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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검색결과 9,114건

  • (초점) 삼성 이재용 상무보, 어떤 일 하게 되나
  • [edaily]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는 그룹의 후계자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삼성그룹은 이재용 상무보 선임을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쌓게 되는 첫 단추"라고 밝히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이재용씨의 경영참여에 대해 좋지 않는 시각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대주주의 경영참여를 통해 책임경영을 구현해 나가는 한 과정"(삼성그룹 관계자)이라는 것이다. 삼성은 이같은 경영참여를 통해 이재용 상무보의 경영능력도 검증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상무보는 그간 대학을 졸업하고 10여년 동안 해외 유학생활을 해왔다. 주로 경영학과 관련된 이론을 공부했고 이제부터 실무적인 업무를 담당함으로써 경영인으로서의 본격적인 자질을 갖추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따라서 이 상무보의 경영참여는 실질적으로 회사의 경영을 이끌어 나간다기 보다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의 핵심경영인들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으며 전문경영인들과 함께 전략을 수립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상무보의 근무처가 삼성본관 25층으로 윤종용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최도석 삼성전자 CFO와 같은 층을 쓰게 된다는 점도 이를 시사한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재용 상무보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삼성전자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부문 중에서 기존 삼성전자의 핵심경쟁력과 맥을 같이 하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고 프리 캐쉬플로우를 창출할 수 있는 부문이다. 따라서 이 상무보는 경영기획 분야에서 전자업 전반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이를 통해 삼성전자의 "미래전략"을 구상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상무보는 특히 국제적 경영조류인 "주주중시 경영"이나 "가치창출 경영"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그룹측의 설명이다. 이재용 상무보는 하바드대학 박사과정에서 "컴퓨터 산업"을 주력 연구 분야로 선정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현재 핵심경쟁력이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전후방산업에 밀접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상무보는 반도체에서 완제품까지 광의의 컴퓨터 산업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특히 전후방 연관관계와 가치창출의 수직적 인과관계 등에 관심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재용 상무보가 일하게 될 삼성전자 "경영기획팀"은 삼성전자 경영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핵심부서 중 하나다. 조직 편제상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 겸 CFO인 최도석 대표가 이를 총괄하고 있다. 경영기획팀장은 김현덕 전무다. 경영기획팀은 윤종용 대표이사 부회장을 직접 보좌하는 팀으로 임원 중심이며 소속 사원들도 회사내 핵심 엘리트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1.03.11 I 이의철 기자
  • 금감위·금감원, 주간 주요업무 추진계획(자료)
  • <금감위> ▣ 한투·대투 MOU 이행실적 점검 □ 양 투신사의 "00년 4/4분기 경영정상화계획(MOU) 이행실적 현지점검 - 자산매각추진현황, 리스크관리체제 확립 등을 중점 점검 - 실시기간 : 1.29 ∼ 2. 1(4일간) ▣ 보험사 구조조정 □ 현대·삼신·한일등 3개 부실생보사에 대하여 공개매각을 추진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 인수를 희망하는 투자자로부터 인수의향서(LOI) 접수("01.2.3) □ 경영개선요구를 받은("00.11.24) 국제·제일화재가 제출한 경영개선계획서의 적정성 여부 검토 및 처리방안 마련 ▣ 증권관계기관의 규정정비 추진 □ 증권관계기관의 자율성 확대를 위하여 금감위 승인대상 규정 중 단순 절차 등과 관련된 사항의 하부규정(시행세칙) 위임 등 정비방안 검토 - 2월중순까지 정비안을 마련하여 2월말∼3월초까지 정비 완료 * 정비대상(7개 규정) : 증권거래소(상장규정등 4개규정), 증권업협회(협회중개시장운영규정), 선물거래소(업무규정등 2개 규정) ▣ 금융기관의 소프트웨어 개혁 추진방안 마련 □ 그간의 하드웨어 구조조정의 성과를 바탕으로 금융기관 경영관행 혁신 등 소프트웨어 개혁을 본격 추진하여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미래지향적으로 제고 - 수익구조 개선, 여신관행 선진화, 리스크관리 내실화, 책임경영체제 구축, 성과주의 조직문화 정착 등 ▣ 금융지주회사 설립추진현황 □ 컨설팅업체, 법무·회계법인 선정 - 컨설팅업체(7개사) 프리젠테이션 실시(1.29) 및 선정(1.30) - 법무·회계법인 제안서 접수(1.29) 및 선정(1.31) □ 설립추진사무국 직원 충원(1.29) - 한빛은행 4명, 경남·광주·평화은행 및 하나로 종금 각 2명 등 총12명 증원하여 총원 20명으로 사무국 운영 <금감원> ▣ 직원친절교육 실시 □ 외부전문기관에 의뢰하여 기본예절 및 고품격 서비스 요령 등을 실습위주로 집중교육 - 연수기간 및 장소 : 1.30∼1.31(1일 30명씩 2회 실시), 삼성에버랜드 서비스 아카데미(용인 소재) * 앞으로 공직윤리 및 친절·서비스 교육 등을 매분기 실시 예정 ▣ 투신운용사의 적기시정조치제도 도입 방안 마련 □ 투신운용사의 부실화를 예방하고 경영의 건전화를 유도하기 위하여 자기자본 규제비율 및 경영실태평가결과에 따른 적기시정조치제도 등 재무건전성 기준을 마련 □ 주요내용 - 자기자본 규제의 기본비율은 순자산비율*로 함 * 순자산비율 = (순자산액/기준자본) × 100 ·순자산액 : 자산에서 부채차감 ·기준자본 : 100억원(투신운용업 진입 자본금) - 순자산비율이 일정수준에 미달하는 경우 경영개선권고, 경영개선요구, 경영개선명령의 적기시정조치제도 도입 □ 적기시정조치제도의 도입시기(2001. 4. 1 시행예정) ▣ 정보기술(IT)부문 경영실태평가 Work-shop 개최 □ 금융회사 임·직원의 정보기술(IT)부문에 대한 인식 제고 및 자체 검사능력 배양 - 일 시 : 1.29(월) 10:30∼11:40 - 장 소 : 본관 2층 강당 - 참석대상 : IT부문 경영실태평가대상 금융회사의 상근감사위원, 준법감시인 및 정보시스템부서장 ▣ 신용협동조합에 대한 내부통제 점검실시 □ 횡령 등 빈번한 금융사고로 인한 공신력 저하 및 금융 부실화를 사전예방하기 위하여 신용협동조합중앙회와 합동으로 내부통제실태를 점검하고 임·직원에 대한 교육도 병행 - 점검대상조합 : 지역신협(223개) - 점검기간 : 1.29 ∼ 2.22 기간중 2회에 걸쳐 실시 <자산관리공사> ▣ 부실채권정리 관련 해외상 수상 □ 외화ABS발행 등 공사의 지속적인 부실채권 정리노력을 높이 평가하여 "올해의 유동화증권 발행상 및 기관상" 수상 □ FIA Distinction Awards 2000상 수상 : 2001. 2. 2(홍콩 메리어트 호텔) □ IFR상 수상 : 2001. 2. 6 (홍콩 차이나 클럽)
2001.01.29 I 조용만 기자
  • 최근 불법 유사금융회사 단속 내용(자료)- 금감원
  • 다음은 금감원이 밝힌 최근 불법 유사금융회사 단속 내용 ▲P&C컨설팅(구 IMI컨설팅) □ 주소 : ·본점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본관옆 동성빌딩4층 ·지점 - 전국 10여개 보유 □ 유사수신행태 : 벤처기업투자를 빙자한 고수익 보장을 미끼로 투자자 모집(평균 년36% 확정수익보장 및 벤처기업주식 교부) □ 2001. 1. 17. 동 사의 대표자 윤모씨 등 24명이 무더기로 검거되고, 그 중 7명은 구속됨(투자자 1,500명, 불법모집액 1,358억원) □ 동 사에 대한 우리 원의 정보제공 현황 - 2000. 1.22. 한길인베스트밸류(2회) - 2000. 2. 1. (주)한길벤처캐피탈(3회) - 2000. 5. 2. (주)리빙벤처트러스트(2회)→대표자 윤태열 등 7명구속 - 2000.10.20. IMI컨설팅(3회) →부산본부장 정헌구 등 5명구속(29명 검거) - 2001. 1.12. P&C컨설팅(2회) →대표자 윤상현 등 7명구속(24명 검거) * 상호만 변경된 것으로 모두 동일 회사임 ▲한신21(구 한신유통) □ 주소 :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596-6호 삼진빌딩내 □ 범행 수법 : 2000.9.23∼2001.1.15간 "오락기 임대업"에 100만원 이상을 투자하면 투자시점으로부터 1주일 단위로 확정배당금(연 81.6%)를 지급하고, 15주가 지난 뒤 해약을 요구하면 출자금 전액을 되돌려 준다며 투자자 모집 □ 2001. 1. 16. 동 사의 대표자 서모씨등 6명이 검거되고, 그 중 3명은 구속됨(투자자 1,000명, 불법모집액 378억원) □ 동 사에 대한 우리 원의 정보제공 현황 - 2000. 12. 12. 한신유통(1회) - 2001. 1. 8. 한신21(1회)
2001.01.26 I 조용만 기자
  • 현대중공업 발표문 전문
  • [현대 계동사옥에 대하여] 1. 현대계동사옥은 지하 3층, 지상 14층, 2만2,347평의 본관 및 지하 3층, 지상 8층 10,320평의 별관과 체육관, 주차장, 부대시설 등으로 구성된 총 4만510평의 빌딩입니다. 토지는 9128평이며 이중 45%는 공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지난 98년 12월28일 경영개선을 위하여 현대건설 소유의 토지와 빌딩을 현대자동차, 현대종합상사, 현대정유, 현대중공업에게 건물 1만5158평, 토지 4118평을 1334억원에 매각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현대건설에서 매각하고자 하는 것은 건설이 사용하고 있는 본관 6개충 및 별과 6개층의 사무실 건물과 체육관, 주차장, 부대시설 등입니다. -현대중공업은 노사가 울산에 있고, 서울사무소에서는 국내 영업에 필요한 4백여명의 사원들이 근무하고 있고, 이미 동 건물의 24개층을 매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현대건설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검토했으나 경제성이 없고, 소수인원으로는 사용 및 관리가 불가능하여 부득이 매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 최근 언론에서 현대건설이 사용하고 잇는 건물과 부대시설을 현대중공업이 매입한다는 보도가 있자 당사의 주요 외국계 거래 은행에서 당사의 경영층에게 건물을 매입할 시는 해당 은행은 물론 기타 모든 금융기관들이 이의를 제기하여 향후 금융업무에 차질이 예상됩니다. -당사는 이러한 시장상황을 감안함은 물론 주주와 종업원의 이익을 위하고, 시장에 약속한 투명한 경영을 이행하기 위하여 현대건설이 사용하고 있는 본관 6개층과 별관 6개층의 건물 체육관, 주차장, 부대시설 등을 매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3. 그동안 당사는 현대건설과 꾸준히 협의하여 현대건설이 보유한 당사 주식 및 현대정유 주식 인수를 통해 법과 제도에 부합하는 지원을 하였으며, 이번에 추가로 당사의 안정적 경영을 위하여 현대상선이 보유한 당사주식 매입을 현대건설측에 제시하였습니다.
2000.11.17 I 문주용 기자
  • 김 대통령 노벨 평화상 받기까지
  • 노벨상이 제정된 지 100년이 되는 올해, 김대중 대통령에 영광의 상이 주어졌다. 김 대통령의 수상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선물이자 보답이기도 하다. 노벨상이 제정될 무렵부터 서구열강과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속에 질곡의 역사를 살아오면서도 전통과 문화를 지켰고, 세계평화를 위해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식민지의 고통과 해방을 위한 투쟁, 전쟁과 배고픔, 냉전과 분단, 혁명과 쿠데타, 독재와 민주화, 경제위기와 극복을 경험한 100년의 역사는 세계사적 사변의 압축판이다. 또 100년의 역사중 상당부분은 김 대통령의 인생 역정이 함축한다. 그는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전쟁을 경험했다. 분단의 비극인 이데올로기의 그늘에서 핍박받았다. 민주화의 중심에 늘 서 있었다. 경제위기로 시련에 빠진 국민의 지도자이자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어 정상회담으로 평화의 돌파구를 연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노벨평화상은 마지막 냉전지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인권신장과 민주화를 위해 겪은 고난의 역정을 평가한 것이다. 김 대통령에 대해선 국내정치적 비판과 견제, 오랜 탄압의 세월이 각인한 그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 시각 등이 남아있다. 그러나 정치적 반대자를 용서하는 화해의 정신을 발휘하고 끊어진 남북한을 잇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그는 국내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 전쟁과 배고픔이 더 지배적인 세계에서 더 돋보이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아직 끊나지 않은 민족분단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 대통령에게 주어진 짐이 될 듯하다. 한국은 이제 세계가 공인하는 "평화의 전도사"를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는 청와대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면 상세한 자료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홈페이지 내용중 일부. 민주주의와 인간을 향한 긴여정 꿈을 가진 소년 김대통령은 1925년 12월 3일 한반도 서남쪽 끝에 위치한 목포에서 34km 떨어진 외딴 작은섬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이다. 일본인 지주밑에서 소작농을 하던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 곳에서 하의 초등학교 4학년 때, 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하여 1939년 졸업했다. 이어 5년제인 목포상업학교(목포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43년 졸업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 그는 농부의 아들로 자라면서 일제 식민통치의 서러움을 체험했다. 그가 작문시간에 일제 식민 통치를 비난하는 글을 지어 급장자리를 빼앗긴 것이 한 보기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역사와 정치, 예능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치에 눈을 뜨다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제의 강제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운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1945년 해방을 맞은 그는 해운사업에 주력하여 사업에 상당한 성공을 거둔 청년실업가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극심한 고난을 가져온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것은 당시 점차 독재화되어 가던 이승만 정권때문이었다. 친일파를 우대하며 무능하고 부패한 독재정권에 맞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역정은 시작부터 불운했다. 1961년 그는 두 번의 실패 끝에 세번째 도전한 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러나 당선 3일만에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국회가 해산되고 당선이 무효된다. 그리고 정치규제에 묶이는 비운을 맞게 된다. 용기와 희망의 정치인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마침내 용기와 희망의 정치인으로 촉망받게 된다. 1965년 민중당 대변인을 거쳐 이듬해에는 정책위의장을 역임한데 이어 1967년 통합야당인 신민당 대변인이 되면서 정계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해온 그는 철저한 준비로 국회의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그는 전체적인 윤곽에서부터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비판과 동시에 항상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국회의 각종 위원회와 재무, 건설, 외교, 예산, 국방 등의 상임위원회에서 전문성을 키웠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을 꿈꾸면서 그는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을 저지하기 위한 역사적인 장충단공원 집회가 바로 이를 입증하게 된다. 그는 이 날 연설을 통해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야권의 결속과 민주주의 회복의 희망으로 부상하게 된다. 1971년 그는 드디어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박정희씨와 정면대결을 펼치게 된다. 관권과 금권, 온갖 부정이 난무한 가운데서도 그는 46%의 지지를 얻게 된다. 비록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지만, 국민속에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의 고비길에서 1971년 박정희의 철권통치에 대한 정면 도전은 그에게 30년에 가까운 고난과 시련의 서곡이 되었다. 부정선거로 간신히 승리한 박정희씨는 마침내 민주선거를 포기하게 된다. 1972년 10월 소위 종신 대통령을 꿈꾸며 유신헌법을 날치기 처리하여 현대판 집정관 독재체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민주인사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혹독한 억압이 시작된다. 가장 강력한 도전세력이었던 김대중씨는 당연히 그 탄압의 최종목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1973년 8월 일본 도쿄호텔에서 중앙정보부의 공작원에 의해 납치당하게 된다. 그를 살해하여 한국 정계에서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의 강력한 경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1주일만에 서울의 자택에 돌아오게 되고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을 단행, 꺼져 가던 민주화의 불씨를 다시 지핀다. 이로 인해 5년형을 받고 수감되어 1978년 12월 석방되었으나 또다시 연금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하게 된다. 이어 두 달뒤에 그는 가택연금이 해제되고 사면 및 복권조치를 받게 된다. 그러나 민주화를 향한 "서울의 봄"도 잠시뿐이었다. 1980년 5월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의해 또다시 내란음모혐의로 체포된다. 그 해 11월 계엄군법회의에서 날조된 내란음모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 후 무기에서 20년으로 감형되고 1982년 12월 석방되어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군사정권의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온갖 유혹에도 굽히지 않았으며, 미국 망명중에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그치지 않았다. 1985년 귀국한 뒤에도 그를 둘러싸고 가택연금과 해제는 반복되었다. 승리의 길 한국 민주화의 돌파구는 1987년 6월 항쟁에서 열렸다. 이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되었고 그는 실형면제와 복권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까지 여러번 실패를 경험했다. 1987년과 1992년 선거에서 그는 패배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준비된 대통령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가 네번째로 도전한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드디어 40.3%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8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에 취임 했다.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간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진정한 민주화의 새 날이 열리는 날이었다. 그리고 온갖 고난의 역정을 이겨온 한 정치인의 승리일 뿐 아니라 한국인 모두가 함께 승리한 민주주의의 큰 성취였다. [기본사항] 성명 김대중(金大中) Kim Dae-jung 본관 金海 생년월일 1925년 12월 3일 출생지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호 후광(後廣), 토마스 모어 본적 서울 마포구 동교동 31-1 원적 전남 무안군 종교 천주교 자녀수 3남 생활신조 행동하는 양심 주량 포도주 2잔, 소주 2잔 기호품 설렁탕, 녹차, 김치찌개 취미 영화감상, 연극관람, 독서 신장/체중 173cm/73kg 흡연량 안 피움 시력 좌우 0.5 혈액형 A형 [학력사항] -1943 목포상업고등학교 22회 졸업 -1964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학 -1967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1970 경희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과정 수료 -1983 미국 에모리대 명예법학박사 -1992 모스크바대학교 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1992 미국 가톨릭대 명예법학박사 -1994 원광대 명예정치학박사 -1995 미국 포트랜드 주립대 명예인문학박사 [경력사항] 1948-1950 목포일보 사장 1951- 흥국해운 사장 1951.9- 한국해운조합연합회 이사 1957.10- 민주당 중앙상임위원 1960.10- 민주당 기획위원 겸 대변인 1961 제5대 민의원(민주, 인제) 1963- 제6대 국회의원(민주, 전남 목포) 1965- 민중당(민정-민주 통합야당) 대변인 1966- 민중당 정책위원회 의장 겸 정무위원 1967.2- 민중당(민정-민주 통합야당) 대변인 겸 정무위원 1967.6- 제7대 국회의원(신민, 전남 목포) 1970- 신민당 대통령후보 1971.4- 제7대 대통령선거 입후보 1971-1972 제8대 국회의원(신민, 전국) 1974.11- 민족회복 국민회의 참여 1976-1978 3.1 민주구국선언사건 주도로 구속됨(대통령긴급조치9호 위반혐의) 1979.3-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결성 1983- 재미한국인권문제연구소 창설 1983.5- 미국 유니언신학대 구제위원회 고문 1983- 미국.국제고문희생자구원위원회 고문 1983- 미국, 하바드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1985-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1985- 신민당 상임고문으로 추대.당국에 의해서 취임이 저지됨 1987.4- 통일민주당 상임고문 1987.10- 평화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 1987-1991 평화민주당 총재 1987 평화민주당 대통령후보선출 1987- 제13대 대통령선거 입후보 1988-1992 제13대 국회의원(평민,전국) 1991- 신민주연합과의 통합으로 신민당 창당.총재 당선 1991-1992 민주당과 합당하여 통합야당 민주당 창당.대표최고위원 1992 제14대 국회의원(민주,전국) 1992.6-12 민주당 당무위원 1992 제14대 대통령선거 입후보 1993.12-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자문회의 위원 1993 영국 케임브리지대 객원교수 1994-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 아태평화재단으로 변경 1995-1998/2 아태평화재단 이사장 1995-현재 국민회의 총재 1995-1997 아.태민주지도자회의 공동의장 1997.12.18 제15대 대통령 당선 1998.2.25 제15대 대통령 취임 [수상 및 명예직] 1966 미국 Memphis시 명예시민 1981 Bruno-Kerisky 인권상 1983 미국 Nashville시 명예시민 1983-현재 미국 Robert Kennedy 인권상위원회 고문 1983-현재 국제고문희생자 구원위원회 고문 1983-현재 미국 Pittsburgh La Roche 대학교 이사 1987 미국 George Meany 인권상 수상 북미주 한국인권연합 인권상 수상 1993 미국 Atlanta시 명예시민 1993 제3회 애서가상(한국애서가클럽) 수상 1994 미국 New York Union 신학대학교 Union Medal 수령 1994 Russia 국제생태학협회 정회원 1995. 5 미국 휴스턴 명예시민 1998. 2 무궁화대훈장 1998. 4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 1998. 6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 1998. 6 미국 San Francisco 명예시민 1998. 6 미국 Los Angeles 명예시민 1998 UN 인권협회 인권상 1999. 7 Philadelphia 자유메달
2000.10.13 I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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