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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aily리포트)금융의 연금술사들을 만나보니..
  • [edaily] edaily 채권외환팀은 지난 10월부터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 시리즈를 내보냈습니다. 이 시리즈는 지난 21일 씨티은행 편을 끝으로 마감됐습니다. 채권·외환시장에서 파생상품을 다루는 딜러들을 찾아 우리나라 파생시장의 현주소를 조망하는 인터뷰였습니다. 파생상품하면 막연히 어렵거나 두려운 존재로 인식됐지만 금리스왑이나 통화스왑은 어느새 우리 금융시장 깊숙히 들어와 있었습니다. 정명수 기자가 취재 뒷얘기를 보내왔습니다.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 시리즈가 나갈 때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시리즈를 끝내고 그 여세를 몰아갈 기획 기사가 필요했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거든요. 개인적인 관심사 중의 하나가 파생상품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인터뷰할 사람들을 물색했습니다. 채권시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금리스왑 등 채권과 관련된 파생상품부터 시작했습니다. 금리스왑의 마켓메이커는 놀랍게도(?) 산업은행이었습니다. 연금술사의 첫회를 산업은행 금융공학팀으로 한 것은 약간의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금융공학팀에는 스왑, 선물, 옵션, ABS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동시에 거래하고 있었습니다.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욕심이 "금리옵션이나 통화옵션 쪽의 기사를 써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파생상품의 백화점같은 산은 금융공학팀을 철저하게 해부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실제로 저는 지난 17일부터 인터뷰 당시 얻었던 지식을 바탕으로 조잡하지만 스왑시장 시황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금융공학팀의 각 분야를 담당하는 차장급 딜러들을 일일이 인터뷰했습니다. 스왑이 뭐고, 옵션이 뭐고, ABS는 뭐고, 인터뷰를 하면서 취재가 아니라 공부를 한 셈이죠. 산업은행 다음에 국민은행을 찾아갔습니다. 국은은 호주의 멕쿼리 은행과 파생상품 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었거든요. 국은에서 파생상품 담당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사람"의 중요성을 알게됐습니다. 국은-멕쿼리 합작 당시 국은쪽에서 차출됐던(?) 팀원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다들 외국계 은행으로 스카우트가 돼 간 것입니다. 그만큼 이 분야의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죠. 한일투신은 국내 최초로 스왑펀드를 상품으로 내놔 투신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은 투신사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측면에서 칭찬받을 일인 것은 분명한데 의도한 만큼 실적이 좋을 것인지는 두고봐야겠습니다. BOA와 씨티은행의 파생 딜러들을 인터뷰하면서는 부러움과 자신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외국의 투자은행들이 파생상품 인력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았을 때는 부럽기도 했지만 국내의 척박한 환경에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거래하는 "국내파"들의 실력도 동시에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기사로는 쓰지 않았지만 금리스왑 시장에서 거래를 한다는 외국계 은행의 담당자들은 대부분 만나봤습니다. 회사 규정상 인터뷰를 못하겠다는 딜러들과는 개인적으로 저녁을 먹으며 시장 얘기를 들었죠. 금리스왑 브로커 회사들과도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우리나라 금리스왑 시장에는 5대 브로커 회사들이 있습니다. 이들 브로커 회사는 한곳을 빼놓고는 모두 싱가포르와 홍콩에 본사가 있는 외국 회사들입니다. 이메일로 인터뷰를 시도할까하다가 그만뒀는데 금리스왑 브로커 시장의 말못할 고민(?)을 우연히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금리스왑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도 거론할 때가 오겠죠. 지금은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에서 일단 문제점은 덮어두기로 했습니다. 연금술사 시리즈가 나가면서 독자들로부터 반응이 있었습니다. "이러이러한 회사에 아무개를 만나보라. 그 사람이 파생 쪽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시리즈의 성격상 제도권에 정착한 금융기관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나중에 "숨은 실력자"들을 따로 만나보려고 합니다. 시리즈가 거의 끝날 무렵 모은행의 임원과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그분이 자기 은행도 파생상품 테스크를 꾸미려고 하는데 외국계 은행에 있는 딜러들 연봉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말씀을 드렸죠. 그 임원은 "그 정도 연봉이면 줄 의향이 있는데도 외국계 은행의 딜러들은 옮겨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급한대로 은행내에서 사람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파생상품 시장은 이제 막 커가는 신흥시장입니다. 시장 참여자가 적기 때문에 부가가치도 높고 사람들 몸값도 높습니다. 외국에서는 주식은 고졸, 채권은 대졸, 파생상품은 석박사가 거래한다는 농담도 있다고 합니다. 금융산업이 발전하려면 주식, 채권과 같은 기초자산 시장도 발전해야하지만 거래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파생상품도 반드시 성장해야합니다. 국내 금융기관은 아직도 파생상품을 담당할 인력들을 체계적으로 키우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산업은행이나 국민은행은 파생상품 인력을 키워서 다른 금융기관에 공급하는 묘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파생상품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투자를 보다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1.12.18 I 정명수 기자
  • (화제)어느 상장기업대표이사의 편지②
  • [edaily] 이윤학 LG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이 주식투자자들을 위해 어느 상장기업 대표이사로부터 받은 편지를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미 1차로 편지 한 통을 공개한 뒤 많은 투자자들이 관심 또는 공감을 표했고 이에 따라 2차로 또 한통의 편지를 공개했다. 이윤학 연구원은 "지난 주에 공개했던 "어느 상장기업 대표이사의 편지"에 대해 수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의견을 보내줬다"며 "이에 따라 본인의 허락을 얻어 올해 6월에 받은 두번 째 편지를 원문 그대로 싣는다"며 "이번 역시 세부적인 투자전략이 아니라 투자철학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주식시장에 있는 모든 시장참여자들이 한번쯤은 귀담아 들을 만 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또 "이번주 시장은 지난 주 과도한 오버슈팅이후 ‘逆 오버슈팅’ 이 발생하는 등 변동성이 커진 이후 안정을 찾는 국면"이라며 "우려하던 경제지표들이 다소 혼조세를 보이나 전체적으로는 개선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또 "현재장세가 대세상승국면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면(LG투자증권 Technical Weekly 5호 “대세상승은 이미 시작되었다” 참조) 이번 조정이 바람직한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상승국면의 조정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투자철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어느 상장기업 대표이사의 편지 본문내용 가뭄으로 타들어 가던 農心이 해갈되어 천만다행입니다. 그 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아마도 작년과 금년에 주식투자로 돈을 잃으신 분들에게는 별고가 있었을 것입니다. 돈만 잃은 것이 아니라, 마음도 상하고, 창피해서 어디 가서 얘기도 못하고, 여러모로 손해가 막심하지요. 불 난데 웬 부채질이냐고요? 잊어 버리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2000년 1월 21일자 저의 편지를 다시 한 번 꺼내서 차근차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주식투자에 관한 편지를 사원들의 가정에 보내 드렸을 당시에는 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었고, 코스닥시장에는 불이 붙어서, 인터넷 닷컴회사 들과 벤처기업 들의 株價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가고 있을 때였습다. 제 편지에 써있는 내용을 귀담아 듣고, 계속해 오던 주식투자를 중지했던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아무 주식이나 주식을 사기만 하면 돈이 벌리던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도 벌고, 나도 벌고, 친구도 벌고, 친척도 벌고, 모두들 주식투자로 돈을 벌고 있는데, 갑자기 社長이 개인 투자자들의 90%이상이 돈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을 편지에 써서 보내 주었는데, 그 말이 귀에 들어 오기나 하였겠습니까? 그리고는, 제가 장담했던 대로 고집스럽게 주식투자를 했던 우리 회사 사원들 중에 틀림없이 90% 이상이 원금의 손실과 주식투자를 했던 기간에 발생할 이자에 대한 기회손실을 보았을 것입니다. 세계 최고 주식투자자의 연간 수익률이 50%를 넘지 못했었고, 수 백 만불 연봉의 유수한 펀드매니저 들의 수익률도 20%대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같은 아마추어는 10%의 수익률을 내는 것조차도 여간 쉽지 않다는 사실까지친절하게 알려드렸습니다. 주식시장은 원금의 손실이 발생할 확률이 아주 높은 위험한 시장이므로, 위험회피에 관한 공부를 事前에 충분히 해 놓고 주식투자를 해도 늦지 않다는 저의 충고를 받아 들였더라면, 아예 집에 불이 붙지 않았을 것이고, 누가 부채질 하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하지 않고 별고 없이 살아 갈 수 있었을 테니까요. 오늘은 네덜란드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유럽에 있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튤립과 風車로 有名합니다. 척박한 땅은 바다보다 낮아서 물을 퍼 내며 살아야만 했기 때문에 풍차가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賦存資源이 거의 없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옛날부터 理財에 밝고 장사에 능했습니다. 지독하게 장사를 잘해서 그랬는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영어의 표현에서 Dutch(네덜란드인, 네덜란드말 혹은 네덜란드의)라는 형용사는 별로 좋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Dutch pay는 각자계산을 뜻하고, Dutch concert는 소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Dutch courage는 술김에 부리는 허세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네덜란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進步的이고 開放的인 국가로 축구도 잘 하지만, 국민소득도 아주 높은 선진국입니다. 매춘이 合法일 뿐만 아니라, 가벼운 마약도 합법이고, 안락사도, 동성애자끼리의 결혼까지도 세계최초로 합법화 했습니다. 세계에서 튤립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수출하는 네덜란드는 튤립의 原産地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튤립의 종주국처럼 되어버린 역사의 뒤안길에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뼈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래 튤립은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였는데, 네덜란드에서 700년대에 튤립을 輸入하여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튤립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튤립은 씨로 왕창 번식하는 한 해 살이 식물이 아니라, 뿌리로 조금씩 밖에 번식을 못하는 多年生草입니다. 그래서 튤립의 번식과 공급이 극히 한정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수요는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오르고 또 올라가도 사겠다는 사람이 돈을 지불하고 나서고, 또 나서는 한 가격은 계속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튤립 한 뿌리에 5층짜리 건물 한 채의 값이 될 정도로 올라간 후에야 비로소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하루 아침에 튤립뿌리의 값이 폭락해 버렸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 때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참 바보 같고 우스워 보이지요? 그렇지만, 그 당시의 네덜란드 사람들도 자신들은 고등교육도 받고, 장사도 잘하고, 스스로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믿는 우리 같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약에 1700년대의 네덜란드에서 태어나서, 교육 받고, 자랐다면, 자고 나면 또 오르고, 자고 나면 또 오르는 떨어질 줄 모르는 튤립뿌리를 보고 그 당시의 네덜란드 사람들처럼 현금을 투자하지 않았을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비슷한 일이 일본에서도 있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후 1990년까지 일본에서는 땅값이 떨어져 본적이 없었습니다. 자고 나면 오르고, 또 자고 나면 오르고, 3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1990년이 될 때까지 40년 이상을 땅값은 계속 오르기만 했습니다. 어디까지 올라갔는가 하면, 일본열도를 팔면 일본 면적의 25배나 되는 그 넓은 미국 땅 전체를 다섯 번 사고도 남을 때까지 올랐습니다. 일본땅 전체를 팔면, 전세계 모든 상장회사 들의 주식을 다 사고도 남을 정도로까지 올라갔습니다. 東京 땅만 팔아도 뉴욕과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사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던 일본 땅 값이 현재 1990년과 비교하여 거의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땅값이 내렸지만, 일본 땅을 다 팔면 미국땅 전체를 2번이나 살 수 있는 아직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입니다. 1980년대를 살았던 일본 사람들도, 1700년대의 네덜란드 사람들도 모두 바보라서 그랬을까요? 지나고 나니까 마치 자신도 미래를 미리 알았던 것처럼 착각하며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일본 사람이었고, 1980년대를 일본에서 살고 있었다면, 자고 나면 오르고 또 오르는 일본 땅을 사고 싶으면 사고 싶었지, 팔고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땅값도 일본의 땅값 못지않습니다. 아직도 한국 땅 모두를 팔면 한국 땅의 100배가 넘는 그 넓은 미국 땅 전체를 사고도 남을 정도 입니다. 그 동안 한국의 땅값이 많이 올랐지만, 한반도 전체의 땅값이 오른 것이 아닙니다. 국토 전체의 2%에 불과한 택지와 0.3%도 채 안 되는 상업용지, 0.2%에 불과한 공장용지만이 천정부지로 값이 올랐던 것입니다. 전 국토의 2.5%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는데, 만약에 한국의 토지 정책이 임야와 논밭, 그린벨트를 개발 가능하도록 풀어 준다면 미래의 땅값은 어떻게 될까요? 전국토의 2.5%위에만 건축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한국의 국토이용관리법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假需要에 의해서 값이 올랐던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토지의 용도변경이 한국처럼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지를않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의 땅값은 한국처럼 비싸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남북 통일이 되어서, 대한민국에 토지의 공급이 갑자기 2.5배로 늘어 난다면, 부동산 가격은 어떻게 변할까요? 1987년 200만호 건립할 당시의 주택보급률이 70%를 갓 넘었었습니다. 그러던 주택 보급률이 머지않아 100%를 넘어서게 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주택보급률은 110%를 넘지 않습니다. 주택 보급율이 계속 높아지지 않고 110%의 수준에서 멈추는 이유는 한가족이 동시에 두 채의 집에서 생활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의 튤립사건처럼, 일본의 부동산 神話처럼 원래 그런 어리석어 보이는 사건의 소용돌이 안에 들어앉아 있는 일반인들은 그 소용돌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법입니다. 네덜란드의 튤립사건이나 일본의 천정부지 땅값과 똑 같은 사건이 대한민국에도 있었습니다. 2000년 1월 21일 제가 주식투자를 안전하게 보수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편지를 써서 가정으로 보냈을 當時에 코스닥의 株價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고, 우리 회사 사원들의 相當數는 제 편지를 무시하고 자기고집을 피우며 주식투자를 하다가 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자신의 손으로 많이 날려 버렸을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손해 보게 만드는 대부분의 경우는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것이 또 한 번 立證된 것입니다. 기업의 평가기준이 자산가치, 수익성, 성장성을 골고루 평가해야 한다는 기존원칙을 무시하고, 첨단기술주와 닷컴기업 들을 평가 할 때는 오로지 미래 가치만 보아야 한다며 너도나도 5백만명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투기성 주식투자를 했습니다. 자고 나면 닷컴주식은 상종가로 오르고, 또 자고 나면 상종가로 올라도 사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비싼 값으로 사주는 사람들이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연간 10억원 매출에 5억원이 적자가 나는 형편없던 G社의 주식은 시가총액이 2조원을 상회했었습니다. 연간 280억원 매출에 76억원의 적자가 나는 S社는 시가총액이 4조원을 넘어섰습니다. 반면에, 우리 회사는 부동산가치만도 400억원이 넘고, 기계장치, 건물, 재고 자산만도 1,000억원이 넘습니다. 브랜드가치와 영업권도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원이 넘지만 적자를 내고 있고, 미래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우리 회사의 시가총액은 200억원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회사의 주가만 과소평가 된 것이 아니라, 굴뚝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전통산업 들의 주가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저평가 되어있습니다. 우리들 눈에 우습게 보이고, 한심해 보였던 18세기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튤립 한 뿌리에 5층짜리 건물 값을 지불한 것과, 땅 한 평에 수 십 억원을 지불하고도, 그 땅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일본인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2000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닷컴 첨단기술주라는 이유만으로 매년 대형적자를 내고 있는 회사의 500원짜리 주식 한 주에 400배도 더 되는 200,000원을 아낌없이 지불했던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거품이 꺼지고, 닷컴신화가 무너지고 나니까, 마치 우리들도 그 당시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것과 같은 착각이 들지요. 지난 주식관련 편지에 소떼 이론에 관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소떼 안에서 다른 소들과 같이 뛰고 있으면 소떼가 어디로 뛰어가는 지도 모르고, 앞뒤좌우의 소떼들을 따라 자욱한 흙먼지 속을 멈추지도 못하고 계속 뛰어가게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1700년대에도 소떼 같은 어리석은 사건이 네덜란드에 있었고, 비슷하게 어리석은 사건이 1980년대의 일본에도 있었고, 2000년 한국에서도 그런 한심한 사건이 있었고, 그 어리석은 사건들에 참여했던 참여자 수를 합치면 수 억 명이 넘습니다. 틀림없이 이런 어리석은 일들이 미래에도 또 벌어질 것이고, 소떼처럼 어리석은 수 억명이 또 후회의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反復됩니다. 2001년 2월 1일자 편지에 학교교육보다 가정교육이 더 중요하고, 가정교육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평생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학교교육을 제대로 제대로 받지 못했더라도 평생을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치는 기쁨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런 어리석은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꾸준히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은 현명한 결정을 내릴 줄 압니다. 물론 스스로에게 손해 보는 言行도 하지 않습니다. 올바르고, 현명하게 되는 지금길은 밝은 면을 보고, 긍정적으로 살고, 끊임없이 공부해서 스스로 손해보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時空을 넘나들며, 네덜란드와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있었던 세가지 비슷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만이 미래의 비슷한 잘못을 피할 수 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고, 회사도 마찬가지이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의 10%를 억제하면 결과의 90%를 통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01년 6월 27일 대표이사 0 0 0 드림
2001.12.04 I 박호식 기자
  • (이진우의 FX칼럼)갑자기 시장이 어려워진 이유
  • [edaily] 금주 원·달러 시장의 움직임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게 온순하던 시장이 한 번 삐치니까(?) 하루 10원 가까운 등락도 아주 우습게 해 치우는군요. 지난 번 칼럼에서 이번 주 환율 움직임은 만만치 않을 것이란 말씀을 이미 드렸습니다. 그 이유를 기술적인 측면과 주변 재료의 해석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 봅니다. ◇원래 조정 4파는 매우 어렵다. 필자는 칼럼에서 이따금씩 엘리어트(Ralph Nelson Elliott) 파동이론에 근거한 전망을 올린다. 기술적 분석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파동이론 또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지 모르겠으나, 마음 먹고 한 번 쯤 공부해 두면 거래를 함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분석도구임에 틀림없다. 함께 차트를 올리지 못하는 데 대해 용서를 구하며, 필자가 세고 있는 Hourly chart 상의 파동을 설명해 보겠다. <하락 1파> ·10월 4일 고점 1316원에서부터 10월 16일 저점 1294.30원까지(-21.70원) ·1316원은 7월 24일의 고점 1314.50원과 더불어 이중 천정형(Double-top) 패턴을 완성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음. <조정 2파> ·1294.30원에서 10월 23일 고점 1305.50원까지(+11.20원) ·단순한 지그재그 패턴으로 A-B-C 세부파동을 형성하며 하락 1파에 대해 50% 조정(Correction)을 완료. <하락 3파> ·1305.50원에서 11월 27일 저점 1261.90원까지(-43.60원) ·하락 1파의 2배에 달하는 환율급락 시기였으며 통상적으로 3파가 1파의 1.618배정도의 길이만큼 나타난다고 하여 그 레벨을 짚어 보면 1270원 언저리가 된다. 즉 1280원의 붕괴라는 "사건"이 시장에 충격을 가하였고, "이렇게 허무하게 환율이 빠지나 보다."라고 시장참여자들이 흥분한 결과 1262원까지 저점이 낮아지는 일종의 오버슈팅(over-shooting)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임. <조정 4파> ·필자는 지난 화요일(11월 27일)부터 조정 4파에 돌입했다고 보고 있으며, 지난 번 조정 2파가 지그재그라는 단순한 형태(simple form)로 형성되었기에 이번 조정 4파는 파동변화의 법칙에 따라 복잡한 형태(complex form)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이 장세가 바닥을 찍고 올라 가자는 장세인지 전 저점 혹은 그 이하의 진짜 바닥을 확인하자고 덤비는 장세인지가 헷갈릴 것이라는 얘기다. ·1차적으로 이 조정 4파의 꼭대기가 어디가 될 수 있는지를 짚어 본다면, 하락 3파의 길이에 대해 38.2% 되돌림 수준(retracement level)인 1278.50원을 떠올릴 수가 있고 상승세가 좀 더 이어진다면 1284원 근처(50.0%), 1289원 정도(61.8%)를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강력한 지지선이 돌파된 이후에는 강력한 저항선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기술적 분석의 고전(?)에 의거, 많이 가 봐야 지난 번 팽팽한 공방전이 펼쳐졌던 레벨인 1284.50원 언저리가 아닐까 예상된다. ·목요일(11월 29일) 오후의 환율 급락세로 인해 조정 4파가 이미 끝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다소 성급하다. 조정 4파가 형성되는 기간은 의외로 길 수가 있으며, 목요일의 실질적인 저점인 1267.50원은 정확하게 1261.90원에서 1276.20원까지의 환율 급반등세에 대한 61.8% 되돌림 수준이기도 하다. · 기술적으로는 1276.20원에서 반등세가 끝나고 저점확인 작업에 곧바로 돌입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반면, 아직 반등의 꼭대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틀간의 급등세에 대한 급한 조정이 목요일 오후에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답이 안 나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재료들 또한 쉽지 않은 시기이다. 희한하게도 차트가 어떤 모양을 형성하는 데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지금 상당히 혼란스러운 조정 4파에 접어들었다고 필자는 밝혔는데, 주위를 한 번 살펴보자. 우선 최근의 환율 급락세가 외국인투자자들의 국내주식에 대한 공격적인 매수세에 기인한 것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아니, 이제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따라 증시뿐만 아니라 환율과 금리까지 춤을 추는 시절이 되어 버렸다.(외국인 주식순매수는 환율 하락, 금리상승(채권 값 하락), 외국인 주식순매도는 환율상승, 금리하락(채권 값 상승)의 공식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사실 아닌가?). 잘 되어 가는 것이라고 봐야 할지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봐야 할지도 판단이 잘 안 서지만, 어쨌든 "세계화(Globalization)"의 시대조류에 따른 결과이다. 거침없는 상승세를 지속해 오던 국내 주식시장이 종합지수 680이라는 매물벽에 부딪히며 급락에 이은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연일 1~2천억원대의 순매수를 기록하던 외국인들도 최근 며칠간 순매수와 순매도를 왔다갔다 하며 그들의 속마음이 무엇인지를 쉽게 노출하지 않고 있다. 여의도의 증권 전문가라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향후 장세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모 경제지는 하룻동안 38포인트나 폭락한 수요일 아침에 1면 톱으로 "지금 사도 늦지 않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번에도 주중 폭락을 하루 이틀 앞두고 국내 언론들은 1면에 증권사 객장에서 흐뭇해 하는 개미 투자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연례행사"를 빠뜨리지 않았고, 그래서 또 한 번 정확하게 프로들에게 차익실현의 시점이 언제인지를 알려 주는 정확성(?)을 발휘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시장이 뉴욕의 움직임에 동조화 되어 가는 현실 하에서 향후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 갈 것인지 지수 700도 찍어보지 못하고 엎어질 것인지는 나스닥과 다우존스 지수 등의 뉴욕증시 동향에 달려 있다. 나스닥의 경우 2000, 다우존스의 경우 10000이라는 만만치 않은 저항선이 코 앞에 다가와 있는데, 미국 또한 최근 발표된 소비자 신뢰지수(Consumer confidence)나 베이지 북(Beige Book)을 통해 발표되는 경기지표 등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반면 목요일 밤에 발표된 10월 내구재(耐久財 : Durable goods) 주문이 항공기 및 방위재 주문 초강세에 힘입어 12.8%라는 기록적인 강세를 보이는 등 혼조세를 보여 당장 12월 초에 열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월례회의에서 추가금리인하가 단행될 것인지 금리인하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인지 조차도 불확실해졌다. 이제 안방에서는 물러나 과거의 잘 나가던 시절이나 회상하는 입장인 달러/엔의 경우도 애매하다. 124엔을 딛고 올라서서 상승추세를 재개할 것인가 싶던 달러/엔 환율은 S&P에서 일본의 장기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하향조정 한다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123엔 초반까지 급락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 등 오르자는 것인지 빠지자는 것인지를 도저히 알아내기 힘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일본 관료들의 이랬다 저랬다 두 말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해외채권 매입을 통해 엔화약세를 유도하겠다고 실컷 바람을 잡나 했더니 며칠 전에는 시오카와 재무상이 그런 거 고려 안하고 있단다). 정리하자면, 그 동안 "이제 더 이상 나빠질 것은 없다."라는 기대감으로 월가와 여의도에서는 시중에 남아도는 유동자금들이 증시로 몰려들며 깜짝 랠리를 이끌어 내었고, 한 차례 질풍노도와 같은 상승세를 펼친 뒤에 차익실현 세력과 추격매수 세력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면서 다음 방향을 잡아 나가기 위해 암중모색(暗中摸索)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기업들의 실적개선과 경기의 확실한 회복 징후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다려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원화 환율도 1260원의 하향돌파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보다 신선한(?) 모멘텀이 필요하다. TV 9시 뉴스 등에서 환율이 뉴스거리가 된다면 그 때쯤은 함부로 껄떡거려서는 곤란하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겠지만 외환당국에서는 국내 달러수급을 조절하는 방안을 통해서 환율의 급등락은 막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수급조절의 구체적인 방안이야 필자의 입장에서 알 수가 없지만, 지난 식목일 "외환보유고를 동원해서라도 환율급등을 막겠다."는 당국의 의지천명이 달러/엔의 하락과 어우러져 달러/원 환율의 하락반전을 유도해 낸 것처럼 이번의 "의지표명"도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뉴욕 증시가 나스닥 2000, 다우존스 10000을 돌파하며 새로운 상승 추세를 강하게 일구어 내고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들의 한국주식매수 열기가 다시 불붙어 오를 때까지, 그리고 확실한 경기회복의 징후가 포착될 때 까지는 한 동안 증시도, 채권시장도, 그리고 외환시장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개장세가 지속될 것이다. 이럴 때는 데이 트레이더(Day trader) 입장에서 애매한 레벨에서의 포지션 테이킹은 금물이다. 자칫 고생만 하다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애매한 손절매만 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기업체들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이루어지는 잔 물결에 현혹되기 보다는 그 와중에서도 큰 그림을 살피면서 적정 레벨에서 (발바닥에서의 매수, 머리 끝에서의 매도는 욕심이다. 무릎과 어깨 정도면 족하다) 매수냐 매도냐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선 굵은 거래"를 할 필요가 있다.
2001.11.30 I 이진우 기자
  • (환리스크 관리의 주역들)포철 노연길 팀장(하)
  • [edaily] 이번주 "환리스크관리의 주역들" 대상자는 포항종합제철 노연길 팀장입니다. (중편에서 이어집니다) ◇자금조달 업무의 묘미 -자금조달 업무도 병행하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십니까. ▲작년에 퇴직금 중간정산, 파워콤 투자, 부채원금 상환 등 자금수요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 중 상당부분을 사무라이 본드를 발행해 메웠습니다. 올해 3월까지 세번이나 발행했는데 이게 1000억엔이나 됐어요. 채권발행도 상당히 흥미있는 일입니다. 일본 투자자들을 상대로 로드쇼를 하는데 그쪽에서 포철을 좋아하니까 저희로선 신나죠. 일본 사람들은 포항제철을 신일철과 동급이라고 평가해줍니다. 포철이 신일철과 옛날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고 그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해왔기때문에 이미지 업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로드쇼를 해도 대부분 기관투자가들이 채권을 사갑니다. 미츠비시 트러스트, 일본생명보험과 같은 큰 투자가들은 일본에 더 자주 와서 채권을 발행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발행 주간사를 니코SSB가 많이 담당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낮은 금리에 발행한 적도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본금리가 낮으니까 그 덕택도 많이 봤고요. -세계시장에서 포철의 시장점유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신일철과 거의 비슷합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조금 밀렸는데 지금은 동등한 수준이 됐어요. 둘이 합해서 4.5% 정도? 세계 철강업계는 조각시장(fragmentary market)이에요. 자동차처럼 포드나 GM이 세계시장의 30~40% 수준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을 대표하는 철강업체들이 자국 시장을 점유합니다. ◇은행을 평가하며 거래한다..win&win 전략 -자금거래 시 주거래 대상은 어느 곳입니까. ▲특별한 곳은 없고 외국계은행과 주로 거래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외환위기 후 외국계은행이 외화자금 조달을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외화자금을 많이 써야 하니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메이저로는 대여섯개, 모두 합해서는 30여개 정도 거래합니다. 거래은행들은 정보나 아이디어 제공능력이 뛰어나요. 시장조사능력이나 고객들의 요구파악에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의견개진도 활발한 것 같고... "시장 의견은 어떻고 내 생각은 어떻다" 이런 식으로 말해주니까 듣는 저로서도 제 생각과 더불어 취합할 수 있습니다. 또 자랑할 수 있는 점은 저희 딜러가 이 모든 은행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통해 이쪽에는 얼마, 저쪽에는 얼마 하는 식으로 거래규모도 조절해나가죠. 저희 기준으로 보자면 7개 은행 정도를 메이저로 정해놓고 75~80% 정도를 거래합니다. 나머지 부분을 20개 은행에게 나눠주고요. 적극적으로 거래를 하면 그 쪽에서도 거래 비용을 깎아주거나 서비스 제공 질을 높여주니까 서로서로 좋습니다. -은행 쪽에서 알면 싫어할 수도 있겠습니다.(웃음) ▲전혀 아닙니다. 저희는 평가기준을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우리가 이 은행을 이러한 기준으로 선택했다고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공정" 이죠. "우리 방침이 이러니까 이 은행을 선택한다. 당신들은 이 점이 부족해서 이번엔 안되겠다"고 말하면 은행에서도 훨씬 수긍하기 편할 겁니다. 실제로 "그럼 내년에는 이런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응답이 되돌아옵니다. 저희는 전혀 일면식이 없어도 능력만 있으면 어느 은행이라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화거래 뿐 아니라 채권발행 등 모든 자금거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가기준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면. ▲아무래도 저희가 도움을 많이받는 은행을 가장 신뢰하겠죠. 저희 팀말고 포철의 다른 쪽에서도 은행과 여러 거래를 하니까 여러 평가기준이 있을 수 있어요. 은행 자체의 신용등급도 눈여겨보고요. 대충 5개 요소를 가지고 등급을 나눕니다. -파생상품도 거래하자는 요구가 들어옵니까. ▲자주 옵니다. 해외 본사에서도 직접 찾아올 정도니까요. 다만 파생상품을 활용하는 부분은 상당히 신중해야 하기때문에 아직은 크게 활용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은행쪽에서 상품을 들고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요구(needs)를 모르고 가져오는 건 필요하지 않아요. 우선 우리가 요구하는 부분을 정확히 충족시키는 상품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파생상품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방법도 그런 것이겠죠. ◇위험관리는 영업외 손익변동을 최대한 줄이는 것 -위험관리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환산손익 규모의 최소화죠. 이익도 포함됩니다. -이익이 포함되는 이유는 뭔가요. ▲부채의 경우 환산익이 많이 나는 경우가 생기죠. 하지만 이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찌보면 헤지를 잘못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어요. 재무위험관리는 이익창출이 아닌 위험최소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영업외 손익변동을 최대한 줄이는게 고유목적이죠. 달리말해 최고경영진들이 마음껏 경영전략을 펼치도록 옆에서 보좌하는 겁니다. 투기거래는 아닌 것 같아요. 헤지를 투기거래의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되겠죠. -올해 환거래를 통해 200만달러의 수익이 났다고 하셨는데 그건 포철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덕분이라고 보십니까. ▲물론 그런 점도 있겠지만 첫째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와도 지금 있는 딜러들처럼 잘할지는 모르겠어요.(웃음) 저희 딜러들이 딜링을 상당히 잘 합니다. 적당한 수준의 정보종합 및 의사결정 능력, 타이밍을 스피디하게 맞추는 능력도 우수합니다. 딜러들에게 실적에 맞는 보상을 해주고 싶은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다른 방법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유학이나 해외연수같은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달러/원 트레이딩을 담당하는 딜러는 곧 미국으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기위해 떠날 예정입니다. -연봉협상은 어떤 식으로. ▲아직 성과급 제도는 없습니다. 저희야 제조업체니까 거래에 주력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말씀드렸듯이 자연적 헤지가 제일 중요합니다.(웃음) -보직은 어떤 식으로 바뀌는 겁니까. ▲포철에서는 3년이상 근무하면 자동적으로 보직이 달라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괜찮은 것 같아요. 한 업무만 하니까 지치니 변화를 꾀한다고 할까요.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안 좋지 않은가요. ▲다른 업무부서의 일도 파악해야죠. 특히 저희 부서는 자금유출입을 관리하기 때문에 타 부서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아쉬웠던 거래는 없었습니까. 손실이 났다거나 ▲있었죠. 과감하게 하고싶은데 못할 때도 생깁니다. 하지만 딜링 자체가 본업이 아니니까 그런 일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그건 저희의 본분도 아니고요. ◇투명성은 자신있다..물량배분 원칙에 충실 -향후 업무계획은. ▲올해와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수지구조는 특별한 변동이 없는 편이라서요. 부채부분은 달러노출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 부분을 특별히 관리해야죠. 지금처럼 꾸준히 환차손익을 줄여나가는 건 앞으로도 저희 팀이 주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철강본업의 경쟁력을 최대화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니까요. 또 기업에서는 위험관리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셈이라 어깨가 좀 무거습니다. 이 시스템을 잘 사용해서 하나의 선례를 남기고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포철의 외화자금 관리가 다른 기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외화자산이나 부채규모, 또 딜링규모가 상당히 크니까 일단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은 투명성이랄까요. 무엇이든 깨끗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회사가 나쁘게 거래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 나름대로의 물량배분 원칙, 카운터파트너인 은행들에 대한 크레디트 평가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미입니다. -포철 입사 후 석박사 학위를 따셨군요. ▲영국 크랜필드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 전공으로 석사(MBA)를 땄습니다. 박사도 영국 맨체스터 대학원에서 전략경영을 공부했고요. -공부할 때는 어떠셨어요. ▲크랜필드는 케임브리지 바로 옆에 위치한 곳입니다. 영국으로 간 이유는 1년안에 석사학위를 딸 수 있는 곳은 유럽밖에 없어서였는데, 아주 유익했습니다. 좋은 경험을 많이한 것 같아요. 박사학위를 할 때는 분야가 심층적이고 학문적이어서 좀 달랐습니다. 아무래도 연구 중심이다 보니 차이가 있었어요. -외국어 능력이 상당하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영어를 좋아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회장님 통역을 몇 번 했더니 와전된 것 같습니다. -특별한 전공선택의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냥 어렸을때부터 영어가 좋았고 자연스레 영문학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형님도 영문학도였고, 누님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시라 집안 분위기도 문학적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원서를 통해 여러 문학작품을 접했지만 여기서는 원서로 읽어도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았습니다. 영국에 가니까 "아 이게 바로 그 뜻이구나"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더군요. 영국목장에 가면 양들이 못 나가게 울타리를 밟고 올라서서 나가는 계단문이 있는데 이를 stile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실체를 직접 현장에서 보게 되니 얼마나 놀랍던지요.(웃음) (노연길 팀장 약력) 1954년 출생 (본적 경기 파주) 1973년 파주 율곡고 졸 1980년 중앙대 영문과 졸 1980년 포철 입사 영국 크랜필드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국제금융 전공) 영국 맨체스터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전략경영 전공)
2001.11.28 I 하정민 기자
  • (edaily인터뷰)"시장 정착위해 최선"-한국ECN 사장
  • [edaily] "온가족이 함께하는 경제 공부의 장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정범 한국ECN증권 사장은 "일부에서 야간증시가 국민의 휴식시간을 빼앗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낮에 시간이 없어 투자하지 못했던 직장인들에게 매매 기회를 주고 가족과 함께 투자를 결정할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초로 주식 야간거래중개를 준비하고 있는 이정범 대표를 만나 진행상황과 ECN의 발전방향을 알아봤다. -준비는 어디까지 되고 있습니까 ▲당초 예정대로라면 12월3일부터 개장을 하려했는데 결제이행 보증문제와 관련 증권예탁원과 합의가 늦었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느라 다소 지연됐다. 우선 투자자들에게 사과드린다. 현재 본인가 서류를 금감위에 제출했은데 인가가 나오는대로 개장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거래가 가능할까요 ▲12월3일이 불가능해지면서 내년 1월2일로 개장일을 잡았다. 그런데 그날은 개장식 문제가 있고 호가공개 범위가 확대되는 등 규정이 바뀌는 것이 적지않아 증권사들이 번거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올해말, 즉 12월27일로 앞당길 생각이다. -거래대상은 어떤 것들이죠 ▲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됐거나 등록된 종목이 대상이다. 초기 3개월간은 거래소의 KOSPI200종목과 코스닥의 KOSDAQ50구성종목을 대상으로 한정할 방침이다. 이후에는 전종목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파생상품은 결제문제 때문에 법적으로도 못하게 돼 있다. -거래는 어떻게 체결되나요 ▲거래시간은 오후 4시20분부터 저녁 9시까지 개장한다. ECN시장에서 가격발견기능(가격변동)은 없다. 거래소나 코스닥의 종가로만 거래된다. 투자자들은 HTS를 통해서만 주문을 낼수 있다. 일부 증권사들은 콜센터를 운영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 거래가 가능한가요 ▲일단 출자회사인 28개사에 계좌를 갖고 있으면 매매할수 있다. 앞으로는 비주주 증권사를 통한 거래로 가능할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거래회원제도를 도입해 비 주주증권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부 외국계 증권사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ECN을 이용한 주식불공정 거래도 우려되는데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정규시장을 운용하는 거래소와 협회와 적극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매매와 관련된 자료를 거래소와 협회에 넘겨서 내부자 거래나 시세조정을 적발하는데 사용될수 있도록 협조할 방침이다. 정규시장에서의 시장조치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격결정기능이 없으면 메리트가 없을 텐데요 ▲ 현재로서는 그점이 가장 취약한 점이다. 그렇지만 거래수수료를 차별화하고 있기 때문에 정규시장을 이용하는 것보다 유리할수 있다. 현재 거래수수료는 매매거래 대금의 1만분의 0.65를 징수하는데 ECN에서는 일반거래의 경우 1만분의 0.85를 받지만 1억이상 대량거래일 때는 1만분의 0.35로 유리하다. -ECN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어떤것을 들수있죠 ▲우선 장마감 이후에 발표되는 공시나 여러 재료를 반영해 투자자들이 매매할수 있는 기회를 줄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나 유럽증시를 보고 투자할수 있을 것이다. 가격변동폭이 생긴다면 해외증시가 열리는 시간과 겹칠수 있도록 매매시간을 확대할 예정이다. -가격변동성은 언제쯤 가질수 있을까요 ▲ 정부에게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는 사안이다. 가격변동폭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영리목적의 사설시장이라는 점 외에도 운영의 안정성이나 건전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운영에 만전을 기해서 이러한 우려를 씻을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중복투자가 아니냐는 불만도 있는데요 ▲ 거래소가 시간외매매를 연장해서 하는 것이 낫다는 비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거래소의 경우 회원제이기 때문에 수수료나 가격 등에 대해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며 고객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영리를 추구하는 ECN으로서는 고객들의 욕구를 찾아 틈새시장을 제공할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다양성이라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손익분기점을 어느정도로 보십니까 ▲초기에는 거래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더구나 거래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가격변동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는 것은 시장 전체 거래량의 4%수준이다. 이정도는 국내 증권사의 약정순위로 본다면 8위~9위에 해당한다. -야간주식거래외에도 준비중인 사업이 있나요 ▲일단은 시장을 정착시키는게 급선무다. 나아가서는 정보사업이나 외국과 연계해 사업을 해볼 계획이다. 국내시장이 다져지면 외국의 ECN이나 외국계 증권사와 연계해 국내 투자하는 외국인의 주문을 받기도하고 외국증시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주문을 전달해주는 비즈니스를 해볼까 한다. -ECN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요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증권연구원에서 증권제도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배운 내용을 직접 적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증권사들이 ECN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고 대표를 물색하던중 제가 발탁됐다. CEO로서 부담도 있지만 기존틀을 벗어나 젊은 사람들끼리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데에 재미를 부치고 있다. ◇이정범(李柾範) 사장 프로필 - 출 생: 1960년12월24일 광주 - 80~ 84:서울대학교 경영학과(경영학 학사) - 87~ 90: Syracuse University(경영학 석사 MBA) - 90~ 92: Univ. of Wisconsin-Madison(박사과정. International Business) - 92~ 96: Univ. of Iowa(경영학 박사. Finance) - 84~ 86: (주)대우, 중화공수출부 소속 - 96~ 97: 통신개발연구원(책임연구원) - 97~ 00: 한국증권연구원(연구위원) - 00~ 01: 한국금융공학컨설팅(상무이사) - 현 재: 한국ECN컨설팅 대표이사,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강의·저서) - 96.9~12월: 증권시장론(숭실대학교) - 97.3~ 6월: 재무관리(동국대학교) - 선진증시 이래서 강하다(97년.매일경제신문사) - 주식시장간 전쟁(00년.번역. 한국금융공학컨설팅)
2001.11.26 I 김희석 기자
  •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1인당 10만불짜리 연수(하)
  • [edaily]이번주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은 JP모건의 인력 채용과 훈련 과정을 살펴봅니다. <a href="http://www.edaily.co.kr/board/memoboard/analCnts.asp?idx1=20011123&idx2=233&idx3=KEB4&team_cd=U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1인당 10만달러짜리 연수 1~2년 정도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면 연수 기회가 온다. MT(Market Training)라고 하는 이 프로그램은 1인당 연수 비용만 10만달러에 달한다. 이 연수를 받고 나오면 헤드헌터들이 접근, 인력을 빼가기도 한다. “저는 4개월짜리 코스에 들어갔어요. 처음 한 달은 기초, 나머지 3개월은 좀 복잡한 훈련을 받아요. 원래는 두 번 나눠서 하는데 저는 한꺼번에 다했어요. 사실 JP모건에 입사한 계기도 교육을 중시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차 부지점장이 JP모건 인터뷰 한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죠. MT는 강사진이 화려해요. 하버드, 유펜 등 좋은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분들이 직접 와요. 기초 과정은 우선 매크로 이코노믹부터 시작해요. 그 다음 펀더멘털 데이터의 처리 방법과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어떻게 시장에 영향을 주는지 등을 배워요. 본드(Bond 채권)는 기본이고 FX, 주식, 파생상품 등을 차례로 조금씩 배우죠. 고급단계도 코스는 비슷한데 더 어려워요. 이코노믹을 다시하고 본드로 들어갑니다. 계산기 하나로 모든 채권의 가격을 계산하는 방법을 배워요. FX, 주식, 파생을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실제로 응용하는 것을 배웁니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법, 즉 이러이러한 투자를 해야하는 펀드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연수에 들어온 동기들이 팀을 짜서 그 펀드에 맞는 프로덕트를 만들어서 프리젠테이션을 직접합니다. 본사에서 사람이 와서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이것을 비디오로 찍어요. 나중에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줍니다. 실전과 똑같이 정장 차림에 파워포인트로 작성한 자료를 가지고 설명회를 갖는 거죠. 트레이딩 시뮬레이션 교육도 받습니다. 1년치 트레이딩 데이터를 3시간에 압축시켜서 마치 실시간으로 가격이 변하는 것처럼 만들어요. 70여가지 프로덕트에 대해 모의 트레이딩을 합니다. 3명씩 한 조가 되서 프라이싱을 하고 운용성과를 측정받습니다. 피트(pit 증권거래소 시장대리인들이 호가를 내는 곳)에 들어가서 아웃 크라이(out cry 큰 소리로 호가를 부르는 것)하는 것도 실제와 똑같이 따라합니다. 강의에서 정말 인상적인 것은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소개된 이론을 만든 사람들이 직접 나와서 자기 이론을 설명한다는 겁니다. 예를들면 랠러티브 밸류(relative value 채권수익률 곡선에서 상대적으로 싼 채권을 찾아내는 것) 트레이딩을 처음 고안한 교수가 있다면 그 사람이 직접 와서 강의를 하는 겁니다. 스왑 트레이딩 교과서의 저자가 자기 책 내용을 직강하는 식이죠.”(송 부지점장) 김 부지장은 MBA여서 기초 과정 한 달이 없는 연수를 받았다. 차 부지점장은 MT 연수를 받고 난후 다른 투자은행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연수를 받고 나면 자신감이 생겨요. 시장의 단편적인 것만 알고 있었는데 본드, 주식, 파생 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MT 연수는 주식 세일즈맨, 마켓 리서쳐, 백오피스, 미들 오피스 등 모든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받아요. 백오피스도 프론트오피스에서 뭘 하는지 알아야한다는 거죠. 본드 전문가는 본드 시험보면 거의 A급이죠. 옵션 전문가는 옵션 시험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는 최고죠. 이런 사람들이 아까 말한 프로젝트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각자의 전문 지식을 총동원해서 해답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MT 연수를 같이 받은 동기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고 회사에서 승진도 비슷한 속도로 하게되요. 전세계에 흩어져서도 “아, 이 문제는 런던에 있는 아무개가 전문이지, 저 분야는 동경에 있는 누가 베테랑인데” 이런 식으로 글로벌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MT는 의도적으로 아시아, 유럽, 미국 등에서 온 인력을 다 섞어서 교육합니다.”(송 부지점장) 김 부지점장은 “MT에 가보면 정말 귀신들이 있어요. 얼마나 똑똑한지 너무나 놀랐습니다. 정말 어려운 파생상품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기가 막혀요. MT 연수 결과에 따라 자신의 보직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해요.”라고 말힌다. ◇아시아 진출 전략 송 부지점장은 입사 후 1년 있다가 MT를 다녀왔다. 싱가포르에서 파생 스트럭춰링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JP모건은 아시아 진출 전략의 하나로 미국식 교육을 받은 아시아계 인력을 많이 뽑았다. JP모건은 94년부터 아시아 진출 전략을 세웠다. 아시아에서 직접 인력을 뽑기 어려우니까 뉴욕, 런던에서 헤드급 인력을 파견하고 그 밑에서 일할 직원도 미국에서 뽑아서 보낸 것. 송 부지점장도 입사 당시 아시아의 어느 나라 언어를 할 줄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국계라고 하자, 일단 아시아 시장으로 가서 트레이딩 기법 등을 익히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싱가포르에 있다가 MT를 받고 뉴욕에 잠깐 머물렀다가 홍콩으로 갔다. 거기서 캐피탈 마켓, 파생상품 등을 담당했다. 트레이딩 경험을 쌓고 싶다고 하자 동경으로 보내져서 다소 복잡한 트레이딩 전략 등을 익히게 된다. 99년 6월 서울지점이 생기면서 스왑 딜러로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JP모건은 한국 진출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시켰고 지점 설립후 현지에서 인력을 채용하기도 했다. 김 부지장도 97년 입사후 홍콩에서 기업금융, 캐피탈 마켓, 세일즈를 거쳐 99년 서울지점에 합류한다. 94년부터 시작된 아시아 진출은 97년에 외환위기로 일단 중단된다. 미국에서 채용돼 아시아로 온 인력들이 중간 관리자가 되자 이제는 로컬에서 직접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 JP모건은 팀 책임자를 새로 채용할 때도 팀원들이 인터뷰를 한다. 팀워크를 중시해 이 사람이 들어왔을 때 관계되는 모든 라인에 있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입사여부를 결정한다. ◇교훈과 과제 “JP모건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든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는 그런 분위기에요. 그러나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거만하게 보일 경우도 있습니다.”(송 부지점장) <1900년 뉴욕 월가에 있던 JP모건 본사> JP모건은 100% 영국계 앵글로 색슨 자본으로 세워졌다. 1800년대 세워져서 미국 최고의 투자은행으로서 전통을 만들어왔다. JP모건은 정부 아니면 퍼스트 클래스 기업하고만 거래하는 “자존심”이 충만한 은행이었다. 의회 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JP모건은 왜 광고를 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우리의 존재 자체가 광고다”라고 답했을 정도. JP모건은 간판이 따로 없다. 전 미국인들이 JP모건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굳이 간판을 밖에 내걸 이유가 없다는 것. 99년 JP모건이 TV 광고를 처음으로 했는데 당시 광고 컨셉이 이랬다. 전세계 JP모건 브랜치에서 일하는 사원들의 얼굴이 차례로 클로즈업되고 맨 마지막에 자막이 떠오른다. “I work for JP Morgan” 자존심, 그 이상의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JP모건이 지난해 체이스와의 합병을 선언한다. 투자은행의 대형화와 합병이라는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 송 부지점장 등은 체이스와 합병으로 JP모건 서울지점이 체이스 서울지점과 통합되면서 회사를 떠났다. JP모건이 미국 최고의 투자은행으로서 아낌없이 사람에 투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금융시장에서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보고자의 위치가 서로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나보다 늦게 입사했는데 나보다 위에서 팀을 이끄는 거죠.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열심히 하려는 동기부여가 되요. 잘하면 대접을 받을 수 있고 JP모건은 그런 기회를 줬어요.”(김 부지점장). “우리 금융기관들이 파생 쪽에서 발전하려면 우수 인력을 확보하거나 교육하는 것보다 먼저 인센티브 체제로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인센티브를 강조하면 부작용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밤새워 일할 동력이 생기지 않아요. 우리나라 금융기관도 워킹 레벨은 50% 이상이 MBA인데 그 분들이 모두 미국식으로 충분히 트레이닝을 받았어요.”(차 부지점장)
2001.11.23 I 정명수 기자
  •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그들은 이렇게 연금술사가 됐다(상)
  • [edaily] 미국 보스턴의 한 특급호텔 연회장. 하버드, MIT 등 이 지역 대학에서 JP모건에 입사 원서를 낸 학생들이 3~4명씩 라운드데이블에 앉아있다. 테이블마다 인터뷰어가 한 명씩 앉아서 지원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연봉도 많이 받으실텐데 참 심플한 손목 시계를 차고 계시네요?” 조금은 당돌한 질문이지만 인터뷰어는 빙긋 웃고 만다. “당신은 시계가 없나요?” 주머니에서 줄이 끊어진 낡은 시계를 꺼내며 “대학들어올 때 어머니가 사 주신 시계인데요 아직도 쓰고 있죠. 이렇게 보여도 시간은 잘 맞아요.” “이 카시오 시계 역시 싸고 가볍고 시간도 정확해요. 물론 알람도 되고. 하하하” 94년 MIT 졸업을 앞둔 “송재호”라는 경제학도의 취직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다음날 그는 호텔에 다시 불려나갔다. 2차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카시오 시계”는 이번에 축구 얘기를 꺼냈다. 자신은 축구 광이라고 했다. 우연일까. 나는 고등학교때 축구부였는데… 인터뷰의 절반 이상을 축구 얘기만했다. 그로부터 5년후 “끊어진 낡은 시계”의 주인공은 JP모건서울지점에 스왑 딜러로 발령을 받는다. JP모건은 미국 투자은행 중에서도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JP모건이 지금은 체이스와 합병, “문화적인 혼란”을 겪고 있지만 독특한 사내 훈련 프로그램을 경험한 사람들은 JP모건을 떠나서도 전천후 금융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주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에서는 지난주 인터뷰했던 BOA의 송재호 부지점장, 김기석 부지점장, 차인석 부지점장 등 JP모건 출신들이 평범한 경제·경영학도에서 금융 연금술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미국 투자은행들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내부 인력을 훈련시키는지, 평범한 신입사원이 어떻게 수십억 달러의 복잡한 파생상품을 구상하고 딜을 성사시키는 금융전사로서 “내공”을 쌓아가는지 들여다봤다. ◇250군데 지원서를 보내다 BOA에서 대고객 마케팅을 담당하는 차인석 부지점장도 94년 MIT 졸업과 동시에 JP모건에 입사했다. 차 부지점장은 졸업 당시 무려 250개 기업, 금융기관에 지원서를 보냈다.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우선 학교 성적으로 지원자를 추린다. 인터뷰는 보통 3차례 진행된다. 학교나 학교 근처 호텔 등에서 1차 인터뷰를 하고 2차 인터뷰는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3차는 본사가 있는 뉴욕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차 부지점장의 경우 최종 인터뷰까지 간 경우가 7군데, 입사 오퍼를 받은 곳이 3곳이었다. 차 부지점장은 대학 친구인 송 부지점장과 함께 JP모건에 입사한다. “입사 인터뷰가 좀 재밌죠. 송 부지점장은 시계하고 축구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저는 가족 사항 등 통상적인 것을 물어보더라구요. 성적으로 1차 지원자를 걸렀기 때문에 특별한 것을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JP모건은 인터뷰에서 사람 됨됨이 같은 것을 중점적으로 보는 경향이 었어요.”(차 부지점장) 그러나 투자은행 입사 인터뷰가 이렇게 “인간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원자들을 황당하게 하는 인터뷰도 없지 않다. 차 부지점장이 경험한 “엽기” 인터뷰. “한 번은 모 투자은행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블랙숄즈 공식을 외워보라고 하는 거에요. 학교 구술시험도 아니고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그 쪽 공부를 했으니 공식에 대해 죽 설명했죠. 그러더니 인터뷰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기가 볼펜을 바닥에 떨어뜨릴테니 받아보라”는 거에요. 딜러로서 순발력을 보겠다나요. 나참 기가 막혀서” 투자은행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대학 학부나 MBA를 졸업하고 인터뷰를 통해 선발되거나 인턴 사원으로 들어가 능력을 검증받은 후 최종 채용되는 것. 김기석 부지점장은 유니버스티 오프 위스콘신에서 MBA를 한 후 인턴 사원으로 입사한 케이스. 인턴 시절에는 신입 사원처럼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는다. 도저히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해내도록 요구받는다. “인턴 시절 첫 과제가 모 공기업의 해외채권 발행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그냥 프리젠테이션을 만들라고 하더라구요. 인턴이 뭘 압니까.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과거에 발행됐던 해외채권 자료를 쓸어모았죠. 그 딜이 무척 큰 것이었는데 저한테 일을 맡기고 선배들은 자기 일만 하더라구요.”(김 부지점장) 송 부지점장은 “만약 당시 김 부지점장이 그 프리젠테이션을 실패하면 그때가서 선배들이 했겠죠. 그러나 일단 인턴한테 맡기면 해 내야합니다. 실제로 김 부지점장이 당시 만든 안으로 해외채권 발행 건을 따냈어요.”라고 말했다. ◇화장실에서 꾸벅꾸벅 졸기 JP모건의 신입사원 연봉은 94년 당시 2만6000달러 정도. 당시 환율을 800원으로 계산하면 국내 기업 수준. 그러나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차 부지점장은 “JP모건은 입사 오퍼를 받은 3곳 중 연봉이 가장 적었지만 명망이 있어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신입사원들은 그러나 명망에 걸 맞는 엄청난 대우를 받는다. “기업금융 파트에 배치된 직원들은 처음에는 다 애널리스트라고 불러요. 애널들의 특기가 뭔 줄 아세요. 화장실 가서 꾸벅꾸벅 조는 거에요. 너무 일이 많아서 집에도 못들어가니까 회사에 샤워 시설이 따로 있어요. 처음에는 누구나 4시간 정도 밖에 못자고 일만해요.”(차 부지점장) “수없이 밤을 새웠어요. 일이 너무 많아서 우는 것을 본 적도 있어요. 하루를 꼬박해도 못할 일을 12시간안에 끝내라고 오더가 떨어져요. 불가능하지만 해내야합니다. 입사 초기 1~2년까지는 이렇게 일해요. 토요일, 일요일도 없어요. “완성 못하면 끝이다” 이런 생각밖에 없어요.”(송 부지점장) “이틀밤을 새우고 새벽 4~5시까지 컴퓨터에 자료를 잔뜩 입력했는데 컴퓨터가 멈춰버리는 거에요. 황당하죠. 정말 눈물이 핑 돌아요. 신입사원은 노예나 다름없어요. 너무 힘들게 일하니까 동료들끼리는 친해지죠. 일종의 인격 테스트를 받는 거에요. 그래서 열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연봉도 적은데 끝까지 버텨내는 것은 나중에 돌아올 보상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열정으로 버티며 “나는 모른다. 나는 바보다. 그러니 열심히 배우자. 시키는 것만 하지 않고 프로액티브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자.” 이게 중요해요.”(김 부지점장)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2001.11.23 I 정명수 기자
  • (화제)"사이버수익률게임이 대학원 교재로"
  • [edaily] 사이버수익률게임이 대학원의 강의 교재로 채택되면서 온라인 증권투자의 열풍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화증권(www.koreastock.co.kr)은 지난 99년 4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사이버수익률게임이 대학원의 금융전문가 과정에서 강의 교재의 일부로 채택됐다고 20일 밝혔다. 사이버수익률게임을 강의 교재로 채택한 곳은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개설한 금융전문가 과정(6개월)이며 이 과정의 수강생은 현직 은행의 과장, 차장급의 재무 담당자들이다.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이군희교수가 맡고 있는 실전수익률게임 과목에서 한화증권은 사이버수익률게임 모델을 제공하고 강의진행을 보조한다. 한화증권의 수익률게임대회와 HTS인 이지-넷 플러스를 소개하고 조별로 200만원 정도를 가지고 수강생들이 강의 종료시까지 실제로 온라인거래를 진행하여 실전수익률대회를 갖도록 과정이 짜여져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도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투자론을 통해 주가관련 강의를 하고는 있으나 한 증권회사가 실시하고 있는 수익률게임을 정식 교재로 채택하여 온라인 증권거래의 현황에 대하여 공부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이버거래가 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화증권의 사이버수익률게임은 99년 4월부터 실시하여 현재 8회대회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동안 2,000%가 넘는 고수익자의 등장으로 타 회사가 이와 유사한 대회를 개최하는 등 업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한화증권은 6회대회까지의 우승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투자전략을 소개한 "머니게임의 영웅"이란 책자를 발간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하였고, 역대우승자들은 지금도 투자설명회의 유명인으로 불려다니기도 하고, 또는 펀드매니저로 변신하기도 하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2001.11.20 I 이정훈 기자
  • (CEO인터뷰)빌링은 컨텐츠의 인프라-퓨쳐테크
  • [edaily]"인터넷 빌링 솔루션이 뭐냐고요? 인터넷 상에서의 모든 지불과 과금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인터넷 기업들이 유료 컨텐츠를 제공한 이후 이용자들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말합니다" 퓨쳐테크는 인터넷 컨텐츠기업들에겐 없어선 안될 기업이다.컨텐츠 제공 기업들에겐 "인프라 스트럭처"와도 같은 인터넷 빌링시스템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원 퓨쳐테크 사장은 "인터넷에서의 정보는 "공짜"라는 인식은 이제 점점 사라질 것"이라며 "질높은 컨텐츠를 갖고 있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돈을 벌 수 있어야 하고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과금시스템"이라고 강조한다. 과금형식엔 여러가지가 있다.전화료 같이 사용시간에 따라 돈을 내야 하는 "시간 종량제 과금"에서부터 조회 건수에 따라 돈을 내는 "건수 종량제 과금" ,아예 일정액을 내면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정액제" 등등. 과거 PC 통신에선 주로 시간종량제 과금방식이 채택됐지만 인터넷 환경에선 여러가지 다양한 과금 형식이 필요하게 된다.그래서 탄생한 것이 퓨쳐테크의 "앳빌"솔루션이다. 이 사장의 전공은 기계공학이다.대학을 졸업하고 몸담았던 직장(현대전자,삼천리기계)에서도 기계나 플랜트의 해외영업을 담당했었다.도대체 인터넷과는 거리가 있어도 한참 먼 일이었다.그런데 어쩌다가 "인터넷 컨텐츠",그것도 과금 솔루션에 관심을 두게 됐을까? "기계쪽 일을 하면서도 한계가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주로 상대하던 기업들이 독일 미국 쪽의 선진기업이었는데 국내 기술과는 한 20년-30년 격차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이러다간 평생을 주변적인 일만 하겠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장의 잠재해있던 도전의식을 깨운 것은 빌게이츠였다."평소에 고민만 했을 뿐 실천에 옮기지 못했는 데 빌 게이츠의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을 굳혔습니다.당시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을 많이 읽었었는데 빌 게이츠의 책이 특히 제 마음을 사로잡았죠" 이 사장은 삼천리기계를 "대책 없이" 그만두고 자기사업을 결심하게 된다.그러면서 사업화의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첫째,선진국과 기술적 격차가 많이 나지 않는 아이템을 고를 것 둘째,시설과 자본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업종을 고를 것 셋째,지식과 관련된 지식산업에서 아이템을 찾을 것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큰 원칙이었을 뿐 실제로 사업 아이템을 고르는 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96년 삼천리기계를 그만 둔 이 사장은 38살의 나이로 전산학원에 등록을 했다."뭘 알아야 사업을 할 수 있다.일단은 배우자".그때의 심정은 이처럼 단순했다고 한다.96년초부터 만 1년간 이 사장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자기보다 10년 이상 연하의 학생들과 "놀며 공부하며" 지냈다. 인터넷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때였다."당시 PC통신이 인기였는데 인터넷이 PC통신을 대체할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뭐가됐건 인터넷으로 승부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죠" 처음 자본금 5천만원으로 회사 퓨쳐테크를 설립하고 나서 벌인 일은 웹데이타베이스를 구축하고 여기에 과금을 하는 시스템.그러나 아이디어만 있을 뿐 "기술도 돈도 없던" 이 사장의 사업이 잘 될 리 없었다.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나면 수주가 없고,수주를 따오면 직원들이 나가고 이런 식의 악순환이 계속됐다.이때 전기를 마련한 것은 친구이자 사업동지인 이관희 부사장을 미국 벨연구소에서 영입한 것.이 부사장의 영입으로 퓨쳐테크의 과금 솔루션 개발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곧 IMF관리체제가 닥쳤고 퓨쳐테크는 그야말로 직원들 월급주기도 힘들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일본에 일부 솔루션을 수출했는데 거래선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돈을 못받았고,국내에서도 몇몇 거래선이 부도를 내 타격을 입었습니다.8개월 동안 일이 하나도 없었을 때도 있었죠.그때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못할 짓 많이 했습니다" 99년 중반에 웹DB사업을 접고 개발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마침내 본격적인 인터넷 빌링 솔루션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름도 "앳빌"이라고 붙였다.인터넷의 @을 본따 "@bill"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과금 솔루션 개발이 알려지면서 펀딩도 이루어졌다.산은캐피탈을 비롯해 강원벤처펀드 조흥은행 등에서 투자에 나선 것.자금에도 조금 숨통이 트였다.2000년 2월엔 KAIST가 펀딩에 참여했다.마침내 2000년 4월 완성된 형태의 최종 버전인 "@bill"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상원 사장은 "앳빌의 개발이 끝난 것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퓨쳐테크의 올해 매출 예상액은 약 50억원,순익은 약 10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당초 매출 목표를 약 100억원으로 예상했었으나 인터넷 업체들의 유료화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매출목표도 수정했다.내년엔 8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으며 내년 하반기쯤엔 코스닥 등록도 계획중이다. 이 사장이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직원들과 "꿈"을 공유해 나가는 것."이를위해선 CEO가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이 사장은 강조한다. 신뢰의 바탕엔 이 사장 특유의 경영스타일이 있다.퓨쳐테크 직원들은 매일 아침 직원 조회를 연다.여기선 이 사장도 그저 한사람의 직원으로 참여한다.CEO는 역할이 다를 뿐 회사의 조직원이란 생각에서다. 이 사장은 가끔 조회석상에서 "CEO 수칙"을 외워야 한다.경영진 수칙은 "기술과 경영환경의 변화를 주시하고, 장기적인 전략과 비전을 수립한다""문제의 핵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등 5가지다.이 사장의 책상위엔 "CEO수칙"이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붙여져 있다. 부서장들에게도 수칙이 있다."권한보다 의무를 우선하고 건전한 책임의식을 갖는다" "직원들에게 바라는 본보기를 설정하고,그 모델이 된다" 등이다.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건전한 책임의식""경영진과 리더에 대한 믿음" 등 6가지 수칙을 갖고 있다.이같은 역할 모델을 정립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신뢰감"은 자연스럽게 싹튼다는 것이 이사장의 지론이다. 현재 퓨쳐테크의 고객은 빌링 솔루션을 판매한 회사와 ASP 서비스(일종의 임대서비스)를 받고 있는 회사 등을 합해서 모두 50여개.iMBC를 포함해 유수의 신문사 닷컴과 e신한,e모든닷컴,야후 등이 고객들이다. 퓨쳐테크의 지향점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뻗어가는 것이다.내년 사업계획중에서도 해외진출을 가장 중요하게 꼽고 있다."일단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해하겠지만 궁극적으론 미국이나 선진국 시장으로 파고들 계획입니다.인터넷 빌링은 우리가 가장 앞서 있는 분야라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디지털 컨텐츠 선도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그것이 퓨쳐테크 직원들과 저의 공통된 바램입니다".장기비전을 말하는 이상원 사장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친다.
2001.11.08 I 이의철 기자
  • (정동희의 핫스팟)잠 못 이루는 친구에게
  • [edaily] 잠 못 이루는 친구에게 ▶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법대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영업직에 사회 첫 발을 내딛은 (죽마고우인) 당신에게 대뜸 나는 “이왕에 시작한 고시 공부 좀 더 계속하지, 증권회사에는 왜 들어가느냐?”고 반문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 때 당신은 “고시 공부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이왕 취직할 바에는 증권업종에 종사하는 게 집안의 장남으로 경제적 여유를 빨리 도모할 수 있는 지름길인 것 같다”며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세월은 지나 97년 후반 IMF위기가 닥친 후 불행하게 문을 닫은 몇몇 증권회사에 소속된 당신은 他 증권사로 수평 이동을 한 차례 하여, 어려움 속에서도 더욱 강건하게 늘 공부하는 주식 영업맨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멀리서 받았다. 그 동안 우리는 자주는 못 만났지만, 만나게 되면 「주식쟁이」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뭐가 재미 있다고 주식 이야기를 한 참이나 하며 “당신은 주식 영업브로커의 꿈, 나는 애널리스트의 꿈”을 그런대로 키워온 것 같다. 하지만 지난 주 후반 정말 오랜 만에 당신에게서 전화를 받고, “요즈음 잠이 안 온다,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아닌데…”라는 이야기를 전해 받고 한참동안 잔잔한 슬픔에 동감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마저 절실하게 든다. 나는 스트래티지스트(Strategist)란 직업이 내 천성(天性)이라고 순간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로, 의욕적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사실 요즈음은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한다. 당신이 한 때 경제적 여유를 빨리 도모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증권 영업에 종사하면서, 결과적으로 빚만 늘었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성격은 다르겠지만 나도 한 때 매일 열성적으로 출연했던 모 증권 케이블TV 방송국에 들어가서 시황을 말하기가 두려워, 방송국 주변의 동네를 몇 바퀴씩 돌고 나서야 겨우 스튜디오에 들어갔고, 이젠 이것도 지쳐 그만 두었다. 현실적으로 당신과 내가 몸 담고 있는 주식시장에서 생존의 방법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점을 감안해서, 시장에서 지금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또 어떻게 대처해 가야 되는지 고민해 보기로 하자. ▶ 첫번째 의문점: 「비트 크로스 전략」은 결국 모두가 흉내낼 수 있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NEC·도시바·히타치·미쓰비시 등 일본 4개 메모리반도체 업체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자국 정부에 반덤핑관세 부과를 요구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경쟁업체와의 차별화 전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256Mb 생산 비중을 확대하는 소위 「비트 크로스 전략」등을 통해 가격 정책에 있어 공격성을 띠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일본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놀라워 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겠다. 최근 외국인 투자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공격적 매수세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반도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주장하는 외국계 보고서의 주요 논리 중의 하나가 「한국 반도체 재고의 감소세 반전」이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256Mb 생산 비중에 적극적으로 증대시키는 「비트 크로스 전략」이 다른 경쟁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별 어려움 없이 모방할 수 있는 전략이라, 자칫 256Mb 중심의 공급과잉 부담 요인을 높여 재고정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전문가의 지적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올해 들어 경기선행지수 측면에서도 저점 확인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국내외 경기선행지수가 다시 꺾이며, 상반기 경기선행지수 확인 신호가 「잘못된 신호」였음을 보였다. 이와 같이「한국 반도체 재고의 정점 확인 가능성」이 『(무리한 비트 크로스 전략 등) 끝나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 간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인해, 다시 한번 도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4분기에 영업적자로 반전될 가능성이 많지만, 반면에 시장에서는 소위 「내년도 경기 반전 기대」를 너무나 공격적으로 가격에 반영하려는 분위기이다. 하지만「내년도 경기 반전 기대」가 실제로는 초라한 반등일 가능성이 많다. 즉, WSTS(세계반도체시장통계)는 올해 세계 반도체시장 규모(출하액 기준) 전년비 32.1% 감소한 1,338억 달러 전망하면서,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 당장 美 테러사건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 상업전이 불발로 끝날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반면에 주식시장에서 나타나는 반도체 주가의 게릴라전은 적중으로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 의문점 :「미국만의 10월 금리인하」,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League) 어찌 되었든 최근 미국 주식시장은 흥분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내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선취매한다는 식으로 시장 논리를 풀어가고 있으나, 너무 궁색한 듯 한 인상이다. 미국의 9월 경기선행지수가 약 5년 만에 최대폭으로 하락하고 있는데다, 8월 경기선행지수가 하락세를 나타내며 9.11 테러 사건이 있기 전부터 이미 경기 침체에 빠져 있었다. 특히 공급 과잉을 미국을 기점으로 한 수요 감소가 개선될 조짐도 없고 주가와 상관관계가 높은 경기선행지수마저 다시 꺾이고 있는 양상에서, 작년 이후 지겹게 반복되면서 속아왔던 「경기 반전 선취매」란 녹음 테이프를 또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 있었던 ECB에서 금리를 인하하지 않아 결국 10월에는 「미국만의 금리인하」가 된 셈이다.하지만 미국 집중 체제 시스템에 길들여진 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그들만의 리그(League)」에 동참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계속적으로 믿으려는 모양이다. ▶ 세번째 의문점 :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새로운 블랙홀(Black Hole) 성격이 강한 “강원랜드” 현실적으로 외국인 투자가의 현물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고 증가된 매도차익 잔고로 인해 베이시스가 축소 될 경우 청산을 시도하며 현물 매수를 유발할 수 있는 등 유동성에 의존한 시장 힘도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동성 유입에 대한 기대』가 현 시점에 시장 상승 모티브(Motive)가 되었다고 볼 때, 결국 『유동성 유입에 대한 현실 파악』이 결자해지(結者解之)란 격언차원에서 가장 확실한 시장 하락 모티브(Motive)가 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지난 25일 코스닥에 등록되어 매매거래가 개시된 강원랜드가 제한된 시장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Black Hole)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잠복 되어 있다. 강원랜드가 시가총액이 3조원대를 벌써 기록하여 KTF에 이어 2위로 뛰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직등록으로 인해 「양도소득세와 관련된 세원노출」문제를 해결한 기존주주의 차익실현 자금이 성격상 주식 유통시장으로 재 유입된다는 보장이 약하다. 이런 관점에서 강원랜드의 직등록은 실질적인 주식시장의 유동성 재분배 차원 측면에서 약 5천억원 가량의 유동성 감소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코스닥시장의 대표적인 벤처업종은 결국 진입장벽이 없는 업종으로 정의할 수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진입장벽이 하늘같이 높은 카지노 업종이 코스닥시장에 등록되어 제한된 유동성을 빨아들인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닌가 쉽다. 최근 강원랜드와 관련하여 적정주가를 낮게 제시하거나 주가 전망에 소극적인 애널리스트 등(저를 포함)에게 협박전화 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 주식시장의 슬픈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네 번째 질문 :『(돈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현재의 외국인 투자가」는 어떤 성격이 강한가? 세계의 금융 자본의 핵심을 이루는 미국 금융 자본의 많은 부분이 유대계에 의해 장악된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이야기이다. 돈의 힘에 의해 정치논리마저 영향을 받는 자본주의 속성에 의해, 유대계의 세계적인 자본은 이미 미국의 대외정책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례로, 이스라엘은 지금도 미국으로부터 연간 30억달러 이상을 지원 받는 「미국의 최대 원조 수혜국」이 되고 있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최근 지칠 줄 모르고 한국 주식시장을 공략하는 외국인 투자가의 정체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외국인의 대규모 매수세는 International Equity Fund 유출입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하고 헤지펀드 성격의 자금과 같이 어우러져야만 설명이 되는 수준이다. 사실 많은 헤지펀드 자금이 유태계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지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말레이지아 마하티르 총리가 그 당시 그렇게 조지 소로소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실은 어쩌면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지아와 유대교에 속한 조지소로소」간의 보이지 않는 심리 불일치였는지도 모른다. 지난 9월11일 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 보복 개시 이후 아시아시장에서 보여준 회교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지아의 反美 정서에 당혹한 국제금융 자본』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돈의 힘”에 의존하여 금융 공습을 단행하는 듯하게 적극적인 양상이다. 하지만 현재의 외국인 투자자금의 적지 않은 부분이 헤지펀드 성격이 강한 자금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유입된 자금의 한국 내 체류기간』이 뮤추얼 펀드보다는 짧을 수 있다는 점을 조금씩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친구야, 『주식시장은 결국 부익부 빈인빈(富益富 貧益貧)의 세계』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외국인 투자가의 현물 매도 강도가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거나 미국 주식시장의 변동성 확대 등 외부변수에 대해 이렇다 할 이야기를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 9월11일 테러 이전의 주가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여 가격 메리트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어, 이 지수대에서 개인투자자의 매수세를 적극적으로 기대하기 힘들고, 실질적으로 고객예탁금의 증가세도 답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금주 시장의 주요 관심사는 외국인의 견인 전략이 점차 수확체감의 법칙에 들어가는지 여부를 지켜보는 수 밖에 없겠다. 하지만 현 장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외국인 투자가가 한 가지 중요한 실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수급의 논리와 펀더멘탈의 논리가 혼재되면서 가장 유리한 쪽으로 자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는 머니 게임의 논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스쿠루지 영감처럼 너무 그들만의 잔치를 투기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주목 받는 논리가 결국은 강자가 관심을 가지는 논리일 때가 많듯이, 『주식시장은 결국 부익부 빈인빈(富益富 貧益貧)의 세계』라는 걸 이제는 절실히 깨닫는다. 하지만 미국 집중 체제의 세계 경제 체제로 요약되는 「세계화 시스템」에 이슬람 일부 국가가 너무 소외된 사실이 결국 현 세계 불안의 시발점이 되었듯이, 주식시장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잔칫상을 모두 휩쓸려는 과욕은 또 다른 무리수를 야기시킬 수 있다. 지난 주 친구가 들려준 “요즈음 잠이 안 온다,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아닌데…”라는 이야기가 자꾸만 머리 속에 맴돈다.
2001.10.29 I 정동희 기자
  •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돌다리도 두드려야-국민은행④
  • [edaily]이번주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은 국민은행 파생 및 복합금융상품팀 입니다. (인터뷰 3편에서 이어짐) <고객들의 이해를 도와야> -시장에서 거래하면서 어려운 점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회계규정, 파생상품에 대한 규정이 애매모호합니다. 신용파생을 예를들면 회계처리 규정이 없어요. 과거 은행감독원 시절 만든 것이 있는데 “설마 이런 거래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규정이 모호하게 돼 있어요. 신용파생은 신용(크레딧)에 연계된 파생상품으로 크레딧 디폴트 스왑, 크레딧 링크 노트 등이 있습니다. 발행자의 신용과 연결된 다른 은행의 파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하는데 이를 어떻게 회계처리할 것이냐가 문제죠. 평가 기준도 없고… 고객들의 이해 역시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일반 기업이 됐건 금융기관이 됐건 파생상품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으니까, 초창기에는 일일이 설명해야했습니다. 연수자료도 만들고, 1년에 한번씩 세미나를 열었죠. 한해는 부장이나 임원급으로 그 다음에는 실무자급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파생상품이 왜 필요한가와 상품을 설명하는 책자를 만들었죠. 시장을 개발하고 고객들과 공부해가면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냈습니다. 실무자들은 그래요. “자기는 하고 싶은데 윗사람들이 못하게 한다. 헤지를 하면 좋다. 그러나 1년후 환율이 반대로 가서 헤지를 하지 않은 기업이 이득을 보면 실무자들은 곤란해진다.“ “헤지를 하지 않았을 때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헤지의 출발점인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제조업체가 환율을 가지고 도박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헤지를 무작정하는 것도 좋지는 않죠. 중장기 전략에 맞춰서 재무적인 리스크를 줄이고 영업에서 수익을 내겠다는 플랜이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나쁘게 갈 확률이 10%인데 과도하게 헤지를 할 필요는 없죠. 이 경우는 헤지를 10%만 해야죠. -기억에 남는 거래는. ▲99년 현대자동차와 통화스왑 거래를 한 것입니다. 현대차는 외화 수입이 많죠. 몇 년간 달러가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기업으로 흘러들어오는 자금(In Flow)은 달러이고 빠져나가는 자금은(Out Flow)은 원화인 구조죠. IMF 이후 환율이 빠르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것을 어떻게 헤지할 것이냐 고민하는 것이 맞죠. 우리 팀을 만든 목적에 가장 적합한, 고객의 요구에 꼭 맞는 딜을 성사시켰습니다. 현대차도 그런 종류의 통화스왑을 1억달러 정도한 것은 처음이었죠. 마케팅 담당 팀에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했어요. 그전에는 대고객 거래가 많지 않았는데 현대차와 처음으로 의미있는 대고객 거래를 한 것입니다. 조그마한 기념 패(툼 스톤)까지 만들었어요. <시장에 소리나지 않게,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야> -그럼 반대로 큰 낭패를 봤던 거래는요. 원래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많은 법이니까. ▲실패 사례는 참 껄끄러운데… 배운 것이 많으니까 말씀드리죠. 모 정부 기관하고 한 거래였습니다. 제법 큰 거래였죠. 거래를 하다보면 욕심이 생깁니다. 일단 거래를 했는데 거래하자마자 금리가 요동을 쳤어요. 통화스왑은 금리와 환율이 모두 관련됩니다. 보통 환율의 변동성이 훨씬 크고 헤지 부담도 큰데 이 경우는 거래하자마자 금리가 크게 움직였어요. 올 2월인가 3월인가 채권시장이 크게 출렁거릴때에요. 정부 기관이 외화로 돈을 들여와서 몇 년후 갚아야하는데 현재의 금리, 현재의 환율로 고정을 시키는 거래였습니다. 물량이 제법되고 금리가 갑자기 움직이니까 커버가 곧바로 안됐습니다. 통화스왑(CRS)이나 금리스왑(IRS)이나 헤지를 바로 하지는 않아요. 자체 북이 있으니까 일부는 북에서 커버가 되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헤지를 합니다. 시장에서 헤지해야할 포지션을 커버하려고 하는 순간 시장이 최악의 상황으로 갔어요. 금리가 거꾸로 가니까 헤지하러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누구나 비이성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할만했고 좀 기다려보자 했어요. 결국 헤지가 잘 안됐습니다. 거래를 하면서 배운 것이 많아요. 이런 식으로 혼난 은행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과거 프랑스계 은행의 경우 우리보다 포지션이 훨씬 더 컸는데 시장에서 헤지를 못해서 파상상품 사업부문이 큰 손실을 본 케이스도 있습니다. 규모가 큰 거래를 할 때는 미리 오더를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를들어 5억달러 짜리 거래를 한다면 시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미리 야금야금 들어가서 포지션을 어느 정도 잡아두죠. 시장에 충격이 가지 않게 비드도 냈다가 오퍼도 내고… 포지션을 만들어요. 이렇게 잡은 포지션을 가중평균해서 고객에게 적절한 마진을 붙여서 주는 것이 정답입니다. 무턱대고 거래를 성사시키고 그 다음에 헤지를 하려고 하면 잘 안되죠. 사전에 네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헤지를 하려고 하니까 시장에 소문도 나고 공격대상이 되는 거죠. 금액이 헤지를 못할 만큼 크지 않아서 방심한 측면도 있고, 시장에 소문도 난 것 같고, 금리까지 급변하니까 커버가 제대로 안된거죠. 시장에 소문이 나도 헤지 수단은 다양하니까 얼마든지 커버를 할 수는 있어요. 채권시장이 너무 요동을 쳐서 실패했죠. 결론적으로 어떤 딜이라도 돌다리 두드리듯이 철저히 준비를 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맥쿼리 은행의 철저한 관리 시스템> -상품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시장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연구하고 우연하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수도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환율연계 상품의 경우는 97년에 무슨 경제잡지에서 힌트를 얻었죠. 일본계 은행의 상품을 소개하는데 비슷한 것이 있더라구요. 이게 얘기가 된다 싶어서 파일을 만들어 놨죠. 맥쿼리와 합작을 하고 나서 그 파일을 다시 꺼냈습니다. 맥쿼리와 논의를 하니까 상품 구조가 많이 달라지더라구요. 맥쿼리 쪽에서 사람이 와서 프라이싱이나 상품구조를 직접 논의했습니다. 소매로 팔려면 정보 시스템부에서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야하고 외환업무부의 협조도 필요했어요. 3개월을 왔다갔다한 끝에 상품이 나왔어요. 첫 구상이 97년이니까 3년을 구상하고 맥쿼리와 2개월을 협의하고 그로부터 3개월 후에 선을 보였죠. 이 상품이 생각보다 많이 안팔렸어요. 실망했죠. 근데 맥쿼리 쪽에서 하는 말이 “이런 것이 재산이다. 다른 소매형 상품을 만들 때 여기서 조금만 수정하면 된다. 프로그램도 있고. 이런 것이 재산이다” 이러더라구요. -맥쿼리와 일하면서 이런 노하우는 배워야겠다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연말이 되면 두 은행이 모두 업무제휴팀에 기여한 것을 정산합니다. 맥쿼리가 합작팀에 제공한 서비스와 원가, 우리 은행이 투여한 비용을 계산해서 서로 맞춰보죠. 월급, 미들-백오피스 간접비용, 딜링 룸 공간 이용료까지 계산합니다. 명동일대 임차료 수준에 따라 평수 계산해서 사무실 사용료를 뽑아내죠. 맥쿼리도 시스템 운용비용, 업데이트 담당자의 인건비 등을 다 가져옵니다. 우리는 비용 계산할 때 특별한 근거가 없어요. 예를들어 법률 팀 담당자가 우리 팀에 기여한 것이 대략 50% 정도면 연봉의 절반을 계상하는 식이죠. 첫해에 맥쿼리 쪽에서 비용 목록을 뽑아왔는데 근거 자료가 책으로 한 권이 되더라구요. 기겁을 했죠. 심지어 맥쿼리 본점의 프로그래머가 “O월O일 O시O분부터 O시간 동안 무슨 일을 했다. 어디서 누가 전화를 해서 어떤 작업을 요청해왔다.” 이런 식이에요. 이런 것이 모두 기록돼 있더라구요. 작업이 표준화돼 있어서 어떤 업무의 내부이전 가격은 얼마라는 근거 자료가 다 붙어있었습니다. 첫해에 이런 식으로 명세를 가져오니까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더라구요. 호주 맥쿼리는 BTC의 호주 영업부문을 인수해서 인력이 3000~4000명 정도에요.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그래도 대단한 관리 능력이죠. -유 팀장님(사진)은 어떻게 파생상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84년 입행해서 지점에 잠깐 있다가 당시 국제부에 왔습니다. 그때는 투융자 업무도 없이 외환업무 밖에 없었어요. 수출입 업무죠. 파생상품 업무는 97년부터 했는데 그 전에 외환딜러를 하면서 파생업무를 했습니다. 그때 파생상품 공부를 조금했죠. 우리 은행에 딜러 선발 제도가 처음 생겼는데 제가 1기에요. 그때 5명이 뽑혔습니다. 국내외로 연수를 나갔죠. 싱가폴, 미국 등에서 연수하고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OJT도 받고, 중간중간 시카고에 있는 선물회사와 연결해서 가상 어카운트 열어놓고 딜링도 했습니다. 국민은행이 새로운 업무를 개발한다는 차원에서 교육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독학으로 익힌 블랙숄즈 모델… 스스로 연금술사가 되다> -옵션가격 계산이나 스왑 프리이싱은 어떻게 배웠나요. ▲독학했죠. 97년에 와서 프로그램도 스스로 짜고… 그때 비주얼베이직도 배웠어요. 블랙숄즈 모델을 설명한 원서 구해다가 보기도 하고. 그 당시 파생상품실에 10명이 있었어요. IMF 전후니까 외환 거래가 거의 없었죠. 트레이딩 할 것이 없었어요. 다행히 우리 은행에서는 팀을 해체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외부에서 영입한 실장님이 3개월 사이에 통화옵션만 10억달러를 거래했어요. 골드만삭스같은데서도 국민은행을 큰 손으로 알았을 겁니다. 실장님이 거래하는 것을 보면서 프로그램도 만들고 어깨 너머로 배웠죠. 그 때 낙인(Knock In), 낙아웃(Knock Out) 옵션 거래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웬만한 비주얼베이직 프로그램을 짤 수 있어요. 프로그램 짜서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주기도했죠. 실장은 계약직이고 거래도 많이 하니까 당시 부장이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더욱 긴장도 되고, 프로그램 만들어서 실장한테 보여주니까, 인정을 해주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 나름의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기존 멤버들이 다 떠나갔지만 처음 팀 만들면서 회식자리에서 “우리 실무적인 책을 하나 만들자. 맥쿼리와 업무제휴하면서 겪은 일과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바이블을 하나 만들자. 그 다음 독자 시스템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 멤버들이 지금은 다 흩어졌지만… 지금 시장에서 요구하는 것은 위험은 적으면서 수익은 높은 상품이죠. 정말 연금술사를 원하는 거죠. 그런 요구에 부응하는 상품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스템적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리스크는 적고 수익률이 높은 상품은 불가능하죠. 시장을 전체적으로 보고 차익거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야죠. 시스템적으로 운용되는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식, 채권, 외환을 총괄해서 어느 한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이론을 적용한 그런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장이 항상 효율적일 수는 없거든요. 마찰이 있고 순간적으로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어요. 투자형 상품으로 이런 불균형과 마찰을 이용한 차익거래 상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2001.10.24 I 정명수 기자
  •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산업은행 정해근 금융공학팀장(하)
  • [edaily] 이번주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는 산업은행 금융공학팀의 정해근 팀장 입니다.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기대만큼 실망도 크다… 스카우트 제의와 런던행>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도 몇 억달러씩 왔다갔다하는 파생상품 거래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이걸 모르면 은행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은행을 그만두려고 할 때 갑자기 해외근무를 나가라더군요.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재경부에서 외환 업무 관련해서 나를 특채 사무관으로 데려가려고 했었대요. 재경부 얘기가 나오니까 화급하게 은행에서 해외 근무를 나가라고 한거지요. 시드니같은데 가서 논문이나 쓰면서 공부하고 올까 하고 있는데 런던에 가서 파생상품팀을 세우라고 하더군요. 런던에 같이 갈 사람 골라서 함께 가라고 해서 부랴부랴 런던으로 갔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고속철도공단이 BTC와 1년마다 계약을 갱신했는데 산업은행이 선물환 등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하도록했어요. 여기에 참여했다가 때려치웠다고 하더군요. BTC가 주도하는 거래에 굴욕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자존심상했던 거죠. 고속철도공단도 결국 BTC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94년에 런던에 가셨으면 베어링 은행 사건이 터졌을 때인데 ▲그랬죠. 업무하면서 영란은행이 파생상품에 대해서 어떤 규제의 틀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파생상품 거래를 위해 런던에 간 것이니까 현지 인력 채용이다, 시스템 구입이다, 매우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런던에서 거래 경험이 많은 현지 인력을 채용해서 팀장으로 모시고 나는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그 양반이 딜링을 하고 나는 마케팅을 한거죠. 런던에 내가 있을 때 지금 한일투신에 가 있는 김형익 과장이 서울에서 거래를 했어요. -런던에서 우리 금융기관들은 파생상품 거래를 얼마나 했나요. ▲당시 런던에서 직접 거래를 한 한국계 은행은 우리가 처음이었어요. 국내 은행들은 다른 외국 은행에 의뢰해서 거래를 했죠.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요. 우리가 업무를 시작하면서 국내 은행들도 산은과 거래를 많이 했죠. 지금 리딩증권 사장으로 있는 박대혁 씨가 당시 LG증권 런던법인에 있으면서 한국계 은행들과 관련된 마케팅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은행들은 변동금리로 투자해야하는데 고정금리 상품인 경우가 많아서 스왑을 이용해서 바꿔주곤 했죠. <뼈 아픈 기억…”사소한 것을 잘 챙겨라”> -런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거래는? ▲마케팅 때문에 유럽 본토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외국인 팀장하고 직원들이 무슨 거래를 하나 했어요. 나는 잘 몰랐는데.. 6개월 후 옵션을 행사하는 건이 있었습니다. 한국계 모기관의 채권발행과 관련된 옵션이었어요. 거래 자체는 서울의 북(Book)을 런던에서 대리해주는 형식이었어요. 거래 상대방이 옵션을 행사했다면 우리도 모기관에 옵션 행사를 청구해서 그대로 넘겨주면 되는 건데 옵션 행사일을 그냥 넘겨버린 겁니다. 서울에서도 체크를 안하고요. 옵션을 행사했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한테 유리하니까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옵션 행사를 하지 않았으니 손실이 날 수 밖에 없죠. 한국계 기관에 사정을 얘기했죠. 당시 우리 돈으로 1억5000만원 정도였는데 매정하게 거절하더군요. 우리 잘못이니 어쩔 수 없죠. 어찌나 화가 나는지, 다른 것도 아니고 옵션 행사일을 체크하지 못해서 손해를 봤으니. 그 후로 직원들한테 옵션 거래할 때 감마니 델타니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날짜가 정해져 있는 옵션 행사일같은 사소한 것부터 잘 챙겨야한다고 누누히 강조합니다. <영란은행의 철저함… 준비가 안되면 거래하지 말라> -런던 현지에서 IMF를 겪었는데, 그때 상황은? ▲산업은행은 당시 런던에 현지법인이 있었고 지점 진출은 좀 늦었습니다. 지점은 97년에 만들었죠. 그 때 국내 은행 지점들이 주로하는 일이 해외에서 차입해서 투자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국제시장 분위기가 이상하니까 본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차입해서 투자하는 것은 하지 말자”고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IMF를 맞았습니다. 처음에 종금사들이 달러 구하기가 어려워지더니 점차 전 금융기관으로 확산됐어요. 우리도 런던에서 돈 구해서 본점을 돕기도 했습니다. 런던에서 소중한 것을 많이 배웠죠. 베어링 사건이 터지고 나서 현지에서 파생상품 거래를 했기 때문에 영란은행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하고 무엇 무엇이 필요한지 봤죠. 영란은행은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라, 리스크 관리 체계는 있느냐 등등 영업에 필요한 것을 세세한 것까지 따졌습니다. “이런 영업을 하려면 이러이러한 것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절대 안된다”이거죠. BIS, VaR 등 그때 본 것을 IMF 이후 우리나라 감독기관도 요구하더라구요. <파생상품 “사단” 만들기> -귀국해서 IRS 등 파생상품 데스크를 꾸리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파생상품 거래를 하려면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해야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 법률 전문가가 있어야하고 시스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계, 리스크 매니저, 마케팅 전문가, 딜러 등등 하나의 사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각각의 파트를 조율하는 코디네이터도 있어야 합니다. 코디네이터 밑에 법률, IT, 회계, 리스크 매니저, 마켓터, 딜러 등을 구축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국내 은행들도 인력 투자를 많이 해왔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공부한 사람도 많고 교육기관도 많습니다. 문제는 이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코디네이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죠. -금융공학팀이 자금거래실에서 사람 수가 제일 많아요. 법률 전문가는 어떻게 뽑았나요? ▲우리 은행은 국제 거래를 많이 하니까 국제법, 국제금융법, 로컬법 등을 다 하지 않고는 어렵겠다 생각했습니다. 특히 파생상품 분야는 첨단의 국제법률지식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국내외 변호사를 고용해서 우리가 발행하는 모든 채권, 대출, 심지어 각국에 설치된 지점의 건물 계약서까지 리뷰하는 조직을 만들자고 했죠. 언제 어디서 무슨 법적인 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으니까. 법률 문제를 총괄하는 은행 차원의 자문 조직을 만들자고 제의했지만 잘 안됐어요. 결국 팀을 만들지는 못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직원을 팀원으로 받았습니다. IT 전문가도 한명 있었는데 금융을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더라구요. IT를 담당하던 직원은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합니다. -산은 금융공학팀은 마켓메이킹을 하니까 시장에서 딜링할 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딜러들에게는 무엇을 강조하십니까. ▲”이익이 최선이다. 돈 벌자” 이거죠. 하하하. 마켓메이킹하면 원하지 않는 포지션을 들고 있을 수도 있어요. 쉽지는 않지만 결국은 다 처리됩니다. 그게 노하우죠. 새로운 업무를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무모한 면도 있습니다. 어제했던 일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제일 싫거든요. 새로운 업무 영역을 찾는 것은 좋지만 시장에서 돈 좀 더 벌자고 무리한 거래를 하지는 않습니다. -더 하고 싶은 일은? ▲우리팀의 각 파트를 모두 팀 단위로 발전시키는 거죠. 옵션팀, 스왑팀, Book 및 리스크 관리팀, 마케팅팀 이런 식으로. <”파생상품 거래도 팀워크다”… 수학보다 중요한 융화> -파생상품 거래의 재미있는 점은 무엇인가요. 막연히 파생상품을 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수학을 많이 쓴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부분은 맞는 말입니다. 복잡한 옵션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죠. 이걸 어떤 식으로 풀어야하나, 어떤 공식을 써야하나 고민하죠. 결과가 달라지니까요. 그러나 파생상품 팀원이 모두가 그런 문제에 매달릴 수만은 없어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있는 것을 잘 꿰어 맞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러 개의 블록이 있는데 특수한 블록이 몇 개 있는 거죠. 그건 그때그때 해결하면 됩니다. “이 블록은 왜 이렇게 복잡한 모양이냐” 이런 것도 연구해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블록을 가장 적당한 곳에 잘 배치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정말 어려운 문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다뤄야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복잡해도 분해해보면 해결 가능해요. 분해된 문제를 다시 꿰어 맞출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업무를 즐길 수 있는 사람, 낙천적인 사람, 깨져도 고민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딜러기질, 이런 사람이 좋다고 봅니다. 단순히 시장에 대하여 베팅하는 딜러가 아니고 의욕적이고 주위 사람과 잘 융화하고 팀워크가 맞는 사람이 이 분야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정해근 팀장 약력) -58년 출생(본적 충남 홍성) -77년 경기고 졸업 -84년 서울대 사범대 사회교육과 졸업 -86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2001년 서강대 경영학 박사(국제경영학) -86년 한국산업은행 입행(국제영업부, 외환자금실 등 근무) -94~98년 런던현지법인, 런던지점 -92년6월 재무부 파견근무 -93년 은행연합회 외환시장하부구조 구축 실무대책반 -98년1월 재무부 단기외채 연장 협상 실무팀(뉴욕)
2001.10.16 I 정명수 기자
  • (금융시장의 연금술사들)산업은행 정해근 금융공학팀장(상)
  • [edaily] 우리나라에서 파생금융상품이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으로 역사가 짧다. 통화옵션이나 금리스왑이 본격적인 시장의 모습을 갖춘 것은 98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은행 금융공학팀을 보면 척박한 파생상품 시장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사람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정해근 팀장(사진)은 80년대 중반 산업은행에서 외환, 파생상품 업무를 익혔고 90년대 초반, 현재 금융공학팀의 원형을 만든 장본인이다. 정 팀장은 은행이 파생상품 딜링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요소로 7가지를 꼽았다. 법률, IT, 회계, 리스크 매니징, 마케팅, 트레이딩 등 6개 파트와 이를 하나로 조율할 수 있는 코디네이팅 능력이다. 정 팀장이 딜링 룸에서 파생상품 거래를 할 때는 마땅한 “교범”이 없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여기저기서 전문서적을 구하기도 쉽고, 교육기관도 많으며 해외에서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인력도 많다. 정 팀장은 그러나 “하나의 사단을 꾸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며 “파생상품 거래도 기본적으로는 팀워크이자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정 팀장은 런던 현지에서 4년간 파생상품 거래 및 마케팅 경험을 쌓았다. 귀국해서는 금융공학팀을 이끌며 금리스왑(IRS) 시장 등에서의 마켓메이커를 자임했다. 지금은 외국계 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리나라의 금리스왑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대외거래에 있어서 링펜스(Ring Fence)와 같은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타파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회화 감상이 취미인 정 팀장은 틈틈히 공부해 국제경영학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다. 정 팀장이 파생상품 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수련 과정, 팀을 이끌면서 느낀 우리나라 파생상품 시장의 문제점들을 들어봤다.(인터뷰 하편에 약력 참조) -학부는 사범대학을 나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전공이 바뀌었나요. ▲아주 우연히 그렇게 됐습니다. 대학들어갈 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요. 사회교육과는 중고등학교에서 일반사회를 가르치기 때문에 부전공을 해야 했어요. 사회교육과 학생들이 행정고시를 의식해서 법학 등을 부전공으로 많이 선택했는데 나는 고시볼 생각이 없어서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왔더니 대학 본부에서 부전공 신청한 서류가 없어졌으니 다시 신청하라는 거에요. 지금이라도 부전공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꿀 수 있다고 하데요. 경제학과에서 이미 들어놓은 수업을 다 인정받고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대학원도 경영학으로 들어와 재무관리를 전공했고요. 하하하 <사범대, 경제학, 경영학 그리고 산업은행 입행> -산업은행은 어떻게 입사하셨나요. ▲특별한 생각은 없었어요. 졸업 전에 대우그룹에 취직이 결정됐거든요. 어느날 학교에 한국은행에서 석사학위를 가진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붙었어요. 단 1명을 뽑더라구요. 당시 나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 1명있었는데 그 학생이 군미필이었어요. 학교에서는 “은행은 군 미필이 좋지 않느냐, 대신 너는 산업은행이 어떠냐” 이래요. 그 자리에서 산은 원서를 받아서 제출하고 입행 시험까지 봤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은에 가기로 한 그 친구는 사정이 있어서 면접에 가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참.. -본래 금융에는 큰 뜻이 없었던 것 같네요. 하하하. 산업은행에서는 국제영업부, 외환자금실 등에서 오래 근무하셨군요. . ▲처음 은행업무에서 국제업무가 제겐 블랙박스였지요. 처음엔 신용장업무를 하다가 딜링파트로 옮겼습니다. 당시 대고객 팀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지금하는 파생상품 업무 비슷한 것을 많이 했죠. -본격적으로 옵션, 스왑 등을 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스왑은 87년부터 관계했어요. 88년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에 금융선물 거래가 허용됐습니다. 유로달러, T/B선물, 통화선물 등을 거래했죠. 이런 거래를 하면서 스왑과 선물거래의 관계를 깨닫기 시작하고 프로그램을 짠 것이 89년입니다. 당시 프로그램들은 원형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지금도 쓰고 있어요.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이런 파생상품을 배우지 못했을 것 같은데 ▲스왑 등은 학교에서 개념도 없었지요. 대학원에서 선물을 약간 소개받은 정도였습니다. 옵션은 외국 전문가가 와서 두어시간 특강을 받은 적이 있었죠. 석사학위 논문쓰면서 친구들이 옵션을 주제로하는 경우가 있어서 논문을 보면서 같이 공부했습니다. 저는 은행 대출과 관련된 논문을 썼어요 -이론적인 것과 실제 트레이딩 룸에서 경험한 것은 차이가 있었을 텐데 ▲통화선물 거래는 외환 거래하면서 익혔고 금리스왑은 스스로 프로그램 만들어보고, 책보면서 매뉴얼도 만들고 하면서 조각지식을 엮어서 독학으로 로직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어요. <고속철 TGV 도입…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열정> -94년에 런던으로 가게 된 이유는 뭔가요. ▲사연이 좀 길어요. 94년도에 고속철도관리공단에서 프랑스 고속철도 TGV를 도입키로 했습니다. 달러를 차관으로 들여와서 10여년 동안 프랑화로 대금을 지급하는 조건이었습니다. 10년 계약이니까 프랑과 달러의 환위험을 헤지해야만 했어요. 철도 건설 공기가 빨라지면 자금 집행을 빨리해야 하고 공기가 늦어지면 자금 집행도 늦어지는 조건이었습니다. 고속철도관리공단이 외국계 은행들한테만 환위험 헤지 방안을 의뢰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저기 알아보고 외국계 은행들의 헤지 방안도 몇 개 입수했어요. 가져와서 일일이 검토를 해봤죠. 10여년간 그 외국계 은행에 안정적으로 넘어가는 헤지 비용만 1억5000만 달러가 되더라구요. “이 정도 헤지 기법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했죠. 담당 임원한테 보고하고 입찰에 참여하자고 했죠. 한 달이라는 시간과 컴퓨터 한 대만 더 주면 헤지 방안을 만들어내겠다고 했어요. 94년 3월인가, 영문과 한글로 헤지 계획서를 만들었습니다. 상당히 복잡한 헤지 전략이었는데 “이런 경우에 이 거래를 담당하는 사람은 이렇게 해라”하는 식으로 임무 카드를 일일이 만들었습니다.” <외국계 JP모건, BTC 등 유수 은행과 경쟁하다> 헤지 방안 입찰에는 JP모건, BTC, 산업은행 등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고속철도 건설 감리는 미국의 벡텔사였어요. 벡텔이 재무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컨설팅을 했죠. 헤지 방안 심사도 벡텔이 했어요. 결국 BTC에 낙찰이 됐습니다. 우리가 제시한 헤지 방안이 훨씬 싸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으니 억울했죠. 우리는 풀옵션으로 헤지 팩키지를 짜서 가져갔어요. 반면 BTC는 헤지 전략을 분해해서 기본적인 헤지 전략은 얼마, 여기에 이런 옵션을 붙이면 얼마 하는 식으로 만들어 왔더라구요. BTC의 본체 자체만의 기본헤지 비용은 4000만달러로 추정되었어요. 우리는 공단이 요구하는 풀 옵션으로 해서 헤지비용이 6000만달러 였습니다. 내가 따졌죠. 이게 말이 되냐… BTC가 제시한 옵션을 모두 합하면 1억 달러는 될텐데… 재무부도 우리가 항의를 하니까 곤란해졌죠. BTC는 계약을 했으니 그대로 해야한다고 주장했죠. 한 달간 밤낮으로 고생을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까 허탈해지더라구요.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학위 논문도 써야했어요. 마침 다른 은행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더라구요. 논문 때문에 내 시간이 필요하니까 논문 끝날 때까지 내 시간을 달라고 했죠. 연봉도 비교적 높게 요구했어요. 나중에 은행장보다 연봉이 높을 수는 없다고 해서 무산됐죠. 비슷한 시기에 지금도 유명한 어느 연구원에서도 같이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2001.10.16 I 정명수 기자
  • 김대통령, "내수확대 정책 지속 추진"-국회 시정연설
  • [edaily] 김대중대통령은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이한동 국무총리가 대신 읽은 "2002년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을 통해 대외 여건이 악화돼 우리경제의 어려움이 더욱 심화할 경우 국제수지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내수를 확대시켜 나가는 정책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또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경영정상화 이행을 철저히 점검 관리하고 금융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우리 경제가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향후 세계경제의 회복기에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수출 투자 확대와 사회간접자본 확충", "부품 소재산업 육성과 정보화 기반구축", "미래 핵심 유망기술분야 집중육성], [공공부문 개혁 지속과 전자정부 구현], [지역간 균형발전 대책의 지속 추진", "농수산업 경쟁력강화와 농어가 소득안정" 등 6개 정책과제에 노력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 시정 연설문] 존경하는 국회의장,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오늘 정부가 편성한 2002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그 심의를 요청하면서, 새해의 국정운영 방향을 말씀드리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합니다. 새해 2002년은 21세기 국가와 민족의 진운을 결정할 중차대한 해입니다. 우선 새해는 21세기를 여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 축구대회와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해로서 세계인의 이목이 우리나라에 집중될 뜻깊은 한 해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지방선거와 제16대 대통령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해로서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더한층 성숙시키고, 21세기 세계일류국가 건설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야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2002년은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련과 도전의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9월 미국의 테러참사로 인해 세계는 지금 안보적 경제적으로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미국의 테러근절전쟁 선언에 따라 국제정세가 매우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세계경제 또한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짓밟는 테러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죄악입니다. 저는 충격적인 테러참사를 당한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에 대해 우리 국민을 대표하여 깊은 위로의 뜻을 표하면서, 테러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모든 노력에 적극 동참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이번 테러사태가 초래할 국제정세의 변화와 세계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예의주시하면서, 만반의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비상 대비태세와 국가위기관리 시스템 전반을 철저히 재점검하여 지속적으로 보완 확충해 나가겠습니다. 의원 여러분! 국민의 정부는 지난 3년 반 동안 의원 여러분과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의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3대 국정철학 아래 진정한 민주 인권국가를 실현하고, 21세기 지식경제 강국 건설의 토대를 구축하며,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이 고루 향상되는 선진복지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왔습니다. 그 결과, 상당한 성과도 있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 인권국가가 되었습니다. 권위있는 국제인권기관도 우리나라를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선진국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있으며, 노동3권도 최대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여성의 권익과 시민운동도 전례없는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인권위원회법,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명예회복 등을 위한 법률을 비롯해서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완비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성과는 지난 3년 반 동안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21세기 세계일류 지식경제 강국 건설의 기틀을 닦았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우리는 IMF 지원자금을 예정보다 2년 8개월을 앞당겨 전액 상환했습니다. 금융 기업 노사 공공 등 4대 개혁의 기본틀을 마무리하고, 시장원리에 따른 상시적 구조개혁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특히 세계 최선두에 서 있는 정보화 분야의 성과는 괄목할만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초고속정보통신망 보급률은 세계 1위입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각급 학교의 모든 교실이 컴퓨터와 인터넷망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민년금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과 함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으로 우리나라는 선진복지국가로 가는 튼튼한 기틀을 닦았습니다. 또한 국민들이 실업 질병 노령 빈곤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했습니다. 훗날 역사가 평가할 국민의 정부의 최대 성과는 반세기의 남북 갈등과 대립을 넘어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핵심은 우리의 햇볕정책입니다. 햇볕정책은 남북의 평화공존과 평화교류, 그리고 장차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대안이며, 온 국민과 전 세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 테러사태의 충격 속에서도 국민들이 아무런 동요없이 생활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남북 평화협력의 길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원 여러분! 이러한 모든 성과들은 어린아이 돌 반지까지 들고 나왔던 우리 국민의 뼈를 깎는 자기희생과 고통의 분담, 그리고 구국적 협력의 덕택이라고 믿으며,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2002년의 국정을 새롭게 이끌어 가고자 합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저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우리 역사상 가장 공명정대한 선거가 되도록 할 것임을 국민 앞에 다짐합니다. 그리고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게임을 가장 안전하고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치러냄으로써 21세기 국운륭성의 전기가 마련되도록 최선의 지원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금 모으기 정신"으로 다시 일어선다면 이 어려움을 능히 이겨내고 21세기 세계일류국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반드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의원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안정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은 우리 정치가 진정으로 달라지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희망이 되어야 할 우리 정치가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정쟁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온 데 대해서는 여 야를 떠나 정치권 모두의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한 성찰과 반성의 토대 위에서 우선 경제와 민족문제만이라도 여 야를 초월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동안의 선거 정당 국회 등에 대한 정치개혁 노력도 국민의 신뢰 회복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 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진정한 정치개혁의 방안을 도출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정부는 여소야대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야당과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견지해 나가겠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생산적 국정운영에 여 야가 함께 동참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저 역시 신뢰의 정치, 상생의 정치로 우리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통합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내년도 국정을 분야별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먼저 통일 외교 안보분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북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정착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소명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7천만 민족과 전 세계인의 크나큰 기대 속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6 · 15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에 평화를 뿌리내리고 화해와 협력의 새 민족사를 열어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남북간의 평화협력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큰 흐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난달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6 15 남북공동선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전면적으로 재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서로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남북간 대화 진전을 통해 지금까지 합의해온 사항들을 착실히 실천해 가는 데 더욱 주력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10월 16일부터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하는 것을 비롯해서, 생사확인·서신교환·면회소설치 등 이산가족 교류의 제도화에 주력하여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남과 북을 잇는 동해안 도로도 개설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개성공단, 임진강 수방사업, 남북간 공동어로 사업과 같은 남북 협력사업들을 착실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남북간 인프라 구축사업과 남북 협력사업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군사당국 차원의 협력관계를 보다 심화, 발전시켜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를 정착시키고 점차 평화통일을 이루어가야 할 기나긴 여정을 생각하면, 아직은 시작의 단계입니다. 일시적 상황변화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내심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국민적 합의와 여 야를 초월한 협력이 적극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기조를 일관되게 견지하면서, 결코 서두르지 않고 뜨거운 가슴과 차분한 머리로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국민적 공감대를 더욱 넓혀 나가는 데에도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국회와의 협조를 더욱 긴밀히 하고 각계의 의견도 더욱 폭넓게 수렴해 나갈 것입니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도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는 한 미 일 공조를 보다 공고히 하면서,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조를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이 모든 것의 대전제입니다.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평화도 화해협력도 이룩할 수 없습니다. 확고한 국방력과 한 미 연합방위태세를 견지하는 가운데, 전후방 구별없는 대테러 대비체제를 완비해 나가겠습니다. 21세기형 국방 인프라 구축을 포함하여 우리의 총체적인 국방력량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570만 재외 동포들이 국가발전과 국위선양에 능동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적극 시행해 나갈 것입니다. 특히, 한민족 정보교류의 중심센터로 [한민족 네트워크] 사업을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재외동포들의 모국 발전을 위한 기여를 확대하기 위해 추진중인 [재외동포센터] 건립사업에 대하여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경제분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원 여러분! 최근 대외 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우리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금년 들어 수출이 감소되는 가운데 산업생산, 투자 등 실물경제 전반에 걸쳐 경기둔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특히, 당초 4/4분기부터 점차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세계경제 회복시기가 미국 테러사태의 영향으로 인해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예견되는 모든 사태전개에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기민하게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 대외여건이 크게 악화되어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더욱 심화될 경우 정부는 국제수지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내수를 확대시켜 나가는 정책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이미 확보된 5조원 규모의 추경예산과 금년 본예산중 불용과 이월을 최대한 억제하여 금년내에 차질없이 집행하도록 하고, 금융정책도 신축성있게 운영함으로써 내수를 뒷받침해 나갈 것입니다. 국제원유가격의 불안요인은 원유비축과 에너지 절약, 그리고 석유가격의 조정을 통하여 적극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착실히 대비한다면 세계경제가 회복될 때 우리는 가장 크게 도약하는 나라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 경제의 활성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온 국민의 우리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여· 야의 초당적인 협력과 온 국민의 절대적인 성원을 다시 한번 간곡히 호소해 마지않습니다. 의원 여러분! 앞으로 정부는 지금까지의 경제개혁 노력이 완전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겠습니다. 국내외 여건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구조조정의 지속적 추진과 경제체질의 강화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구조조정과 경기활성화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어야만 우리 경제의 체질이 강화되고, 또 일정수준 경기가 활성화되어야 구조조정도 제대로 진척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경제운용에 큰 부담을 주었던 개별 구조조정 현안이 대부분 마무리 단계에 있으나, 일부 남아있는 현안도 조속히 끝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경영정상화 이행을 철저히 점검 관리하고, 금융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공기업의 민영화와 자회사 정리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행정서비스의 획기적 개선과 정부혁신 노력도 더한층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규제개혁은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나가는 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현장중심의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기업인들이 의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업경영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산업현장에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관행을 확립하고, 투명한 경영 속에 노사가 화합하는 신로사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입니다. 의원 여러분! 정부는 지금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향후 세계경제의 회복기에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다음의 정책과제에 노력을 집중해 나가고자 합니다. 첫째, 수출과 투자를 확대하고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확충하여 경제활력을 조기에 회복시키겠습니다. 중국 등 성장시장과 선진국 틈새시장에 대한 해외 마케팅 활동을 집중 전개하고 2005년까지 500개의 세계일류상품을 발굴·육성하는 한편, 외국인투자 유치활동을 강화하겠습니다. 기업의 투자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금융 세제 지원과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완화 등 기업활동의 여건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경부고속철도, 인천공항 2단계 확장 같은 대형국책사업을 비롯하여 도로 항만 공항 지하철 건설 등 경기진작효과가 큰 분야에 재원을 집중 투자하겠습니다. 매년 55만호씩 주택을 건설함으로써 2003년까지 주택보급율 100%를 달성하여 건설경기를 활성화하고 서민들의 집 걱정을 덜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신항과 광양항을 비롯한 신항만 건설과 지역거점 항만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여 한반도를 동북아와 환태평양 지역의 물류중심기지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둘째,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하여 부품 소재산업 육성과 정보화 기반구축에 역점을 두어 나가겠습니다.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전통 주력산업에 신기술을 접목하여 부가가치를 제고하고, 부품 소재산업을 중점 육성하여 세계적인 부품 소재 공급기지로 탈바꿈해 나감으로써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적극 대응할 것입니다. 그동안 구축한 정보인프라를 기반으로 2002년도에는 정보기술산업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국민과 기업이 원하는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정보기술산업을 성장주도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전통산업의 디지털화를 신속히 추진하겠습니다. 셋째,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과 미래의 지식기반경제의 구축을 위하여 정보통신, 생명공학, 나노산업, 환경산업, 문화산업 등 미래 핵심 유망기술분야를 중점 육성해 나가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연구개발 예산중 차세대 기술분야의 비중을 금년 29% 수준에서 2005년에는 43% 수준으로 대폭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과학고등학교 가운데 2개를 [과학영재학교]로 지정하여 창의성 있는 고급과학 두뇌를 조기 발굴하고 일관성 있게 육성해 나가겠습니다. 대덕연구단지를 첨단 벤처기업의 핵심기지로 육성하는 한편, 미래전략 연구개발 중심의 지식산업단지로 발전시켜 국부창출의 전진기지로 거듭나도록 육성 지원해 나가겠습니다. 넷째, 공공부문의 지속적 개혁과 전자정부의 구현으로 정부의 생산성과 투명성을 제고해 나가겠습니다. 정부혁신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공공부문 개혁과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공공부문에도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2002년말까지 전자정부를 구현하여 국민에게 최고수준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며 정부의 생산성과 투명성을 한층 더 제고시키겠습니다. 다섯째, 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하여 현재 시행하고 있는 기업지방이전대책, 지방건설 유통업 활성화대책 및 지역균형발전추진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지역균형발전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함으로써 지자체 주도하에 지역발전시책이 수립 시행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토록 하겠습니다. 여섯째, 농수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농어가소득 안정을 적극 뒷받침해 나가겠습니다. 특히, 최근 쌀 재고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위해 쌀값 안정을 다각적으로 추진하여 쌀값 하락에 대한 농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논농업 직불제의 헥타르당 지원단가를 현재의 20∼25만원에서 내년에는 25∼35만원으로 인상하고, 농작물 재해보험의 지원대상 품목과 국고보조율을 현재의 30%에서 내년에는 50%로 확대하여 농가의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실효성있는 농가소득 안전장치로 정착시켜 나갈 것입니다. [농촌용수개발 10개년 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하여 안전영농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농업 생산기반을 지속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전통농업에 생명공학기술과 정보기술을 접목한 지식·기술·정보농업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농업성장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가겠습니다. 새로운 어업질서에 발맞추어 어업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자원조성과 함께 기르는 어업을 내실화하고, 어업인과 소비자를 함께 보호할 수 있도록 수산물의 유통구조 개선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다음은 사회복지 국민생활분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OECD 선진국 수준에 이르는 사회보장제도의 기본틀을 갖추게 된 것을 저는 무엇보다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시행된 의약분업도 이제 비로소 그 효과가 일부 나타나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장 단기 일자리 창출과 취업알선, 직업훈련 강화 등 적극적인 실업대책을 추진해 온 결과, 현재 실업율이 3%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에는 사회안전망의 미흡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개선 보완하고 운영의 내실화를 도모하여 제도의 기반이 착실히 정착되는 한 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선, 쪽방거주자 노숙자 등에게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부여하여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을 확충하여 생산적복지의 핵심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건강보험재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하여 지역보험재정에 대한 정부지원을 50%로 확대하고 금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재정안정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여 2006년까지 건전재정 기조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년금의 납부례외자를 축소하고 국민년금 재정의 안정화로 노령 사망 등에 대비한 소득보장기능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의약분업의 시행에 따른 국민불편을 적극 해소하고 잔존하고 있는 일부 불법행위를 지속적으로 단속하여 이 제도가 국민의 생활 속에 조속히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전사업장에 확대적용한 데 이어서 비정규직 근로자, 1개월 미만 고용 근로자 등 모든 근로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다양한 개선방안을 강구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4대 사회보험간의 정보 연계시스템을 구축하고 대민서비스를 더욱 향상시켜 나가겠습니다.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복지서비스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 내년부터는 경로년금 지급범위를 확대하면서 고령사회에 대비한 노인보건복지 중장기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노인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장애인의 생활안정과 직업재활사업 지원을 강화하고, 아동의 건전육성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마련하여 착실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전국민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한 [국민건강증진 종합대책]을 수립 추진하겠습니다. 의료보호대상자와 건강보험가입자중 일부 저소득층 대상으로 조기 무료 암검진 체계를 강화하고 희귀 난치성 질환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의원 여러분! 우리는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에 부응하는 창조적 지식근로자를 육성하고 기능인이 우대받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데 힘을 모아 나가야겠습니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수요변화에 발맞추어 공공훈련기관의 지식산업직종 훈련규모를 확대하고 인터넷 훈련 등을 강화하여, 내년에 근로자 200여만명이 새로운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세계적인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노사의 단합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뢰와 존중, 참여와 협력, 자율과 책임에 기초한 노사공동체를 형성하는 신로사문화를 산업현장에 정착시켜 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적극 협력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정부는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50인 미만의 중소 영세사업장과 조선 건설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산재예방서비스를 강화하여 모든 근로자가 보다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물을 충분히 공급하기 위하여 [4대강 물관리종합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다양하고 환경친화적인 수자원 확보와 강력한 물 절약시책을 통하여 다가오는 물부족사태에도 효과적으로 대비하겠습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는 여성인력의 적극적인 개발과 활용이 크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성의 인적자원개발을 통한 다양한 사회참여 방안을 강구하고 출산, 육아지원 등 모성보호와 가정폭력 성폭력 등에 대한 보호서비스를 확충해 나가겠습니다. 국가유공자의 영예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보훈년금을 인상하고 보훈복지시설을 확대해 나가겠으며, 참전 군인의 명예선양을 위해서 생계보조비 지급과 호국용사묘지 조성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다음은 교육 문화 사회 및 행정분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의 경쟁력은 인적자원의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지식을 창의적으로 습득 활용하는 능력을 가진 유능한 인적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인적자원개발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국가 인적자원개발의 비전을 담은 [중 장기 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을 조속히 확정하여 우리나라가 지식강국으로 더한층 도약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공교육을 내실화하는 데 힘을 기울여 나가겠습니다. 학생들이 쾌적한 교육환경에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교원들은 교육에 대한 사명감과 전문성을 가지고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나가겠습니다. 교육현장의 목소리에도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를 위해, 2003년까지 23,600명의 초 중등 교원과 2,000명의 대학 교원을 증원하고, 2004년까지 1,200개의 학교를 신설하는 등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대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 독려하겠습니다. 2004년까지 응용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는 기초학문 보호 육성을 위해 3,000억원을 투자하고, 대학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립대학 체제개편과 지방대학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국민 누구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평생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국민의 교육기회 균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내년부터 2004년까지 1조 6,700억원을 지원하여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을 단계적으로 완료하고, 만5세 어린이에 대한 무상교육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정부는 온 국민이 함께 문화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문화예술의 기반을 확대하고, 이를 모든 국민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내년 6월에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전국 10개 도시에서 개최되고, 9월에는 40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아시안게임이 부산에서 열립니다. 특히,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산 아시안게임이 차질없이 치러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정부는 두 대회를 통해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파급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다양한 전략을 수립 시행하고자 합니다. 월드컵의 10개 개최도시 모두가 세계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정보기술 강국이라는 국가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또한, 문화콘텐츠산업을 21세기 핵심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전문인력 양성과 문화콘텐츠 개발력량을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경쟁력이 곧 미래의 국가경쟁력이라는 인식아래 이를 위한 다양하고 건전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 국민의 정부 출범이래 부패방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행정제도를 개혁하는 등 부패방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최근에 발생한 금융비리 사건 등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예외없이 엄정히 처리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내년 1월에 설치될 부패방지위원회를 중심으로 부패를 유발하는 불합리한 환경과 제도를 근원적으로 개혁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전자정부의 조기 구현으로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여 부패소지를 없애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부는 모든 공직자들이 흔들림 없이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신상필벌의 원칙을 철저히 확립해 나가겠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는 적극 발탁하여 특별승진을 시키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공직자의 부패행위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히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구현하는 노력에는 완성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인권관련 법과 제도를 지속적으로 정비해 나가는 한편, 금년 하반기에 발족하게 될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의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다음은 앞에서 말씀드린 시책들을 구체화시켜 나가기 위한 내년도 재정운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원 여러분! 정부는 그동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적자재정을 감내하면서 적극적인 경기대응과 경제구조조정에 주력해 왔습니다. 내년도 재정운영은 재정건전화 노력을 지속하면서 경제활성화를 뒷받침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내년도 예산안은 금년 예산보다 6.9% 증가한 112조 5천 8백억원 규모로 책정하였으며, 국채발행규모는 금년보다 축소하였습니다. 분야별 재원배분에 있어서는, 최근의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재정이 경제회복에 활력을 줄 수 있도록 경기진작효과가 큰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렸습니다. 사회간접자본과 주택건설에 금년보다 9천억원이 늘어난 15조 8천억원을 계상하였고, 수출확대와 중소·벤처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3조 5천억원을 반영하였습니다. 또한 지식정보화시대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미래대비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였습니다. 내년도 과학기술 개발투자는 전체 재정증가율보다 2배 이상인 15.8%가 증가한 4조 9천억원을 반영하였습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초고속망 등 정보인프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전자정부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정보화 예산 1조 6천억원을 반영하였습니다. 정부는 2002년까지 1,000만명 정보화교육을 완료하고, 장애인을 위한 정보화사업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정보격차를 해소하여 모든 국민이 경제적 신체적 지역적 여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화의 혜택을 함께 누리는 디지털 복지사회를 건설하겠습니다. 초· 중등학교의 신 증설과 교원증원을 통하여 공교육 내실화 및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중학교 의무교육과 만5세 어린이 무상교육 확대를 위해 교육투자에 22조 3천억원을 반영하였습니다. 아울러 더불어 사는 사회건설을 위해 기초생활보장과 함께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의 자활을 최대한 지원함으로써 생산적 복지의 내실화를 도모해 나가겠습니다.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보호 등 국민의료 보장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였으며, 환경개선과 국민건강 안전 문화 등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투자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정부는 농업용수개발, 배수개선 등 재해예방투자를 확대하고, 농작물 재해보험 대상품목의 확대, 농수산물 수출 촉진, 농업생명공학 연구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농어가 소득향상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2002년 예산안이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고 생산적 복지체제를 내실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회의장,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그동안 저는 정성과 노력을 다해 국정에 임해왔고, 인기없는 개혁과제의 추진에도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새해 2002년도에도 국정의 개혁을 지속하고, 국민 앞에 약속드린 국정과제를 성취하는 데 더욱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2002년이 전진과 도약의 해로 우리 역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의원 여러분께서 힘과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21세기 세계일류의 지식경제 강국을 건설하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열어 나갑시다. 의원 여러분의 성원과 협력을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1.10.05 I 이훈 기자
  • (이진우의 FX칼럼)무늬만 변동환율제(?)
  • [edaily] 1310원이 또 막히는군요. 그리고 다소 흥분상태에서 "달러 롱"을 고집하던(?) 세력들은 또 입이 쑥 나오게 되었습니다. "뭘 해먹을 수가 없어. 옴싹달싹을 못하게 하니" 지난 번 칼럼에서 필자가 언급했던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을 기억하시는지요? 지금과 같은 규모와 저변 하에서 서울 외환시장의 참여자들은 대형(大兄:Big brother)의 의사를 거스르다가는 실려 나가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환율은 분명 변동환율제 하에서 움직이는 환율입니다만 조금은 특이한 변동환율제임을 기억하면서 거래에 임해야 합니다. 좀 서글픈 면도 없지 않지만, 그것이 이 바닥에서 장수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나라의 환율제도 해방 이후 고정환율제도(45.10~64.5.2), 단일변동환율제도(64.5.3 ~80.2.26), 복수통화바스켓제도(80.2.27~90.3.1)를 거쳐 1990년 3월 1일부터 현행의 시장평균환율제도로 바뀌어 오는 동안 환율변동성은 점차 증대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조선은행권인 원화(圓貨)와 미국 달러화와의 환율을 1불당(弗當) 15원(圓)으로 정함으로써 환율제도가 시작되었다는데, 원(圓)이니 환(환)이니 하는 개념잡기 어려운 이야기나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어려운 공식 ER = β · SDR바스켓 + β" · 독자바스켓 + P(실세반영장치), β+β"=1 가지고 시장의 실제 수급상황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데다 쓸데없이 대외적으로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의심이나 받던 복수통화바스켓 제도도 이 시점에 공부할 필요가 없으니 현행 제도의 변천사나 살펴보도록 한다.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채택하면서 ±0.4%로 정해졌던 일일변동허용폭은 이후 매년 확대되어 1995년 12월 이후 ±2.25%로 확대되었다가 1997년 11월 20일부터 상하 10%까지, 외환위기를 맞으며 달러 값이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이 되고부터는 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1997년 12월 16일부터는 변동폭이 폐지되어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도가 되었다. 지금도 주식시장에는 ±15%의 상하한가 제도가 있으니 이론적으로야 원/달러 시장이 제일 화끈한(?) 시장이 될 여건은 갖춘 셈이고 그 화끈함을 우리는 4년 전에 원없이 겪어 보았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하루동안 이루어지는 환율변화가 전일 대비 10원 이상을 넘어가기 힘드니 116엔에서 117엔 중반까지를 우습게 올라서고 120엔에서 118엔까지도 가볍게 내려서는 엔/달러 시장에 비하면 원/달러 시장은 상당히 안정적인 시장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서울외환시장의 가장 큰 참여자인 "당국"이 버티고 있음을 꼽을 수 있다. ◆개입의 순기능과 역기능 외환당국의 개입(Intervention)도 엄연한 환율변동 요인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엔화강세는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 재무성은 시장에 개입할 준비가 되어있다."라는 식으로 노골적인 구두개입을 단행하고, 심지어 추분절로 동경시장이 휴장한 어제만 하더라도 런던시장에서 BOJ(일본중앙은행)가 달러매수/엔화매도 개입을 단행하여 116.40대의 엔/달러 환율을 117엔대 위로 끌어올린 뒤 "우리에겐 휴일이 없다."라고 득의양양했던 구로다 재무관을 보더라도 개입은 죄악이 아니다. 하루 1조 달러가 거래되는 국제외환시장에서도 개입이라는 수단을 통해 과격한(?) 환율 움직임을 바로잡아 보겠다고 각국 중앙은행들이 나서는 판국에 하루 기껏 20~30억불 가량의 거래량으로 치고박는 서울 외환시장에 당국의 정책적 매수세나 매도세가 없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걸핏하면 노 비드(No bid), 노 오퍼(No offer) 사태가 발생하는 엷디 엷은 서울 원/달러 시장에서 당국의 개입성 물량은 우선 유동성을 제공해 준다. 쉬운 말로 견딜 만한 레벨에서 손절매(Stop-loss)는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고마운 개입이라는 뜻이다. 열심히 사고 파는 은행이라 해 봐야 시중은행과 외국계 은행 합쳐서 열 손가락도 채 못 꼽는 서울에서, 그리고 굵직한 매수세나 네고물량에 한 방 맞으면 금방 천정이 없고 바닥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움직이는 서울 외환시장이 그나마 "시장" 흉내를 낼 수 있는 것도 당국의 정책적 매수세나 매도세가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필자는 최근 당국이 설정한 지나치게 좁은 레인지에는 불만이다. 최근 엔/달러 환율이 120엔의 하향돌파 이후 116엔 초반까지 떨어지던 시기에 서울에서 1280원(엄밀하게는 1275원)이 단단하게 지지되었던 것은 당국의 1280원 방어의지 때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때 시장이 가겠다는 대로 내버려 둬서 환율이 얼마까지 떨어지다가 자율적으로 반등하는가는 한 번 쯤 지켜볼 만한 것이었다. 1260원까지 내려갔더라도 엔/달러 환율 116엔에 맞추어 보면 원/엔 환율이 1086원 정도로서 "수출경쟁력"이 그다지 위협받을 수준은 아니었다. 설사 1250원까지 밀려났더라도 우리가 익숙한 원/엔 환율인 1050원보다는 27원 넘게 높은 수준이었다. 테러사건 이후 웬만한 통화들이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줄기차게 약세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촌스러운(?) 원화이기에 가만히 내버려 두었더라도 증시의 약세와 역외세력의 약간의 입질에도 환율은 회복될 수 있었고, 그랬더라면 지금쯤은 엔/달러 118엔 회복과 그에 따른 1280원 회복공방이 다시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방향성 모색에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수출도 해야겠고 물가도 잡아야겠고 불안한 환율이 증시에 가담한 외국인들을 내몰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한마디로 당국에서 너무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려는 데에서 오는 부작용이다. ◆이젠 또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하나? 화요일(9월25일) 아침 개장과 동시에 국책은행의 매도세가 나오고 김용덕 재경부 국제업무 정책관의 구두개입(외환시장 내 불안심리가 지나치게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경상수지 흑자기조 지속되고 연말까지 외국인 직접투자자금 30억달러 공급될 전망, 역외시장 동향 특이사항 없으며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순유출 규모도 과다하지 않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1310원 돌파는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1320원 아니면 적어도 7월 24일 기록했던 전고점인 1314.50원이나 가서 어떤 액션이 취해지지 않을까 했던 시장의 예상과는 달리 1309원도 찍어보지 못한 채 일단 맹렬했던 달러 매수세에는 제동이 걸렸다. 당국이 제시한 "적정 레인지"는 1280~1310원 정도로 굳어지는 셈이며 이번에도 차트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면서 좌절하게 되었다.(기술적으로는 지난 월요일 1303원으로 개장하면서 심리적 저항선인 1300원을 갭 업(Gap-up)으로 돌파하고 꼿꼿한 양봉을 형성하여 패턴분석법이나 시장특성분석법 등에 따르더라도 추가상승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뉴욕증시의 반등(낙폭과대에 따른 기술적 반등이라 하더라도), 유가의 급락세, 과도한 원/엔 환율의 상승 등이 원/달러 환율의 추가상승을 주저스럽게 만들 만한 시점에 당국의 구두개입과 실제 국책은행을 통한 매도세가 9월 12일 1282원을 기록한 이후 무섭게 치솟아 오르던 원/달러 환율에 급브레이크를 걸며 지난 5월 이후 익숙해진 박스권의 돌파여부는 조금 더 고민한 뒤에 결정하자고 나섰다. 아무리 물량이 없다지만 그래도 일년 중 가장 큰 네고장세라고 알려져 온 추석 전 일주일간임을 감안하면 환율상승에 확신을 갖고있는 롱플레이어들도 이번 주 남은 기간에 당국과 맞서 가며 원/달러 환율을 기어이 1320원 근처까지 올려 놓아야겠다고 나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지난 2주간의 장세에서 원화의 속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위기에 약한 통화"... 세계 통화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여도, 유가가 안정세를 보여도, 여전히 경상수지가 흑자를 지속하여도, 어수선하면 여지없이 똥값이 되는 통화가 한국의 원화였다. 외국인들의 국내 증시에서의 순매도 공세가 가라앉기 전에는, 벼르기만 하고 정작 공격에 나서지 못하는 미국이 어딘가를 치고 그 결과 향후 국제정세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 가닥이 잡히기 전까지는 매수세가 잠잠해질 뿐이지 그 세력들이 매도로 돌아서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뉴욕증시가 오르면서 엔/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엔화약세를 핑계로, 뉴욕증시가 하락하면서 달러가 약세로 돌면 증시하락을 핑계로, 서울에서는 달러매수에 나서겠다는 세력은 여기저기 눈에 띄지만 보유달러를 남보다 앞서 처분하겠다는 세력은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다. 엔화와의 연계고리는 확실히 많이 느슨해졌다. 앞으로는 뉴욕 주식시장의 장세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월요일 밤 다우지수와 나스닥의 반등에 힘입어 모처럼 큰 폭의 상승세로 시작했던 화요일 증시가 오후 들어 다시 추락하고 있다. 나스닥 지수선물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일 게다. 엔/달러 환율이 하락조정의 기미를 보이지만 증시가 마이너스로 돌자 오후 들어 달러 매수세가 다시 강해지고 있다. 다시 "주식 장세"로 돌아서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시장은 항상 옳다(Market is always right)."라는 명제에 동감한다면 1300원 돌파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근처에서는 저가매수를 노려봄 직 하다. 그러나 환율상승에만 너무 집착하여 그 날 그 날 변화하는 주변여건 중의 환율하락요인 (엔/달러 환율의 하락지속, 유가의 하락세, 무역수지 등등)을 애써 외면하는 우를 범하다가는 자칫 상투를 잡을 수도 있다. "아직은 박스권"이라는 생각으로 기준율 대비 크게 하락하여 시작하는 날은 매수로, 기준율 대비 크게 올라 시작하는 날은 매도로 짧게 끊어치는 타법을 구사하는 것이 당분간은 유효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월 포지션 없이 장 중 거래로 큰 돈을 벌기는 힘든 장세가 앞으로도 한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벌든 터지든 얼마간의 포지션을 이월하지 않고서는 다음날 하루 종일 스크린만 쳐다보다가 집에 가게 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2001.09.25 I 이진우 기자
  • (정동희의 핫스팟)돈의 힘과 유동성 함정
  • [edaily] 약효가 떨어지고 있는『돈의 힘』 한국은행이 지난 주 역사상 처음으로 2차례 연속 콜 금리를 인하한 뒤,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유입 기대』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低 금리효과를 막연하기 기대하기 이전에, 점검해야 될 요인들이 많이 잠복해 있다. 低 금리와 관계된「돈의 힘」이 가지는 한계를 주식시장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Ⅰ.「금리와 주가의 반비례관계 법칙」은 무너졌다! 흔히들 경제학이나 재무관리 책에 보면,「금리와 주가의 반비례관계」에 대해 절대절명의 법칙처럼 서술되어 있다. 상식적으로도 금리가 올라가면 은행예금으로 돈이 더 몰릴 것 같고, 금리가 내려가면 주식시장으로 돈이 더 몰릴 것 같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상식 속에「탁상공론의 함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 1 : 99년 이후 종합주가지수와 회사채 수익률 간의 비교 차트】 즉【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99년 이후 종합주가지수와 금리 간의 상관관계가「逆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오히려「正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99년 이후 종합주가지수와 3년 만기 AA-회사채수익률의 상관관계를 구하면 69.2%로 상당히 높은 正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2. 과연「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을 자신 있게 배격할 수 있는가? 금리가 떨어지면 일반적으로 소비나 투자를 늘리게 마련이나, 금리가 너무 떨어지면 오히려 가까운 미래에 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 채권을 매입하지 않고 현금을 보유하려는 성향이 높아지는 현상을 소위『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라고 일컫는다.이러한「유동성 함정」의 엄격한 정의를 주식시장 측면에서 풀이한다면, 「금리는 내려가는데 주가는 안 오르는 현상」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식시장 측면에서는「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현상을 자신 있게 배격할 수 있는 상황증거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실제로 99년 이후 금리와 주가의 正비례관계를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난 7월 금통위에서 많은 논란 끝에 콜 금리 인하를 실제적으로 단행한 소식이 알려진 후 주식시장은 오히려 하락했고 고객예탁금은 오히려 감소했다. 실물경제 측면을 떠나 주식시장 측면에서는 이번 8월 콜금리 인하의 적절성과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低 금리 기조로 인해 오히려 아파트 전세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월세가 넘쳐 나면서 低 금리현상이 부동산 시장 과열의 주 원인으로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低 금리 기조로 수혜를 입은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즉, 실질적으로 低 금리로 수혜를 받는 주체는 일반 서민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한계기업의 구조조정만 연기시켜 놓은 결과만 초래한 것은 아닐까?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低 금리에 따른 괜한 강박관념으로 자신도 모르게 위험선호 경향만 높이는 가운데, 펀더멘탈의 심각한 고민 없이『돈의 힘』을 어느새 추종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되지 않을까? 세계적인 금융완화 기조 연장선 上에서 우리나라도 경기부양을 위한 콜금리 인하조치가 단행되고 있지만, ⓐ 작년 11월 이후 지속되는 설비투자 감소세, ⓒ 현실화되지 않는 주식시장 주변의 유동성 개선 등을 감안하여 실질금리가 이미「통화정책의 효과를 제한할 수 있는 한계금리 수준」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접근이 향후 투자전략 측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할 것 같다. 3.『돈의 힘』을 과신했다가 고생하고 있는 중국 주식시장 중국의 주식시장은 작년 전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에도 견고한 흐름을 보였고 특히 올해 연초에는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중국정부가 상하이와 선진의 B주식들에 대해 내국인 거래를 허용한 이후 중국 일반인의 자금과 타이완 자금의 돈이 물밀듯이 들어와, 중국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초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현상 속에서도 중국은 탄탄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2분기에도 7.9% GDP 성장률을 보여 주었고 WTO가입 및 올림픽 유치 등 대형 호재가 나타나는 와중에, 화려했던 중국의 상하이와 선진의 B주식은 두 달 반 만에 50% 폭락하는 버블 붕괴현상을 겪고 있다. 이를 통해 돈의 힘으로 시세를 만드는 한계와 그 후유증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겠다. 【그림 2 : 작년 이후 중국 상하이B주와 선진B주의 주가 등락 추이】 4. 『돈의 힘』으로 변동성을 줄였으나 그 약효가 한계에 오고 있는 나스닥시장 【그림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근 나스닥시장 변동성이 올해 들어 가장 안정적인 흐름을 두 달여 동안 보여왔다. 그러나 변동성이 축소되는 와중에서도 고점과 저점이 낮아지는「전형적인 하락 채널型」을 보여왔다는 점에 주목해야겠다. 특히 변동성의 축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심리적 지지선인 2,000Pt선을 다시 하향 이탈하여, 향후 2,000Pt선이 의외로 강한 저항선으로 반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즉, 일시적으로 2,000Pt선을 회복할 수는 있어도, 기조적으로는 다시 한번 저점을 확인하는 쪽으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할 수 밖에 없겠다. 【그림 3 : 올해 이후 나스닥지수 일봉 차트 上 변화 추이】 5. 「펀더멘탈」이 아니라『돈의 힘』으로 버텨 가고 있는 주가 그러나『돈의 힘』으로 해결 안 될 수 있는 것은 ① 자식 교육 ② 골프 ③ 주식이다 향후 주식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에 가장 직접적이고 속 시원하게 답해보라고 누가 묻는다면, “「펀더멘탈」이 아니라,『돈의 힘』으로 버텨 가고 있는 주가”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림 4 : 종합주가지수와 태평양 주가의 비교 환산 차트】 그림【종합주가지수와 태평양 주가의 비교 환산 차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돈의 힘에 의존한 시세 형성은 이미 現 주가에 이미 반영되어 있고, 지금부터는『低 금리와 성급한 경제 회복 기대감들이 부추긴 자금 유입을 정당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인 펀드멘탈 상황』을 더 고민해야 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태평양은 올 상반기에 영업이익 측면에서 전년동기 비해 32% 가량 증가했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는 연초 대비 한 때 3배 가량 급등한 주가 흐름을 정당화하기에는 역 부족해 보이며, 그 이면에는 바로 수급측면에서「돈의 힘」이 너무 과다하게 반영했다는 메커니즘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주 한국은행의 콜 금리 인하 이후『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유입 기대』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음. 그러나 『돈의 힘』으로 해결 안 될 수 있는 것을 세 개 꼽으라면, ① 자식 교육 ② 골프 ③ 주식을 꼽을 수 있지 않나 생각됨. 공부에 소질이 없는 자식에게 소위「고액 과외」를 무제한적으로 해준다 해도 천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고, 운동에 소질이 없는 사람에게「박세리나 소렌스탐」에게 직접 배운다고 해서 더블보기가 근본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세계 경기 침체 현상이 당초 예상과 달리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고 수출 채산성이나 규모 측면에서 2년 연속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低 금리로 인한「돈의 힘」에 대한 의존도는 날로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우리 주식시장의 현 주소다. 펀더멘탈이 약해지고 있는 우리 주식시장에게 소위「돈의 힘」으로 밀어붙인다 해도 펀더멘탈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식교육과 골프 사례를 통해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6.『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나온다!』 종합주가지수가 550Pt선 이상에서 성급하게 매수에 참여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판단 근거의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로 인해『이번 장세가 지난 7월 하락 장세와는 성격 자체가 많이 틀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첫째, 7월과 달리『미국 기업실적의 정체 지속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최근 Firstcall/Thomson Financial이 S&P 500 지수 기업의 올해 4분기 실적을 당초 전망한 12.6% 증가세에서 대폭 하향 조정해 3분기와 같은 정체 수준으로 입장을 번복했다. 둘째, 7월과 달리『D램의 약세 지속기간』이 상당기간 연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인텔의 CPU가격인하가 자칫 하이닉스·NEC 등의 감산 효과를 제한하면서 실제로 신학기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D램 경기가 예상 밖으로 썰렁할 수 있는 위험이 잠복 되어 있는데다, 일부 (영향력 있는) 외국계 반도체 애널리스트의 경우 최근 반도체산업의 설비투자가 내년에도 추가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경기불황을 타파하기 위한 정부정책 변수와 관련하여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효과를 각각 제한할 수 있는「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과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 가능성」을, 한계금리 수준 근접 가능성과 부동산시장 과열 등으로 인해,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요인들을 감안할 때, 당분간 성급하게 저점 매수에 참여하는 접근보다는 짧은 반등이라도 최대한 이용하여 현금비중을 확보하여,「혹시 있을지 모를 어려운 시기를 준비하는 전략」이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특히 시장 참여자들의 매매동향을 유심히 살펴보면,「방향성 진행 여부를 확인하고 매매하려는 심리」가 강한 느낌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메커니즘은 항상 냉혹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향성 진행에 대해 확신이 생길 때쯤에는 이미 급하게 상승하기 시작했거나 툭툭 하락하기 시작하고 난 뒤가 되기 쉬움. 특히 최근 모멘텀 플레이(Momentum Play)式 시장흐름이 만연하고 있어, 너무 장고(長考)하다 보면 악수(惡手)가 나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 상황은 ”「펀더멘탈」이 아니라『돈의 힘』으로 버텨 가고 있는 주가”로 요약되는데, 『돈』으로 많은 것을 살 수 있어도『취약해지고 있는 펀더멘탈 자체』를 살 수는 없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2001.08.13 I 정동희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⑮지동현 조흥은행 상무(하)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조흥은행의 지동현 상무 입니다. (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은행경영을 전공하셨으니까 이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채권투자를 포함, 은행이 자산운용을 하는 것이 너무 주먹구구 식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흥은행을 포함해 큰 은행들이 수 조원씩 채권투자를 하면서도 이코노미스트 하나 두지않는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딜러들의 동물적 감각이나 외부의 리포트에 의존한다는 것은 너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옳은 지적입니다. 문제점이 많아요. 딜러들이 이코노미스트와 스트레티지스트의 역할을 겸비하고 있다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죠. 지속성도 떨어지고. 현재 그런 역할을 담당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인재를 키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는데 그 일을 안 하려고 해서 문제에요. 몇몇 직원들에게 이미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는데 다들 거절했거든요. 물론 은행 경영연구소에 이코노미스트들이 있어서 거시변수는 대충 파악하고 있습니다. 스트레티지스트의 역할은 트레이더를 관리하는 차장급이 맡고 있는데 직접 트레이딩을 안 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트레이딩을 하지않고 전략을 짠다는 건 어렵죠. 저는 스트레티지스트도 딜링을 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물론 딜러들처럼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는 없겠지만 고유 계좌를 가지고 운용실적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내부에서 키우려니 대부분 관리자급이라서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권유는 계속 하지만 잘 안되네요. 앞으로 그 자리에 앉는 사람에게는 스트레티지스트의 역할을 맞길 겁니다. 더 전문화 시켜야죠. -은행 자산운용에서 의사결정 구조를 체계화시킨 이론은 없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Optimal Asset Allocation 이죠. 자산이 100억이라면 대출, 채권, 주식 등등에 각각 얼마를 할당했을 때 최대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를 연구하는 겁니다. 예전에 은행 컨설팅업무를 맡으면서 그 일을 담당했는데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극도로 까다롭습니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미리 기대수익률을 예측하지만 나중에 나온 결과는 전혀 딴판일 때가 대부분이거든요. 연초에 대충 틀을 정리하는 정도의 작업은 합니다. <”올해는 목표달성 못합니다"> -미래에셋투신 김경록 대표께서 "우리나라 기관들이 자산운용을 하면서 위험관리 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직급에 맞는 권한과 책임을 질 수 있는 운용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셨거든요. ▲저도 동의합니다. 그동안 한국 은행들은 거기에 대해 전혀 대비를 안 했어요. 우리 은행도 제가 와서 그나마 첫 걸음을 디뎠다고 봅니다. -입행 후 4개월이 지났는데요. 소감이 어떻습니까. 일차적인 목표는 물론 목표수익률 달성이겠군요. ▲저는 목표수익률 달성 못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위행장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죠?(웃음) -아니 그건 무슨 말입니까. 하하 ▲제가 몇 번 "올해는 목표달성 못하겠습니다"라고 보고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이제 5~6월인데 벌써부터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나?"고 하시길래 "애초에 목표가 불합리하게 설정됐는데 어떻게 맞춥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선진국 은행들은 애당초 목표라는 것이 없다고 덧붙여서 말입니다. 목표를 설정해주면 리스크관리가 전혀 안돼요. 그걸 맞추려고 아둥바둥하다보면 지를 수 밖에 없거든요. 그러다가 손해나면 누가 타격을 입습니까. 결국 행장께서 책임지셔야 하는 건데요. "목표를 안 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시장의 벤치마크 수익률과 비슷한 성과를 내면 잘 한 겁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행장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지금까지 충분히 잘했으니까 벌어놓은 거 까먹지는 말라고 하시더군요. 벌써부터 못한다고 아무데나 얘기하지 말라면서요.(웃음) -학교나 연구소에만 계시다가 본격적인 조직생활은 처음 하시는데...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관리합니까. ▲제 밑에 300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저만 쳐다보고 있는거죠. 제가 조직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좋은 비즈니스맨이 될까" 하는 생각은 늘 가져왔습니다. 입행 후 처음 한 달동안 직원들과 일대일로 식사할 기회를 자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죠. "본부장으로서 내가 해야할 역할은 첫째, 우리 본부에 부여된 목표이익을 달성하는 거다. 실제업무는 여러분들이 하는 거니까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주는 것이 둘째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국내은행에 CFO제도가 없지만 앞으로는 분명히 생길거니까 여러분들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어떤 식으로든 뒷받침을 해주겠다." "뒷받침을 하려면 내가 알아야 해줄 수 있으니 여러분들이 무엇을 잘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달라. 우리 열심히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메일이든 직접방문이든 방법은 아무래도 좋으니 나에게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해라. 내 방문은 항상 열려있다고 말이죠.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도 안 왔어요.(웃음) 그래서 제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캐주얼한 상태에서 한 사람씩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은행도 하나의 기업인데 기업가치를 높이는 사람이 최고의 은행장이죠.”> -은행장이 꿈이라고 하셨는데 바람직한 은행장 상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은행경영 전략에 대한 소신도 듣고 싶군요. ▲금융연구원에 있을 때부터 "내 꿈은 금융연구원장이나 은행장 둘 중의 하나다" 라고 말하곤 했어요. 조흥은행에 와서도 몇 번 말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고운 눈초리로 안 보더군요.(웃음) "당신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다. 왜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거부감과 경계심리가 일어나게 만드느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거죠. 그렇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그 후 오히려 그런 말을 더 많이 합니다. 하하 바람직한 은행장 상이야 뻔한 거 아닙니까. 은행도 하나의 기업인데 기업가치를 높이는 사람이 최고의 은행장이죠. 누가 은행의 가치를 어떻게 증폭시키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고객을 통해서" 라고 대답할 겁니다. 고객이 "내가 저 은행과 거래하면 도움이 된다. 나에게 득이 된다"고 믿음을 가져주고 실제로도 그렇게 돼야합니다. 그러면 고객과 우리 은행의 가치가 동시에 올라갈 수 있어요. 이게 바로 value creation(가치창조) 입니다. 우선 value를 만들어내고 그 다음 고객과 은행이 적당한 수준에서 생성된 가치를 나눠가지는 거죠. 상품이든 서비스든 끊임없이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개발해야 합니다. 저는 적어도 value 가 무엇인지는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value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value creation을 이뤄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경험도 일천하고 실제로 value 를 창조하지도 못했지만 이론적으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조금 더 유리하지 않나 생각해요. -가벼운 얘기를 좀 하죠.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85년에 했습니다. 공부 마치기 전에요. 필라델피아는 저에게 참 의미있는 도시입니다. 거기서 공부했고, 집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으니 말입니다. 아내도 저처럼 필라델피아에 온 유학생이었어요. 당시 저녁밥을 같이 지어먹곤 하다가 결혼까지 골인했죠. -부인은 현재 무슨 일을 하십니까. ▲집사람의 전공은 사회학인데 그중에서도 인구통계 쪽을 공부했습니다. 학위를 받고 귀국해서는 통계청에서 근무했구요. 통계청이 대전으로 이사가는 바람에 그만두고 현재는 화려한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사실 더 다닐 생각이 있었으면 통계청 서울사무소에 남을 수도 있었는데 본인이 공무원생활은 싫다고 하더군요. (지동현 상무 약력) -58년 출생(본적 서울) -77년 보성고 졸업 -81년 서울대 경영대학 졸업 -86년 5월 펜실베니아대학 경영학석사 -88년 12월 펜실베니아대학 경영학박사 -89년 5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영대학 부교수 -89년6월~91년5월 한국수출입은행 해외투자연구소 책임연구원 -91년6월~2001년 2월 한국금융연구원 -99년4월~2001년2월 조흥은행 사외이사 -2001년2월~ 조흥은행 상무
2001.06.22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⑮지동현 조흥은행 상무(상)
  • [edaily] 우리나라에서 은행의 위치는 다른 어떤 금융기관보다 중요하다. 채권시장에서도 은행은 가장 중요한 투자기관이다. 대형은행들은 수조원의 자금을 채권에 투자하는데 아직 독자적인 투자패턴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은행이면 다 같다”는 생각이 무너졌고 좋은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채권시장에도 앞으로는 “운용을 잘하는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을 차별하게 될 것이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조흥은행 지동현 상무다. 지 상무는 은행 자산운용을 담당한지 5개월째로 접어든 “신참”이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서 은행 구조조정에 참여하고 조흥은행 사외이사도 지냈지만 실전에 참여한 것은 올 2월부터다. 채권도 그의 전공이 아니다. 지 상무의 전공은 “은행경영”이다. 자산운용을 잘 모르는 지 상무가 짧은 시간에 채권시장에서 비교적 큰 전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실무 트레이더들과 호흡을 잘 맞추고 나름대로 리스크 관리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조흥은행은 올 상반기에 두 차례나 채권시장에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한 번은 한국은행 전철환 총재의 “국고채 과열” 발언이 나올 즈음 예보채를 대량으로 매각했을 때였고 또 한 번은 지난 5월 수익률 랠리에 참여했을 때였다. 지 상무는 자산운용을 맡자마자 “수익률이 1% 움직일 때 손실가능 범위를 100억원이내로 한다”는 리스크 관리 원칙을 세우고 채권투자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실무 딜러들과 마찰이 있었지만 당시 판단으로 손실을 회피할 수 있었다. 지난 5월에는 실무 딜러들이 “채권을 사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와서 주저없이 “질러” 결정을 내렸다. 밤에 잠을 못잘 정도로 걱정했지만 조흥은행내 5개 본부중에서 목표 수익 진도율이 가장 빠른 본부가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만큼 투자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지 상무는 은행경영을 전공한 학자로서 은행 구조조정의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지금은 자산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채권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뷰한 지 상무의 “은행론”과 “채권투자론”을 들어봤다. (지 상무 약력은 인터뷰 하편 기사 하단 참조. 지 상무 인터뷰를 끝으로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시리즈 1부를 정리합니다. 그동안 시리즈를 애독해주신 edaily 독자와 인터뷰에 응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보다 참신한 기획으로 하반기중 시리즈 2부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돈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경영학을 선택> -박사학위를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받으셨습니다.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밟다가 논문을 못 쓰고 바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서울대에서 소위 "쯩" 이라고 하는 석사학위를 받은 건 아니구요. 석사학위를 제대로 취득한 곳은 미국입니다.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3학기 다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펜실베니아대학의 경영학 박사과정에 등록했습니다. 이 곳에서는 박사학위 수료과정 중에도 석사학위를 달라고 하면 학위를 줘요. 물론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요. 박사학위를 못 받을지도 모르니까 우선 석사학위부터 취득했습니다. (웃음) 다행히 박사학위도 받을 수 있었구요. 얼마전 금융연구원 개원 10주년 기념행사 때 산토메로 총재가 오셨어요. 이분이 바로 유학시절 제 지도교수셨습니다. 그 분때문에 졸업한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니면 못했을 거에요. -그럼 학번은 어떻게 되십니까.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77학번입니다. 제가 보성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저희때부터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소위말하는 뽑기 1세대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선배들이 사람취급도 안해주는 거에요. "시험도 안보고 들어온 너희들이 무슨~" 하면서요. 서울대는 저희 때 더 많이 들어갔는데도 말입니다. 하하. 보성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들도 보성고등학교를 다니게하고 싶어서 일부러 올림픽공원 쪽으로 이사했을 정도입니다. -전공결정 과정 중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저희때는 전공을 결정하고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계열별로 뽑는 시스템이었어요. 사회계열로 입학해서 전공선택을 할 때 잠시 갈등했죠. 아버지는 법대를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버지가 권유하시니 법대는 더 가기 싫고(웃음). 경영과 경제를 놓고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경제학과를 가면 공부를 많이해야 될 것 같아서 싫더라구요. "경영학과를 가면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결정한 바가 컸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들어보니 돈 버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더군요.하하. 자연스럽게 대학교 2학년때부터 유학이나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고 유학준비에 들어갔습니다. SK그룹이 관장하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주는 장학금을 받고 펜실베니아대학으로 떠났어요. 사실 전공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한 권의 책 때문입니다. 제가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를 무척 감명깊게 읽었거든요. 주인공인 스트릭랜드가 잘 나가는 브로커였는데 돈 벌어서 그만두고 타히티로 떠나잖습니까. 그게 너무 멋있어 보여서 "나도 돈을 빨리 번 다음 은퇴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굳히게됐습니다. 은퇴 후에는 종합예술센터같은 것을 세워보고 싶었어요. <” 은행은 옛날에도 중요했고 지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하다”> -유학을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부시절에는 수업이 너무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어요. 돈 버는 것과는 하등 관련도 없고 말이죠. "일단 미국으로 한번 가보자. 거기가면 혹시 돈 버는 방법을 배울지도 몰라"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거죠.(웃음) 펜실베니아에 가보니 “finance”도 세 가지 분야가 있더라구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은 investment(투자론)였고 그다음이 corporate finance(기업재무), 제가 고른 financial institution(은행경영)은 거의 지원자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왜 은행경영을 지원하신 겁니까. ▲제가 전공을 결정할 때가 84년이었습니다. 속으로 곰곰 생각했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학위를 받으면 88년 정도가 될 텐데 그 때에는 무엇이 중요할까" 라고 말이죠. 결론은 은행이었습니다. 은행은 옛날에도 중요했고 지금도 중요하지만 90년대가 돼도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써 먹을 수 있는 걸로 공부해야지라는 생각이 많았죠. 박사공부라는 것이 말은 거창했지만 독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커리큘럼에서 가르쳐주는 건 investment 나 corporate finance 정도고 financial institution은 한 과목밖에 없었어요. 그때 산토메로 교수가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와튼스쿨(펜실베니아 대 경영대학원의 별칭)에서 조교로 재직하면서 공부를 더 많이하게 됐어요. 뭘 알아야 가르칠 것이 아니겠어요. 기초서적부터 신문기사까지 닥치는대로 읽어나가니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로컬 경제의 중요성이 존재하는 한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은행의 위치는 확고”> -그렇다면 은행의 중요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은행 중심이냐 자금시장 중심의 경제냐 하는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직접 대면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경제가 자본시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뿐이에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여타 선진국들은 모두 은행위주입니다. 이 사실이 하루이틀에 이뤄진 것도 아니고 아무 이유없이 된 것도 절대 아니에요. 자본시장이 은행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인 미국, 영국은 그 제도가 적합하도록 국가가 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면서 로컬보다는 글로벌한 쪽으로 경제전략을 수립해왔죠. 미국도 마찬가지구요. 독일이나 프랑스같은 경제선진국도 아직은 로컬중심 경제권을 이루고 있고 한국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죠. 물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습니다. 어느 정도는 그 흐름을 따라가야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나 아무리 글로벌화가 된다해도 로컬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로컬의 중요성이 존재하는 한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은행의 위치는 확고할 겁니다. -귀국 후 학교로 가지 않고 금융연구원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귀국 당시에는 학교에 갈 요량으로 들어왔는데 그게 잘 안 됐습니다. 수출입은행에서 장기 발전전략 수립, 부서 내부평가 문제 등을 담당하다가 금융연구원으로 옮겼습니다. 수출입은행에서는 자산부채 종합관리(ALM asset liability manangement)에 관한 보고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가 89년인데 개념자체도 생소하던 시절이었어요. 그 개념을 소개했다고나 할까요. 금융연구원에서도 초창기 4년에는 대부분 ALM관련 컨설팅을 담당했습니다. -금융연구원은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진 건가요. 10년을 근무하셨으니 사정을 잘 아시겠군요. ▲금융연구원은 1991년 6월에 설립됐습니다. 초창기 박재윤 서울대교수를 원장으로 초빙하셨죠.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금융시장 및 금융기관에 대한 전반적인 발전방향을 제시한다는 거였어요.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죠. -박 원장은 김영삼 정부에서 일하셨죠? 금융연구원이 당시 정부정책 입안에 관여하기도 했습니까.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과 관련, 부분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금융연구원도 일정부분 공과가 있다고 봐야겠죠. -금융연구원에서 IMF 외환위기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나요? 어렴풋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느꼈지만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할 정도로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은행경영을 공부한 제가 그동안 뭘했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은행이 가장 중요하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뭔가 보여줘야한다는 마음으로 구조조정 아이디어를 만들었습니다. <”은행 구조조정 갈 길이 아직 멀었습니다.”> -서울은행, 제일은행 매각작업에도 참여하셨죠. ▲저는 어드바이저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정부는 1998년 1월30일 두 은행에 각각 1조5000억원을 출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한전과 담배인삼공사 주식을 넣었죠. 그 일을 하면서 두 은행 임원들하고 종종 의견충돌을 빚었습니다. 은행임원들의 생각은 "정부출자가 이뤄졌으니 우리은행은 대한민국 어떤 은행보다 우량하다" 뭐 대충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갈 길이 아직 멀었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제일은행 관계자께서 "아니 은행업무에 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항의를 하더군요. 은행에 30년 다닌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죠. 제가 "은행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런 근거없이 그런 말씀 드리는 건 아닙니다" 라고 근거를 말해도 들은 척도 안하더군요. 그래서 크게 언쟁을 한 적도 있었어요. 정부는 "매각대금은 1조5000억원은 넘어야한다. 풋백옵션도 못 준다"고 말했지만 그 조건으로 누가 그 은행을 사겠습니까. 모건스탠리를 주간 증권사, 태평양을 주간법무법인으로 선정하는 작업을 마치고 매각작업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애시당초 뉴브리지에 줬던 조건이라면 협상이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그러면 정부의 손해가 훨씬 줄어들었을텐데 말이에요. 두 은행과 금융업 전반 아니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제가 그 당시 은행 부실채권 규모가 200조가 넘는다는 말을 종종 하고 다녔습니다. 세미나나 심포지움에 참석해서 그러한 말을 몇 번 했더니 압력이 들어올 정도였어요(웃음). 세계은행에서 파견나온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일했는데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똑같았습니다. "비슷한 문제로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모두 비슷하다. 처음 예상한 (부실채권) 규모보다 적어도 3배는 늘려 잡는게 좋을 것"이라면서 "경험상 틀림없으니 한국도 3배 이상이라고 본다"고 말하더군요. -서울은행은 결국 매각자를 찾지 못하고 위탁경영이라는 묘한 방법으로 일처리가 됐죠. 두 은행 매각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학자로서 말입니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실패한 딜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어차피 매각은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청산과 매각 두 가지밖에 없었으니까요. 지방은행 정도의 소규모 은행이라면 청산이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일이나 서울은행 정도를 청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한국경제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어요. 청산비용도 엄청나게 들어가니까 결국 매각의 길을 자연스레 걷게 됐죠. 아쉬운 점은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매각자를 찾아나섰으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팔 수도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는 겁니다. 망가진 회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게 돼 있어요. 은행이건 기업이건 마찬가지고 대우차나 한보철강 문제도 동일하다고 봐요. (인터뷰 중편으로 이어짐)
2001.06.22 I 정명수 기자
  • 이루넷, 美 실반과 80:20으로 합작법인 설립키로
  • [edaily] 이루넷은 미국의 학원 프랜차이즈업체 실반러닝 시스템즈와 연내 합작법인을 설립, 4분기께 영어학원 직영센터 2∼3개를 오픈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이루넷 이재영 부사장은 "이루넷이 80%, 실반이 20%를 각각 투자해 설립키로 했다"며 "규모는 당초 예상보다 축소된 100∼200만달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실반에게 콜옵션 권리를 부여, 향후 이루넷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일부를 넘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고 덧붙였다. 이루넷은 이번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실반러닝 시스템즈의 체계적인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활용, 본격적으로 성인대상 영어학원 프랜차이즈 사업에 나설 방침이다. 이 부사장은 "실반의 시스템은 다양한 레벨에 따라 맞춤 교육을 실시하며 강사와의 1:1 학습을 지향한다"며 "칠판과 교재로 공부하기보다는 컴퓨터를 이용해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강의 시간대를 맞추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고려해 원하는 시간에 유동적으로 강의를 받을 수있는 'health club'식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루넷은 지난해 12월 실반과 합작법인 설립에 관한 MOU를 체결했으나 지분율 조정으로 설립시기를 늦춰왔다. 한편 종로엠스쿨 수수료 인상안에 대해서는 "기존 3만원에서 최소한 10%는 인상한다는 내부방침은 확정적"이라며 "연내에 인상을 단행, 내년부터는 인상가를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1.06.22 I 권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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