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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⑥최중경 재경부 금융정책과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 최중경 과장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채권시장이 고도화되고 있지만 재료에 대한 스윙폭이 너무 크다 -시장참가자들은 재경부를 국고채라는 채권의 “발행자”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시장의 질서를 만드는 자”로도 보는데요. 정부의 뜻을 읽으려면 어떤 것을 봐야합니까. ▲우리 채권시장이 매우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가평가가 처음 도입될 때 우려도 많았지만 저는 옹호하는 입장이었는데 이것이 채권시장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기까지 갖고 있어도 평가에 변화가 없으면 딜링을 할 요인이 없죠. 이제는 가격이 변하면 액션을 해야합니다. 물론 잘못해서 시장이 약할 때는 나선효과라고 해서 손실이 손실을 불러오고 올라갈때는 한없이 올라가는 것이 걱정되지만…지내놓고 보니까 걱정반 기대반 되는 것 같습니다. 시장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재료가 있을 때, 소득이나 외국금융기관의 동향, 물가 등 변수가 움직이는 것에 반응을 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죠. 그렇지만 스윙 폭이 너무 큽니다. 우려처럼 시장의 폭과 깊이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딜러들이 지나치게 민감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시장이 성숙해가는 단계임에 틀림없다고 봅니다. 다만 반응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도 보면 채권 애널리스트가 최고의 연봉자이고 최고의 이코노미스트입니다. 금융이나 거시경제를 읽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딜러들도 분업화가 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채권 애널리스트와 딜러는 달라야죠. 투자전략을 세우는 사람과 그 전략하에서 시장의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달라야합니다. 딜러는 파인튜닝(미세조정)을 하고 전략을 세우는 애널리스트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수단, 물량조절이나, 한국은행과 유동성 조절에 대해서 협의하고 요청하는 것. 이런 것들을 시장이 잘 지켜봐야죠. 정부보증 예보채, 프리미엄이 너무 높다. 명목성장률에 근거한 금리결정 타당성 떨어져 -예보채가 채권시장의 문제거리인데요 ▲저도 불만입니다. 왜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인데 프리미엄이 그렇게 많이 붙죠.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생각하고 있는데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이어서… 정부는 분명히 불만입니다. 정부가 보증을 했는데..무보증이면 몰라도. 이코노믹 펀더멘털에 따라, 성장률에 물가 더하면 얼마니까 명목성장률을 베이스로 금리가 움직여야된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나라 케이스를 분석해봤어요. 금리가 어디를 베이스로 움직이나 알아보려고. 반반입니다. 명목성장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일견 보여지는 나라와 전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반반이었어요. 일본의 경우도 금리가 낮았죠, 성장률에 관계없이.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것만 가지고는 금리를 설명할 수 없다. 레퍼런스의 하나일 뿐이다.”라는 겁니다. 성장률로 금리에 접근하더라도 문제가 있는데 아주 고전적인 경제학이론이죠. 다시 말해 “내가 투자하는 것보다는 내 돈을 빌려줄 테니 네가 투자해라. 대신 그 대가를 내게 달라”는 것인데 메니지먼트 스킬,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할 때 (돈을 빌려준 사람도) 평균적으로 자기 몫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생산에 종사하는 자가 기록한 생산성에 대해서 (돈을 빌려준 자가) 똑같이 먹겠다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죠. 스킬이 전혀 없는 사람이 기업가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곤란하니까 그 프리미엄만큼은 (금리에서) 제해야죠. 더구나 국고채는 리스크 프리가 아닙니까. 생산활동에 따른 리스크를 모두 부담하고 난 결과이니까 리스크 프리인 것 만큼 또 (금리에서) 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결국 명목성장률에 빗대서 이자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제가 개발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개발경제학에서 말하는 금리 균형은 기업가정신이 어느정도 감안됩니다. 농부나 대장장이 등 아주 기본적인 생산자의 경우에는 “내가 돈 꿔졌으니 생산한 것 반 나눠갖자” 이럴 수 있지만 기업은 다르죠. 스킬의 차이에서 오는 보수, 다른 간접적인 부담,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 이것이 모두 다른데 명목성장률로만 국고채 수익률을 계산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이에요. -20여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정책은 ▲87년인가 포철 국민주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때 이중청약자, 월급이 60만원이상인 경우, 고소득자가 청약하면 적발하겠다고 했죠. 그걸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했는지 부정청약자가 많았죠.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청약명단에서 같은 사람이 나오면 튀어나오게 하면 되니까. 고소득자는 국세청에 사정사정해서 테이프를 빌렸어요. 소득 테이프를…그 테이프를 걸어서 거기에 걸리는 명단을 뽑아냈죠. 국민에 대한 약속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보니 별별 부정청약 사례가 다 있더라구요. 엄청나게 많이 걸렸어요. 금융기관 직원도 적발되고… 뭘 알겠느냐하고 이중청약 많이 했는데 조사해보니 다 걸렸죠. 국세청을 정말 열심히 설득했던 기억이 새롭군요. 외환위기에서 배운 것, 대내균형과 대외균형이 충돌할 때는 대외균형을 먼저 생각해야 -IMF 얘기좀 해주세요 ▲(먼 훗날 얘기하자며 머뭇거리다가) 아무튼 배운 것이 많습니다. 한가지 배운 것은 대내균형과 대외균형이 충돌할 때 뭘 선택할 것이냐. 개방경제에서는 대내균형, 즉 소득이나 물가하고 대외균형, 즉 수출이나 경상수지 등이 충돌할 때 당연히 대외균형을 택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배웠죠. 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외채규모가 부풀려지까 평가손이 생깁니다. 그래서 장부상 수익성이 줄어들죠. 반면 유동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아지거든. 국가도 마찬가지에요. 내셔널 리퀴디티를 먼저 선택해야합니다. 97년에 우리는 그렇게 못했죠. 93년에 잠깐 흑자내고 이후 엄청난 적자가 나왔는데 이것이 다 단기채무가 됐고 유동성이 어려워졌어요. 만약 돈을 빌려주는 입장이라면 뭘 보겠습니까. 소득이 있느냐, 그 소득을 죄다 써서 빚을 지고 있나를 보지 않겠어요. 내가 한국에 투자하는데 “돈을 벌고 있느냐” 이는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고 있느냐이고 “저축이 있냐” 이는 보유고 아니겠어요. 둘다 제대로 되야죠. 간단히 말해서 “내돈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예스”라고 대답하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를 보여줘야죠. 개방경제에서 외국인들의 이 같은 질문에 자신있게 객관적으로 답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시장을 보고 경제를 봐야죠. 이것이 IMF에서 배운 것이고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일을 잘 할 수는 없는데요.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배가 있다면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웠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히 기억난다고 하면 사무관때 군대 제대하고 갓 와서 모셨던 양승만 과장(부산세관장으로 은퇴하심)입니다. 처음으로 기안을 올렸더니 그대로 사인을 하시더라구요. “내가 볼 때 고칠게 많지만 네가 처음해온 것이니까 그대로 싸인한다. 국장하고 부딪쳐봐라.” 그래요. 그렇게 얘기해준 것이 고맙더라구요... 기를 살려줄 겸 사인한다고 했는데 국장한테 들고 갔다가 깨지고 나왔죠. “뭐 지적하든. 이거이거 지적하지. 이건 이렇게하고 저건 저렇게 해라.”고 알려주더라구요. 일종의 실습을 시킨 것이죠. 자기가 사인한 기안이 국장한테 퇴짜를 맞으면 자기에게도 부담인데 사무관 기를 살려주려고 사인을 했다고 하니, “이 과장을 망신시키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은 본인이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선생이 좋아서 공부잘하는 것은 아니죠. 열심히 일하게 하고 긍지를 심어주고 이런 측면에서 양 과장님이 기억에 남아요.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4.13 I 정명수 기자
  • 아시아 족벌경영, 성숙한 자본주의 되길-이코노미스트
  • [edaily] 아시아의 족벌경영체제는 분명 많은 부를 축적해 온 성공사례로 관찰 가능하지만 가족적 경영을 기반으로한 재벌기업들이 주주들과 채권자들, 각종 법규의 테두리 내에서 감시를 받는 보다 성숙한 자본주의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최근호에서 지적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 전형적인 아시아의 실업거물, 로버트 쿠옥(郭鶴年)을 보라. 모국 말레이시아에서 화교신분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자식들만큼은 좀더 나은 삶을 살게하리라는 목표를 일찍부터 가졌다. 그 방법은 부를 축적하는 한편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사업분야와 대상국가를 확장하고 그것에 대해 입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50~60년대에 말레이시아에서 제분, 팜유, 설탕 등을 매점하는 것에서 시작해 제조업에서 부동산업으로, 호텔에서 미디어사업으로 그 가지를 방대하게 뻗쳐나갔다. 오늘날 그는 소위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문어발기업"의 총수가 되었고 그 본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등 유수의 도시들을 수차례 거쳐갔다. 그러나 정작 사교적이고 말주변좋기로 소문난 로버트 쿠옥, 그 자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수년전 한 대형국제조사기관이 쿠옥과 그가 거느린 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름-로버트 쿠옥; 정치적 우호관계-알려진 바 없음; 정치적 적대관계-밝혀진 바 없음; 소송-아는 바 없음; 야망-모름. 그의 유교적 경영스타일은 가히 전설적이다. 최근에 그가 주최한 만찬에서 한 손님이 쿠옥의 아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쿠옥은 재빨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요리가 나올 차례"라며 아들에게 주문을 시켜 밖으로 내보냈다. 쿠옥은 리콴유가 정치적으로 주창한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비즈니스적으로 구현한 사람이다. 문화적으로 가부장, 권위주의, 정통성 등의 유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그는 시장조사라는 정형화된 방식을 경멸하고 "배짱정신(gut instinct)"으로 일관한다. 그는 소위 "밤보 네트워크(bamboo network)"로 통칭되는 화교사회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계약이 아닌 신용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되 정치적 불안정성과 상인 마인드를 이유로 거래는 항시 일회적으로 한정시킨다. 몇 십 년 동안 쌓아올린 부의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아시아금융위기만 없었더라면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성공사업모델의 전형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남아시아의 화교는 사회의 소수집단에 불과하지만 자본시장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경제위기 당시에도 국가경제는 타격입었지만 화교집단의 시장점유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렇듯 화려해보이는 화교자본의 사업모델에도 난관은 있으니 그것은 제 1세대 창업자 세대에서 가족단위로 꾸려갈 수 있는 정도의 사업규모에만 적합한 모델이라는 점이다. 사업이 확장되다보면 분명 외부 자본을 유치해야만 하는 시점이 오게 마련이고 이때 가족단위의 통제는 희미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화교들에게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더러 본래 사업의 목적인 "가족을 지킨다"는 것과도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화교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피라미드구조"다. 홍콩 중문대학의 재정부분 담당 교수인 래리 랭과 레슬리 영, 그리고 세계은행(WB)의 스티즌 클래슨즈는 "배당과 몰수(Dividends and Expropriation)"라는 주제의 공동연구에서 많은 화교집단들이 피라미드구조로 사업을 꾸려나간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상호자본출자, 기업간 비공식적인 연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자회사의 고리들이라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결국 모든 계열사에서 51% 이상의 지분을 반드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피라미드의 목적은 외부자본을 유치하되 결국은 가족 내에서 그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다. 즉, "자본시장의 내면화"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러한 연계 과정은 상당히 복잡해서 추적하기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필리핀내셔널뱅크(PNB)가 그 대표적 사례다. 필리핀 화교자본의 대표적 인물인 루시오 탄은 필리핀 전 대통령인 조셉에스트라다와 친분관계에 있었는데 정부가 4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PNB가 신주발행을 한다는 소식에 거기에 참여하게 된 네 기업에게 자신 소유 은행에서 대부를 해주었다. 결국 그 대부금을 담보로 탄은 PNB 93%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도 이러한 족벌경영체제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시아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족벌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일본이 10% 미만이고 한국과 대만이 50% 이하, 타이와 말레이시아가 60~70%,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그 이상이다. 그러나 유럽 역시 이러한 경영체제들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시아적"이라는 단어로 몰아세우기에는 섯부른 감이 있다. 대신 아시아와 유럽, 양자의 차이라면 그 족벌경영체제의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속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체제가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냐 하는 점일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법규와 변호사, 판사들이 항상 기업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채무자와 주주들이 권리행사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모든 성숙한 자본주의적 시스템들이 주주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감독하고 소액 투자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자본주의도 이런 방향으로 분명 성숙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걸릴 것인가.
2001.04.08 I 박소연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⑤임지원 JP모건 이코노미스트(중)
  • [edaily]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JP모건의 이코노미스트인 임지원 박사입니다.(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3차례의 면접과 17명과의 인터뷰 -JP모건 입사당시 얘기 좀 해주시죠. ▲입사지원을 한 건 외환위기 전이었는데 최종 결제는 외환위기 다음에 났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일과 갖게 될 일이 약간 달라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망설이니까 지금 제 보스인 애쉬앨러 박사가 여러 가지 조언과 충고를 해주길래 마음을 굳혔죠. 삼성경제연구소 시절에는 제 자신이 시장과 동떨어져 있는 수많은 이코노미스트 그룹의 하나라는 게 무척 싫었어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박사논문 쓸 때도 금융시장에 근접한 걸 주로 공부했어요. 연구소보다는 시장에 근접한 곳에 있겠다는 마음으로 옮겼습니다. 무척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JP모건을 참 좋아하거든요. -그 전까지는 이 쪽에 전혀 경험이 없었을텐데 보스가 어떤 점을 보고 선택했다고 생각합니까. ▲인터뷰를 온종일 했어요. 1, 2차 인터뷰는 서울에서 하고 마지막으로 홍콩으로 날아가서 하루종일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죠. 저와 조금이라도 업무가 겹치는 사람 모두와 30분씩 면접을 봤습니다. 15~17명 정도는 만났던 걸로 기억해요. 너무 힘들어서 ‘점심시간에는 호텔로 가서 잠이라도 자야겠다’ 생각했는데 보스가 점심까지 같이 먹자고 해서 혼났습니다. ”JP모건의 장점은 시장에 가장 근접한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준다는 겁니다” -미국에 있을 때는 졸업 후 월가의 투자은행으로 바로 가겠단 생각을 안 했나요? ▲일단 나이가 있으니까 트레이더로 갈 수는 없고, 제게 이코노미스트를 제의한 곳은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들어왔죠. 하지만 지금 생각하기에는 그게 오히려 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한국경제가 다른 곳이랑 많이 다르잖아요.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다음 이쪽으로 옮기게 된 것이 지금 하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경제학에 여러 학파와 계보가 있는데 어떤 입장이신지. ▲논문에서는 루카스 모형을 많이 썼는데 제 성향자체는 케인즈 쪽이라고 봐요. 약간 개량적인 케인즈주의자라고 할까요. 지나친 정부개입은 반대한다는 의미에요. 제가 생각하는 정부의 역할은 경제전반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Institutional framework 를 정부가 만든다고 가정하면 이 안에서 경제참여자들이 이익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역할을 말하는거죠. -적응하는 과정은 어땠습니까. ▲모건에 입사하고 나서는 가장 좋은 점은 시장에 가장 근접한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준다는 겁니다. 모건은 의사결정구조가 무척 단순해요. 글로벌리서치팀에 컨트리 이코노미스트가 30명 정도 있는데 각각의 regional boss가 있습니다. 제 경우 제 바로 위에 싱가폴에 있는 regional boss가 있고 뉴욕에 이 regional boss들을 관장하는 head가 있어요. 저는 서울 모건에 있지만 시장의 트레이더들과 교류하는 시간보다 글로벌 리서치 팀원들과 시간을 보낼 때가 훨씬 많아요. 제 업무를 터치하고 콘트롤하는 것도 바로 이 사람들이고. 다른 하우스의 경우 보스의 힘이 큰 경우가 많고 국내 경제연구소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내의 경우 어떤 이코노미스트가 전망을 해가도 “음 이건 아냐”라고 보스가 한마디하면 바로 사장돼버리죠. 하지만 모건은 컨트리 이코노미스트들의 의견을 정말 존중해주는 편이에요. 자신의 의견을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모건에 처음 와서는 제일 힘들었던 건 이겁니다. 한국의 교육제도하에서라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저 역시 한번도 제 의견을 자신있게 피력하는 훈련받지 못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 항상 두려움이 앞서고 움츠러들고. 처음 6개월동안 그 상태로 조심조심 지내다보니 하루는 어느 동료가 ”우리가 네게 원하는 건 올바른 의견이 아니라 네가 생각하기에 올바른 의견이다. 나는 너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있을 뿐더러 그 모든 의견들을 종합할 능력도 있다. 그러니 네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개진하기만 하면 된다” 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에요. 보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의견개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말하길 6개월이 지나고 갑지기 제 리서치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입사 후 6개월쯤 됐을까 9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내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9~10월 무렵이었는데 데이터를 보니까 99년도에 절대 마이너스성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아무리 못해도 4%는 가능해 보였거든요. 다들 나쁘다하는 상황에서 그런 의견 내놓기가 뭐해서 국내 아는 친구들에게 이거 맞냐고 물어봤습니다. 다들 아니라고, 잘못됐다고 하더군요(웃음) 그래서 보스에게 ”이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고 물었습니다. 보스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되묻는거에요. 그래서 “물론이다. 이런 이런 이유로 결론이 나온거다” 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그래? 그럼 그렇게 하라. 나머지는 다 내가 책임지겠다” 라고 한마디 해주더군요. 98년 10월 달에 4%성장을 전망하는 리포트를 썼으니 뉴욕본사에서까지 왜 그러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보스가 그들을 설득해서 결국 그 리포트를 냈죠. 99년 3, 4월이 되니까 포지티브 그로스에 대한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고 6월에는 올라가는 모습이 훤히 보일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구요. 그래서 98년 모건의 여러 이머징 이코노미 리서치 중 서울 지점이 넘버원이 됐어요. II(Institutional Investors)라는 곳에서 제 리포트가 인상적이었다는 기사도 나올 정도였구요. 작년에도 서울 모건이 1등이었는데 그때는 센트럴뱅크(중앙은행)에 대해 쓴 보고서가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은행에 관해서 보고서를 내는 곳이 거의 없었고 자료가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저희가 일주일에 한번씩 한국은행(BoK)에 대한 워치(watch)를 내보낸 것이 훌륭하게 생각됐다고 봐요. 글로벌 리서치팀의 일원, 세계금융시장을 호흡한다 -펀드매니저의 경우 수익율로 자신의 연봉을 협상하는데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어떻게 측정합니까? ▲폴을 하는 것 같아요. 폴하는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권위있는 기관이 되는거구요. 아시아머니는 증권사 대상, II는 주로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 같아요. -홍콩에서 서울로 옮기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서울지점이 오픈했어요. 한국팀이 다 옮겨왔습니다. 처음에 리서치팀은 홍콩에 남아있었는데 효율적으로 업무가 진행되지 않으니까 저희도 온 거죠. -매일매일의 일과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아침 7시반 정도에는 전날밤에 작성됐던 모든 보고서가 이메일로 도착해요. 그것을 검토한 후 9시에 싱가폴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미팅을 하죠. 리서치팀은 물론 트레이더까지 포함해서 진행됩니다. 그 다음에는 에디팅을 하고 오후 1시까지 오전 데이터를 총괄해서 런던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런던에서는 런던시간 12시에 맞춰서 정리한 보고서를 다시 뉴욕으로 보내고. 말하자면 24시간 풀가동 시스템이죠. 돌아가면서 에디팅이 계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타국의 데이터가 어떻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위클리로 “GLOBAL DATA WATCH”라고 해서 4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씁니다. 여기서 1페이지 정도는 신문의 feature(특집) 코너처럼 경제전반에 관한 에세이를 쓰죠. GLOBAL DATA WATCH 앞부분 3페이지에는 한 주간 세계경제에서 일어났던 주요 이슈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거든요. 목요일 저녁까지는 뉴욕과 회의를 해서 이 곳에 한국이 들어갈만한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를 토론합니다. -다른 이코노미스트들과 교류를 하시는 편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우선 시간이 없으니까요. 가끔 연구소에 계신 분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긴 하지만. 저희 일만 해도 충분한 것이 클라이언트들을 상대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거든요. 만약 제 의견이 누군가의 의견과 크게 다르다면 고객이 반드시 “누구는 이렇게 얘기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얘기하냐” 고 물어봅니다. 그런 피드백이 항상 일어나니까 특별히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재료를 얻고 자극을 받으면서 생각하는 과정들이 좋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학교로 가겠다거나 직접 딜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트레이더는 해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이코노미스트로서 제 연구를 하면서 시장과 접근할 수 있는 지금이 좋아요. 시장에서 계속적으로 재료를 얻고 자극을 받으면서 생각하는 과정들이 좋습니다. 물론 안 그러신 분도 많지만 학교에 있으면 너무 흘러간 얘기만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어요. -다른 이코노미스트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습니까. ▲저는 모건의 동료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싱가폴의 보스인 애쉬앨러 박사와 뉴욕의 헤드로 있는 페르난데스 박사를 좋아해요. 애쉬앨러 박사는 분석력과 조직화된 사고능력이 뛰어난 사람인 반면 페르난데스 박사는 직관력이 대단히 우수한 사람이에요. 이렇듯 반대성향을 가진 보스들을 만난 것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미국에 브루스 캐스만이라는 이코노미스트가 있는데 리서치 퀄리티도 뛰어나고 한마디로 정말 스마트한 사람이죠. 캐스만은 FED에도 있었고 경력도 화려한데 보고서를 통해 시장에 우호적으로 서포트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극단적이지 않고 미세한 조정을 해나가는 스타일 -본인과 다른 이코노미스트와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극단적이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미세한 조정을 해나가는 것을 즐기는 스타일이고요. 이 업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편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것을 안 좋아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제 방식이 인상적이지 않은 접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 성격과 잘 맞고 모건의 하우스 스타일 자체도 저와 비슷합니다. 만약 증권사였다면 증권스타일에 맞는 분석을 해야하겠지만 채권은 증권쪽과는 좀 달라요. 또 제 역할 자체가 직접적으로 트레이더를 서포트하는게 아니라 다른 리서치를 서포트하는 것이거든요. 증권, 채권, 크레딧 등 세부분야의 리서치 말이죠. 여러 리서치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극단적으로 나가면 개별 리서치는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되죠. 그래서 조정역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4.06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⑤임지원 JP모건 이코노미스트(상)
  • [edaily] 경제학자들 중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기이한 재주’나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그린스펀 의장도 청년시절 재즈악단의 색소폰과 클라리넷 연주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인 JP모건의 임지원 박사도 이코노미스트로서의 명성만큼 독특한 경력과 번쩍이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임 박사는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전망과 분석에서 두각을 나타낸 몇 안되는 이코노미스트다. 임 박사는 98년 가을 한국의 99년도 성장률 전망 보고서에서 경기회복을 정확히 예측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임 박사의 보고서를 읽어보면 여성 특유의 차분함과 치밀함이 느껴진다. 숫자 하나하나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면서 흐름을 찾아내고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낸다. 기관투자가들을 찾아가 경제전망 설명을 할 때도 기본적인 논리에 충실하지만 시장의 변화와 투자자들의 생각을 반영하려는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임 박사가 JP모건이라는 세계적인 투자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입사해 훈련받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을 보면 미국 월가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임 박사는 JP모건에 입사하기위해 무려 17명의 관계자와 인터뷰를 했다. 서울에서 2차례 인터뷰를 하고 홍콩으로 날아가 하루종일 아시아지역 리서치 담당자들과 온갖 이야기를 했다. 임 박사가 JP모건의 글로벌 리서치 조직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듣고 있으면 그는 JP모건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금융시장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월가의 내로라하는 리서치 팀의 일원으로 한국 금융시장의 숨소리를 매일매일 전세계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임 박사는 “국내 경기상황만 놓고 보면 우리 경제는 2분기이후 회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미국 등 외부경제 환경이 아직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경기둔화가 지속될 확률은 여전히 남아있다. 임 박사가 주시하는 것은 국내의 미묘한 경기신호와 함께 미국, 일본, 유럽, 기타 아시아 각국의 온갖 지표들이다. 임 박사의 전망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시야가 세계로 열려있고 국제금융시장속에 그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때문이다. 임 박사의 생각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들어봤다.(약력은 인터뷰 하편 기사의 하단 참조) ▲박사학위는 경제학으로 받으셨는데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셨군요. 고등학교에서는 무엇을 전공하셨는지.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얘기가 안 나오길 바랬는데(웃음). 어렸을 적부터 형제(1남3녀)가 다 음악을 했어요. 물론 지금은 언니만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요. 저희 집에 딸이 셋이다 보니 어머니께서 ‘결혼하고 나서 여자직업으로 가장 좋은 게 뭘까’란 생각을 많이 하셨나봐요. 그러다가 집에 있으면서도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고 저희들에게 시키신거죠. ▲그래도 상당히 특이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음악에서 경제학으로의 변신이라… -그린스펀 의장도 음악했는걸요 뭐(웃음).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학교에다 알렸어요. 그래서 고 3때는 실기시험만 형식적으로 보고 입시준비를 했습니다. -갑자기 음악을 그만둔 다음 입시공부를 시작하니 부담되지 않던가요. ▲요즘은 대학입시 시험도 인문/자연/예체능 이렇게 나뉘어 보지만 그때는 교과목은 다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인문계쪽으로 가는 친구들이 드물지만 있긴 있어서 저 혼자 한 것도 아닙니다. 피아니스트에서 영문학도로 다시 경제학자로 -박사학위를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 힐에서 받으셨군요. ▲노스캐롤라이나 단과대 중 채플 힐이 제일 먼저 생긴 곳이에요. 경제학을 가르치구요. -석사도 채플 힐에서 하신 건가요? ▲학부에서는 영문학을 했습니다만 부전공과목으로 경영학을 했습니다. 경제학 과목도 많이 수강했구요. 유학은 로타리 장학금을 받고 노스캐롤라이나대로 갔는데 아무래도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경제학적 백그라운드 지식이 없다보니 그 쪽에서 유학 전에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네가 여기 와서 한 학기 정도 듣고 성적이 괜찮게 나오면 바로 석사로 옮겨주겠다” 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 학기 듣고 곧바로 석사로 편입했고 석사 1년을 마친 후 다시 박사과정으로 진학했습니다. 그래서 석사 논문은 없어요. -학부 때 영문학공부는 열심히 하셨나요? ▲영문학 공부는 2학년때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경제, 경영학 공부를 더 많이 했어요. 그냥 제 스스로 한 거죠. 경제학은 명쾌하다 -왜 느닷없이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영문학이 성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격상 명료하고 명쾌한 것을 좋아해요. 하지만 문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고민을 해야하잖아요. 그러다보니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경제학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됐어요. 대학 1학년 때 경제학원론을 들었는데 저도 놀랄 정도로 잘 맞았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유학가서도 공부는 무척 재미있게 했습니다. -혼자 공부하시면서 어렵지 않았나요? ▲결혼 안하고 가니까 편했죠. 자기시간도 많고. 남자들이야 다르겠지만 여자로서는 혼자있을 때 공부해야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공부가 재밌었다고 한 것은 학교와 기숙사만 오갔다는 뜻인가요. ▲대학원생 신분으로 유학을 갔기에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둘러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어요. 통상적으로 다른 유학생들과 거의 비슷한 생활을 했다는 게 맞겠죠. 학교-기숙사-교회를 열심히 오갔습니다.(웃음) -시간이 날때는 무슨 일을 하세요. ▲다른 하우스의 리포트를 읽기도 하고 베스트셀러나 신앙서적도 많이 읽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하다거나 프레셔를 많이 느낄 때는 그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편안해지더라구요. -고등학교 때까지 음악을 전공하셨는데…특별히 좋아하는 음악가는. ▲바하와 모짜르트를 참 좋아했어요. -수학은 원래 좋아했습니까 ▲정말 좋아했어요. 역사도 좋아하고. 영화나 책도 드라마틱한 것은 별로 안 좋아해요. TV 프로그램도 역사관련물을 주로 봅니다. -유학하시면서 경제학이란 학문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나요. ▲명료하고 해답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영문학을 공부할 때 그런 것이 없어서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나는 항상 문제제기를 하고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사람인데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박사과정 중 초기 2년까지는 경제학이란 학문이 굉장히 명쾌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공부하면서 뇌리에 팍팍 각인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박사논문 쓰면서는 그런 생각을 안했어요.(웃음) 학문의 바다에서 시장속으로 -논문 쓸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대가들이 만들어놓은 모델을 가지고 설명을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굉장히 명료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세부로 들어가면서 ‘설명이 안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이제껏 배워왔던 것이 얼마나 허무한가’ 라는 생각이 들게 돼요. 그래서 많이 괴로웠고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벌써 2번이나 그만뒀는데 여기서 또 그만둘 수는 없다’ 라는 마음으로 끝냈죠.(웃음) -유학에서 귀국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귀국한 것은 95년 12월이에요. 유학가기 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어쨌든 공부는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죠. 대학졸업은 87년 2월에 했구요. 중간에 1년 반 정도 유학준비만 했어요. 그래서 88년 12월에 유학을 떠나게 됐습니다. -처음 직장인 삼성경제연구소는 미국에 있을 때 입사한 건가요? ▲95년 여름에 제의를 받고 마지막 학기를 마친 다음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지금과 비슷한 일을 하긴 했지만 성격은 많이 달랐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경제연구소들은 경제 예측보다는 정책권고 업무를 많이 할 수밖에 없잖아요. 아무래도 외국계에서는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는 편이죠.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 JP모건 홍콩지점에 있을 때 했어요. 남편은 학교에 있습니다.
2001.04.06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④백경호 주은투신 사장(하)
  • [edaily]“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이번주 주인공은 백경호 주은투신운용 사장입니다.(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채안기금에서 같이 일한 매니저가 몇분이죠. ▲4명이었습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시각들이 다양해야 해요. 매니저들을 보면 각각 특성이 달라요. 분석을 잘하는 사람, 브로커들과 잘 싸우는 사람, 말로 브로커들을 잘 다루는 사람, 인적 네트웍이 폭넓은 사람 등등. 그 모든 것들을 고려해서 다양한 구성을 해야만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활발한 토론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야 저한테도 다양한 정보가 보고될 수 있고요. -지금도 팀을 구성할 때 그런 기준 하에서 고릅니까. ▲물론입니다. -각각 다른 기관에서 온 펀드매니저들이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또 자기회사의 이익과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느냐. 뭐 이러한 문제들이 논란이 됐었는데…어떻게 관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매니저들을 불러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나도 모르고 당신들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단 사명감을 가지고 한 번 해보자. 사명감을 가지려면 우리부터 깨끗해야한다”고. 깨끗해야 한다는 의미는 이겁니다. 매일매일의 장이 종료되면 그 사람들이 소속된 은행의 임원들이 틀림없이 이것저것 전화로 물어볼 게 뻔히 보이거든요. 자기은행의 자산이 걱정되니까 당연히 전화하겠죠. 오늘 어떻게 됐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물으면 이 사람들이 대답을 안 해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장 종료 후 오늘 상황이 어땠다는 그 얘기를 해주는 것은 막지않겠다. 대신 사전에 미리 당신이 어떻게 운영할 것이라는 의사를 알려주거나 당신의 의사를 내게 관철하려고 애쓰지는 마라. 모든 최종결정은 내가 한다.” 이렇게 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전체적으로 잘 따라줬어요. -당시 4명의 펀드매니저들은 지금 뭐하시나요? ▲3명은 펀드매니저를 계속하고 있고 한 사람은 새롬기술에 가서 자산운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채안기금을 운용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채안기금의 기본적인 발의 자체가 시장이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고자하는 정부의 의지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에 적극적인 활동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부 쪽에서는 금리가 일시적으로 오르면 불안하니까 거기에 관해서 많은 푸쉬를 했거든요. 그런 부분을 토론을 해나가야만 하는게 힘들었습니다. 또 10조라는 자금이 너무 작다보니 이것을 늘려야했지만 자금조성 문제에 있어서 벽이 많았어요. 여기저기서 반대하고. 뭐 그러한 점들이 어려웠었죠. -그 돈들 다 나눠주셨죠? 기금을 청산했을 때 이익이 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 나눠줬습니다. 그 때 이익이 조금 나긴 했는데… 시장이 완전히 안정화된 상황이 아니라서 이익이 별다른 의미가 없었어요. “시장정상화의 키가 채안기금의 소멸이라고 생각했다” -채안기금 막바지 시절 만났을 때 “이제 다시 여의도로 돌아가야죠” 라고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 정도 했으면 발을 빼겠다’ 뭐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청산 즈음에 실제로 그런 의도를 윗분들에게 전달한 겁니까? ▲더 이상 끌고가기 힘들다는 것 보다는 시장에 관한 시각의 차이가 좀 있었죠. 채안기금의 존속 자체가 시장 정상화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하는 판단의 문제로 말입니다. 채안기금이 만들어진 이유는 대우사태 이후 침몰해가는 투신권이 자신들의 매물을 내놓으면 어디선가는 받아줘야한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투신권의 수탁고가 바닥을 찍고 주춤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그러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거에요. 그런 상황에서의 존속이유라는 것이 애매했습니다. 시작당시의 목표가 시장붕괴를 막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시장의 실패를 막은 다음에는 다른 목표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바로 시장의 정상화죠. 저는 시장정상화의 키가 채안기금의 소멸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매매를 할 때 채안기금 같은 공룡이 있으면 거기만 쳐다볼 것은 뻔하잖아요. 단기적으로는 채안기금에 기댔던 시장심리가 붕괴되면서 금리가 오를수도 있겠지만 공룡 자체를 없애주는 것이 시장을 위해 훨씬 도움이 된다고 본 겁니다. 김정태 행장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시고 반대하는 다른 분들을 잘 설득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채안기금이 문을 닫고 금리가 실제로 올랐었죠. ▲조금 리바운드한 건 사실입니다. -채안기금 일을 모두 끝내놓고 이사로 승진하신 건가요. ▲이사승진은 채안기금에 있을 때 했습니다. -그때가 작년 초, 재작년 말 무렵이었죠? 그 당시의 채권시장을 어떻게 보셨나요. 금리가 내려간다 올라간다 말들이 많았는데요. ▲채안기금이 존속했을때는 채권을 운용하는 기관들이 펀더멘털에 관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채안기금이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관해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뭘 고민해야 될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러니 금리가 8-9%가 되면 상당기간 횡보하는 장세가 지속됐었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경기가 급격히 식으리라고 아무도 상상을 못했기 때문에 채권금리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기 힘들었습니다. 다만 시중의 유동성 측면에서 봤을 때 금리가 하락할 요인이 충분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우리 주택은행이나 다른 기관도 모두 채안기금이 없어지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데 두 달 정도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메이저기관들의 모양이 우습게됐었죠. 채안기금에 출자를 해놓고도 거기다 자기 채권을 많이 팔아먹었거든요. 근데 어느날 그대로 그 채권이 자기한테 고스란히 돌아왔으니…허허..그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감각에 대한 혼란이 많이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감각을 회복하는 속도가 빨랐겠습니다. 채안기금을 직접 만들고 해체시켰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채안기금을 맡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배타적인 이익을 향유한다는 자체가 이익보다는 잃을 것이 훨씬 많거든요.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들은 회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주택은행으로 되돌아와서 바로 채권을 사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채안기금을 해체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인위적으로 금리를 끌어내린다고 말입니다. 시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하면 무리없이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채안기금 운용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습니까. ▲이건 말씀드리기 좀 그런데…(웃음) 사람들은 채안기금 운용인력들이 눈코뜰새없이 바쁠 것이라 생각하시던데 운용을 안 하는 날은 사무실이 온통 수면실 분위깁니다. 시장도 전혀 안 보고.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시장을 보고있으면 우리가 보는 만큼 시장도 우리를 쳐다보게 되니까 볼 수가 없어요. 그래야만 우리가 없을 때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체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부러 사흘 정도 안 할 예정을 잡아놓고 출근만 하고 쉬는 분위기를 만들었죠. 물론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직원들이 그 상황이라고 편안히 쉴 수는 없었겠지만요. 이런 일도 있습니다. 브로커들이 저희에게 접대를 많이 하고 싶어했죠. 하지만 접대를 받을 수는 없고 오후되면 출출하니까 피자나 얻어먹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동안 매일 피자를 시켜도 5일뿐인데 전 증권사에서 다 피자를 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피자 받는 곳을 선정하려고 하니 다들 섭섭하다고 난리였어요. 왜 우리 피자는 안 받아주냐고. 하하 -제비뽑기라도 하시죠.(웃음) ▲그런 이유 때문에 채안기금을 접은 후 저희들에게 피자를 보내준 증권사들에게 운영수익금으로 다시 피자를 세 판이나 돌렸습니다. 하하 “채안기금을 통해 시장을 크게 보는 훈련을 했다” -채안기금을 운영했던 경험이 주은투신을 경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까. 아니면 그냥 그런 재미있는 일도 한 적이 있다라고 기억되는 정도입니까. ▲시장을 크게 보는 훈련을 했으니까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됩니다. 채안기금의 기본임무가 채권시장 전체를 방어하는 것이니까요. -은행권 최연소 이사가 되고 난 후 보이지 않게 견제도 많이 받았을 것 겉은데. ▲제가 처음에 은행에 갔을 때 제 나이또래가 대리직급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관록이 일을 해줘야하는데 가능하겠냐”는 우려를 많이 하셨습니다. 견제라는 표현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우려섞인 시각으로 저를 쳐다보시는 분들은 좀 있었죠. -그게 행동의 제약이 되던가요. ▲자산운용을 잘 하는 문제는 제가 시장하고 얘기하는 것이지 내부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내부적인 문제는 제가 나이가 어리니까 거기에 맞게끔만 행동하면 되는거고. 금융기관이 보수적이니 대부분의 금융인들이 직장상사와 나이가 일치하는 조직에서 일을 해온 건 사실입니다. 지금 주은투신에서도 나이가 더 많은 직원들이 있지만 이것은 분리해서 생각하면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봐요. “좋은 펀드매니저가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지금은 딜을 전혀 안 하시나요. ▲딜을 손에서 놓은지는 꽤 됐고..시장은 항상 보고 있습니다. -‘좋은 채권펀드매니저가 되려면 이렇게 하라’ 고 후배들에게 한 마디 조언해주신다면. ▲일단은 공부를 많이 해야죠. 우리 매니저들도 전반적인 시장분위기가 트레이딩에만 치우쳐 있어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근본적인 것부터 공부를 많이하는 매니저가 결국 좋은 매니저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채권시장이 선진국, 특히 미국의 시장을 따라가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하기 위해선 미국시장의 펀드매니저들을 열심히 벤치마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스타일의 부하직원을 높이 평가합니까? ▲자신의 철학, 소신을 가진 사람들. 펀드매니저는 이코노미스트나 스트레티지스트가 아니잖아요. 기본적 소양 이외에 펀드매니저만의 감성적인 자질들이 뛰어난 사람들이 우수한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채권관련 저서를 저술할 생각은 없는지. ▲물론 있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번듯한 채권교과서 하나 없잖아요. 채권시장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은 바로 한국 채권시장을 “우리들만의 리그”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나요. 몇 안되는 채권브로커가 좌지우지 하는 상황 아닙니까. 이 커뮤니티가 개방적이지 못하단 말이죠. 그야말로 우리들만의 리그 그 자체에요. 외환딜러들만 해도 이쪽보다는 훨씬 유연합니다. 주식이야 뭐 대한민국 국민 자체가 주식전문가니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채권시장은 그 누구도 채권관련 이론이나 실무를 널리 보급하고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안 했어요. 채권종사자들 모두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의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CEO로 재직하는 동안 꼭 이뤄보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사실 저희는 토종자본도 아닙니다. 신문에 외국자본에 잠식당한 국내시장..뭐 이런 기사도 나곤 하는데 ING와의 관계는 그런 면보다는 그야말로 전략적인 제휴의 입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외국사람들이 와서 “당신들도 이 정도로 일한다니 놀랍다” 뭐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똑똑한 한국사람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조직체계만 만든다면 나머지 문제점들은 쉽게 쉽게 풀려나가리라 생각합니다. (백경호 사장 약력) -61년 부산 출생 -동래고 졸업 -86년 부산대 경제학과 졸업 -88년 부산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87년12~92년4월 동원증권 -92년4월~97년6월 SK증권 -98년10월 주택은행 -2000년2월~6월 주택은행 자본시장본부장 직대 -2000년6월 주은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
2001.03.30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④백경호 주은투신 사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주인공은 백경호 주은투신운용 사장입니다.(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이게 비즈니스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입니까? ▲90년 한때 금리가 20% 가까이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금리가 천장을 치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돈이 되겠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많은 증권사들이 채권중개팀을 앞다투어 만들었죠.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채권시장이 열리게 된 겁니다. 브로커들을 앞에 서너명 앉혀두고 매일 전화하면서 사고 팔고…호가개념을 도입한거죠.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시장을 지배할 것이다” -동원에서 SK증권으로 옮기고나서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드물었던 채권분석을 시도하고 정보모임도 주최하셨다면서요. ▲처음 동원증권에 입사했을 때 동원증권 최고의 채권전문가는 상고를 나온 모 대리였습니다. 그 분이 채권단가계산을 주판으로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최고의 기술이었죠. 입사초년병이던 저와 동기들이 매매내역을 정리해서 그 분 책상 위에 올리면 주판을 탁탁탁 두들긴 다음 “음 그래 맞다” 고 한 마디 하고 도장을 쾅 찍어주시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계산기라고는 ‘카시오’ 밖에 없었는데, 한빛증권의 이 모이사께서 그걸 이용, 채권계산하는 것을 보고 모두 따라했었죠. 그런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면서 제 스스로 채권에 눈을 떠가던 시절이었구요. 그러니 당시에 채권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계산을 잘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채권을 통해 돈을 벌겠다기보다는 업무처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뤘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저는 “이것보다는 금리를 예측, 분석하는 일이 훨씬 부가가치가 높겠다” 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 다음엔 “금리예측의 시대가 지나가면 그 후에는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구요. 개인적으로 지금 현 상황이 바로 그 과학적, 수학적인 단계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실천해보셨나요. ▲우선 채권시황을 정기적으로 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채권본질에 대해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 지금이야 듀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일반독자들도 잘 알지만 그런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미국의 유명한 채권전문가의 책자들도 전혀 소개가 안돼 있었어요. -호가를 집중하는 문제, 시장정보를 전달하는 방법 같은 것도 시도하신 적이 있죠. ▲채권시장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된 계기는 94년 7월에 2주간 미국, 일본 출장을 간 것이었습니다. SK증권에서 근무하는 동안 제가 재경부에서 주관하는 채권시장 태스크포스 활동을 3번 정도 했습니다. ‘채권시장 선진화 방안에 관한 태스크포스’ 이런 타이틀하에 이루어진 활동들이었죠. “국채시장 선진화에 관한 조사연구”를 목적으로 해서 국고과 사무관, 증권거래소 부장, 저 등등이 미국, 일본을 돌았습니다. 그 때 비로소 선진화된 시장에 관해 눈을 뜨게 된 겁니다. 정부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기때무에 일반인들이 가기 힘든 미 재무성, FRB, 뉴욕연방은행, SEC, 일본 대장성, 일본은행등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어요. 경제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관리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과정을 제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요. 그것이 제가 채권시장에 관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든 좋은 계기였습니다. 2주간의 출장기간을 상당히 빡빡하게 보냈습니다. 현재 국내 국채시장의 입찰과 발행제도 전반은 그 당시 저희 팀에서 출장보고서로 제출한 리포트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 당시 미국 채권시장이 장외시장일 때인데 IDB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관행이 쌓이고 깨지면서 채권시장은 발전하는 것” -IDB를 직접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적도 있는데. ▲거의 유사한 형태를 만들었지만 실패했습니다. 시장에 진입한다는 것이 욕심만 가지고 되는 것을 절대 아닙니다. 미국의 채권시장이 지금처럼 엄청나게 발전한 것은 오랜 기간동안 관행화된 여러 관습들이 제도화했기 때문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시장이 존립하는 것이거든요. 현재 미국시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제도들이 많습니다. 일년을 360, 한달을 30일로 규정하는 것만 봐도 그렇죠. 누가 봐도 이것이 불합리하지만 시장참가자들이 하나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까 자연스레 정착이 된 겁니다. 우리도 시간이 좀더 지나서 이러한 관행이 정착되면 IDB역시 진정한 제도로서 뿌리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금융시장이 정부에서 틀을 만들어놓고 “여기 들어와라” 하는 식으로 이뤄졌어요. 그러다보니 정부가 만들어준 시스템이 민간에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도 전혀 없었죠. 정부의 생각은 단지 ‘선진시장에서 이런 식으로 하니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안 됐던 거구요. IDB에 관해서도 시장에서 논란이 많았었습니다. 도대체 이걸 증권사로 봐야하느냐 거래소로 봐야하느냐는 것. 하지만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민간에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만들면 그 주체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운용하면서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깨져가며 운영하다 보면 그것이 좋을 경우 시장에 관행으로 정착되고 반대의 경우 자연히 퇴출당하지 않겠습니까. 전적으로 시장이 판단할 문제란 말입니다. -SK증권을 그만두시고 별도로 회사를 만들어 운용하신적이 있으시죠. 그 얘기 좀 자세히 해주세요. ▲SK증권을 그만둔 건 제 나름대로는 채권쪽의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러한 여건 조성이 안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표를 내고 회사를 차린 겁니다. 우리 금융시장에 혁신적인 상품들을 새로 개발해서 내놓고 싶었어요. 그 당시 김상석씨(현 edaily 뉴욕특파원)와 매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많이 했죠. 그걸 빨리 접은 이유는 주택은행이라는 좋은 금융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있지만, 금융이라는 것이 크레딧에 근거한 비즈니스지 개인의 아이디어로 상품화를 한다고 해서 돌파하기 쉬운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쉽게 말해 벽을 느낀 거죠. -그 회사를 접은 것이 97년이었는데 IMF에 진입하던 시점입니다. 그 다음 98년엔 채권이 대박상품이었는데. ▲그 때 매매해서 대박 낸 사람들이 많았죠. 그런데 저야 그 시기에 회사를 접었으니 뭐. 허허 “금융의 속성은 자본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 -백사장께서 회사를 접을 때 다른 사람들은 “부티끄”니 뭐니해서 기존금융기관을 박차고 나오던 시점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백사장께서 너무 일찍 증권회사를 나오는 바람에 그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사업의 성공유무를 떠나서 저는 기존 기업의 경직된 관행을 탈피하고 창의적, 아기자기한 비즈니스를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금융의 속성이라는 것이 자본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 어려웠던 거죠. 저희는 규모가 너무 작아서…하여간 개인역량으로 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택은행에 입사했는데…김정태 주택은행장과는 동원증권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나요. ▲제가 동원에 입사했을 때는 김 행장님께서는 동원증권 전무셨습니다. 제가 그 당시 증권회사 직원들의 모임인 “청년중역회의”란 곳에서 활동했습니다. 일종의 아이디어 뱅크인데 그걸 빌미로 몇 번 얼굴을 뵌 적은 있죠.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증권회사의 일개사원과 증권사 전무와의 관계가 지속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요. 물론 그분이 저를 기억해주시긴 했지만 교류를 한 건 아닙니다. -김 행장께서 백 사장님을 발탁하신 이유는. ▲김정태 행장께서 행장취임후 주택은행이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는 걸 보고 ‘저 자산을 좀 더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라는 고민을 하신 것 같아요. 그 자산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거죠. 그런 사람을 찾다가 저를 부르시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사업을 할때도 거의 안면이 없었고. 김 행장께 저를 적극 천거하신 다른 분이 계시긴 합니다. 그 분과는 오래전부터 지속적인 관계가 있었죠. 김 행장님과의 기본인연은 동원증권에서 맺어졌지만 실질적인 관계가 이루어진 것은 결국 주택은행에 입사하고 나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인 스스로 평가할 때 상사의 신임을 얻게 된 이유가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행장님이 저를 “촌놈”이라고 부르셨는데… 촌놈들이 자랑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일이 있으면 앞뒤 안 가리고 열심히 하는거죠. 오직 그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상사없이 많은 부하를 거느린 입장이시죠. 부하직원을 평가하는 상황에서도 그러한 면을 중시하나요. ▲주은투신은 운용자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조직입니다. 저는 작은 조직에서 의 힘의 근원은 “모든 것의 파괴”에 있다고 생각해요. 능력만 출중하면 있으면 비록 나이가 어려도 얼마든지 진급도 빨리하고 돈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딜링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 인성보다는 능력을 중시한다는 의미인가요. ▲그 문제가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인성도 좋고 능력도 좋다면 금상첨화겠죠. 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힘드니까 둘 중에 뭘 택하느냐고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굳이 대답을 드리자면 “그래도 인성이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일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인성이라는 것에 너무 많이 매달리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우선 고려하는 것이 인성이지만 과거보다 능력이라는 요소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점수를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완벽하게 이기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주택은행에서 재직하면서 고생한 경험은 없습니까. 딜을 하는데 방향을 잘못 읽어서 애를 먹었다든지. ▲머리가 나빠서 기억이 안나는데요(웃음) -“백전백승이었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럼 완벽하게 이겼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시장에서 완벽하게 이기고 지고 하는 자체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요. 저는 순리에 따른 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시장을 완벽하게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한국 채권시장에서 딜을 하면서 자신의 포지션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잘 아시겠지만 ‘이번 한 번 왕창 먹고 그 다음부터는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겠다’ 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노출은 불가피해요. 우선은 이기고 진다는 그런 개념 자체를 가져보지 않았습니다. -주택은행에 재직시절 예보채로 딜링을 시도한 최초의 분이 아닌가요. ▲처음은 아닙니다. 그당시 예보채 스프레드가 상당히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최초의 예보채가 나왔을 때 국고5년물과의 스프레드가 무려 120bp였습니다. 시장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다들 적정 스프레드가 20-30bp라고 하더군요. 채권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 중 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유동성 프리미엄 때문에 그렇게 벌어진 거에요. 그래서 속으로 ‘저건 너무 저평가됐다’ 고 생각하고 그 부분을 주목한 겁니다. 어차피 정부보증이 되면 위험가중치가 제로(zero)가 되니까 우리가 충분히 들어갈 만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 당시 운용을 상당히 공격적으로 하셨죠.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시장에서 예보채 가격을 보면 그 당시 가격이 매우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당시에 “채권시장을 지키는 독수리5형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손”들의 역할이 컸는데요. ‘아 이 정도면 싸움이 된다. 우리랑 겨뤄볼 만하다’ 고 느낀 기관이 있었습니까. ▲마치 삼국지 같은 얘기군요.(웃음) 제가 은행에 있을 때만 해도 투신사들은 지속적으로 수탁 규모가 줄어 기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할 무렵이었습니다. 결국 대형은행이 시장을 이끌어나갈 수 밖에 없었죠. 특히 농협 같은 기관이 마켓 메이커로서 일단 앞에 나서고 그 뒤를 시중은행들이 따라가는 구조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마 주택은행이 채권딜러들에게 성과급제도를 도입한 최초의 은행일 겁니다. 나름대로 그런 시스템을 조기에 도입하다보니까 딜러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던 것 같고 농협, 국민은행, 한미은행 등도 적극적으로 했죠. -채권과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주택은행을 은행으로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금도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주택은행을 얘기하면 “거기가 원래부터 우량은행이냐. 기업금융 안하다가 우량은행 된 거 아니냐” 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허허. 일견은 타당성이 있는 얘기라고 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입사할 무렵과 지금의 주택은행은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겁니다. 은행 직원들 자체가 과거처럼 500만원, 천만원짜리 대출만 하는 은행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조직의 유연성부분은 어느 은행보다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전산투자도 대규모로 해서 시스템자체도 잘 갖춰진 편입니다. -한 때 채권이 한 방향으로만 간 적이 있었죠. 대우문제가 터지기 전 말입니다. 그때는 채권을 들고 있기만 해도 수익을 내는 시절이었는데요. 아까 언급하신 인덱스를 비트하면서 수익을 내보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으셨나요. 나름대로 초과수익을 내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도입한 전략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당시 은행 포트폴리오는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은행의 속성이 위험자산을 취득하지 않기 때문에 무위험자산에 집중하게 되죠. 그런데 무위험자산으로 이익을 낸다는 것은 결국 듀레이션 베팅에 의해서 수익을 얻는 거란 말입니다. 듀레이션을 적절히 조정해서 차익을 남기면 간단해요. 지금 시장의 많은 스트레티지스트들을 보면 기술적 분석에 의지하죠. 물론 기술적 분석이 시장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긴 하지만. 우리시장의 근본적인 한계랄까 문제점은 바로 이겁니다. 사실 한국 채권시장에서는 브로커들과 친하면 아주 쉽게 이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은행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저희 매니저들에게 브로커들에게 돈 쓰는 거 절대 아까워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브로커는 일차적 정보를 생성하는 사람이자 시장을 쥐고 있는 주체니까요. 예를 들어 자신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브로커를 한 명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러면 그 사람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절대 질 수가 없어요. 채안기금 시절 “작은 금액으로도 흐름을 바꾸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백사장께서 채안기금 운용하실 때가 무척 인상이 깊었습니다. 채안기금 조성도 김정태 행장이 주도하셨고. 김 행장이 채안기금으로 가라고 했을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행장께서 저를 불러 “10조” 라는 금액을 얘기하며 그 쪽으로 가라고 하시길래 우선 “금액이 너무 작다”는 말씀을 드렸죠. 하지만 유연하게 접근하면 해 볼만한 싸움이라는 생각은 했어요. 당시 금융시장이 문제가 됐던 것은 투신권이 대우채권에 대규모로 물려있었기 때문입니다.투신권 전체가 가지고있는 총 채권규모가 170조-180조원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채안기금 규모는 사실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의 최소량의 법칙에서 볼 수 있듯 작은 금액만을 가지고도 흐름을 바꾸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또 김정태 행장께서 일 시키는 스타일 자체가 믿고 맡기면 최대한 여건을 조성해주시는 편이라서 별 고민없이 승낙했습니다. 물론 저도 조건을 내걸었어요. “펀드매니저만은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파견해달라” 고. 매니저는 저에게 정확한 정보를 가르쳐줘야 하는 사람인데 서로의 신뢰가 없으면 안되잖아요. 그 조건 하나가 다른 행장들에게 전달됐고 오케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죠.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3.30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③국민연금 한승양 팀장(하)
  • [edaily]“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이번주는 국민연금의 한승양 팀장이다.(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작년 수익률 211bp 초과달성, 재작년 101bp 초과달성” 시황에 맞는 투자전략 구사 -국민연금의 경우 여유있는 운용이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작년처럼 금리가 많이 떨어지면 오히려 운용에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처럼 금리가 급락했을 때의 운용방법과 지금처럼 금리가 바닥 언저리에 있다고 생각될 때의 운용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국민연금 기금중 채권부분이 시가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는 사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가평가와 장부가평가 방식을 병행하고 있죠. 물론 시가평가제의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은 운용의 투명성 아니겠습니까. 모든 걸 다 공개하니까요. 시가평가 방식으로 보면 작년도에 14.4%의 운용수익으로 벤치마크대비 211bp를 초과했습니다. 재작년에는 101bp를 비트했구요. 더욱 중요한 것은 작년은 금리 하락기였고 재작년은 금리상승기였다는 점이죠. 국면과 상관없이 이러한 큰 수익을 냈다는 것은 나름대로 저희가 그 국면에 따라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운용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면서 리스크관리를 철저히 가져가는 겁니다. 저희는 매월 꾸준히 보험료가 들어와 기금이 계속 늘어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만을 예측해서 운용하는 것은 일종의 투기라고 생각해요. 대단히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금리예측보다 저평가된 채권을 발굴하는데 꾸준한 노력을 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금리예측 대단히 어려워, 일종의 투기..저평가 채권 발굴에 주력” -하지만 목표수익률을 정할 때는 향후 금리에 대해 예측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절대규모를 가지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크게 좌우받지 않습니다. 금리가 낮으면 낮은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시장상황에 맞춰가면 되니까요. 올해 들어서는 금리하락이 너무 심하다 싶어서 만기보유채권의 듀레이션도 많이 줄이고 보수적으로 운용했습니다. -시장이 막 흔들릴 때 국민연금이 수익성과 무관하게 흔들리는 시장을 방어해줄 수 있는 기관이 돼야한다는 기대를 가진 시장참여자들이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말씀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저희는 “price taker”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 “price maker”가 되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price maker” 가 되고자 하는 국내기관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걸 해낼 수 있는 기관은 사실 국민연금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장가격을 형성한다면 여러가지 부작용만 나올 뿐이고, 우리가 해서도 안되는 일이에요. 가격이라는 것은 금융시장 상황과 수급논리에 의해 자율적으로 형성되야지, 어느 한 쪽이 큰 포지션을 가졌다고 해서 거기에 의지하게 되면 시장자체가 왜곡 되거든요. 금리가 많이 올라가 있을 때 국민연금이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수익을 내기 위한 우리 운용전략의 일부입니다.. ”국민연금은 ‘price taker’이지 ‘price maker’는 아니다” -국민연금은 국정감사 때마다 국회의원들의 표적이 되곤 하는데… 연금의 운용자로서 “밖에서 국민연금의 이러이러한 점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자산운용 원리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어떤 공적인 역할을 지나치게 부여하거나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고 운용이나 투자의 관점에서 봐달라는 겁니다. 물론 나날이 규모도 커져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커지고 있고 국민들의 복지와 관련된 만큼 그러한 요소를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모든 것을 운용중심으로 생각해야만 나중에 국민들에게 돌아갈 몫도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장기적 관점으로 봐 달라는 말입니다. -지금 한 팀장님의 직속상사인 본부장은 어떤 분이십니까? 입사전에도 안면이 있었나요? ▲김선영 본부장이십니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교수생활도 하시다가 귀국해서 한신평에서 1년 정도 계셨습니다. 그 다음에 동양증권에서 오래 근무하셨구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신 덕장이시죠. 안면이 있었다기보다는 저도 같은 업계에서 근무해서 얼굴과 존함을 널리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운용에 관해서는 가족들에게도 얘기하지 않으신다구요. 직원들에게도 단단히 자물쇠를 채우라고 요구하십니까. ▲저는 제 자신의 업무, 특히 운용과 관련해서는 가족들과 전혀 얘기를 하지 않아요. 직업윤리라는 거창한 말은 제쳐 두고라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자산을 운용하는 사람으로서 업무관련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없죠. 대외적으로 저희 팀의 원칙이 있습니다. 운용사실과 결과는 공개하되 사전 운용 계획이나 시장에 대한 전망은 절대 얘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호가 우선의 원칙, 신상품 아이디어는 언제든지 환영 -현재 채권시장을 다루는 매체가 거의 없는 편인데요. 채권시장의 참여자로서 어떤 뉴스나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중시하는 원칙중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건 바로 거래의 투명성입니다. 유통시장의 경우 거래 원칙은 오직 하나, 가격우선이에요. 호가가 제일 좋은 곳과 거래하는 거죠. 이런 투명성을 정착시키는 것과 관련한 기사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게 바람입니다. 발행시장 측면에서는 ABS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희는 신상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서 시장에서 항상 앞서 나갔습니다. 저희는 증권사가 독특한 상품을 개발해서 시장에 들고나오면 그걸 끝까지 존중해줍니다. 모든 거래를 공정하게 투명하게 한다는 게 우리 팀의 단호한 방침입니다. -채권운용팀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 지나요? ▲ 우리 채권운용팀의 특성은 각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주어져있다는 거에요. 저는 운용전략이나 방침만을 정하고 리스크 관리에 전력을 다 합니다. 개별 딜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증권사 브로커들도 잘 몰라요. 모든 일이 팀원-팀장-본부장 세 단계만 거치면 될 정도로 의사결정구조도 단순하구요. 저는 제가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담당자가 반대하면 안 합니다. 저희 본부장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원칙에 입각한 조직 운영체계이죠 ”채권운용팀에서는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신상품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다는 말은 국민연금의 전 직원이 계속 공부를 해야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는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적어도 채권운용팀에서는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하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합니다. 이번에 신규채용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공부 안하고 대충대충 일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채권운용팀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각자가 자신의 고유역할을 가지면서 그 팀워크하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는데 자기분야에서 최고가 되지못하면 그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겠습니까. -새로운 상품말고도 매매기법이나 신규시장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이제 해외로 나가야죠. 외평채 등 해외한국물, 미국 재무성 채권 등에도 관심 -현재 국민연금운용규정상 해외투자가 가능한가요. ▲금년 7월1일부터 가능하도록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외평채 등 한국물위주로 할 계획입니다. 언젠가는 미국시장에서 재무부채권(TB)의 주요 고객이 될 것입니다. -해외투자를 계속하게 되면 중장기적으로는 포지션을 가지게 되는데요. 파생될 거래도 많을 거구요. ▲지금 운용역 중 한명이 그걸 전담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정도의 규모를 가진 자산이 수익을 내려면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어요. 앞으로 수년내에 국민연금의 총규모가 세계 5대 기금중의 하나가 됩니다. 이 막대한 자산이 국내에만 묶여있으면 리스크 관리가 안됩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수익도 못 내고 안정성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부하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바는 뭡니까. ▲현재 채권운용팀 직원들은 유능하고 성실합니다.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국민의 노후 복지를 책임지고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저는 우리 직원들에게 소신과 긍지를 가지고 맘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앞으로 이 사람들과 계속 같이 근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들에게 “만약 당신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되면 지금 받는 연봉의 10배를 받고 옮겨라.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고 말합니다. 국민연금에서 일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도덕성은 검증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운용능력은 물론이구요. 저는 이 친구들을 훌륭한 매니저로 키워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전에 저는 이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은 물론이구요. 팬션펀드는 기금성격상 매니저들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줘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근무조건 개선과 함께 저는 팀장으로서 이들에게 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채권운용팀의 매니저들은 모두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에 계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신 일은 뭡니까 ▲뛰어난 운용수익과 부실채권 전무는 앞서 말씀드렸고. 그 다음으로는 ABS시장을 개발한 것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딜은 지난해 현대중공업 회사채 투자” -기억에 남는 딜은?. ▲지난해 5월 현대중공업 회사채 관련 딜이죠. 현대중공업은 굉장히 좋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저평가된 상태였습니다. 우리팀이 두 달동안 현대중공업 리서치에 매달리고, 회사도 방문하면서 “이런 저평가 채권은 매입하여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시가보다 40bp나 높게(채권가격을 싸게) 받았어요. 투자위원회에서 심의도 거쳤고 근데 그당시 5월말 소위 ‘왕자의 난’이 터지면서 문제가 꼬였지요. 그후 여러가지 루머가 나오면서 개인적으로 곤욕을 치뤘는데 그 후에 대부분 팔아서 엄청난 매매차익을 남겼습니다. 대단한 딜이었습니다.(웃음) -작년의 경우 금리움직임을 이해하면 아침에 샀다가 저녁에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장세였는데 국민연금의 경우 그런 딜을 하십니까. ▲저희는 시장에 대해 휩쓸리지 않고 한걸음 물러나 여유를 가지고 보려고 합니다. 리스크관리없이 금리만을 예측하여 트레이딩을 하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겁니다. 외국의 매니저들은 금리예측이라는 걸 참고자료로 사용할 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예측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개별채권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를 파악하는 거죠. 그걸 위해서는 여러가지 기법이 도입되어야 하고요 -거래가 마무리되는 시간은 언제쯤입니까?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거래 끝나고 대충 정리하면 5시 정도 됩니다. 저희에게는 여러가지 정보 및 자료가 엄청나게 들어옵니다. 그 많은 자료들을 다 보기만 하려해도 시간은 오히려 모자랍니다. -주말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시는지. 운동은 하십니까. ▲국민연금 오기전엔 운동을 좋아했는데 여기와서는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전 주말이 따분해요. 전 천성적으로 일체질인가 봅니다. 하하. -아버님이 학자시라고 했는데 무엇을 전공하셨는지. ▲저희 아버님은 서양 철학을 전공하신 학자세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서울대 철학과를 나오시고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생활을 하셨어요. 평생 공부만 하시고 산 분이세요. 안타까운 점은 아들 셋 중 아무도 아버님의 위업을 받들지 못하고 장사꾼이 돼버린거죠…참..하하. 워낙 어려운 시절을 학자로만 살아오신 분이라서 저에게 의대나 치대를 가라고 권유하셨어요. 그 말씀을 지키지도 못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뭘 하든지 간에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스스로 의식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저는 고리타분한 사람이에요.(웃음) -부인은 사회생활을 하시는가요. ▲국민연금에 오고 나서 연봉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일찍한 편이라 아이들이 벌써 중학생인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죠. 아이들에게 한참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에 급여가 반밖에 안되니 집사람의 고생이 심했어요. 솔직히 연봉을 많이 줄 테니 오라는 제의도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집사람 덕분입니다. 제가 돈을 가져다주지 않으니 밖에 나가서 직접 돈을 벌더라구요. 미국 핌코사의 유명한 채권 펀드매니저인 빌 그로스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56세나 되는데도 일년 연봉이 4천만불입니다. 물론 미국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누가됐든 우리나라에서도 그가 받는 액수의 1/100을 받는 펀드매니저는 나와야하지 않겠어요. (한승양 팀장 약력) -60년 출생(본적 전북) -전주고 졸업 -85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한미은행 입사 -86~94년 쌍용투자증권, 연구소 -94~98년 교보증권 채권팀장 등 -98~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채권운용팀장 (인터뷰 후기) 한 팀장과 기자는 인터뷰를 마친후 호프를 한 잔씩 마셨다. 한 팀장의 주량은 소주 1병 정도라고 했는데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닌듯 했다. 한 팀장은 국민연금으로 이직하기 직전 교보증권에서 소위 기관영업이라는 것을 했다. 그는 “새벽에 생선들고 남의 집 문 앞에서 서있어 봤냐”고 물었다. 한 팀장이 지금은 국내 채권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매수기관(buy side)의 책임자이지만 한 때는 몸소 영업을 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요즘 펀드매니저들을 보면 대접을 받을 줄 밖에 모른다”며 “겸손하고 투명하게 운용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우리 채권시장의 2세대라고 말하는 한 팀장의 태도는 단호하고 때로는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23조원의 돈을 관리하다보면 무한한 책임감과 함께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차가움은 바로 그 무서움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01.03.27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③국민연금 한승양 팀장(상)
  • [edaily] 국민연금은 채권시장의 “큰 손”중에서도 가장 큰 손이다. 국민연금의 채권투자 규모는 23조5000억원. 우리나라 전체 채권시장 규모를 300조원이라고 할 때 7.7%에 달하는 규모다. 국민연금의 위력은 현재보다 미래에 있다. 국민연금 펀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국민연금에서 채권투자를 담당하는 한승양 팀장이다. 그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시절 채권을 알게 된 이후 운용역을 거쳐 채권팀장까지 채권시장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을 쌓은 백전노장이다. 국내 최대의 펀드인 국민연금 채권운용을 맡으면서 시장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투명한 원칙”과 “새로운 투자기법”을 부르짖는 정통 채권맨이다. 국민연금의 존재는 채권시장이 좋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해 채권수익률이 급락, 대부분의 채권펀드가 “이보다 좋을 순 없다”며 호황을 구가할 때 국민연금은 예보채 입찰에도 참여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연금에 들어오는 자금의 성격상 예보채를 투자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만기가 1년인 투신권 펀드에서도 5년짜리 예보채를 겁없이 사들였지만 국민연금은 수익률이 맞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나갔다. 올들어 채권수익률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예보채 입찰이 어려워지자 국민연금이 움직였다. 적정 수익률이 됐다는 생각이 든 것. 국민연금의 “예보채 입찰에 관심이 있다”는 말 한마디에 예보채는 “유찰”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승양 팀장은 “시장에서 은근히 국민연금이 어떤 역할을 해주길 바라지만 연기금이 해야할 일은 따로있다”며 “외국 유수의 연기금 펀드처럼 훌륭한 연기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익성과 투명성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교보증권 채권팀장 자리를 그만두고 98년 국민연금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금운용 담당자를 공채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한 것인데 1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쳤다. 월급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한 팀장은 “펀드다운 펀드를 운용해보겠다”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민간인으로서 준공무원 조직에 들어가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최고의 펀드, 최고의 펀드매니저”라는 꿈을 이뤄가는 재미로 버텨나갔다. “토요일, 일요일이 가장 힘든 날입니다. 할 일이 없거든요.” 주말 여유시간마저 “일”을 하고 싶어하는 한 팀장의 채권철학을 들어봤다.(인터뷰 하편 기사 하단에 약력참조) -격동의 80년에 대학에 들어가셨군요 ▲제가 좀 늦게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원래는 자연계열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학자이신데 일제시대, 한국전쟁, 군사정권 등 암울한 시절들을 거치시면서 자식들은 정치나 사회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직업을 택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과, 특히 의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 적성과는 상관없이 고2때 이과를 선택하고 서울대 치대에 지원했었습니다. 그러다 “난 도저히 자연계열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문과로 다시 시험을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시험을 봤죠. 그리고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합격한 후 2학년 전공결정 때 국제경제학과를 선택한 겁니다. 격동의 80학번, 자본주의의 최첨단 증권시장에 입문 -80학번이시면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절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렇죠. 그 때 지금 한창 잘 나가시는 유시민씨, 심재철 의원등의 주도 하에 데모도 많이 했어요. 학교입학 후 두 달만에 5.18이 발생해서 10월까지 놀았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으니까요.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있습니까. ▲당시 제가 다니던 국제경제학과(당시 무역학과)는 학교 내에서 데모를 제일 많이 하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운동권 활동을 열성적으로 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 쪽 관련책을 곁눈질해서 많이 보게 됐어요. 지금 부총리이신 한완상 교수, 이영희 교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80년대 대학을 다니신 분이 자본주의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증권시장에 입문한 것이 독특하다면 독특한데요. ▲당시에는 채권이 뭔지도 몰랐어요. 80년대 중반이후 주식시장이 부상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가끔 80년대의 비극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그 때 수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증권회사가 좋다니까 무작정 몰렸습니다. 그 후에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사람도 참 많았거든요. -증권회사를 택한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은 그곳이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고 또 금융의 증권화가 도래하는 시기였으니까요. 막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시대로 넘어가려는 시대였지만 그때 한국의 직접금융이 너무 초기 단계라서 이 분야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쌍용투자증권 부설 쌍용경제연구소에서 2년 반 정도 근무했습니다. -애널리스트로 말입니까. ▲네. 그런데 그 때는 애널리스트와 이코노미스트 등에 대해 뚜렷한 개념이 없었어요. 저는 증권연구실에서 금융시장 전반에 관한 연구, 경제분석 같은 업무를 담당했죠.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스트레티지스트였죠. 거기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 2년 반 하다보니 지겹더라구요. 마침 그 무렵 채권에 눈을 떴어요. 이거다 생각하고 연구소장님께 채권팀으로 보내달라고 한달 정도 계속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채권계에 발을 내딛은 겁니다. ”채권시장처럼 가능성이 큰 시장에 몸을 바치고 싶었다” -채권팀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채권시장은 주식시장과 더불어 자본시장을 이끄는 수레바퀴중 하나이면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큽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에 비하여 너무 낙후되어 있었어요. 미국이나 유럽시장을 보니 채권시장이나 채권매니저들의 위력이 대단하더라구요. 이 낙후된 분야에 몸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럼 교보증권으로 옮기면서 채권을 시작한 겁니까. ▲아닙니다. 쌍용경제연구소에서 쌍용투자증권 채권부로 옮겨 3년 정도 근무했죠. 거기서 참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3개월 정도 미국 월스트리트에 OJT를 다녀왔는데 그걸 계기로 정말 여러 가지를 배웠고 채권시장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하게 됐어요. 채권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회사방침이 근무순환 방침이어서 영업부로 발령이 난 게 계기가 되어 교보로 옮겼고 거기에서 채권팀장을 맡았죠. -채권시장 경력이 한 11년은 되시는 군요. 듣기로는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운용전문인력을 공채할 때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입사하셨다는데. ▲IMF 외환위기가 막 발생한 직후인 98년 2월에 공고가 났습니다. 그 때는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국민연금에서 기금운용전문가 채용공고를 낸 거죠. -경쟁률은 어땠습니까? 운용팀장을 뽑는 것이었나요? ▲120명정도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운용팀장이 아니라 매니저, 즉 운용역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채권시장의 2세대로서 진정한 펀드운용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국민연금으로 옮기시면서 월급도 많이 줄었을 텐데. 자리를 옮기신 이유는. ▲급여는 정확히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증권회사에서는 운용의 한계를 느꼈어요. 증권회사에서는 운용이라는 것이 단기 트레이딩이 전부였는데 이게 진정한 의미의 운용은 아니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증권회사 사람들의 꿈은 진정한 운용을 해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처럼 자신의 펀드를 가지고 전략과 포트폴리오를 짜서 운용하는 것 말이죠. 또한가지는 그동안 나름대로 갈고 닦았던 채권관련지식을 공익을 위하여 바치고 싶었어요 . 제가 채권을 시작하기 전에 그 분야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바로 한국 채권시장의 1세대시죠. 저는 2세대쯤 되겠죠. 그 당시 운용은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운용이라고 해야 호가, 매매단가계산, 가격체결 그 정도가 전부여서 단가계산하는 것이 커다란 노하우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단가계산하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죠. -계산법을 안 가르쳐준다? ▲네. 채권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에 계산프로그램이 생겼죠. 샤프계산기인가? 그 계산기에 수식을 입력해서 마음대로 계산하는 선배들이 정말 부럽더군요.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입니까? ▲80년대 후반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증권시장이 펀더멘털을 중시하지도 않았고, 금리를 예측해서 채권을 사고 판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국고채도 없었고 그나마 회사채가 거래됐지만 대개 발행시장에서 소화된 게 대부분이었어요. 무보증사채도 없어서 회사채종류가 은행보증/기타보증 두 종류만 있어서 발행사의 신용도와 관계없이 호가가 두가지 밖에 없었어요. 은행이나 투신 같은 운용기관은 바이 앤 홀드(buy and hold:만기보유) 전략만 사용했구요. 채권을 매집해서 편입하기만 해놓는 시스템말입니다. 그런 것만 보고 배우다가 미국에 갔더니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대단했죠. 운용툴이 좍 펼쳐져 있고 프로그램이 저절로 움직이는데다 포지션을 가지고 매매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포지션을 가지고 운용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의 트레이딩이라고 하는 기법은 증권회사에서 맨 먼저 도입한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IMF 외환위기이후 채권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시가평가제도입, 인터넷기법의 활용등으로… -국민연금에 입사하고는 몇 분이서 같이 운용을 했나요. ▲1년간은 저 혼자 했습니다. 그 후 반년간 둘이 하다가 99년 11월에 기금운용본부가 생겨 자산운용조직으로 면모를 갖추었고. 지금은 채권운용팀에 5명이 있습니다.(미들, 백오피스 제외) 상반기중 4-5명을 충원할 계획입니다. 국민연금 입사 초기, 인프라 구축에 주력 -초기 홀로 운용할 때는 지금처럼 딜을 활발하게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 당시에는 채권운용에 배정된 자금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실제 딜보다는 운용관련 인프라 구축에 힘을 많이 쏟았어요. 무보증회사채 매입근거를 마련하고 선진운용기법도 도입하고 그전에는 매입만 있었어요. 제가 운용을 맡으면서 처음 매도를 한 거죠. 결제방식도 개선하고 운용관련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운용을 하게 된 것은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입니다. - 그 당시 채권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처음에 제가 맡았을 때는 3조5000억이었고 본부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6조5000억이었습니다. 지금이 23조5000억이니까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익성, 안정성, 직접투자의 원칙 -기금운용이 운용본부로 통합되면서 많은 부분이 채권으로 바뀐거군요. ▲본부를 설립하면서 내건 운용방침은 수익성, 안정성이었습니다. 같은 fixed income 이라면 가장 수익이 높고 안정한 방법을 하겠다는 거죠. 그러면 예금을 들 이유가 없습니다. 요즘 국고채 금리가 떨어져서 좀 그렇지만 당시에는 예금과 채권의 금리차가 엄청났어요. 또 우리는 채권의 경우 간접투자는 안하고 직접투자만 합니다. 공사채형 수익증권과 은행금전신탁을 안하는 이유는 시가평가제하에서 시장위험을 무릅쓰면서 굳이 수수료를 줘가면서까지 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이건 저희 뿐 아니라 캘퍼스(CalPERS) 같은 해외유명 팬션(연금)펀드들이 동일합니다. 사족이지만 지난 2년간 국민연금의 채권운용수익률이 국내에서 제일 높습니다. 부실채권도 전혀 없구요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국고채 55%, 회사채 45%” 우량 ABS에 투자 -채권운용규모가 23조나 되는데 그 포트폴리오가 어떤지 좀 알려주시죠 ▲절대치로 봐서 현재의 23조는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닙니다. 보험료수입과 운용수익이 급증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되던 자금이 없어져 국민연금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돼 있어요. 국민연금의 성격상 그중 상당부분은 채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고 현재는 국공채에 55%를, 회사채에 45%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회사채중 절반이상이 우량ABS이구요. -회사채의 투자등급은 어디까지입니까? ▲실질적으로 A등급이상에만 투자합니다. 규정상으로는 BBB등급에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 내부기금운용규정에 의하면 예외투자로 투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사장님의 승인을 받으면 BBB등급 회사채 투자가 가능합니다. 저희가 보수적으로 A급 이상에만 투자한 결과 부실채권이 전혀 없게 된거죠 “가장 중요한 투자전략은 저평가 채권을 발굴하고 고평가 채권을 매도하는 것” -그런 거대규모의 자금을 움직이면서 생각하신 큰 밑그림은 뭡니까. ▲기본적인 운용방침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용수익을 올리는 겁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원칙은 디폴트 프리(default free)이구요. 그 원칙 하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짜서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죠. 그 중 가장 중요한 전략은 저평가채권을 발굴하여 매입하고 고평가채권을 매도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다른 금융기관의 운용전략과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단순한 의미의 딜링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는 금리의 변동에 따른 단기트레이딩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터닝포인트에는 과감히 매매도 합니다. 지난 2월의 금리 급락기에는 많이 팔았어요. ABS 6조원 보유, 수익성 측면에서 주목하는 채권 -국민연금에서 주목하고 있는 채권은 어떤 것인가요? ▲저희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채권은 ABS 입니다. 우리나라 채권 중 ABS가 안정성과 수익성이 가장 높아요. 하지만 유동성이 낮아서 거래가 잘 안되니까 그동안 우리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죠. 기금의 성격상 장기보유전략을 지향하는 국민연금으로서는 ABS가 가장 좋은 상품이지요. 기억에 남는 게 99년말부터 우리나라 시장에서 ABS가 본격적으로 발행되면서 여러분들을 설득하여 99년 12월에 규정을 바꾸고 그달에 처음으로 5000억을 투자한 것입니다. 초기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과 낮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약 6조원 정도의 ABS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3.27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②김용범 삼성투신 본부장(하)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삼성투신운용의 김용범 채권운용본부장(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이 훈련으로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능력이나 직관에 좌우되는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타고난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입사 1년차라해도 저보다 딜링을 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딜링을 잘 하느냐 마느냐의 여부가 아니거든요.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걸 보면 승부욕이 무척 강한 편인 것 같은데. ▲지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중요한 문제에서는 안 지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전 그렇지는 않아요. 그렇게 살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펀드매니저는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 -펀드매니저가 된 계기는 뭡니까? ▲그냥 됐습니다. 학교다닐 때는 주로 놀았죠.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같으면 무척 행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없으면 견디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또 잘할 수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구요. ‘내가 뭘 할까?’ 하고 고민하니 몇 가지 직업이 떠올랐습니다. 원래는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전략을 수립하는 것 역시 좋아했구요. 그 때 마침 지도교수가 대한생명에 다녀오시더니만 저보고 한 번 해보지않겠냐고 권하시더군요. 교수님이 “하는 일이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구되고 잘못되면 그때그때 바꾸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사실 사는 것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잖습니까. 의사결정의 문제가 인생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데 이 일이 어찌보면 인생의 압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년 정도 그런 경험을 해보면 좋을 것 같더군요. 또 대한생명에 선배들도 많이 있었어요. 그 선배들이 “투자쪽에 생각이 있으면 이 일 한번 해봐라”라고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1~2년 예정을 하고 입사한 셈인데 어느 순간 ‘나한테 잘 맞는다’라는 느낌이 들던가요? ▲입사할 때부터 “중간정도는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이 있었죠. 빌빌대지 않고 밥벌이 정도는 하겠구나 뭐 이런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의미를 못 찾겠더라구요. 이 직업이 무척 익사이팅한 직업이긴 한데 의미를 찾기는 어렵더라구요. -그럼 어떤 계기로 인해 의미를 찾게 되었나요? ▲재미있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학교다닐때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본격적인 영화제작자로 나서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왔어요.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니까 영화보다는 이 일을 계속하는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나서는 저절로 의미부여가 됐습니다.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한다거나 그런 거창한 의미보다는 이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자신있는 일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영화에 대한 숨겨진 관심 -그럼 영화제작자로서의 꿈은 포기한 겁니까?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기전에 영화 한 편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할 거구요 -직업에 대한 의미부여가 이루어진 후에도 혹시 ‘이 일 정말 못해먹겠다’ 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던가요? ▲있죠. 요즘도 해요.(웃음) 마음 한구석에 항상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니까요. 이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은 항상 합니다. -"이거말고 다른 거 해서 먹고 살면되지" 라는 심각한 고민을 해본적은 없습니까? ▲그런 적은 없습니다. -시장에서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텐데 개인적으로도 교류를 하십니까?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점심, 저녁 약속이 모두 있는 날은 출근할 때부터 부담이 돼요. 저녁은 차라리 낫죠. 점심시간에 약속이 있으면 생각할 시간이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점심약속을 잘 안하는 편입니다. 시장에 제 얼굴이 잘 알려져있지 않을 거에요. 통화하는 사람들은 많을지 몰라도. -지금까지 만나본 투자자들중 합리적으로 투자한다는 생각이 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기관중에 두 군데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걸 일관성있게 요구했죠. 운용결과를 자신들이 직접 모니터링하기도 하면서 양자의 목표가 맞는지 확인하고. 철학이 있는 거죠. -브로커 중 열심히 일한다는 느낌을 준 사람은 있습니까? ▲다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열심히 안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선호하는 브로커 스타일은? ▲입 무거운 사람입니다. 간단해요 시장의 관행이나 관습을 개선하려 노력 -작년에 선물과 관련해서 안 좋은 소문이 좀 있었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원칙대로 합니다. 잔머리 굴리거나하지 않아요. 저희가 시장의 관행이나 관습들을 좋은 쪽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위치니까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판을 깨끗하게 만들어야죠. -애널리스트 중에 눈여겨보는 사람은 있습니까? ▲뭐 다 좋은데..부하직원들에게 펀드매니저나 이코노미스트 등 각각의 자문단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얘기들을 들어보라는 거죠. 그 얘기를 회의석상에서 서로 토론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코노미스트건 애널리스트건 각각 시장에서 자기 사람이 있어야된다고 봅니다. 그들과 신뢰가 쌓이고나서 기준만 맞으면 저는 주문도 그 쪽으로 주라고 말할 정돕니다. 저 역시 밖에 자문단이 있습니다. -이제 거느리는 사람이 모시는 사람보다 훨씬 많을텐데, 기억에 남는 상사는 누굽니까?. ▲아 이건 좀 아부같은데(웃음) 우리 대표(황영기 사장)가 스마트해요. 외국계 은행에서 전설적인 기록을 세운 분입니다. -상사로서의 본인에게 점수를 준다면 얼마나 주겠습니까? ▲중상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욕이야 많이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부하직원들이 저를 공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투자의 명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 -외국계 투자은행 등 다른 곳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까? ▲별로 없습니다. 이 계통에서도 얼마든지 금융계의 명가를 만들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투자의 명가, 우리 안에 내재한 힘을 정확히 파악해서 투자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럼 내재된 힘은 뭐냐. 그건 바로 신뢰입니다. 누가 우리회사의 이름을 들었을 때 ‘아 저곳은 믿을 수 있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저기에는 장인들만 있다고 평가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 투신 안에서 경쟁할 생각은 별로 안해요. 결국은 은행들하고의 싸움이 되겠죠. 작년이 우리의 발판을 만드는 단계였다면 올해는 더 나은 포맷을 만드는 해가 될 겁니다. 내년부터는 은행과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입니다. 최인호의 ‘상도’란 책을 읽어보셨나요?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죠. 거기서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날 임상옥에게 세 사람이 찾아와서 돈을 백냥씩 빌려달라고 합니다. 임상옥이 그 돈을 빌려주고 기다리던 어느날 세사람이 다시 찾아오죠. 첫번째 사람은 백냥으로 조그마한 사업을 해서 10냥 정도의 이자를 가져왔고, 두번째 사람은 그 돈을 굴려서 더 큰 돈을 남겨왔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기생들과 노닥거리다가 그 돈을 다 써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임상옥은 그 세번째 사람에게 또 백냥을 빌려줬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빈털터리가 돼서 돌아오죠. 그때에는 그 세번째 사람에게 매우 큰돈을 빌려주고서 “자네 마음껏 한 번 사업을 해보게” 라고 말하죠. 임상옥이 말하기를 “첫번째 사람은 농군의 근면함만을 가졌기에 상재 재목이 아니다. 두번째 사람은 시류는 잘 파악하지만 거상이 될 자질이 없다” 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두번째 부류가 김우중 전 대우회장 같은 사람이 아닌가합니다. 어떤 일에서 대박을 터뜨리려면 한 자리에서 꾸준히 때를 기다리고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학교다닐 때 문과 과목을 좋아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수학을 더 좋아했습니다. 인문지리같이 외우는 과목은 질색했죠. -경영학을 선택한 동기는 뭡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실용적인 학문이니까요. 수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과에는 전공하고싶은 학문이 없었어요. 과를 택한 것은 우리 형님들 친구들을 보니 경제학과 간 분들은 공부만 하고 경영학과 간 분들은 열심히 놀더군요. 그래서 갔죠(웃음) -80년대 초반에 학교를 다닌 선배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공부를 못할 상황이었는데. ▲데모는 한 일년정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관뒀죠. 그리고나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술 많이 먹었습니다. -영화 얘기를 하셨는데요. ▲대학때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셩’에서 활동했어요.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도둑"이라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운동은? ▲좋아하는데 요즘 별로 할 시간이 없어서 못합니다. 운전면허도 없습니다. 게을러서요(웃음). 골프보다는 등산을 좋아합니다. 운동은 달리고 뛰는 원시적인 것이 좋습니다. 체력관리는 그 정도로 하는 편입니다. 담배를 많이 피기 때문에 심폐기능이 약해져선 안되기 때문이죠. -책은 자주 읽으시는지. ▲소설을 좋아합니다. 외국 정신과의사가 쓴 “The road less traveled” 란 책이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같은 의미죠. 그 책은 "악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쓴 책입니다. 인간이 즐거운 것만 하려 하고, 즐겁지 않은 것을 안 하려고 막 미루다 보면 악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코너에 몰린다는 것입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회장인 캐서린 그레이엄이 쓴 자서전도 감명깊게 봤습니다. -부인도 사회활동을 하시나요? ▲체이스의 심사역으로 있는데 작년에 그만두려했었죠. 마지막으로 ERP관련 업무를 석 달 정도 보고 관둘 예정입니다. -아직 애기가 없으시다니 친구처럼 지내시겠습니다. ▲친구같지는 않고… 저는 집에서는 업무관련 얘기를 한 마디도 안하거든요. 하지만 집사람은 일이 잘 돌아가는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요. 일요일은 각방을 쓸 정도입니다. 일요일에는 생각이 많아지잖아요. 다음주에 어떻게 일을 해야할까 하는 고민도 해야하고. 항상 긴장한채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만들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김용범 본부장 약력) -63년 출생(본적 경기도 광주) -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 -대한생명 주식운용역 -95~98년 CSFB 외환, 채권담당 이사 -98년11월~99년11월 삼성화재 자산운용실 부장 -99년11월 삼성투신 -2001년 3월 삼성투신 채권운용본부장(상무보)
2001.03.16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①오석태 씨티은행 부장(상)
  • [edaily] 채권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최근 금리가 급등하면서 정책당국자들은 서둘러 시장을 안정시키기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는 주식시장이나 외환위기를 통해 상식이 풍부해진 외환시장과 달리 채권시장은 아직도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우리나라 채권시장은 전체규모가 300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채권시장은 한 나라의 경제지표중 가장 중요한 금리를 결정한다. 이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 기관에서 특별히(?) 훈련받은 정예 요원들이다. edaily는 “300조를 움직이는” 채권시장의 중요 인물들을 찾아 거래경험과 철학, 운용중 겪었던 재미있는 경험 등을 들어보는 연속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으로는 지난해말과 올해초 “경기경착륙”과 “V자형 회복”을 가장 먼저 주장,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씨티은행의 오석태 부장이다.(약력은 기사하단 참조) 오 부장은 채권시장에 몇 안되는 전문 이코노미스트로서 서울대 경제학과을 수석으로 입학하고 하바드에서 수학한 “수재형”경제분석가중 한명이다. 그는 통상적인 애널리스트들과 달리 단순한 경제전망에 그치지않고 경제현상과 경제정책에 대해 주관적이고 직설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채권 이코노미스트로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또 다른 희망이 있습니까. ▲이코노미스트를 70세까지 하는 것입니다. -직업인으로서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라..일종의 비전 같은 것을 여쭤본 것인데요. ▲새로운 비전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평일날은 일에 치여서 살고 있고 게다가 요즘엔 아침에 헬스클럽 다닌답시고 6시에 집에서 나와요. 그게 일과입니다. 어차피 이코노미스트라는 게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이 일을 오래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전에 어디 기관에서 세미나를 하고 오셨다면서요. 그 얘기좀 해주시죠. ▲우리 경제 상황이나 현장 분위기가 미국에 의해 이끌려가는게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한 구조조정은 미국에서 독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선언을 하려니까 산업생산지수도 안 좋게 나오고 미국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도 많이 안 좋다는게 문제입니다. 지금 방향 제시를 해주어야 하는데 V자 모양이 확실한 것도 아니니 6개월 후에 금리가 4.5%다 뭐다 하는 게 무슨 필요가 있겠나 싶습니다. 전 6개월이나 12개월 전망 따위는 믿지도 않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6개월 후의 전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중요한 건 지금 당장의 방향이 뭐냐하는 것이지요. 과감하게 말하자면 "한국경제는 올해 하반기에도 반등없다" 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됩니다. 왜냐하면 확인이 안 되니까요. "V자 회복은 전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V자 회복에 대해서는 전망이 아니라 일종의 희망사항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지금 문제는 한국경제가 아니라 미국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쓰러지면 한국은 없습니다. 미국이 어떻게 되느냐가 지금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입니다.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초과성장을 이끌어 온 건 결국은 IT산업입니다. 그런데 이게 흔들리고 있어요. IT가 무너지면 전 세계경제는 없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어떤 부분이 취약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금융시장이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목 매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취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스닥이 하루에 4-5%씩 내렸다 올랐다 하는데 이건 정상이 아니거든요. 한국은 주가가 1월에 많이 올랐을 때도 "이걸로는 안된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인데 미국은 이나마도 없지 않습니까. -시티그룹의 미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지 않습니까.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긴 합니다. 처음에는 시티도 부정적으로 보긴 했는데 그 다음 다른데서도 다 그런 식으로 따라오고...그러니 차마 "미국 경제 올해 내년 별볼일 없다" 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게다가 내가 봐도 미국 사람이 미국 경제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쓰는 것이 상당히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전에 씨티은행이라는 기관이 한국 금융 시장에서 일정한 롤이 정해져있어서 리서치 페이퍼가 제약받는 부분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좋을 수도 있습니다. 내부자가 하나는 있어야 하니까요. 한국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제 위치가 무척 특별합니다. 저는 외국기관에서 일하지만 한국인이고 그래서 “외국기관이 한국을 좋게 본다” 라는 점이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매주 리포트를 쓰셔야하는데요. 부담이 되시죠. ▲쓰다가 쓰다가 안되면 “이번주에 아무것도 없다" 라고 보내면 그만인데 그럴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기자들처럼 다음 리포트를 뭘로 써야할지 늘 고민합니다.(웃음) 사실 생각이야 많지만 그걸 일일이 다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사실 인플레이션, 인구증가율, 자본축적 이미 이 세개 그래프가 꺾였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금리를 끌어내린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채권수익률 급락 이유있다 -지금까지 채권시장이 이유있는 강세장이라는 의미인가요. ▲예. 사실 지금 아무도 작년 올해초 금리가 떨어진 이유를 말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코스닥거품처럼 쉽게 꺼지는 것도 아니고. 금리가 내려갔다는 사실의 70-80%는 (펀더멘털로) 인정을 해줘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연초 랠리는 좀 과하지 않나 싶어요. 미국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만약 2월에도 경제가 안 살아난다면 좀 더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써야합니다. -리포트를 쓰실 때 여러가지 경제지표를 참고하실 텐데요. 무엇을 주로 보십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지표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숫자의 오류 가능성이 너무 높아요. 일례로 산업생산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이상인데 이것으로 진정한 산업생산을 평가할 수는 없죠. 미국처럼 다양한 데이터를 모두 봅니다. 남들이 잘 안보는 고용지표도 참고하구요. 저는 어떤 지표를 보느냐보다는 그 지표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뜻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애널리스트라는 것이 한쪽이 약하다고 하면 연쇄적으로 약하다고 하는 군중심리 같은 것이 있는데요. ▲그런 묘한 심리가 있습니다. 한 쪽에서 나쁘다고 쓰고 뒤따라서 또 쓰고 그러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마저도 "아닌가" 하고 갸우뚱하게 되고 그래서 상승작용을 일으키죠.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 애널리스트들이 기술주에 대해 누가누가 더 나쁘게 보나 하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성이 생길만도 한데. 그 사람들은 아마 70달러 하던 시스코가 10달러가 돼도 직성이 안 풀린 듯 합니다. 이미 닷컴들은 다 맛이 간 상태고 남아있는 것도 거의 없어서 지금 그 쪽에서는 그런 주식들을 “ex-블루칩” 이라 부릅니다. 예전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애물단지에 불과하다는 의미죠. 물론 IBM, GE 등 진짜 블루칩들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한 때 뉴블루칩이라 불리며 미 경제의 상승을 주도했던 선마이크로시스템즈 같은 기업들의 주가가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아직 PER가 높다는 게 미국의 문제죠.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전망이 수정될 가능성도 있습니까. ▲수정은 언제든지 될 수 있습니다. 원래 V자 회복 전망은 성장률에 기인한건데 비관적 시나리오로 보면 2% 대로 간다는 전망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일부 국내 증권사에서는 성장률이 2.8%까지 내려간다고 강한 어조로 썼지만. 저도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 홍콩에 있는 아시아리서치팀 보스한테 "까짓거 성장률 2%대 라고 쓸까요" 라고 물었더니 "네가 나설 필요 없다. 어차피 안 좋다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적당히 깎아라"라고 하더군요. 나와있는 수치나 싸이클상으로 보면 올해 하반기쯤에는 반등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반기에는 V자 회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쓴 겁니다. 한국에서는 이제까지 V자 회복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보다 경기부양이 우선이다" -지금까지 써낸 리포트는 제목 등이 무척 강렬해서 마치 주식쪽에 있던 “스티브 마빈”을 연상시킨다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뭐가 그렇게 강렬하죠?(웃음) -시장이 기억하는 문제작이 2편이나 있지 않습니까. “하드랜딩”과 “V자회복”. 두가지 주제 모두 오부장께서 먼저 언급한 것 아닌가요. ▲앞뒤말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V자 회복이 되려면 하드랜딩이 앞서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하죠. 골이 깊어야 산도 높아지는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지난해말에는 분명 하드랜딩을 이야기하셨는데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걸 안 하면 시장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과 둘째는 정부에게 신경 좀 쓰라는 의미였죠.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 때 정부는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니 뭐니 한다며 거기에만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restructuring”이라는 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왜 그렇죠? ▲restructuring이라는 게 말이 쉽죠. 한 꺼풀만 벗겨서 "대체 restructuring이 뭐냐" 고 물어보면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경제학을 배운 사람인데 경제학 교과서에는 restructuring이라는 단어를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요. 지금 노조는 구조조정 결사반대를 외치고, 정부는 구조조정 해야한다고 난리고, 외국 사람들은 한국은 구조조정이 안 돼서 문제라고 하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그럼 이게 대체 뭐냐는 말이죠. 시티 내부적으로는 restructuring에 대해 경기반등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restructuring이 안돼서 “너희는 꽝이다”라는 건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고 오히려 우리는 경기가 반등했을 때 restructuring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restructuring을 제대로 안 할 바에는 경기부양이라도 하라는 거죠. 근데 그걸 못하니...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식은 곤란하다는 겁니다. -손놓고 있지만 말고 뭔가 해야한다는 뜻입니까. ▲물론입니다. 사실 경기부양책을 쓰면 국내에서는 체감하기 힘들지 몰라도 외국투자자들은 더 좋아해요. 그 단적인 예가 일본이죠. 자기들이 다 일본주식 사 놨는데 주식 값이 올라야 할 거 아닙니까. 사실 외국인들이 무척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중요한 건 성장이지 구조조정이 아닙니다. 자기가 투자한 돈이 아깝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건 수익성(earnings)인 것 같네요. ▲earning이든 뭐든 무엇보다도 기업경기전망(Business outlook)이 밝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earning도 나오게 되죠. 사람 자르는 식의 구조조정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사람을 많이 자르기도 했고. 심리적인 안정이 중요 -오부장께서 쓰신 “경기부양을 선택하라”는 보고서는 edaily내에서도 논란이 됐습니다. 경기부양이든 구조조정이든 둘 중 하나는 해야하는데 하려면 경기부양을 해야한다는 내용을 보고 씨티가 정부를 도와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그 보고서 이후 정부측에서 만나자는 제의는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웃음) 기본적으로 씨티에서도 현대전자 문제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다 나쁘다, 쓰러진다 말할 때 우리까지 그러면 안된다는 건 있을 수 있죠. 그렇게 하면 완전히 숨 넘어가는 사람에게 칼 꽂는거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씨티에서 정부보다 먼저 현대전자가 괜찮다고 판단한 거죠. 사실상의 경기부양 효과를 일으켜 사람들의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단기적이지만 일조를 했다고 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에요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쏠리는 이유말입니다. 지금 당장의 금리인하가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안정감을 얻고 싶은 심리죠. -다른 이코노미스트들과 교류가 있습니까. ▲없어요. 저는 제 직업을 청기와장수같다고 생각합니다. 교류할 시간도 없고, 사실 주식시장의 애널들을 보면 서로에 대해서 경쟁심리도 많이 느끼는 것 같은데 그런 건 별로 없어요. -하바드에서 공부할 때 전공분야는 뭐였습니까. ▲거시경제, 특히 소비 관련을 공부했습니다. 소비가 무엇에 의해서 결정되느냐 같은 주제로. 박사학위를 끝내지는 못했어요. -유학을 하게 된 동기는 뭐였습니까. 고등학교때부터 대학졸업때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거의없다고 들었는데요. ▲학력고사 수석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에요. 그거 말고는 뭐...원래는 이과쪽을 지망하려했습니다. 아버님이 서울대 법대를 나오셔서 공무원 생활을 하셨는데 공무원 생활이라는게 빤해서 어머니가 힘들어하셨어요. 아버님을 보면서 법대갈 생각은 추호도 안했죠. 공무원은 돈 못 번다는 생각이 뼈속 깊이 박혀 있어서. 나중에 보니까 서울대 법대가 무척 좋은 학교더라구요.(웃음) 자연계로 가려니 아버님이 과학자해서는 한국에서 출세하기 힘들다고 극구 말리시고, 솔직히 지금 철들고 나니까 아버님의 그 말씀이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전공을 결정하려고 보니 남는 건 경제학밖에 없었어요. 요즘에야 젊은 사람들이 생각이 바뀌어서 경영학과도 많이 가지만 우리 때만 해도 문과생들이 택할 수 있는 과는 법대, 그게 싫으면 경제학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학교 졸업하고 보니 뭔가 허전했습니다. 바로 취직하기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처럼 고시 볼 마음도 없고, 그래서 유학을 선택했죠. "자네는 교수될 것 같지는 않은데" -대학시절에도 역시 공부를 잘 했다던데 교수님들의 주목도 많이 받았겠어요. 어떤 분들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습니까. ▲정운찬 교수님, 한승수 교수님 등이죠. 뭐 맨날 일등만 한 건 아니었고 성적은 그런대로 잘 나온 편이었어요. 어쨌든 주목을 받고 장도에 오르긴 했는데 한승수 교수님이 악수하면서 그러시더라구요. 그 때 막 비서실장 하시고 주목을 많이 받으시던 때인데 그분이 그러셨어요. "자네는 교수될 것 같지는 않은데...뭔지는 모르지만 무척 재미있는 일 할 것 같구만" 이라고. -유학생활은 어땠나요? ▲가서 공부를 따라가는 건 사실 어렵지 않았어요. 그러다 중간에 군대 문제가 걸려있어 다시 한국에 들어와 입대했죠. 군대에 갔을 때 사수가 하버드 MBA를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선배가 투자은행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가서 이코노미스트라는 걸 하면 별로 하는 것 없이 돈도 많이 준다고 하더라구요. 가뜩이나 교수는 싫고 뭐 딴 거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그런 것도 있나 싶었죠. 교수만 해야하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일이 생긴거죠. 군대 마치고 돌아갔더니 2년의 공백기간 때문인지 공부가 잘 안됐어요. 논문도 잘 안 써지고. 박사 수료까지는 논문만 남았었는데 이 논문 쓴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게다가 지도교수라는 사람이 "너는 박사하는 것 보다 딴 거 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 고 말하더군요. 그 말은 즉 "너는 여기 적당하지 않으니 딴 데가서 딴 길 알아봐라" 이거죠. 그래서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한국에 들어가고 보자. 연봉 천만원을 받더라도 들어가서 일 하는게 낫지 여기선 폐인되겠다" 라는 생각에 귀국했습니다. 그 때 우연찮게 지금 삼성증권 상무로 계시는 박진회 상무를 만나 씨티은행 입사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게 언제죠 ▲96년이죠. 그리고 97년 말에 IMF가 터지면서 이코노미스트로서의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뭐 이코노미스트라는 것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98년부터 현장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실전 경험이 풍부해야 -학위를 목전에 두고 귀국했는데 거기에 대해 일말의 미련이나 후회는 없습니까. ▲없어요. 현장에서 배우는 게 거기서 허송세월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 계통의 사람들 보면 박사학위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어요.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대부분 IMF나 세계은행에서 커리어를 쌓고 돈 벌겠다고 투자은행쪽으로 발길을 돌린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얘기들어보니 IMF나 세계은행도 거의 제2의 재경부나 마찬가지더라구요. 상당히 관료적인 조직이라 연줄이 중요하고 위로 올라가는 거 바늘구멍 뚫기보다 힘들고. 그러니 연봉 몇 십만불 주는 투자은행에 오는 거죠. 박사학위 목전에서 관둔 나같은 사람도 무척 많아요. 따지고 보면 그린스펀도 나랑 똑같은 경우죠. 나중에 뉴욕대에서 박사학위를 주긴 했지만. 우리 리서치 헤드도 박사학위가 없습니다.(웃음) 내가 대학교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면 모르겠는데 그럴 맘도 겨를도 없고...그냥 이거 70세까지 할 생각입니다. -학문으로서 경제학을 택한 것은 만족하십니까. ▲경제학 이론과 금융시장에서 이코노미스트가 봐야할 것은 전혀 별개입니다. 경제학원론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는 첨단을 달리는 실무 현장에서 결론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죠. 경제는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대학에서 배운 건 오직 그거 하나죠. 저는 정말로 이코노미스트가 연예인이랑 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자산운용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아직은 이코노미스트로 할 일이 남았기에 그런 생각 없습니다. 전혀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닌데. 글쎄...만일 하게 된다면 스트레티지스트 정도? 이렇게 해라 저저렇게 해라 전략을 제시해주고 실무는 밑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그런 방식으로 한다면 모르죠. 내가 직접 한다? 우선 나이가 걸려요. 대부분의 딜러가 30대 초반이 아닙니까. 30대 후반 40대 초반 돼서 오면 누가 받아줄까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내은행에서 일할 생각도 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쪽은 경험이 없어서. 사실 글로벌 리서치조직의 일원으로 있다는 것이 아직 제게는 많은 이득이 됩니다. 배울점도 훨씬 많고. 저를 씨티에 입사하게 만든 박 상무께선 그런 고민 끝에 회사를 옮기셨습니다. 물론 저도 그 분이 삼성증권으로 옮길 때 하셨던 고민을 할 때가 오겠죠.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데이터를 의심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아라" -다른 이코노미스트들과 자신의 차별점이랄까 장점은 무어라고 보십니까. ▲앞서 말했듯이 숫자를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잘은 모르지만 결과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데이타가 나오면 우선 의심을 해봐야하는데 배운 이론이라던가 과거 경험이라던가 그런데 얽매여서 단순하게 생각한다” 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로서의 한국의 프로페션은 내가 만든다" 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이코노미스트는 무조건 극단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 수없이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이 수많은 리포트를 써내는데 극단적으로 쓰지 않으면 누가 그걸 읽어주겠습니까. -리포트를 쓰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없나요? ▲인터넷이 발달한 후 이코노미스트들의 리포트를 쉽게 쉽게 받아보는 건 좋은데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부담이 됩니다. 저번에도 이 정도면 조정을 받을 것 같다고 썼더니 딜러가 전화해 "오부장. 그런거 쓸거면 미리 얘기나 해주고 쓰지. 어제 채권 샀는데 어떡하라구" 라고 하더라구요. 그거 말고는 글쎄? 아마 옛날에 쓴 리포트 지금 읽으면 부끄러워서 못 볼겁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3.10 I 정명수 기자
  • 아시아 인터넷 애널리스트 몸 값 추락- AWSJ
  • 아시아의 인터넷 애널리스트들이 적은 임금과 낮은 사기, 실직 가능성 등으로 허덕이고 있는 중이라고 14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많은 경우는 주식에 대한 잘못된 코멘트로 인해 고객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리만브라더스를 떠나 i리얼리티 그룹을 만든 라비 사라시는 한 때는 여비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티파니에서 산 목걸이를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처지가 그렇지 못하다. 한 예로 1999년에 소프트뱅크의 목표가격을 40만 엔으로 추천했다. 당시 주가는 15만 엔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7000엔까지 떨어졌고, 한 때는 3000엔까지 추락하기도 했었다. 골드만삭스의 아시아 인터넷 리서치 팀을 이끌고 있는 라지브 굽타의 경우, 작년만 해도 최소한 매주 한번 꼴로 비즈니스 여행을 다녔다. 이곳저곳에서 말을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홍콩을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의 팀 이름도 "인터넷, IT서비스, 소프트웨어" 그룹에서 "IT서비스, 소프트웨어, 인터넷" 그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애널리스트 직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IDC의 베테랑 인터넷 애널리스트이자 살로먼 스미스 바니 홍콩에서 일했던 피트 히친은 최근에 IBM의 동남아 시장 지식-기획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일부는 인터넷 애널리스트의 몸 값 하락은 필연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인터넷 붐을 타고서 공부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대부분 종목에 대해 "매수"추천을 했던 무책임함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 특히 자신이 속한 투자은행이 이미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주식을 추천하는 식으로 많은 보상을 받았던 데 대한 응분의 결과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01.02.15 I 김홍기 기자
  • (화제)교포 2세 벤처사업가 국내 역진출 활발
  • 미국의 교포2세나 한국출신 재미(在美)사업가들이 국내 벤처시장으로 활발히 역(逆)진출하고 있다.특히 이동통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재미사업가들의 국내 지사 설립이나 벤처기업 창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세계 IT업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자금력도 확보한 재미 사업가들이 한국 IT산업의 성장을 겨냥해 국내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사업가들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IT분야를 공부했거나 미국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일부 사업가의 경우 한국 IT기업에서 근무하다 미국에서 벤처기업을 설립하기도 했다. IMT-2000의 비동기 모뎀을 개발하는 네오리치(www. neoreach.com)는 한국기업내 근무경험을 토대로 미국에서 벤처 창업을 한 케이스다.네오리치 민경율 사장은 모토롤라 코리아와 삼성전자, 현대전자에서 20여년간 이동통신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3월 미국 매릴랜드주 락빌(Rackville)에 모뎀 전문 벤처기업인 네오리치를 창업했다. 민 사장은 이동통신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보다는 기술력이 우수한 미국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미국시민인 점을 활용하여 미국에 먼저 회사를 설립했다. 한국에서 IMT-2000 사업자 선정이 본격화되자 네오리치 민 사장은 지난해 8월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현재 미국과 서울을 오가며 이동통신 장비업체들과 비즈니스를 추진 중이다. 정보통신 장비제조업체인 닛시미디어(대표 : 데이빗 정 www.nissi. net)도 5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인 벤처기업으로 출발하여 지난해 4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할 정도로 현지에서 기반을 잡았다. 올해 미국 나스닥 진출을 계획중인 닛시미디어는 99년 12월 닛시미디어 코리아를 설립하고 현재 각종 정보통신 장비를 국내 IT업계에 공급 중이다. 한편 인터넷 업계에서도 재미사업가의 진출이 활발하다.인터넷 솔루션 전문업체인 헬로아시아 코리아의 허민영 사장은 재미교포 2세로 미국에서 태어나 하바드 MBA를 거쳐 98년 중국, 싱가포르, 홍콩 출신의 동양계 미국인 4명과 함께 실리콘밸리에 헬로아시아닷컴을 설립했다. 허 사장은 지난해 10월 헬로아시아 코리아를 설립하고 현재 국내 기업(B2B)을 대상으로 인터넷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이처럼 재미사업가들이 설립한 벤처기업들의 국내 진출이 활발한 것은 IT분야의 선진국인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인정받은 기술력이 국내 기업과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01.01.27 I 이의철 기자
  • (전망 2001) 세계 경제, 상반기 둔화..하반기 반등
  • 미래에는 ‘희망’이 있고 과거에는 ‘그리움’이 있어야 한다. 올 겨울이 최악이라는 얘기가 그럴 듯 하게 들리는 것은 ‘희망’의 크기도 넉넉치 않을 뿐더러 지난 한 해가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신년사에서 ‘위기 극복’을 선언하고 송년사에서 ‘국민께 죄송’하다고 사죄해야 했던 지난 일 년을 보내며 오는 일 년을 내다본다. 내년 세계경제는 그리 ‘장미빛’이 아닐 것이란 쪽으로 전문가들의 예상이 모아진다. 그러나 주요국의 정책당국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바닥을 다지며 상승턴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구름 낀 후 오후 들어 햇볕’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은 10년 장기호황의 아성이 무너져가고 있다. 단지 미끄러지듯 내려갈 것(소프트 랜딩)인지 거꾸러지듯 내려갈 것(하드 랜딩)인지에 대한 의견만이 분분하다. 두번째 경제대국인 일본 경제는 일년 동안 줄곧 회복 기조로 가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 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반전될 수있다는 전망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소비지출이 늘지 않아 공공지출만으로는 경기부양에 역부족을 느끼는 상황이다. 유럽대륙(EU)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성장률은 높아졌다.(올해 3.4% 예상) 그러나 높은 실업률이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인플레 억제에 역량을 집중시키는 금융당국들의 정책운영으로 물가는 안정됐으나 고유가 유로화 약세가 이 같은 기조에도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강력한 통화로 커 줄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유로화는 가치하락을 거듭, 각국에서 수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수입물가를 올려놓고 있기 때문에 통화약세가 내년에도 지속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3대 경제선진국은 세계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들어간다. 이들 나라의 전도가 밝지 않으면 세계경제가 맑은 수 없다. 개도국들이란 대개 수출을 생명으로 하며 내수 경기에 의해 자력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단순히 따져봐도 내년 세계경기가 밝은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그러나 팔짱만 기고 있으면 정말 하드랜딩을 피할 수없다는 것을 정책사이드에서는 잘 알고 있다. 또 하강국면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략의 플랜을 경험적으로 축적된 상태이다. 따라서 미국의 신속한 재정 금리 차원의 대응이나 일본 유럽의 경기 부양책등이 세계경제가 ‘신음소리’를 내기 이전에 나올 수 있다. 전체적으로 ‘오전에 먹구름, 오후 들어 볕이 나는’ 경기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그린스펀"의 결자해지 미국경제는 97년이후 매년 4%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2000년들어 2분기의 5.6% 성장을 정점으로 꺽이기 시작해 3분기에는 2.2%로 급락했다. 4년만에 가장 저조한 성장으로 둔화됐다. 증시침체로 기업과 가계의 지출이 크게 줄고 있으며 기업들은 예상실적을 하향 조정하기에 바쁘다. 과거의 초장기호황이 IT기술의 발달에 기반을 둔 생산성 증가와 강한 달러 저금리에 기초했으나 미국 금융당국이 인플레를 우려, 총 6 회에 걸쳐 금리를 끌어 올리면서 빠른 경기둔화를 몰고 왔다. 이 때문에 2001년도 GDP성장률은 당초 예상보다 낮은 3%(OECD 전망치)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3% 성장보다 영향이 큰 것은 미국 경기가 급랭했을 때의 파장이다. ‘주가하락-지출억제-기업수익 악화-부채증가-금융기관 부실-주가폭락-성장률 직하’등의 연쇄적인 고리가 짧은 기간동안 일어나는 것을 하드랜딩으로 본다면 현재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기업수익이 저조하고 부채가 증가해 도산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사상 최고수준(무디스 분석)이며 금융기관들도 부실채권에 짓눌릴 수 있는 단계에 달해 있다. 통신등 일부 통신기업들의 막대한 자금수요로 인해 국제자금시장은 조달금리가 올라갈 조짐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공부벌레 같은 얼굴의 그린스펀 할아버지에 거는 기대가 커진다. 스스로 금리를 끌어올려 세계경제를 둔화시키고 있으니 이제 금리를 내려줄 때가 됐다는 기대가 큰 것이다. FOMC(공개시장위원회, 미국 금리결정기구)의 분위기도 내년 초에는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것이란 짐작을 가능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 차기 대통령 당선자인 조지 W 부시의 재정지출과 대규모 감세도 예고되고 있다. 재정 흑자를 어떤 방식으로 국민과 기업에게 환원시키느냐를 두고 선거기간 내내 부시와 고어 후보가 논란을 벌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시는 당선이 확정된 후 기회있을 때마다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페이스로 침체되고 있다는 경기인식을 보여왔다. 금리와 재정적인 대응책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미국경기는 내년 후반기 들어 다시 상승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최근 필라델피아 연준리는 반기 리포트인 ‘리빙스턴 리서치’에서 미국 경제가 2001년 3.1%로 성장률이 떨어졌다가 후년에는 3.5%로 상향될 것으로 예상한 바있다. 업계 학계 정부 금융기관등의 이코노미스트들을 전망한 것이다. ◇ 열려라 지갑이여! 일본 경제는 최근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반전하는 게 아니냐(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이 지난 10년간 초장기 호황을 누려왔다면 일본은 초장기 불황(저성장)을 보여왔다. 80년대말의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시작된 불황은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듯 하다가도 복병을 만나 다시 미끄러지곤 했다. 97년 3월을 기점으로 다시 침체로 접어들었으며 금융권의 부실채권등 구조적 문제점은 대형 금융기관의 도산을 이끌고 실업률 증가와 소비억제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에는 수출경기가 둔화되면서 지난 11월까지 6개월 연속으로 무역흑자폭이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수년동안 한해 10조엔 이상씩을 쏟아부으며 공공투자를 늘렸지만 경기는 소생이 미약하고 국민들의 소비지출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현재 일본경제를 약한 성장으로라도 이끌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설비투자 확대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추가적인 부양자금의 조달에 애로를 느끼고 (파이낸셜타임즈는 실제로 일본의 재정적자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지적하는 애널리스트가 많다고 지적한 바있다) 소비정체 해외여건의 악화가 겹쳐진다면 이번에도 회복되는 듯 하다가 뒷걸음질 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본경제 부활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첫단추가 기업실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01년 3월말 결산에서 전 산업의 연결순익이 2.1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이 설비투자를 늘리고 다음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권을 크린(Clean)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실채권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금융기능이 마비돼 기업도산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지갑’으로 만들 소비자는 없기 때문이다. 실적이 계속 나고 있기 때문에 금융부실만 말끔히 처리된다면 일본 경제의 소생 가능성은 높아진다. 일본정부는 금융권 부실을 ‘청소’하기 위해 25조엔 규모의 공적자금을 마련해 놓고 있다. 2001년 2.1%, 후년에 1.9%(OECD)의 경제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유럽경제는 2000년 3.4%에서 2000년에는 3.1%로 다소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독일 프랑스 등 EU 회원국들은 대체로 유로화 약세에 따라 수출증가가 눈에 띠며 유로화 출범때의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였던 인플레 억제(상한선 2%로 설정)에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기록적인 고유가로 인해 수입 물가가 올라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인플레 우려와 함께 소비자 신뢰지수는 과거 3년간 최저치(지난 10월중 구 서독지역)로 떨어지기도 했다. 꽤 고성장을 기록했던 프랑스에서도 내년에는 투자붐이 사그라들면서 수출증가세는 한풀 꺽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3%대의 성장률이 지켜진다면 이는 91년이후 평균 성장률이 2%대 초반이었음을 감안하면 꽤 높은 성장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 달러화 가치가 경기둔화와 함께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즉 유러화가 가치를 회복하는 중이어서 이에 대한 외환투자와 유럽주식에 대한 증시투자를 한꺼번에 노린 외국 투자 자금의 유입을 기대하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적중한다면 소비자들의 지출도 높아지면서 경제가 예상치보다 높은 성장을 보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밖에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과 중국 경제는 올해 2000년에 비해 저조한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은 8%대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증가율은 크게 둔화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외국인투자와 민간의 설비투자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은 지난 해 하반기부터 이른바 ‘서부 대개발’ 계획에 들어갔으며 2001년에는 이에 따른 사회간접자본 건설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게 된다. 대만경제는 2000년 6.3% 성장에서 2001년에는 5.6% 정도로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란 예상이지만 최근 정치불안에 따른 외환시장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어 보다 큰 폭의 둔화세를 겪을 수도 있다. 또 금융기관의 부실이 이제와서 본격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동남아경제도 2001년에는 대체로 4%대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들 나라 경제는 미국 일본등 선진국 경제가 수출시장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경우 보다 둔화될 여지가 있다.
2001.01.01 I 박재림 기자
  • (전망 2001)증시 변수- 세계 경기 동향은
  • 2000년 증시는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뒤흔들린 한 해였다. 연초부터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위축 우려감이 제기됐고 하반기에는 반도체 경기 논쟁으로 반도체 관련주들이 쏟아지는 매물에 시달렸다. 이 가운데 실적이 나빠진 닷컴기업들의 주가폭락이 가세했고 국제유가 폭등, 동남아의 정치불안에서 비롯된 통화위기 가능성 등등이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한 몫했다. 2001년 증시에 영향을 줄 변수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동향이 빠질 수 없다. 세계 경기가 안정되느냐 여부에 따라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국제 자본이 어디로 이동할 것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2001년 세계경제는 그리 ‘장미빛’이 아닐 것이란 쪽으로 전문가들의 예상이 모아진다. 그러나 주요국의 정책당국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바닥을 다지며 상승턴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구름 낀 후 오후 들어 햇볕’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은 10년 장기호황의 아성이 무너져가고 있다. 단지 미끄러지듯 내려갈 것(소프트 랜딩)인지 거꾸러지듯 내려갈 것(하드 랜딩)인지에 대한 의견만이 분분하다. 두번째 경제대국인 일본 경제는 일년 동안 줄곧 회복 기조로 가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 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반전될 수있다는 전망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소비지출이 늘지 않아 공공지출만으로는 경기부양에 역부족을 느끼는 상황이다. 유럽대륙(EU)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성장률은 높아졌다.(올해 3.4% 예상) 그러나 높은 실업률이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인플레 억제에 역량을 집중시키는 금융당국들의 정책운영으로 물가는 안정됐으나 고유가 유로화 약세가 이 같은 기조에도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강력한 통화로 커 줄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유로화는 가치하락을 거듭, 각국에서 수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수입물가를 올려놓고 있기 때문에 통화약세가 내년에도 지속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3대 경제선진국은 세계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들어간다. 이들 나라의 전도가 밝지 않으면 세계경제가 맑은 수 없다. 개도국들이란 대개 수출을 생명으로 하며 내수 경기에 의해 자력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단순히 따져봐도 내년 세계경기가 밝은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그러나 팔짱만 기고 있으면 정말 하드랜딩을 피할 수없다는 것을 정책사이드에서는 잘 알고 있다. 또 하강국면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략의 플랜을 경험적으로 축적된 상태이다. 따라서 미국의 신속한 재정 금리 차원의 대응이나 일본 유럽의 경기 부양책등이 세계경제가 ‘신음소리’를 내기 이전에 나올 수 있다. 전체적으로 ‘오전에 먹구름, 오후 들어 볕이 나는’ 경기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그린스펀의 "결자 해지" 미국 경제는 97년 이후 매년 4%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2000년 2분기의 5.6% 성장을 정점으로 꺽이기 시작해 3분기에는 2.2%로 급락했다. 4년만에 가장 저조한 성장으로 둔화됐다. 증시침체로 기업과 가계의 지출이 크게 줄고 있으며 기업들은 예상실적을 하향 조정하기에 바쁘다. 과거의 초장기호황이 IT기술의 발달에 기반을 둔 생산성 증가와 강한 달러 저금리에 기초했으나 미국 금융당국이 인플레를 우려, 총 6 회에 걸쳐 금리를 끌어 올리면서 빠른 경기둔화를 몰고 왔다. 이 때문에 2001년도 GDP성장률은 당초 예상보다 낮은 3%(OECD 전망치)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3% 성장보다 영향이 큰 것은 미국 경기가 급랭했을 때의 파장이다. ‘주가하락-지출억제-기업수익 악화-부채증가-금융기관 부실-주가폭락-성장률 직하’등의 연쇄적인 고리가 짧은 기간동안 일어나는 것을 하드랜딩으로 본다면 현재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기업수익이 저조하고 부채가 증가해 도산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사상 최고수준(무디스 분석)이며 금융기관들도 부실채권에 짓눌릴 수 있는 단계에 달해 있다. 통신등 일부 통신기업들의 막대한 자금수요로 인해 국제자금시장은 조달금리가 올라갈 조짐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공부벌레 같은 얼굴의 그린스펀 할아버지에 거는 기대가 커진다. 스스로 금리를 끌어올려 세계경제를 둔화시키고 있으니 이제 금리를 내려줄 때가 됐다는 기대가 큰 것이다. FOMC(공개시장위원회, 미국 금리결정기구)의 분위기도 내년 초에는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것이란 짐작을 가능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 차기 대통령 당선자인 조지 W 부시의 재정지출과 대규모 감세도 예고되고 있다. 재정 흑자를 어떤 방식으로 국민과 기업에게 환원시키느냐를 두고 선거기간 내내 부시와 고어 후보가 논란을 벌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시는 당선이 확정된 후 기회있을 때마다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페이스로 침체되고 있다는 경기인식을 보여왔다. 금리와 재정적인 대응책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미국 경기는 2001년 후반기 들어 다시 상승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최근 필라델피아 연준리는 최근 반기 리포트인 ‘리빙스턴 리서치’에서 미국 경제가 내년 3.1%로 성장률이 떨어졌다가 후년에는 3.5%로 상향될 것으로 예상한 바있다. 업계 학계 정부 금융기관 등의 이코노미스트들을 전망한 것이다. ◇ 열려라 지갑이여! 일본 경제는 최근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반전하는 게 아니냐(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이 지난 10년간 초장기 호황을 누려왔다면 일본은 초장기 불황(저성장)을 보여왔다. 80년대말의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시작된 불황은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듯 하다가도 복병을 만나 다시 미끄러지곤 했다. 97년 3월을 기점으로 다시 침체로 접어들었으며 금융권의 부실채권 등 구조적 문제점은 대형 금융기관의 도산을 이끌고 실업률 증가와 소비억제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에는 수출경기가 둔화되면서 11월까지 6개월 연속으로 무역흑자폭이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수년동안 한해 10조엔 이상씩을 쏟아부으며 공공투자를 늘렸지만 경기는 소생이 미약하고 국민들의 소비지출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현재 일본경제를 약한 성장으로라도 이끌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설비투자 확대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추가적인 부양자금의 조달에 애로를 느끼고 (파이낸셜타임즈는 실제로 일본의 재정적자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지적하는 애널리스트가 많다고 지적한 바있다) 소비정체 해외여건의 악화가 겹쳐진다면 이번에도 회복되는 듯 하다가 뒷걸음질 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본경제 부활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첫 단추가 기업실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01년 3월말 결산에서 전 산업의 연결순익이 2.1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이 설비투자를 늘리고 다음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권을 크린(Clean)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실채권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금융기능이 마비돼 기업도산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지갑’으로 만들 소비자는 없기 때문이다. 실적이 계속 나고 있기 때문에 금융부실만 말끔히 처리된다면 일본 경제의 소생 가능성은 높아진다. 일본정부는 금융권 부실을 ‘청소’하기 위해 25조엔 규모의 공적자금을 마련해 놓고 있다. 2001년 2.1%, 2002년에 1.9%(OECD)의 경제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유럽경제는 2000년 3.4%에서 2001년에는 3.1%로 다소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독일 프랑스 등 EU 회원국들은 대체로 유로화 약세에 따라 수출증가가 눈에 띠며 유로화 출범 때의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였던 인플레 억제(상한선 2%로 설정)에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기록적인 고유가로 인해 수입 물가가 올라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인플레 우려와 함께 소비자 신뢰지수는 과거 3년간 최저치(지난 10월중 구 서독지역)로 떨어지기도 했다. 꽤 고성장을 기록했던 프랑스에서도 2001년에는 투자붐이 사그라들면서 수출증가세는 한풀 꺽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도 3%대의 성장률이 지켜진다면 이는 91년이후 평균 성장률이 2%대 초반이었음을 감안하면 꽤 높은 성장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 달러화 가치가 경기둔화와 함께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즉 유러화가 가치를 회복하는 중이어서 이에 대한 외환투자와 유럽주식에 대한 증시투자를 한꺼번에 노린 외국 투자 자금의 유입을 기대하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적중한다면 소비자들의 지출도 높아지면서 경제가 예상치보다 높은 성장을 보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밖에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과 중국 경제는 2001년에 2000년에 비해 저조한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은 8%대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증가율은 크게 둔화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외국인투자와 민간의 설비투자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은 2000년 하반기부터 이른바 ‘서부 대개발’ 계획에 들어갔으며 2001년에는 이에 따른 사회간접자본 건설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게 된다. 대만경제는 2000년 6.3% 성장에서 2001년에는 5.6% 정도로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란 예상이지만 최근 정치불안에 따른 외환시장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어 보다 큰 폭의 둔화세를 겪을 수도 있다. 또 금융기관의 부실이 이제와서 본격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동남아경제도 2001년에는 대체로 4%대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들 나라 경제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경제가 수출시장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경우 보다 둔화될 여지가 있다.
2000.12.30 I 박재림 기자
  • "현대,쌍용 원칙대로 처리"- 김대통령 발언(전문)
  • 김대중 대통령은 7일 "아무리 덩치가 큰 기업도 돈을 못 벌면 기업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현대, 쌍용양회도 이런 원칙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또 "이번에 실업자가 5만명 정도가 늘어날 것이지만 정보통신만 20만명의 고용 효과가 있기 때문에 15만명의 일자리가 더 늘어나는 셈"이라면서 "실업문제도 정부가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울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미군이 있어야 한다"면서 "북한의 안전을 지켜주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이며 남북관계가 아무리 잘 돼도 미·북관계가 잘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여수 돌산체육관에서 전남지역인사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청와대 공보수석실이 전했다. 다음은 발언 전문. ▲이기호 경제수석 : 전남 발전계획과 중요 경제 쟁점에 대해 설명하겠다.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렵다. 체감경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구조조정을 철저히 하고 내부에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을 하면 안정성장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외국 전문가의 의견이다. ▲ 대통령 : 존경하는 허경만 지사, 전남 각계인사 여러분, 이렇게 찾아와 만나니 진심으로 감격스럽고 또 오랜만에 와서 감회가 깊은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여수에서 전남 일을 같이 상의하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0년 세계해양박람회가 가장 큰 관심사인데 정부도 유치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 제가 여러분께 한없이 감사드려야겠다. 전남도가 어느 도 못지않게 나를 지지해 마침내 대통령이 돼 이 나라 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세울 수 있었다. 당선은 내가 했지만 여러분이 한 것이다. 여러분의 지지, 투표가 없었던들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외환위기는 아니다. 외환보유고가 35억달러가 975억달러로 바뀌었다. 세계에서 가장 외환을 많이 가진 5개 나라에 들었다. 순채권 국가로 바뀌고 있다. 이제 다시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금 모으기 심정으로 돌아가자. 고유가, 반도체가격 하락, 미국 증시 폭락 등 악재가 있는데 외환위기를 이겨낸 마음이라면 자신을 갖고 이길 수 있다.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시켰다. 최고의 성과는 북한이 50년동안 일관되게 주장하던 미군철수를 철회한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과 얘기할 때 "할 얘기는 다 하자"고 했다. "합의한 것은 하고, 안 된 것은 의견을 나눈 만큼 덕이다"고 했다. "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 대륙에 붙어있는 위치에서 동북아가 안정이 된다. 미군이 나가면 엄청난 국방비가 든다. 러시아, 중국, 일본 이런 거대한 나라에 싸여 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이 나고 일본에 당했다. 민족의 장래를 위해 미군이 있어야 한다. 미군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몽고, 시베리아, 동북아에서 방대한 이익을 위해서다. 우리와 이해가 맞아 떨어져 있는 것이다. 동구에서 공산주의가 망해도 나토가 있지 않느냐. 유럽은 같은 민주주의고 문화적으로 같은데도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되겠나"라고 했다. 그러니까 김위원장이 내가 남쪽 신문에서 김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봤다. 어쩌면 나 자신과 그렇게 생각이 같으냐.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있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다 됐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통일된 후에 미군이 있으면 동북아가 안정된다. 이것이 우리 이익이다. 이점에서 역시 같은 민족으로서 민족의 운명을 같이 걱정하는구나 생각했다. 한·미·일이 공조하면서 러시아, 중국과 잘 지내지 않느냐. 북한은 왜 못 그러느냐고 말했다. 북한의 안전을 지켜주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이다. 핵무기를 갖고 있고, 국제 금융기관들에 미국이 대주주다. 미국이 OK 안 하면 안 된다. 일본, 유럽도 투자를 못한다. 관계를 개선하라. 생각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를 만나서도 얘기했다. 북한이 미군이 있어도 좋다고 했다. 조명록 차수가 미국 가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에 가고, 미사일 협상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미국과 북한은 상당한 개선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잘 돼야 한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잘 돼도 미·북관계가 잘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도 같이 가야 한다. 이제까지 안보상황에 공조했지만 북한과 관계개선에도 공조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자유롭게 오가며 문화, 체육, 경제교류를 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이 모든 것을 시작했는데 이것도 여러분이 지지하지 않았다면 이뤄내지 못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남북문제에 진정을 갖고 접근한 것은 사형언도를 받아 공부한 때문 아니겠느냐. 무엇보다 기쁜 것은 우리 민족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민족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지역이 무슨 의미냐. 북한 미사일이 부산도 때리고 목포도 때린다. 적화통일도 안되고 흡수통일도 안 된다. 20년이고 30년이고 평화공존하다가 통일을 하자고 했다. 통일은 함께 잘 살자는 것이지, 어느 한쪽을 지배하자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해 두 가지로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하나는 긴장완화, 또 하나는 교류협력(이산가족,경제, 사회문화)이다. 이렇게 가는 것이 자랑스러운 데 그 공은 여러분이 가져야 한다. 그런 정책을 갖고 여러분이 대통령으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제 세계를 다니면서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노벨상이 나왔다고 얼마나 해외 500만 교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나. 그것이 기쁘다. 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다시 한번 감사하다. ASEM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을 만나니 당신은 그 어려운 세월을 감옥 가고 박해 받고 했는데 어떻게 이겼느냐고 물었다. 하나는 신앙이다.하나는 역사에 대한 믿음이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군 당국자들이 우리와 협력하라, 안 하면 죽이겠다. 대통령만 포기하면 뭐든 시켜주겠다고 할 때 나도 살기만 하면 좋겠다는 유혹도 느꼈다. 그러나 그 유혹을 뿌리친 것은 역사에 대한 믿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의롭게 산 사람은 당대는 성공하지 못해도 역사에서 이긴다. 불의하게 산 사람은 반드시 패자가 된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살아서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까지 받아 다시없는 영광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IMF를 극복했다. 물가도 과거 10%정도 올라간 것이 올해 2.5%정도 올랐다. 피부 체감과 지수물가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수는 지수다. 환율이 안정돼 있다. 동남아가 다 불안한데 그렇다. 금리도 금년 초까지 10%이다가 8%로 떨어졌다. 우리는 무역에서도 금년의 여러 어려운 조건에서도 흑자가 전망된다. 외자유치도 62년부터 32년간 246억달러 투자 유치했는데, 지난 2년반 동안 323억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허경만 지사에게서 전남에도 외국에서 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단계의 체감경기에 문제가 많다. 내외조건이 다 있다. 개혁을 충분히 완성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금년말까지 금융개혁, 내년 2월까지 공공, 노사개혁을 철저히 완수하겠다. 생존, 발전 가망이 있는 기업은 과감히 살려내고, 가망이 없는 기업은 단호히 퇴출할 것이다. 돈 못 버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다. 아무리 덩치가 큰 기업도 돈을 못 벌면 기업이 아니다. 현대, 쌍용양회도 이런 원칙에서 처리할 것이다. 내년부터는 우리 경제가 힘차게 일어설 것이다. 현재 IMF, OECD 등 세계의 권위있는 기관들은 한국경제를 위기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건전하지만 개혁을 서두르는 바람에 철저하지 못할 경우 그때는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외환위기를 극복했는데 다시 4대 개혁을 마무리하겠다. 이번에 실업자가 5만명 정도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만 20만명의 고용 효과가 있다. 15만명의 일자리가 더 늘어나는 셈이다. 실업문제도 정부가 해결해 나갈 것이다. 재래시장도 이제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백화점 등과 어떻게 경쟁할지 생각해야 한다. 과거와 같이 해서는 아무리 정부가 지원해도 소용없다. 노력을 했지만 아직도 지방색을 탈피 못하고 있다. 세계가 하나로 되고 있다. 남북이 결국 하나로 왕래 교류하고, 장차 통일이 될 것이다. 이런 때 국내에서 융합을 못하면 되겠나. 여러분 모두가 상대방이 잘 하면 나도 잘 한다는 생각을 말고 같은 국민으로서, 같은 민족으로서 지역감정에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해결하는데 도와주고, 앞장서 달라. 임기동안 여러분의 성원대로 최선을 다해 나라를 바로 세워 나갈 것이다. 세계의 모범적 민주국가로 만드는데 노력하겠다. 2000년 11월 07일 청와대 공보수석실
2000.11.07 I 조용만 기자
  • 한컴, "인터넷 오피스 사업 주력하겠다"-인터넷IR
  • 한글과컴퓨터 전하진 사장은 6일 향후 한컴의 사업은 인터넷 오피스 사업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전하진 사장은 이날 인터넷을 통해 주주들을 대상으로 가진 IR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제는 PC시대에서 인터넷 시대로 변하고 있는 만큼 전략적으로 인터넷 오피스 사업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사장은 "한컴은 인터넷 오피스 사업의 프론트 엔드 부분을 담당하고 나머지 백엔드 부분은 관련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최적의 비지니스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전사장은 또 "한컴은 인터넷 시대에 맞는 솔루션화를 추진, 이를 판매하는 회사가 되겠다"고 말하고 "주주들이 한컴의 주가하락으로 인해 상당한 재산적 피해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한컴의 장기적인 비전을 이해하고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넷을 통해 진행된 IR에서의 전하진 사장등 임원진들의 일문일답이다. -3분기 실적이 저조했던 이유는. ▲한컴은 상반기 17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말까지 4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이다. 3분기 실적이 2분기 대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이는 워디안 발표가 늦어졌고, 상당부분의 수요가 정부납품분이었고, 정부의 예산발표가 늦어졌기 때문에 납품도 늦어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연말까지 빠른 시일내에 진행할 것이므로 연말 매출 400억원은 문제없다. -한글을 계속 개발할 것인가. ▲한글과 같은 제품을 보유한 회사가 없다. 한컴처럼 많은 고객을 확보한 기업도 없다. MS가 전세계에서 가장 싸게 소프트웨어를 파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이것은 한컴 아래아 한글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기술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워드 프로세서 기능은 분명히 필요하다. 단지 환경변화에 따라 변이될 뿐이다. 이에따라 우리가 인터넷 환경에 따라 인터넷 오피스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의 개발을 통해 여러분에게 편이를 제공하겠다. -기업에는 MS 오피스 사용 많다. 이 시장 공략은 어떻게할 것인가. ▲MS는 전세계 독점체계 갖추고 있는 회사다. 한컴처럼 자국 업체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다. MS가 아무리 독점적이더라도 다 점유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니치마켓을 공략할 것이다. 기업시장도 PC에서 인터넷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따. 이에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굳이 MS와 싸우면서 나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MS가 못따라가는 점이 인터넷 오피스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 -신프라, 넷피스, 한글 등의 솔루션이 아웃소싱되었다. 한컴의 기술력에 문제 있는 것이 아닌가. ▲한컴은 이미 기술로 승부하는 단계 뛰어넘어 시장을 관리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이는 우리의 연구소 인력만으로 승부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고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객만족을 위해 우리는 아웃소싱이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방송국 시스템과 비교해도 이는 설명된다. 방송국들이 자체 제작에서 프로덕션을 이용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물론 자체 연구소를 통한 핵심 부분의 연구를 계속할 것이지만 제휴 모델을 통해 다른 벤처기업의 판로를 개척해 줄 수도 있다. -자사주 매입 현황은. ▲자사주 매입을 해달라는 요청 많았다. 그러나 사실 자사주 매입의 역할은 가격조정이 아니다. 이를통해 좋은 환경일때 주가의 꼬임을 막는 역할을 할 뿐이다. 현재 35만주 정도를 매입했다. 단계적으로 내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매입시기를 상의해 가면서 매입해왔으나, 많은 손실을 보아왔다. 태풍이 부는데 우산을 들고 막을 수는 없다. 좋은 시절이 왔을때 힘을 모아 갈 수 있는 내부역량을 모으는 단계다. 따라서 작은 기반을 마련하는 정도의 자사주 매입에 주력하지는 않겠다. -워디안 출시이후 판매량은. ▲워디안출시가 많이 지연됐다. 10월 9일 런칭됐지만 판매는 8월부터 예약팩 판매로 시작됐다. 4만 5000카피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현재 전달되고 있다. 우리의 주고객의 60% 이상이 공공기관쪽이다. 이부분이 현재 발생되고 있다. 따라서 연말까지의 매출목표는 가능할 것이다. 또 차기버전까지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한컴 주가가 외국인과 기관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한 이유는. ▲민감한 질문이다. 그러나 한컴 주가가 투자자들로부터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99년에 가장 많이 상승한 주식이 한컴이다. 당시 124배 성장했다. 따라서 더 많은 하락이 오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국내 주식시장은 10수년간 상승과 하락을 거듭했다. 상승기에는 외국인(기관)이 견인차 역할을 했고, 하락기 역시 이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현재 외국인 관심 끌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한컴은 작년 10월 이후 주가가 상승세였다. 외국인들의 IR요청 끊임없이 이어졌다. 금년 3월들어 이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현재 없어졌다가 다시 찾고 있다. 이에따라 한컴에도 하루 2-3팀 정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방문하고 있다. 현재 한컴이 닦고 있는 내부적인 역량이 언젠가 반영될 것으로 믿기 때문에 외국인이 찾아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넷피스의 구체적인 계획은. ▲넷피스는 이미 유료화해 현재 연간 2만 5000원의 회비를 내고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 기업의 컨텐츠 유료화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PC방이라는 인터넷 시대의 중요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PC방에 있어서도 컨텐츠 유료화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이에따라 한컴과 가족사들이 전자화폐 활성화 방안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양질의 컨텐츠가 유료로 서비스됨으로써 재투자될 수 이는 선순환 과정을 구축중이다. 넷피스도 지속적으로 11월중으로 넷피와 함께 영어공부할 수 있는 유료 컨텐츠를 제공하는 등 업데이트해 나가겠다. -자회사 투자 상황에 대해 밝혀 달라.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회사들이 항간에서는 재벌을 흉내낸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벤처기업이란 잘 짜여진 기업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아쉬운 구조다. 따라서 제휴가 필수적이다. 당연히 한컴과 하늘사랑이 합쳐지면 오피스가 커뮤니케이션 환경과 결합, 시너지 효과가 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투자는 "피를 섞는 것"처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한컴이 1대 주주로 있는 곳이 하늘사랑, 네띠앙, 예카 스테이션 등 6개 회사가 있다. 나머지 또한 긴밀한 협력을 위해 작은 투자가 이뤄졌다. 한컴 내 투자기획실이 이러한 투자 및 경영컨설팅을 철저히 하고 있다. -워디안이 호환이 어렵다는 평가가 있는데 ▲공공기관에서 한글97과 호환이 잘 안되는 부분이 아주 작은 부분이다. 엔진이 전혀 다른 제품이므로 약간의 차이는 있다. 이런 부분들은 다음 패치에서 고쳐 나갈 것이므로 안심해달라. -네띠앙과의 합병을 고려중인가 ▲솔직히 말하면 인터넷 분야는 어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우리도 처음 가는 길이고, 잘 알 수 없는 길이다. 네띠앙에 관해서는 합병할지 안할지 내부적으로 상당히 고민중이지만 결론을 쉽게 낼 수가 없다. 필요하다면 할 것이고, 아니면 전략적 파트너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변수가 있다. 단지 1대 주주이므로 합병에 큰 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파트너가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예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해달라. ▲예카 사업은 내부적으로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이 점은 죄송하다. 그러나 e-마켓플레이스를 빨리 만들어야 인터넷 사업을 할 수 있다. 또 고객관리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CRM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필수적이지만 서두르다보니 빨리 제휴를 맺어야 했고, 내부적으로 정리도 잘 되지 않았다. 현재 약 20억 정도 투자해 인프라를 구추했고, 시스템 도입 등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앞으로 구조적인 사업 변화가 일어나면서 점진적으로 이를 추진할 방침이다. 시장이 성숙되지 않고는 매출이 어렵다. 따라서 조금 더 장기적인 계획으로 진행하려 한다. -메디슨의 지분매각건이나 CB문제 등 현재의 문제점들에 대해 ▲대주주(메디슨)의 지분매각건은 결정된 것 없이 공개되는 바람에 놀랐다. 이후 오랜시간 난항을 겪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면서 한컴에 문제가 있느냐고 우려하시는 분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은 우리도 피해자다. CB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로인해 500억 정도의 자금이 마련됐지만 상당부분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투자를 통한 유가증권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이 주가에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쓰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 이에대해 차환용도로 신규 CB를 발행할 계획도 있다. 사실 한컴은 98년도의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는 못했다. 지금도 후유증을 겪으면서 해결중이다. 상황이 좋지 못해 한글개발도 지난해 4월 넘어서야 재추진했다는 점을 감안해 달라. -한컴의 마케팅이나 홍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보도자료 배포 건수는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이나 주주들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코스닥의 주가 움직임이라는 것이 과연 기업의 실적과 함께 움직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실적 위주의 움직임이 된다면 이런 점들은 지적받지 않으리라고 본다. 회사의 내재가치에 관심을 가져달라. -한컴은 유동성 위기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컴 건물 매입은 왜 했는가. ▲현금 유동성은 전혀 문제 없다. 개인투자자의 상당수가 회사의 가치나 비지니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건물매입은 118억에 했다. 현재 건물 개보수중이다. 테헤란로의 임차료가 지난해 비해 무려 2.5배 올랐다. 그러다보니 올해 계약 갱신 시점에서 자금 흐름측면도 고려해야 했고, 따라서 건물을 좋은 값에 산다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모 은행을 통해 8.5%의 자금을 조달, 매입했는데 이는 임차료의 절반 정도의 금액이었다. 또 한컴 가족사들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건물 매입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 이와함께 다른 벤처기업에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개보수중이다. -현 주가에 대한 한컴의 답변은. ▲현재 주가와 기업가치와의 관계는 거의 없다고 본다. 이는 단지 시장의 상황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주가 예측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주가는 시장 수급과 판세문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기업을 이끌고, 이를 소상히 알리는 것 뿐이다. 이는 주주들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주가 안올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진출 현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중국 진출은 합작을 통한 웹스테이션(PC방 개념의 프랜차이즈 사업)과 한소프트내 독자법인 형태의 "문걸" 판매 두가지로 행해지고 있다. "문걸"은 현재 현지화 작업중이고, 이달 중순부터 중국내 런칭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PC회사중 장성과 번들 계약을 추진중이다. 또 인터넷 쇼핑몰로 유명한 업체와도 계약이 완료됐다. 우선 "문걸" 번들 판매로 인지도를 높일 생각이다. -예카 사업은 하늘사랑과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 ▲예카 엔진 개발은 어려움이 많다. 이에따라 실리콘밸리 회사에 투자, 이에맞는 CRM솔루션을 개발중이다. 이를 하늘사랑에 유료로 제공할 생각이다. -나스닥에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가. 내년 유무상 증자계획은. ▲한컴의 나스닥 상장설이 금년초부터 나왔다. 내부적으로는 준비중이었고, 준비 자체는 거의 완료되었다. 그러나 나스닥 상장전에 이를 흘려서도 안되고, 주주들에게 알려서도 안되는 규정이 있다. 이에따라 알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준비 끝날 시점에 한국의 주식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따라서 준비는 되어 있지만 현재의 주가 상황에서는 이를 추진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국내 주식시장이 호전되면 적당한 시기에 상장할 수도 있다. 한컴은 97년 이후로 유상증자를 한 적이 없다. 기업의 자금조달은 원활한 현금흐름을 위한 것이다. 그동안 98년 이후 외자조달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제는 자금조달의 필요가 없다. 지금도 해외CB 차환발행 이외에는 유상증자할 이유가 없다. 절대 기업의 자금운용 차원에서 증자할 필요가 없다. 자금압박설은 사실무근이다. -한컴의 앞으로의 방향은. ▲우리 모두는 디지털 경제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고민중이다. 접대비까지도 모두 공개하는 오픈 경영을 하고 있다. 이같은 공유와 투명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98년의 어려움 이후 2년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땀흘렸다. 하루아침에 이를 매도하지 말아달라. 주가가 빠지든 올라가든 우리는 연연하지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디지털 경제의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주주여러분께서우리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평가해 주시기를 바란다.
2000.11.06 I 김윤경 기자
  • 한국내 투자 기업 물색중 - 빈센트 추 딜리리움회장 edaily인터뷰
  • "한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시장은 무척 매력적이다. 범아시아(Pan Asia)를 지향하는 딜리리움에게 한국은 중요한 사업 거점이 될 것이다" e비즈니스에 대해 토탈 컨설팅을 제공하는 미국 업체 딜리리움의 빈센트 추회장은 한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시장의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한국내 컨설팅 사업과 벤처 투자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daily는 한국에서의 투자처를 물색하고 프로젝트 업무를 관장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추 회장과 인터뷰를 갖고 딜리리움의 사업 방향과 한국신장 진출 확대 방안등에 대해 들어봤다. -웹컨설팅이란 말이 생소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 ▲딜리리움은 웹페이지 구축에서부터 인터넷 사업에서의 전략기획 수립 및 기술제공까지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컨설팅을 지향하는 웹에이전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으나 현재 DPS(Digital Professional Service)라는 분류명칭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바이언과 사이언과 같은 웹에이전시가 컨설팅에 강점을 가진 대표적인 업체다. 딜리리움은 지난 7월 채널 세븐에서 선정하는 세계 100대 웹 개발 업체에 선정된데 이어 8월 제너럴 아틀란틱으로부터 200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는 등 사업 성과를 올렸는데 이는 DPS 사업이 부각되고 있다는 좋은 증거다. -인터넷에 관한 토탈 컨설팅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요즘 국내에서도 웹페이지 디자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컨텐츠나 솔루션 제공 등 종합적인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딜리리움이 내세우는 차별점은 무엇인가. ▲딜리리움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아시아 각지에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따라서 딜리리움의 타겟은 아시아나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이다.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기업에게 보다 적합하고 유용한 컨설팅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하여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컨설팅을 제공하며 일회성이 아니라 사후 관리까지 책임진다는 면에서 강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객을 클라이언트가 아닌 파트너라고 부른다. -글로벌화와 로컬화를 동시에 추구하기가 힘든데 로컬화를 어떻게 보강할 생각인가. ▲현지인력을 고용하면 충분히 해결될 문제다. -한국의 웹컨설팅 시장은 홍익인터넷이나 오픈타이드, 클릭 등과 같은 웹에이전시에 의해 선점되어 있는 상태다. 딜리리움의 시장점유율에 있어서 전망은. ▲딜리리움이 중요시하는 것은 시장점유율이 아니다. 서비스의 질이다. 또한 한국의 웹에이전시들이 각각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가 다르고 이에 따라 고객이 되는 기업도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e비즈니스에 필요한 솔루션이나 어플리케이션도 제공한다고 했는데 자체 개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알선해 주는 것인가. ▲대개는 기존 솔루션이나 어플리케이션 중 업체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해서 제공한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중간단계에서 가공하기도 하고 초기단계부터 자체 개발하기도 한다. adforall.com의 B2B 마케팅 솔루션의 경우 6개월여에 걸쳐 자체 개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국에서 웹컨설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한국 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흐름을 파악하기보다는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기본적인 정책의 변화를 요구할 때가 종종 있어 딜리리움의 기본적인 웹컨설팅 기조를 이해시키고 양해를 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만큼 작업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e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미래를 내다보고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제너럴 아틀란틱에서 2000만달러를 유치해 투자대상을 물색 중이라고 했는데 한국 기업 중 물망에 오른 기업이 있는가. 투자대상을 고르는 기준은. ▲현재 몇 개 기업에 투자를 고려하고 있으나 결정된 사항이 없어 말하기 곤란하다. 지속적으로 투자할 생각이다. -자회사 중 딜리리움 벤처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벤처 캐피탈인가. 그리고 투자 주체는 딜리리움 벤처스가 되는 것인가. ▲딜리리움 벤처스는 벤처 캐피탈이 아니다. 딜리리움의 웹컨설팅을 받은 고객에게 컨설팅 수수료의 일부를 주식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협력업체로서 꾸준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업을 관리하는 역할을 딜리리움 벤처스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젝트 수행은 딜리리움이 맡고 이후 파트너로서의 서비스는 딜리리움 벤처스가 맡는다. -아직 일본 지사가 없는데. ▲올해 말에 일본 지사를 오픈할 예정이다. 일본의 경우 비즈니스 문화가 무척 폐쇄적이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제너럴 아틀란틱이 일본 시장에서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사에 TeamKorea가 있는데 한국 지사와 업무 분담이 돼 있나. ▲미국 본사에는 대만, 홍콩, 베이징 상하이를 포괄하는 중국팀과 한국을 담당하는 한국팀이 있는데 이들 팀과 각 지사에서 하는 업무가 분담돼 있지는 않다.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시차가 있기 때문에 미국 본사에서 진행하던 일을 아침에 한국 지사에서 받아서 이어나간다. 이와 같은 시스템으로 24시간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이 방법은 무척 성공적이었다. 또한 인트라넷이나 화상회의 등을 활용하여 각 지사에서 수행중인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타지사의 프로젝트에 얼마든지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 총체적인 협력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왜 한국팀만 따로 구성했는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만과 홍콩, 중국 대륙의 지사들은 공통적으로 중국어를 쓰지만 한국은 한국어를 따로 쓰지 않는가. -나이가 33살이면 회장으로는 무척 젊은 나이인데 조직 관리상 문제는 없는가. ▲딜리리움은 수평적인 조직이다. 각각의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누가 누구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간다. 서로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분위기다. -한국 지사를 99년 12월에 오픈했는데 현재 규모와 사업 진행 상황은. ▲현재 한국 지사 사무실에 2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본래 8월 말쯤 한국지사의 인원을 50명에서 60명 정도로 충원할 계획이었으나 인력 충원에 신중을 기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있다. 한국의 한솔 그룹과 신세계 인터네셔널 등의 프로젝트를 1단계 마친 상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e비즈니스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국 시장 상황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관련 사업분야에서의 선진국을 충분히 따라잡고 있다고 본다. 사실 나도 딜리리움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 ◇빈센트 추 회장 약력 33세. 하버드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하버드와 코넬 대학에서 건축 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았다. L.B.인터네셔널에서 일한 바 있다.
2000.09.01 I 권소현 기자
  • 선물귀재 장기철씨 대신증권株 25만주 판다
  • "목포 세발낚지" "한국의 소로스" "선물의 귀재"라는 닉네임으로 선물시장을 쥐고 흔든다는 소리를 듣던 대신증권 장기철 목포지점 영업부장(34)이 대신증권 주식을 대량 처분한다. 대신증권은 18일 장 부장이 보유한 자사보통주 25만주를 2개월동안 거래소시장을 통해 분산 매도할 것이라며 승인을 신청했다. 장 부장은 시장가 호가로 주문하고 매도일 장종료후 매도내역을 거래소시장에 공시해야 한다. 장 부장이 주식을 산 것은 1년8개월전인 차장시절 뛰어난 매매로 회사에 많은 이익을 남겨줘 성과급을 받았기 때문. 그는 올초 자본금 100억원인 토러스벤처캐피탈에 지분의 30%에 해당하는 30억원을 출자해 최대주주가 되기도 해 증권가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그를 한국선물시장을 이끄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장부장은 지난해 10월 성균관대가 경영관을 짓기 위해 모금중이라는 말을 듣고 이 대학 심윤종 총장을 만나 1억원을 내놓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98년 모교인 목포상고에 들렀다가 급식학교로 지정돼 내년부터 급식을 해야하는 형편인데 예산부족으로 식당 신축비용을 확보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3층짜리 건물 1동 (연건평 90평) 을 지어주기로 하고 2억1000만원가량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목포상고를 거쳐 방송통신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96년부터 97년 상반기까지 1년여동안 주가지수 선물거래기법을 공부한 후 97년 하반기 거래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리스크 회피를 위해 원금중 절반이하만 선물에 투자하며 잘못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한 손절매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장 부장의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부장은 지난 98년 9월 선물 약정으로 올린 성과급으로 자사주 100만주를 매입했다. 이 주식은 1년간 팔 수 없었다. 증권거래법상 증권사 임직원이 자기 이름으로 주식매매거래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어 금감위로부터 승인을 받아 주식을 샀고 매도금지기간이 끝나 이번에 승인을 얻어 팔려고 하는 것이다. 대신증권 주가는 한때 급등해 100억원 이상의 평가익을 올리기도 했다.
2000.07.18 I 허귀식 기자
  • 투신 부실채권 상각 4300억(1보)
  • 금감원과 투신업계가 채권시가평가에 대비해 공사채형펀드에 포함된 채권을 전부 상각하기로 하고 상각 기준을 정했다. 이는 7월부터 채권시가평가가 시행됨에 따라 그동안 손실로 반영하지 않은 부실채권을 자산가치를 감안해 발생한 손실을 펀드에 반영해 시가와 장부가간의 차이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이 같은 상각기준에 의해 모든 부실채권을 상각할 경우 4200~4300억원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투신업계 관계자는 “상각기준에 따라 펀드에 손실을 반영할 규모는 투신 펀드 전체로 4200~4300억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이 손실을 반영한뒤 고유계정으로 손실을 떠넘긴데다 다른 투신사도 상당 규모의 손실을 상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현대투신운용을 비롯 동양오리온투신과 삼성투신운용등이 CBO를 발행해 부실채권을 줄이는 작업을 진행중이어서 실제 펀드에 손실로 반영되는 규모는 1000억원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금감원과 투신업계는 최근 실무자 접촉을 갖고 펀드내 부실채권을 모두 상각해 손실을 펀드에 반영하기로 하고 상각기준(아래)을 결정했다. 이미 상당수 채권에 대한 상각이 이뤄졌으며 아직 상각하지 못한 채권에 대해 이 기준을 적용해 손실을 반영할 예정이다. 또한 펀드 손실을 반영한 뒤 외부감사를 거쳐 오는 20일 펀드부실을 공개할 예정이다. 상각기준은 각 투신사별로 기존 채권에 대한 상각비율을 조사해 이를 평균한 뒤 적정 수준으로 조정한 것이다. (표)신탁재산 부실채권 상각율(단위 :%) *잔존가치 10%인 경우 상각율 90% 기업명 부도분류 잔존가치 가산전자 부도 가원 부도 10.00 갑을 work-out 55.00 갑을개발 부도 갑을방적 work-out 55.00 갑을전자 부도 거평 부도 거평(한국)시그네work-out 거평산업개발 부도 5.00 거평제철유화 work-out 거평제철화학 work-out 거평파이낸스 부도 5.00 거평패션 부도 거평화학 work-out 건양기업 부도 건양콘크리트공업부도 건영 부도 건영종합건설 부도 경기화학 부도 경남리스 work-out 65.00 경남버스 부도 80.00 경남종금 부도 28.00 경남종합건설 부도 경도 부도 경보 부도 경용강업 부도 경원건설 부도 경인리스 work-out 50.00 경일종금 부도 경일화학공업 부도 경향건설 부도 5.00 계림 부도 10.00 계몽사 부도 5.00 계성제지 부도 고려 부도 고려산업 work-out 고려서적 부도 고려석유화학 work-out 고려시멘트 부도 62.00 고려시스템산업 부도 고려종금 부도 10.00 고려종합화학 work-out 고신열관리 부도 고합 work-out 60.00 고합물산 work-out 60.00 공영토건 부도 광덕물산 부도 광림기계 부도 광림특장차 부도 광명주택 부도 광은리스 부도 55.00 광장호텔 부도 10.00 국민리스 준부도 60.00 국제상사 부도 21.00 국제정공 부도 국제종합건설 부도 31.00 극동건설 부도 32.00 금강공업 부도 금강정공 부도 금강화섬 부도 58.00 금호상사 부도 기린 부도 80.00 기린산업 부도 기린화학 부도 기산 부도 기아기공 부도 기아모텍 부도 기아자동차 부도 22.00 기아전자 부도 기아중공업 부도 기아특수강 부도 47.00 길훈종합건설 부도 나드리건설 부도 나라종금 부도 40.00 나산 부도 나산유통 부도 나산종합건설 부도 5.00 남광토건 work-out 남선알미늄 work-out 남양금속 부도 남화건설 부도 20.00 녹십자의료공업 부도 논노 부도 뉴맥스 부도 5.00 뉴스테이트캐피탈 80.00 뉴코아 부도 뉴타운개발 부도 다산금속공업 부도 다솜방송 부도 다이너스 work-out 30.00 달재화학 부도 대경식품 부도 대경특수강 work-out 대광건설 부도 30.00 대광수산사 부도 대구리스 부도 60.00 대구백화점 work-out 80.00 대구종금 부도 대농 부도 대농창업투자 부도 30.00 대동 부도 50.00 대동건설 부도 32.00 대동리스 부도 대동주택 부도 50.00 대륭산업 부도 대명건설 부도 대명레저 부도 대미실업 부도 대방창업투자 부도 19.00 대백가구 부도 대백쇼핑 work-out 73.00 대백종합건설 부도 대선주조 부도 대성목재공업 부도 대성종건 부도 10.00 대영포장 부도 50.00 대왕실업 부도 대우금속 부도 50.00 대우자동차 판매 work-out 80.00 대우전자 work-out 34.00 대우캐피탈 work-out 40.00 대유건설 부도 대창기업 부도 대한부동산신탁 work-out 68.00 대한산업 부도 대한유화공업 부도 대한정공 부도 10.00 대한종합건설 부도 대한주택보증 work-out 67.00 대한주택할부금융부도 50.00 대한중석 부도 10.00 대현 work-out 73.00 대흥기계공업 부도 대흥산업 부도 덕산시멘트제조 부도 덕산중공업 부도 도남모방 부도 50.00 도투락 부도 동강실업 부도 10.00 동광제약 부도 50.00 동국무역 work-out 63.00 동국방직 work-out 동국합섬 work-out 동남리스 부도 27.00 동방 work-out 동방개발 부도 동방금속공업 work-out 71.00 동보건설 work-out 동보산업개발 work-out 동서가구 부도 동서개발 부도 동서목재 부도 동서실업 부도 10.00 동서팩토링 부도 30.00 동서화학 부도 80.00 동성 부도 동성종합건설 부도 동성철강공업 부도 동신 부도 동신오미야법랑 부도 동신제약 부도 동신제지 부도 동신특강 부도 동아건설 work-out 72.00 동아실업 부도 동아종합환경 부도 동양강철 부도 동양물산 work-out 71.00 동양철관 work-out 동일제강 부도 동해펄프 부도 동화기업 부도 동화리스 부도 50.00 동화면세점 work-out 70.00 동화투자개발 work-out 동화파이낸스 부도 50.00 두양금속 부도 두양산업 부도 10.00 두진종합건설 부도 두원 부도 라보라 부도 10.00 라인건설 부도 만도기계 부도 32.00 맥슨전자 work-out 80.00 모닝글로리 부도 무학 work-out 무학건설 부도 45.00 미도파 부도 미주금속 work-out 미주실업 work-out 80.00 미주제강 work-out 미주철강 work-out 민인터내셔널 부도 5.00 바로크가구 부도 반도기계 부도 벽산 work-out 벽산건설 work-out 69.00 보루네오 부도 45.00 보성 부도 보성건설 부도 보성종건 부도 보성주택 부도 부산동부시외터미부도 80.00 부산리스 부도 58.00 부산화물 부도 80.00 부원 부도 10.00 부일이동통신 work-out 산내들 부도 산내들인슈 부도 삼광유리 부도 삼광캠 부도 삼미 부도 16.00 삼미특수강 부도 33.00 삼보유리 부도 삼보지질 부도 삼삼종금 부도 30.00 삼신파이낸스 부도 30.00 삼양농수산 부도 삼양식품 부도 삼양유지사료 부도 50.00 삼양유통 부도 삼양종금 부도 8.00 삼양판지공업 부도 삼익건설 부도 5.00 삼익악기 부도 5.00 삼일공사 work-out 삼중종합물류 부도 삼표강원중공업 work-out 삼표산업 work-out 66.00 삼표상사 work-out 삼화정밀 부도 20.00 상아제약 부도 상우종합건설 부도 상원전자 부도 상일 부도 새한 work-out 80.00 새한렌탈 부도 5.00 새한미디어 work-out 73.00 새한종금 부도 29.00 서광 부도 21.00 서광건설산업 부도 서륭 부도 80.00 서륭산업 부도 서울리스 부도 46.00 서울제강 부도 서울주철공업 부도 서울차체공업 부도 서울트래드클럽 work-out 73.00 서한 work-out 서호건설 부도 성심병원 부도 50.00 성안백화점 부도 성원건설 부도 58.00 성원기업 부도 50.00 성원스포렉스 부도 성원㈜ 부도 성원주택할부금융부도 성원토건(합) 부도 50.00 성원토건㈜ 부도 50.00 성원파이낸스 부도 50.00 성창기업 work-out 80.00 세계물산 부도 36.00 세신 work-out 78.00 세원개발 부도 10.00 세일파이낸스 부도 세풍 work-out 세풍종합건설 work-out 세화 부도 세화몰드텍 부도 세화정일 부도 센터럴시티 부도 셰프라인 부도 수산중공업 부도 시대종합건설 부도 시사저널 부도 1.00 신광기업 부도 50.00 신극동제분 부도 10.00 신동방 work-out 61.00 신동양기공 부도 신보리스 work-out 신성통상 부도 17.00 신세계종금 부도 22.00 신세기투신 부도 신송산업 work-out 신송식품 work-out 신우 work-out 신우건설 부도 신우공업 work-out 신우산업개발 work-out 신우텔레콤 work-out 신원 work-out 신원유통 work-out 신원인더스트리 부도 신원종합개발 부도 신원텔레콤 부도 신원JMC work-out 신한 부도 21.00 신한종금 부도 신한주철 부도 신호 work-out 신호기공 부도 신호유화 work-out 80.00 신호전자부품 부도 50.00 신호전자통신 부도 신호제지 work-out 80.00 신호종합개발 부도 신호파이낸스 부도 쌍마 work-out 쌍방울 부도 쌍용건설 work-out 64.00 쌍용자동차 work-out 80.00 쌍용종금 부도 아남건설 부도 30.00 아남반도체 work-out 아남산업 work-out 아남전자 부도 50.00 아남환경 work-out 아시아자동차 부도 11.00 아주종합건설 부도 엔케이텔레콤 부도 영남종금 부도 영보금속 부도 80.00 영수물산 부도 80.00 영진약품 부도 80.00 영창악기 work-out 73.00 영풍제관 부도 80.00 영흥철강 부도 28.00 예음기획 부도 우경개발 부도 39.00 우방 work-out 우성건설 부도 33.00 우성타이어 부도 우영산업개발 부도 원덕제지 부도 원흥종합건설 부도 유진관광 work-out 의성실업 부도 이스트파이낸스 부도 30.00 인산종합건설 부도 50.00 일동제약 work-out 일보산업 부도 일성건설 부도 50.00 일신 부도 50.00 일신석재 부도 자유건설 부도 40.00 장안종건 부도 적고 부도 80.00 전은리스 부도 43.00 정일공업 부도 정일E&C 부도 제원실업 부도 제일정밀 부도 5.00 제일종금 부도 제주서라벌관광 부도 제주이동통신 부도 제텍스 work-out 조일제지 부도 조치원베이커리 부도 조흥리스 work-out 65.00 주은리스 work-out 50.00 중부리스 부도 중앙리스 부도 52.00 쥬리아 부도 진도 work-out 67.00 진도물산 work-out 진도종합건설 work-out 진로 부도 80.00 진로베스토아 부도 진로쿠어스 부도 청구 부도 50.00 청구백화점 부도 21.00 청구조선공업 부도 청구주택 부도 청전 부도 청주시외터미널 부도 10.00 청해농수산가공영부도 충남방적 work-out 69.00 코래드 work-out 코코스 work-out 큐닉스컴퓨터 부도 30.00 크라운베이커리 부도 크라운제과 부도 태광특수기계 부도 50.00 태용냉장 부도 태일정밀 부도 5.00 태창 부도 태평주택 부도 태화 부도 태화건설 부도 태화쇼핑 부도 태흥건설 부도 50.00 통일중공업 부도 파스퇴르유업 부도 풍진냉장 부도 풍진화학 부도 피앤텍 부도 피어리스 work-out 한국강관 부도 46.00 한국개발리스 work-out 65.00 한국기업리스 부도 39.00 한국물산 부도 5.00 한국부동산신탁 work-out 71.00 한국일보 work-out 80.00 한국종합건설 부도 한국주택할부금융부도 33.00 한국컴퓨터 work-out 한국케이블TVE대부도 한국특수사료 부도 한국티타늄 부도 한국파이낸스 부도 10.00 한길종금 부도 10.00 한라시멘트 부도 한라자원 부도 한라중공업 부도 한미캐피탈 work-out 65.00 한백건설 부도 50.00 한보철강 부도 7.00 한빛여신 work-out 60.00 한솔전자 부도 한솔종금 부도 29.00 한신공영 부도 한올 부도 한일약품 부도 한일전장공업 부도 한일합섬 부도 10.00 한주케미칼 부도 한주통산 부도 한창 work-out 76.00 한창제지 work-out 80.00 한창화학 work-out 한할산업 부도 한화종금 부도 해강 부도 10.00 해성건설 부도 해태상사 부도 30.00 해태유통 부도 50.00 해태음료 부도 15.00 해태전자 부도 50.00 해태제과 work-out 46.00 해표 work-out 해표푸드서비스 work-out 핵심텔레텍 부도 5.00 현광종합건설 부도 현대철강공업 부도 현대페인트공업 부도 화니백화점 부도 화성산업 work-out 80.00 화승 부도 80.00 화승관광 부도 10.00 화승상사 부도 80.00 효성기계 부도 50.00 효성인포메이션 부도 희망백화점 부도 희망전자개발 부도
2000.06.14 I 박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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