때문에 별명이 우동이에요.(우영) ▲축구를 잘한다고 날쌘돌이, 파이팅이 넘친다고(?) 파이터라고 불렸어요.(준호) ▲이름 때문에 황가, 황사 등으로 불렸고 늙은 막내라는 별명도 있어요.(찬성) Q3.가수가 된 계기는? ▲어머니께서 오디션에 참가하라고 해서 나갔다가 합격했어요.(재범) ▲스티비 원더의 라이브 영상을 본 것이 계기가 됐어요.(준수)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JYP엔터테인먼트 캐스팅 팀을 만난 것이 계기였어요. 그 덕에 오디션도 보고 JYP엔터테인먼트에도 들어왔죠.(닉쿤) ▲미주 오디션에 참가,&nbsp;JYP엔터테인먼트에&nbsp;들어왔어요.(택연) ▲고1 때 연극을 배우면서 춤과 노래가 좋아졌어요.(준호) ▲슈퍼스타서바이벌을 통해 연기자로 JYP엔터테인먼트에 들어왔는데 춤과 노래 레슨을 받으며 가수라는 직업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찬성) ▲ 닉쿤(사진=한대욱기자)Q4.지금의 자신을 평가한다면 '10점 만점에 몇 점'? ▲6점. 아직 무대에서 많이 부족해요.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6점을 주고 싶어요.(재범) ▲3점. 자기 관리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준수) ▲7.9점. 방송을 많이 하지만 말이 없고 많이 부족해요.(닉쿤) ▲0점. 아직 더,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택연) ▲1점. 앞으로 점점 점수를&nbsp;높여 갈래요.(우영) ▲5점. 이유는 글쎄요.(준호) ▲5점. 그냥요.(찬성) Q5.가장 '짐승 아이돌' 이미지가 강한 멤버는? ▲택연, 찬성, 그리고 나. 많이 먹고 표정 관리가 잘 안될 만큼 감정에 솔직해요. 준수랑 우영이는 그 반대예요.(재범) ▲택연, 찬성. 아무거나 잘 먹고 가끔씩 절 물기도 해요. 그럴 땐 진짜 짐승 같아요.(준수) ▲택연. 매일&nbsp;기괴한 소리를 내고 이상한 표정을 지어요.(닉쿤) ▲'짐승 아이돌'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건 나. 그 반대는 닉쿤? 천사얼굴을 하고 있잖아요.(택연) ▲택연. 무서워요.(우영) ▲그다지 짐승 같은 멤버는 없어요. 제 생각에는 모두 온순한 것 같은데요.(준호) ▲(옥)택연이 형이요.(찬성) ▲ 택연(사진=한대욱기자)Q6.멤버들 외에 친한 연예인은? ▲붐. '떴다 그녀'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재범) ▲빅뱅의 지드래곤과 태양, 유건, VJ홍규. 지드래곤과 태양은 연습생 시절 YG엔터테인먼트에 갔다가 알게 돼 친해졌고 유건은 같은 대구 출신이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VJ홍규는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준수) ▲붐. 방송을 같이 많이 하면서 친해지게 됐어요. 그리고 이것저것 잘 챙겨주세요.(닉쿤) ▲케이윌, 붐, 2AM, 원더걸스(택연) ▲전 멤버들과 가장 친해요.(우영) ▲저도 멤버들과 가장 친한데 기회가 되면 다른 연예인들과 친해지고 싶어요.(준호) ▲케이윌, 붐, 2AM(찬성) Q7.이상형은? ▲적당한 애교에 예쁜 척하지 않고 메이크업한 얼굴보다 '생얼'이 더 예쁜 사람이 좋아요.(재범) ▲웃는 게 예뻤으면 좋겠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 또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준수) ▲착하고 부모님께 잘하는, '된장녀'가 아닌 사람이 좋아요.(닉쿤) ▲원래는 예쁘고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애고 많은 사람이 좋아요.(택연) ▲전 솔직한 여자가 좋아요.(우영) ▲나를 사랑해주고 잘난 척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형이에요.(준호)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꾸밈이 거의 없고 웃는 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이상형이에요.(찬성) ▲ 우영(사진=한대욱기자)Q8.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05년1월13일, 한국에 와서 JYP엔터테인먼트에 처음 간 날이에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처음이고 말도 통하지 않았고 길도 모르고 음식도 맞지 않고…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어요.(재범) ▲아무래도 연습생 시절인 것 같아요. 저는 보컬만 생각하고 JYP엔터테인먼트에 들어왔는데 저한테 댄스 연습을 시키라는 (박)진영이 형의 명령(?)이 떨어져서 진짜 혹독한 연습을 받았어요. 언젠가는 세 시간 동안 물도 못 마시게 했는데 그때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마셔가며 힘들게 레슨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4년간 연습생 시절을 겪으면서 데뷔가 수차례 무산된 일도 힘들었죠.(준수) ▲나름대로 준비 열심히 해서 나갔는데 실전에서 잘하지 못해서 인정받지 못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닉쿤) ▲바쁜 일정에 잠도 못 자고 피곤한데 일도 안 풀리고 문제까지 터지면 힘들더라고요.(택연) ▲더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는데도 가끔씩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요.(우영) ▲노력하는 만큼 인정을 못 받거나 한계에 부딪혀 자신의 매력을 찾을 수 없을 때면 괴로워요.(준호) ▲연습생 시절 아크로바틱을 연습하는데 잘 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선천적으로 노래가 뛰어난 편이 아니다 보니 노래하다가 힘들 때가 있어요.(찬성) ▲ 준호(사진=한대욱기자)Q9.요즘 가장 큰 관심은? ▲피아노, 실력 키우기, 그리고 빨리 돈 벌어서 부모님께 선물해드리고 싶어요.(재범) ▲작사 및 작곡이에요.(준수) ▲연기에 관심 많아요.(닉쿤) ▲김동률 선배님께 사인 받고 싶어요.(택연) ▲영어, 작곡.(우영) ▲작곡, 패션.(준호) ▲연기, 노래.(찬성) Q10.자신의 롤모델은? ▲래퍼로는 나스, 제이 지, 에미넴, 투팍, 퍼포머로는 마이클 잭슨, 어셔, 댄서로는&nbsp;라일 베니가 등.(재범)▲카니예 웨스트, 더 드림 등 음악을 잘하는 사람.(준수) ▲박진영 형.(닉쿤) ▲윌 스미스(.택연) ▲마이클 잭슨.(우영) ▲카니예 웨스트, 마이클 잭슨, 다이나믹 듀오, 박진영(준호) ▲제이니 폭스.(찬성)▲ 찬성(사진=한대욱기자)▶ 관련기사 ◀☞[아듀 인터뷰①]2PM, "더블 히트, 과분한 사랑 받았다"☞[스타N스타①] '초식남' 샤이니 vs '육식남' 2PM☞2PM, 해외 그룹 최초 태국 수상과 만남☞2PM, 데뷔 300일 기념 팬 신문 광고 '화제'☞'2PM' 닉쿤, "데뷔전 비는 알아도 박진영은 몰라"
2009.07.21 I 박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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