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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⑥최중경 재경부 금융정책과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 최중경 과장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채권시장이 고도화되고 있지만 재료에 대한 스윙폭이 너무 크다
-시장참가자들은 재경부를 국고채라는 채권의 “발행자”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시장의 질서를 만드는 자”로도 보는데요. 정부의 뜻을 읽으려면 어떤 것을 봐야합니까.
▲우리 채권시장이 매우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가평가가 처음 도입될 때 우려도 많았지만 저는 옹호하는 입장이었는데 이것이 채권시장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기까지 갖고 있어도 평가에 변화가 없으면 딜링을 할 요인이 없죠. 이제는 가격이 변하면 액션을 해야합니다. 물론 잘못해서 시장이 약할 때는 나선효과라고 해서 손실이 손실을 불러오고 올라갈때는 한없이 올라가는 것이 걱정되지만…지내놓고 보니까 걱정반 기대반 되는 것 같습니다.
시장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재료가 있을 때, 소득이나 외국금융기관의 동향, 물가 등 변수가 움직이는 것에 반응을 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죠. 그렇지만 스윙 폭이 너무 큽니다.
우려처럼 시장의 폭과 깊이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딜러들이 지나치게 민감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시장이 성숙해가는 단계임에 틀림없다고 봅니다. 다만 반응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도 보면 채권 애널리스트가 최고의 연봉자이고 최고의 이코노미스트입니다. 금융이나 거시경제를 읽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딜러들도 분업화가 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채권 애널리스트와 딜러는 달라야죠.
투자전략을 세우는 사람과 그 전략하에서 시장의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달라야합니다. 딜러는 파인튜닝(미세조정)을 하고 전략을 세우는 애널리스트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수단, 물량조절이나, 한국은행과 유동성 조절에 대해서 협의하고 요청하는 것. 이런 것들을 시장이 잘 지켜봐야죠.
정부보증 예보채, 프리미엄이 너무 높다. 명목성장률에 근거한 금리결정 타당성 떨어져
-예보채가 채권시장의 문제거리인데요
▲저도 불만입니다. 왜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인데 프리미엄이 그렇게 많이 붙죠.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생각하고 있는데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이어서… 정부는 분명히 불만입니다. 정부가 보증을 했는데..무보증이면 몰라도.
이코노믹 펀더멘털에 따라, 성장률에 물가 더하면 얼마니까 명목성장률을 베이스로 금리가 움직여야된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나라 케이스를 분석해봤어요. 금리가 어디를 베이스로 움직이나 알아보려고.
반반입니다. 명목성장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일견 보여지는 나라와 전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반반이었어요. 일본의 경우도 금리가 낮았죠, 성장률에 관계없이.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것만 가지고는 금리를 설명할 수 없다. 레퍼런스의 하나일 뿐이다.”라는 겁니다.
성장률로 금리에 접근하더라도 문제가 있는데 아주 고전적인 경제학이론이죠. 다시 말해 “내가 투자하는 것보다는 내 돈을 빌려줄 테니 네가 투자해라. 대신 그 대가를 내게 달라”는 것인데 메니지먼트 스킬,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할 때 (돈을 빌려준 사람도) 평균적으로 자기 몫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생산에 종사하는 자가 기록한 생산성에 대해서 (돈을 빌려준 자가) 똑같이 먹겠다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죠. 스킬이 전혀 없는 사람이 기업가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곤란하니까 그 프리미엄만큼은 (금리에서) 제해야죠.
더구나 국고채는 리스크 프리가 아닙니까. 생산활동에 따른 리스크를 모두 부담하고 난 결과이니까 리스크 프리인 것 만큼 또 (금리에서) 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결국 명목성장률에 빗대서 이자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제가 개발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개발경제학에서 말하는 금리 균형은 기업가정신이 어느정도 감안됩니다. 농부나 대장장이 등 아주 기본적인 생산자의 경우에는 “내가 돈 꿔졌으니 생산한 것 반 나눠갖자” 이럴 수 있지만 기업은 다르죠.
스킬의 차이에서 오는 보수, 다른 간접적인 부담,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 이것이 모두 다른데 명목성장률로만 국고채 수익률을 계산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이에요.
-20여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정책은
▲87년인가 포철 국민주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때 이중청약자, 월급이 60만원이상인 경우, 고소득자가 청약하면 적발하겠다고 했죠.
그걸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했는지 부정청약자가 많았죠.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청약명단에서 같은 사람이 나오면 튀어나오게 하면 되니까. 고소득자는 국세청에 사정사정해서 테이프를 빌렸어요. 소득 테이프를…그 테이프를 걸어서 거기에 걸리는 명단을 뽑아냈죠. 국민에 대한 약속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보니 별별 부정청약 사례가 다 있더라구요. 엄청나게 많이 걸렸어요. 금융기관 직원도 적발되고… 뭘 알겠느냐하고 이중청약 많이 했는데 조사해보니 다 걸렸죠. 국세청을 정말 열심히 설득했던 기억이 새롭군요.
외환위기에서 배운 것, 대내균형과 대외균형이 충돌할 때는 대외균형을 먼저 생각해야
-IMF 얘기좀 해주세요
▲(먼 훗날 얘기하자며 머뭇거리다가) 아무튼 배운 것이 많습니다. 한가지 배운 것은 대내균형과 대외균형이 충돌할 때 뭘 선택할 것이냐. 개방경제에서는 대내균형, 즉 소득이나 물가하고 대외균형, 즉 수출이나 경상수지 등이 충돌할 때 당연히 대외균형을 택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배웠죠.
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외채규모가 부풀려지까 평가손이 생깁니다. 그래서 장부상 수익성이 줄어들죠. 반면 유동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아지거든. 국가도 마찬가지에요. 내셔널 리퀴디티를 먼저 선택해야합니다. 97년에 우리는 그렇게 못했죠. 93년에 잠깐 흑자내고 이후 엄청난 적자가 나왔는데 이것이 다 단기채무가 됐고 유동성이 어려워졌어요.
만약 돈을 빌려주는 입장이라면 뭘 보겠습니까. 소득이 있느냐, 그 소득을 죄다 써서 빚을 지고 있나를 보지 않겠어요. 내가 한국에 투자하는데 “돈을 벌고 있느냐” 이는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고 있느냐이고 “저축이 있냐” 이는 보유고 아니겠어요. 둘다 제대로 되야죠.
간단히 말해서 “내돈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예스”라고 대답하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를 보여줘야죠.
개방경제에서 외국인들의 이 같은 질문에 자신있게 객관적으로 답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시장을 보고 경제를 봐야죠. 이것이 IMF에서 배운 것이고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일을 잘 할 수는 없는데요.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배가 있다면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웠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히 기억난다고 하면 사무관때 군대 제대하고 갓 와서 모셨던 양승만 과장(부산세관장으로 은퇴하심)입니다.
처음으로 기안을 올렸더니 그대로 사인을 하시더라구요. “내가 볼 때 고칠게 많지만 네가 처음해온 것이니까 그대로 싸인한다. 국장하고 부딪쳐봐라.” 그래요. 그렇게 얘기해준 것이 고맙더라구요...
기를 살려줄 겸 사인한다고 했는데 국장한테 들고 갔다가 깨지고 나왔죠. “뭐 지적하든. 이거이거 지적하지. 이건 이렇게하고 저건 저렇게 해라.”고 알려주더라구요. 일종의 실습을 시킨 것이죠.
자기가 사인한 기안이 국장한테 퇴짜를 맞으면 자기에게도 부담인데 사무관 기를 살려주려고 사인을 했다고 하니, “이 과장을 망신시키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은 본인이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선생이 좋아서 공부잘하는 것은 아니죠. 열심히 일하게 하고 긍지를 심어주고 이런 측면에서 양 과장님이 기억에 남아요.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 아시아 족벌경영, 성숙한 자본주의 되길-이코노미스트
- [edaily] 아시아의 족벌경영체제는 분명 많은 부를 축적해 온 성공사례로 관찰 가능하지만 가족적 경영을 기반으로한 재벌기업들이 주주들과 채권자들, 각종 법규의 테두리 내에서 감시를 받는 보다 성숙한 자본주의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최근호에서 지적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 전형적인 아시아의 실업거물, 로버트 쿠옥(郭鶴年)을 보라. 모국 말레이시아에서 화교신분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자식들만큼은 좀더 나은 삶을 살게하리라는 목표를 일찍부터 가졌다. 그 방법은 부를 축적하는 한편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사업분야와 대상국가를 확장하고 그것에 대해 입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50~60년대에 말레이시아에서 제분, 팜유, 설탕 등을 매점하는 것에서 시작해 제조업에서 부동산업으로, 호텔에서 미디어사업으로 그 가지를 방대하게 뻗쳐나갔다. 오늘날 그는 소위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문어발기업"의 총수가 되었고 그 본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등 유수의 도시들을 수차례 거쳐갔다. 그러나 정작 사교적이고 말주변좋기로 소문난 로버트 쿠옥, 그 자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수년전 한 대형국제조사기관이 쿠옥과 그가 거느린 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름-로버트 쿠옥; 정치적 우호관계-알려진 바 없음; 정치적 적대관계-밝혀진 바 없음; 소송-아는 바 없음; 야망-모름.
그의 유교적 경영스타일은 가히 전설적이다. 최근에 그가 주최한 만찬에서 한 손님이 쿠옥의 아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쿠옥은 재빨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요리가 나올 차례"라며 아들에게 주문을 시켜 밖으로 내보냈다.
쿠옥은 리콴유가 정치적으로 주창한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비즈니스적으로 구현한 사람이다. 문화적으로 가부장, 권위주의, 정통성 등의 유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그는 시장조사라는 정형화된 방식을 경멸하고 "배짱정신(gut instinct)"으로 일관한다. 그는 소위 "밤보 네트워크(bamboo network)"로 통칭되는 화교사회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계약이 아닌 신용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되 정치적 불안정성과 상인 마인드를 이유로 거래는 항시 일회적으로 한정시킨다.
몇 십 년 동안 쌓아올린 부의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아시아금융위기만 없었더라면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성공사업모델의 전형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남아시아의 화교는 사회의 소수집단에 불과하지만 자본시장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경제위기 당시에도 국가경제는 타격입었지만 화교집단의 시장점유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렇듯 화려해보이는 화교자본의 사업모델에도 난관은 있으니 그것은 제 1세대 창업자 세대에서 가족단위로 꾸려갈 수 있는 정도의 사업규모에만 적합한 모델이라는 점이다. 사업이 확장되다보면 분명 외부 자본을 유치해야만 하는 시점이 오게 마련이고 이때 가족단위의 통제는 희미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화교들에게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더러 본래 사업의 목적인 "가족을 지킨다"는 것과도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화교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피라미드구조"다. 홍콩 중문대학의 재정부분 담당 교수인 래리 랭과 레슬리 영, 그리고 세계은행(WB)의 스티즌 클래슨즈는 "배당과 몰수(Dividends and Expropriation)"라는 주제의 공동연구에서 많은 화교집단들이 피라미드구조로 사업을 꾸려나간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상호자본출자, 기업간 비공식적인 연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자회사의 고리들이라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결국 모든 계열사에서 51% 이상의 지분을 반드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피라미드의 목적은 외부자본을 유치하되 결국은 가족 내에서 그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다. 즉, "자본시장의 내면화"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러한 연계 과정은 상당히 복잡해서 추적하기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필리핀내셔널뱅크(PNB)가 그 대표적 사례다. 필리핀 화교자본의 대표적 인물인 루시오 탄은 필리핀 전 대통령인 조셉에스트라다와 친분관계에 있었는데 정부가 4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PNB가 신주발행을 한다는 소식에 거기에 참여하게 된 네 기업에게 자신 소유 은행에서 대부를 해주었다. 결국 그 대부금을 담보로 탄은 PNB 93%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도 이러한 족벌경영체제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시아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족벌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일본이 10% 미만이고 한국과 대만이 50% 이하, 타이와 말레이시아가 60~70%,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그 이상이다. 그러나 유럽 역시 이러한 경영체제들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시아적"이라는 단어로 몰아세우기에는 섯부른 감이 있다.
대신 아시아와 유럽, 양자의 차이라면 그 족벌경영체제의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속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체제가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냐 하는 점일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법규와 변호사, 판사들이 항상 기업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채무자와 주주들이 권리행사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모든 성숙한 자본주의적 시스템들이 주주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감독하고 소액 투자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자본주의도 이런 방향으로 분명 성숙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걸릴 것인가.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④백경호 주은투신 사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주인공은 백경호 주은투신운용 사장입니다.(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이게 비즈니스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입니까?
▲90년 한때 금리가 20% 가까이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금리가 천장을 치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돈이 되겠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많은 증권사들이 채권중개팀을 앞다투어 만들었죠.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채권시장이 열리게 된 겁니다. 브로커들을 앞에 서너명 앉혀두고 매일 전화하면서 사고 팔고…호가개념을 도입한거죠.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시장을 지배할 것이다”
-동원에서 SK증권으로 옮기고나서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드물었던 채권분석을 시도하고 정보모임도 주최하셨다면서요.
▲처음 동원증권에 입사했을 때 동원증권 최고의 채권전문가는 상고를 나온 모 대리였습니다. 그 분이 채권단가계산을 주판으로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최고의 기술이었죠.
입사초년병이던 저와 동기들이 매매내역을 정리해서 그 분 책상 위에 올리면 주판을 탁탁탁 두들긴 다음 “음 그래 맞다” 고 한 마디 하고 도장을 쾅 찍어주시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계산기라고는 ‘카시오’ 밖에 없었는데, 한빛증권의 이 모이사께서 그걸 이용, 채권계산하는 것을 보고 모두 따라했었죠.
그런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면서 제 스스로 채권에 눈을 떠가던 시절이었구요. 그러니 당시에 채권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계산을 잘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채권을 통해 돈을 벌겠다기보다는 업무처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뤘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저는 “이것보다는 금리를 예측, 분석하는 일이 훨씬 부가가치가 높겠다” 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 다음엔 “금리예측의 시대가 지나가면 그 후에는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구요. 개인적으로 지금 현 상황이 바로 그 과학적, 수학적인 단계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실천해보셨나요.
▲우선 채권시황을 정기적으로 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채권본질에 대해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 지금이야 듀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일반독자들도 잘 알지만 그런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미국의 유명한 채권전문가의 책자들도 전혀 소개가 안돼 있었어요.
-호가를 집중하는 문제, 시장정보를 전달하는 방법 같은 것도 시도하신 적이 있죠.
▲채권시장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된 계기는 94년 7월에 2주간 미국, 일본 출장을 간 것이었습니다.
SK증권에서 근무하는 동안 제가 재경부에서 주관하는 채권시장 태스크포스 활동을 3번 정도 했습니다. ‘채권시장 선진화 방안에 관한 태스크포스’ 이런 타이틀하에 이루어진 활동들이었죠.
“국채시장 선진화에 관한 조사연구”를 목적으로 해서 국고과 사무관, 증권거래소 부장, 저 등등이 미국, 일본을 돌았습니다. 그 때 비로소 선진화된 시장에 관해 눈을 뜨게 된 겁니다. 정부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기때무에 일반인들이 가기 힘든 미 재무성, FRB, 뉴욕연방은행, SEC, 일본 대장성, 일본은행등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어요. 경제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관리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과정을 제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요. 그것이 제가 채권시장에 관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든 좋은 계기였습니다.
2주간의 출장기간을 상당히 빡빡하게 보냈습니다. 현재 국내 국채시장의 입찰과 발행제도 전반은 그 당시 저희 팀에서 출장보고서로 제출한 리포트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 당시 미국 채권시장이 장외시장일 때인데 IDB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관행이 쌓이고 깨지면서 채권시장은 발전하는 것”
-IDB를 직접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적도 있는데.
▲거의 유사한 형태를 만들었지만 실패했습니다. 시장에 진입한다는 것이 욕심만 가지고 되는 것을 절대 아닙니다. 미국의 채권시장이 지금처럼 엄청나게 발전한 것은 오랜 기간동안 관행화된 여러 관습들이 제도화했기 때문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시장이 존립하는 것이거든요.
현재 미국시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제도들이 많습니다. 일년을 360, 한달을 30일로 규정하는 것만 봐도 그렇죠. 누가 봐도 이것이 불합리하지만 시장참가자들이 하나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까 자연스레 정착이 된 겁니다. 우리도 시간이 좀더 지나서 이러한 관행이 정착되면 IDB역시 진정한 제도로서 뿌리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금융시장이 정부에서 틀을 만들어놓고 “여기 들어와라” 하는 식으로 이뤄졌어요. 그러다보니 정부가 만들어준 시스템이 민간에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도 전혀 없었죠. 정부의 생각은 단지 ‘선진시장에서 이런 식으로 하니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안 됐던 거구요.
IDB에 관해서도 시장에서 논란이 많았었습니다. 도대체 이걸 증권사로 봐야하느냐 거래소로 봐야하느냐는 것. 하지만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민간에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만들면 그 주체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운용하면서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깨져가며 운영하다 보면 그것이 좋을 경우 시장에 관행으로 정착되고 반대의 경우 자연히 퇴출당하지 않겠습니까. 전적으로 시장이 판단할 문제란 말입니다.
-SK증권을 그만두시고 별도로 회사를 만들어 운용하신적이 있으시죠. 그 얘기 좀 자세히 해주세요.
▲SK증권을 그만둔 건 제 나름대로는 채권쪽의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러한 여건 조성이 안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표를 내고 회사를 차린 겁니다.
우리 금융시장에 혁신적인 상품들을 새로 개발해서 내놓고 싶었어요. 그 당시 김상석씨(현 edaily 뉴욕특파원)와 매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많이 했죠. 그걸 빨리 접은 이유는 주택은행이라는 좋은 금융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있지만, 금융이라는 것이 크레딧에 근거한 비즈니스지 개인의 아이디어로 상품화를 한다고 해서 돌파하기 쉬운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쉽게 말해 벽을 느낀 거죠.
-그 회사를 접은 것이 97년이었는데 IMF에 진입하던 시점입니다. 그 다음 98년엔 채권이 대박상품이었는데.
▲그 때 매매해서 대박 낸 사람들이 많았죠. 그런데 저야 그 시기에 회사를 접었으니 뭐. 허허
“금융의 속성은 자본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
-백사장께서 회사를 접을 때 다른 사람들은 “부티끄”니 뭐니해서 기존금융기관을 박차고 나오던 시점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백사장께서 너무 일찍 증권회사를 나오는 바람에 그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사업의 성공유무를 떠나서 저는 기존 기업의 경직된 관행을 탈피하고 창의적, 아기자기한 비즈니스를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금융의 속성이라는 것이 자본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 어려웠던 거죠. 저희는 규모가 너무 작아서…하여간 개인역량으로 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택은행에 입사했는데…김정태 주택은행장과는 동원증권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나요.
▲제가 동원에 입사했을 때는 김 행장님께서는 동원증권 전무셨습니다. 제가 그 당시 증권회사 직원들의 모임인 “청년중역회의”란 곳에서 활동했습니다. 일종의 아이디어 뱅크인데 그걸 빌미로 몇 번 얼굴을 뵌 적은 있죠.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증권회사의 일개사원과 증권사 전무와의 관계가 지속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요. 물론 그분이 저를 기억해주시긴 했지만 교류를 한 건 아닙니다.
-김 행장께서 백 사장님을 발탁하신 이유는.
▲김정태 행장께서 행장취임후 주택은행이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는 걸 보고 ‘저 자산을 좀 더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라는 고민을 하신 것 같아요. 그 자산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거죠. 그런 사람을 찾다가 저를 부르시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사업을 할때도 거의 안면이 없었고. 김 행장께 저를 적극 천거하신 다른 분이 계시긴 합니다. 그 분과는 오래전부터 지속적인 관계가 있었죠. 김 행장님과의 기본인연은 동원증권에서 맺어졌지만 실질적인 관계가 이루어진 것은 결국 주택은행에 입사하고 나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인 스스로 평가할 때 상사의 신임을 얻게 된 이유가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행장님이 저를 “촌놈”이라고 부르셨는데… 촌놈들이 자랑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일이 있으면 앞뒤 안 가리고 열심히 하는거죠. 오직 그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상사없이 많은 부하를 거느린 입장이시죠. 부하직원을 평가하는 상황에서도 그러한 면을 중시하나요.
▲주은투신은 운용자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조직입니다. 저는 작은 조직에서 의 힘의 근원은 “모든 것의 파괴”에 있다고 생각해요. 능력만 출중하면 있으면 비록 나이가 어려도 얼마든지 진급도 빨리하고 돈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딜링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 인성보다는 능력을 중시한다는 의미인가요.
▲그 문제가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인성도 좋고 능력도 좋다면 금상첨화겠죠. 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힘드니까 둘 중에 뭘 택하느냐고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굳이 대답을 드리자면 “그래도 인성이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일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인성이라는 것에 너무 많이 매달리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우선 고려하는 것이 인성이지만 과거보다 능력이라는 요소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점수를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완벽하게 이기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주택은행에서 재직하면서 고생한 경험은 없습니까. 딜을 하는데 방향을 잘못 읽어서 애를 먹었다든지.
▲머리가 나빠서 기억이 안나는데요(웃음)
-“백전백승이었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럼 완벽하게 이겼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시장에서 완벽하게 이기고 지고 하는 자체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요. 저는 순리에 따른 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시장을 완벽하게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한국 채권시장에서 딜을 하면서 자신의 포지션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잘 아시겠지만 ‘이번 한 번 왕창 먹고 그 다음부터는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겠다’ 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노출은 불가피해요. 우선은 이기고 진다는 그런 개념 자체를 가져보지 않았습니다.
-주택은행에 재직시절 예보채로 딜링을 시도한 최초의 분이 아닌가요.
▲처음은 아닙니다. 그당시 예보채 스프레드가 상당히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최초의 예보채가 나왔을 때 국고5년물과의 스프레드가 무려 120bp였습니다. 시장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다들 적정 스프레드가 20-30bp라고 하더군요. 채권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 중 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유동성 프리미엄 때문에 그렇게 벌어진 거에요.
그래서 속으로 ‘저건 너무 저평가됐다’ 고 생각하고 그 부분을 주목한 겁니다. 어차피 정부보증이 되면 위험가중치가 제로(zero)가 되니까 우리가 충분히 들어갈 만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 당시 운용을 상당히 공격적으로 하셨죠.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시장에서 예보채 가격을 보면 그 당시 가격이 매우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당시에 “채권시장을 지키는 독수리5형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손”들의 역할이 컸는데요. ‘아 이 정도면 싸움이 된다. 우리랑 겨뤄볼 만하다’ 고 느낀 기관이 있었습니까.
▲마치 삼국지 같은 얘기군요.(웃음) 제가 은행에 있을 때만 해도 투신사들은 지속적으로 수탁 규모가 줄어 기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할 무렵이었습니다.
결국 대형은행이 시장을 이끌어나갈 수 밖에 없었죠. 특히 농협 같은 기관이 마켓 메이커로서 일단 앞에 나서고 그 뒤를 시중은행들이 따라가는 구조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마 주택은행이 채권딜러들에게 성과급제도를 도입한 최초의 은행일 겁니다.
나름대로 그런 시스템을 조기에 도입하다보니까 딜러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던 것 같고 농협, 국민은행, 한미은행 등도 적극적으로 했죠.
-채권과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주택은행을 은행으로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금도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주택은행을 얘기하면 “거기가 원래부터 우량은행이냐. 기업금융 안하다가 우량은행 된 거 아니냐” 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허허.
일견은 타당성이 있는 얘기라고 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입사할 무렵과 지금의 주택은행은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겁니다. 은행 직원들 자체가 과거처럼 500만원, 천만원짜리 대출만 하는 은행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조직의 유연성부분은 어느 은행보다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전산투자도 대규모로 해서 시스템자체도 잘 갖춰진 편입니다.
-한 때 채권이 한 방향으로만 간 적이 있었죠. 대우문제가 터지기 전 말입니다. 그때는 채권을 들고 있기만 해도 수익을 내는 시절이었는데요. 아까 언급하신 인덱스를 비트하면서 수익을 내보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으셨나요. 나름대로 초과수익을 내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도입한 전략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당시 은행 포트폴리오는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은행의 속성이 위험자산을 취득하지 않기 때문에 무위험자산에 집중하게 되죠. 그런데 무위험자산으로 이익을 낸다는 것은 결국 듀레이션 베팅에 의해서 수익을 얻는 거란 말입니다. 듀레이션을 적절히 조정해서 차익을 남기면 간단해요.
지금 시장의 많은 스트레티지스트들을 보면 기술적 분석에 의지하죠. 물론 기술적 분석이 시장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긴 하지만.
우리시장의 근본적인 한계랄까 문제점은 바로 이겁니다. 사실 한국 채권시장에서는 브로커들과 친하면 아주 쉽게 이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은행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저희 매니저들에게 브로커들에게 돈 쓰는 거 절대 아까워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브로커는 일차적 정보를 생성하는 사람이자 시장을 쥐고 있는 주체니까요. 예를 들어 자신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브로커를 한 명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러면 그 사람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절대 질 수가 없어요.
채안기금 시절 “작은 금액으로도 흐름을 바꾸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백사장께서 채안기금 운용하실 때가 무척 인상이 깊었습니다. 채안기금 조성도 김정태 행장이 주도하셨고. 김 행장이 채안기금으로 가라고 했을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행장께서 저를 불러 “10조” 라는 금액을 얘기하며 그 쪽으로 가라고 하시길래 우선 “금액이 너무 작다”는 말씀을 드렸죠. 하지만 유연하게 접근하면 해 볼만한 싸움이라는 생각은 했어요.
당시 금융시장이 문제가 됐던 것은 투신권이 대우채권에 대규모로 물려있었기 때문입니다.투신권 전체가 가지고있는 총 채권규모가 170조-180조원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채안기금 규모는 사실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의 최소량의 법칙에서 볼 수 있듯 작은 금액만을 가지고도 흐름을 바꾸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또 김정태 행장께서 일 시키는 스타일 자체가 믿고 맡기면 최대한 여건을 조성해주시는 편이라서 별 고민없이 승낙했습니다.
물론 저도 조건을 내걸었어요. “펀드매니저만은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파견해달라” 고. 매니저는 저에게 정확한 정보를 가르쳐줘야 하는 사람인데 서로의 신뢰가 없으면 안되잖아요. 그 조건 하나가 다른 행장들에게 전달됐고 오케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죠.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③국민연금 한승양 팀장(하)
- [edaily]“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이번주는 국민연금의 한승양 팀장이다.(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작년 수익률 211bp 초과달성, 재작년 101bp 초과달성” 시황에 맞는 투자전략 구사
-국민연금의 경우 여유있는 운용이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작년처럼 금리가 많이 떨어지면 오히려 운용에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처럼 금리가 급락했을 때의 운용방법과 지금처럼 금리가 바닥 언저리에 있다고 생각될 때의 운용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국민연금 기금중 채권부분이 시가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는 사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가평가와 장부가평가 방식을 병행하고 있죠. 물론 시가평가제의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은 운용의 투명성 아니겠습니까. 모든 걸 다 공개하니까요.
시가평가 방식으로 보면 작년도에 14.4%의 운용수익으로 벤치마크대비 211bp를 초과했습니다. 재작년에는 101bp를 비트했구요. 더욱 중요한 것은 작년은 금리 하락기였고 재작년은 금리상승기였다는 점이죠. 국면과 상관없이 이러한 큰 수익을 냈다는 것은 나름대로 저희가 그 국면에 따라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운용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면서 리스크관리를 철저히 가져가는 겁니다. 저희는 매월 꾸준히 보험료가 들어와 기금이 계속 늘어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만을 예측해서 운용하는 것은 일종의 투기라고 생각해요. 대단히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금리예측보다 저평가된 채권을 발굴하는데 꾸준한 노력을 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금리예측 대단히 어려워, 일종의 투기..저평가 채권 발굴에 주력”
-하지만 목표수익률을 정할 때는 향후 금리에 대해 예측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절대규모를 가지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크게 좌우받지 않습니다. 금리가 낮으면 낮은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시장상황에 맞춰가면 되니까요. 올해 들어서는 금리하락이 너무 심하다 싶어서 만기보유채권의 듀레이션도 많이 줄이고 보수적으로 운용했습니다.
-시장이 막 흔들릴 때 국민연금이 수익성과 무관하게 흔들리는 시장을 방어해줄 수 있는 기관이 돼야한다는 기대를 가진 시장참여자들이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말씀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저희는 “price taker”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 “price maker”가 되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price maker” 가 되고자 하는 국내기관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걸 해낼 수 있는 기관은 사실 국민연금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장가격을 형성한다면 여러가지 부작용만 나올 뿐이고, 우리가 해서도 안되는 일이에요. 가격이라는 것은 금융시장 상황과 수급논리에 의해 자율적으로 형성되야지, 어느 한 쪽이 큰 포지션을 가졌다고 해서 거기에 의지하게 되면 시장자체가 왜곡 되거든요. 금리가 많이 올라가 있을 때 국민연금이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수익을 내기 위한 우리 운용전략의 일부입니다..
”국민연금은 ‘price taker’이지 ‘price maker’는 아니다”
-국민연금은 국정감사 때마다 국회의원들의 표적이 되곤 하는데… 연금의 운용자로서 “밖에서 국민연금의 이러이러한 점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자산운용 원리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어떤 공적인 역할을 지나치게 부여하거나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고 운용이나 투자의 관점에서 봐달라는 겁니다. 물론 나날이 규모도 커져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커지고 있고 국민들의 복지와 관련된 만큼 그러한 요소를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모든 것을 운용중심으로 생각해야만 나중에 국민들에게 돌아갈 몫도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장기적 관점으로 봐 달라는 말입니다.
-지금 한 팀장님의 직속상사인 본부장은 어떤 분이십니까? 입사전에도 안면이 있었나요?
▲김선영 본부장이십니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교수생활도 하시다가 귀국해서 한신평에서 1년 정도 계셨습니다. 그 다음에 동양증권에서 오래 근무하셨구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신 덕장이시죠. 안면이 있었다기보다는 저도 같은 업계에서 근무해서 얼굴과 존함을 널리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운용에 관해서는 가족들에게도 얘기하지 않으신다구요. 직원들에게도 단단히 자물쇠를 채우라고 요구하십니까.
▲저는 제 자신의 업무, 특히 운용과 관련해서는 가족들과 전혀 얘기를 하지 않아요. 직업윤리라는 거창한 말은 제쳐 두고라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자산을 운용하는 사람으로서 업무관련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없죠.
대외적으로 저희 팀의 원칙이 있습니다. 운용사실과 결과는 공개하되 사전 운용 계획이나 시장에 대한 전망은 절대 얘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호가 우선의 원칙, 신상품 아이디어는 언제든지 환영
-현재 채권시장을 다루는 매체가 거의 없는 편인데요. 채권시장의 참여자로서 어떤 뉴스나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중시하는 원칙중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건 바로 거래의 투명성입니다. 유통시장의 경우 거래 원칙은 오직 하나, 가격우선이에요. 호가가 제일 좋은 곳과 거래하는 거죠. 이런 투명성을 정착시키는 것과 관련한 기사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게 바람입니다.
발행시장 측면에서는 ABS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희는 신상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서 시장에서 항상 앞서 나갔습니다. 저희는 증권사가 독특한 상품을 개발해서 시장에 들고나오면 그걸 끝까지 존중해줍니다. 모든 거래를 공정하게 투명하게 한다는 게 우리 팀의 단호한 방침입니다.
-채권운용팀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 지나요?
▲ 우리 채권운용팀의 특성은 각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주어져있다는 거에요. 저는 운용전략이나 방침만을 정하고 리스크 관리에 전력을 다 합니다. 개별 딜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증권사 브로커들도 잘 몰라요. 모든 일이 팀원-팀장-본부장 세 단계만 거치면 될 정도로 의사결정구조도 단순하구요. 저는 제가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담당자가 반대하면 안 합니다. 저희 본부장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원칙에 입각한 조직 운영체계이죠
”채권운용팀에서는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신상품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다는 말은 국민연금의 전 직원이 계속 공부를 해야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는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적어도 채권운용팀에서는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하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합니다. 이번에 신규채용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공부 안하고 대충대충 일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채권운용팀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각자가 자신의 고유역할을 가지면서 그 팀워크하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는데 자기분야에서 최고가 되지못하면 그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겠습니까.
-새로운 상품말고도 매매기법이나 신규시장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이제 해외로 나가야죠.
외평채 등 해외한국물, 미국 재무성 채권 등에도 관심
-현재 국민연금운용규정상 해외투자가 가능한가요.
▲금년 7월1일부터 가능하도록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외평채 등 한국물위주로 할 계획입니다. 언젠가는 미국시장에서 재무부채권(TB)의 주요 고객이 될 것입니다.
-해외투자를 계속하게 되면 중장기적으로는 포지션을 가지게 되는데요. 파생될 거래도 많을 거구요.
▲지금 운용역 중 한명이 그걸 전담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정도의 규모를 가진 자산이 수익을 내려면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어요. 앞으로 수년내에 국민연금의 총규모가 세계 5대 기금중의 하나가 됩니다. 이 막대한 자산이 국내에만 묶여있으면 리스크 관리가 안됩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수익도 못 내고 안정성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부하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바는 뭡니까.
▲현재 채권운용팀 직원들은 유능하고 성실합니다.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국민의 노후 복지를 책임지고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저는 우리 직원들에게 소신과 긍지를 가지고 맘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앞으로 이 사람들과 계속 같이 근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들에게 “만약 당신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되면 지금 받는 연봉의 10배를 받고 옮겨라.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고 말합니다. 국민연금에서 일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도덕성은 검증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운용능력은 물론이구요. 저는 이 친구들을 훌륭한 매니저로 키워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전에 저는 이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은 물론이구요. 팬션펀드는 기금성격상 매니저들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줘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근무조건 개선과 함께 저는 팀장으로서 이들에게 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채권운용팀의 매니저들은 모두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에 계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신 일은 뭡니까
▲뛰어난 운용수익과 부실채권 전무는 앞서 말씀드렸고. 그 다음으로는 ABS시장을 개발한 것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딜은 지난해 현대중공업 회사채 투자”
-기억에 남는 딜은?.
▲지난해 5월 현대중공업 회사채 관련 딜이죠. 현대중공업은 굉장히 좋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저평가된 상태였습니다. 우리팀이 두 달동안 현대중공업 리서치에 매달리고, 회사도 방문하면서 “이런 저평가 채권은 매입하여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시가보다 40bp나 높게(채권가격을 싸게) 받았어요. 투자위원회에서 심의도 거쳤고 근데 그당시 5월말 소위 ‘왕자의 난’이 터지면서 문제가 꼬였지요. 그후 여러가지 루머가 나오면서 개인적으로 곤욕을 치뤘는데 그 후에 대부분 팔아서 엄청난 매매차익을 남겼습니다. 대단한 딜이었습니다.(웃음)
-작년의 경우 금리움직임을 이해하면 아침에 샀다가 저녁에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장세였는데 국민연금의 경우 그런 딜을 하십니까.
▲저희는 시장에 대해 휩쓸리지 않고 한걸음 물러나 여유를 가지고 보려고 합니다. 리스크관리없이 금리만을 예측하여 트레이딩을 하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겁니다. 외국의 매니저들은 금리예측이라는 걸 참고자료로 사용할 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예측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개별채권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를 파악하는 거죠. 그걸 위해서는 여러가지 기법이 도입되어야 하고요
-거래가 마무리되는 시간은 언제쯤입니까?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거래 끝나고 대충 정리하면 5시 정도 됩니다. 저희에게는 여러가지 정보 및 자료가 엄청나게 들어옵니다. 그 많은 자료들을 다 보기만 하려해도 시간은 오히려 모자랍니다.
-주말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시는지. 운동은 하십니까.
▲국민연금 오기전엔 운동을 좋아했는데 여기와서는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전 주말이 따분해요. 전 천성적으로 일체질인가 봅니다. 하하.
-아버님이 학자시라고 했는데 무엇을 전공하셨는지.
▲저희 아버님은 서양 철학을 전공하신 학자세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서울대 철학과를 나오시고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생활을 하셨어요. 평생 공부만 하시고 산 분이세요. 안타까운 점은 아들 셋 중 아무도 아버님의 위업을 받들지 못하고 장사꾼이 돼버린거죠…참..하하.
워낙 어려운 시절을 학자로만 살아오신 분이라서 저에게 의대나 치대를 가라고 권유하셨어요. 그 말씀을 지키지도 못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뭘 하든지 간에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스스로 의식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저는 고리타분한 사람이에요.(웃음)
-부인은 사회생활을 하시는가요.
▲국민연금에 오고 나서 연봉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일찍한 편이라 아이들이 벌써 중학생인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죠. 아이들에게 한참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에 급여가 반밖에 안되니 집사람의 고생이 심했어요. 솔직히 연봉을 많이 줄 테니 오라는 제의도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집사람 덕분입니다. 제가 돈을 가져다주지 않으니 밖에 나가서 직접 돈을 벌더라구요.
미국 핌코사의 유명한 채권 펀드매니저인 빌 그로스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56세나 되는데도 일년 연봉이 4천만불입니다. 물론 미국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누가됐든 우리나라에서도 그가 받는 액수의 1/100을 받는 펀드매니저는 나와야하지 않겠어요.
(한승양 팀장 약력)
-60년 출생(본적 전북)
-전주고 졸업
-85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한미은행 입사
-86~94년 쌍용투자증권, 연구소
-94~98년 교보증권 채권팀장 등
-98~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채권운용팀장
(인터뷰 후기)
한 팀장과 기자는 인터뷰를 마친후 호프를 한 잔씩 마셨다. 한 팀장의 주량은 소주 1병 정도라고 했는데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닌듯 했다.
한 팀장은 국민연금으로 이직하기 직전 교보증권에서 소위 기관영업이라는 것을 했다. 그는 “새벽에 생선들고 남의 집 문 앞에서 서있어 봤냐”고 물었다. 한 팀장이 지금은 국내 채권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매수기관(buy side)의 책임자이지만 한 때는 몸소 영업을 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요즘 펀드매니저들을 보면 대접을 받을 줄 밖에 모른다”며 “겸손하고 투명하게 운용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우리 채권시장의 2세대라고 말하는 한 팀장의 태도는 단호하고 때로는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23조원의 돈을 관리하다보면 무한한 책임감과 함께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차가움은 바로 그 무서움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③국민연금 한승양 팀장(상)
- [edaily] 국민연금은 채권시장의 “큰 손”중에서도 가장 큰 손이다. 국민연금의 채권투자 규모는 23조5000억원. 우리나라 전체 채권시장 규모를 300조원이라고 할 때 7.7%에 달하는 규모다.
국민연금의 위력은 현재보다 미래에 있다. 국민연금 펀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국민연금에서 채권투자를 담당하는 한승양 팀장이다. 그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시절 채권을 알게 된 이후 운용역을 거쳐 채권팀장까지 채권시장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을 쌓은 백전노장이다. 국내 최대의 펀드인 국민연금 채권운용을 맡으면서 시장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투명한 원칙”과 “새로운 투자기법”을 부르짖는 정통 채권맨이다.
국민연금의 존재는 채권시장이 좋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해 채권수익률이 급락, 대부분의 채권펀드가 “이보다 좋을 순 없다”며 호황을 구가할 때 국민연금은 예보채 입찰에도 참여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연금에 들어오는 자금의 성격상 예보채를 투자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만기가 1년인 투신권 펀드에서도 5년짜리 예보채를 겁없이 사들였지만 국민연금은 수익률이 맞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나갔다.
올들어 채권수익률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예보채 입찰이 어려워지자 국민연금이 움직였다. 적정 수익률이 됐다는 생각이 든 것. 국민연금의 “예보채 입찰에 관심이 있다”는 말 한마디에 예보채는 “유찰”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승양 팀장은 “시장에서 은근히 국민연금이 어떤 역할을 해주길 바라지만 연기금이 해야할 일은 따로있다”며 “외국 유수의 연기금 펀드처럼 훌륭한 연기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익성과 투명성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교보증권 채권팀장 자리를 그만두고 98년 국민연금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금운용 담당자를 공채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한 것인데 1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쳤다.
월급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한 팀장은 “펀드다운 펀드를 운용해보겠다”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민간인으로서 준공무원 조직에 들어가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최고의 펀드, 최고의 펀드매니저”라는 꿈을 이뤄가는 재미로 버텨나갔다.
“토요일, 일요일이 가장 힘든 날입니다. 할 일이 없거든요.” 주말 여유시간마저 “일”을 하고 싶어하는 한 팀장의 채권철학을 들어봤다.(인터뷰 하편 기사 하단에 약력참조)
-격동의 80년에 대학에 들어가셨군요
▲제가 좀 늦게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원래는 자연계열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학자이신데 일제시대, 한국전쟁, 군사정권 등 암울한 시절들을 거치시면서 자식들은 정치나 사회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직업을 택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과, 특히 의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 적성과는 상관없이 고2때 이과를 선택하고 서울대 치대에 지원했었습니다.
그러다 “난 도저히 자연계열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문과로 다시 시험을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시험을 봤죠. 그리고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합격한 후 2학년 전공결정 때 국제경제학과를 선택한 겁니다.
격동의 80학번, 자본주의의 최첨단 증권시장에 입문
-80학번이시면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절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렇죠. 그 때 지금 한창 잘 나가시는 유시민씨, 심재철 의원등의 주도 하에 데모도 많이 했어요. 학교입학 후 두 달만에 5.18이 발생해서 10월까지 놀았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으니까요.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있습니까.
▲당시 제가 다니던 국제경제학과(당시 무역학과)는 학교 내에서 데모를 제일 많이 하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운동권 활동을 열성적으로 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 쪽 관련책을 곁눈질해서 많이 보게 됐어요. 지금 부총리이신 한완상 교수, 이영희 교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80년대 대학을 다니신 분이 자본주의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증권시장에 입문한 것이 독특하다면 독특한데요.
▲당시에는 채권이 뭔지도 몰랐어요. 80년대 중반이후 주식시장이 부상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가끔 80년대의 비극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그 때 수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증권회사가 좋다니까 무작정 몰렸습니다. 그 후에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사람도 참 많았거든요.
-증권회사를 택한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은 그곳이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고 또 금융의 증권화가 도래하는 시기였으니까요. 막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시대로 넘어가려는 시대였지만 그때 한국의 직접금융이 너무 초기 단계라서 이 분야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쌍용투자증권 부설 쌍용경제연구소에서 2년 반 정도 근무했습니다.
-애널리스트로 말입니까.
▲네. 그런데 그 때는 애널리스트와 이코노미스트 등에 대해 뚜렷한 개념이 없었어요. 저는 증권연구실에서 금융시장 전반에 관한 연구, 경제분석 같은 업무를 담당했죠.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스트레티지스트였죠. 거기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 2년 반 하다보니 지겹더라구요. 마침 그 무렵 채권에 눈을 떴어요. 이거다 생각하고 연구소장님께 채권팀으로 보내달라고 한달 정도 계속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채권계에 발을 내딛은 겁니다.
”채권시장처럼 가능성이 큰 시장에 몸을 바치고 싶었다”
-채권팀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채권시장은 주식시장과 더불어 자본시장을 이끄는 수레바퀴중 하나이면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큽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에 비하여 너무 낙후되어 있었어요. 미국이나 유럽시장을 보니 채권시장이나 채권매니저들의 위력이 대단하더라구요. 이 낙후된 분야에 몸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럼 교보증권으로 옮기면서 채권을 시작한 겁니까.
▲아닙니다. 쌍용경제연구소에서 쌍용투자증권 채권부로 옮겨 3년 정도 근무했죠. 거기서 참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3개월 정도 미국 월스트리트에 OJT를 다녀왔는데 그걸 계기로 정말 여러 가지를 배웠고 채권시장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하게 됐어요. 채권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회사방침이 근무순환 방침이어서 영업부로 발령이 난 게 계기가 되어 교보로 옮겼고 거기에서 채권팀장을 맡았죠.
-채권시장 경력이 한 11년은 되시는 군요. 듣기로는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운용전문인력을 공채할 때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입사하셨다는데.
▲IMF 외환위기가 막 발생한 직후인 98년 2월에 공고가 났습니다. 그 때는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국민연금에서 기금운용전문가 채용공고를 낸 거죠.
-경쟁률은 어땠습니까? 운용팀장을 뽑는 것이었나요?
▲120명정도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운용팀장이 아니라 매니저, 즉 운용역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채권시장의 2세대로서 진정한 펀드운용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국민연금으로 옮기시면서 월급도 많이 줄었을 텐데. 자리를 옮기신 이유는.
▲급여는 정확히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증권회사에서는 운용의 한계를 느꼈어요. 증권회사에서는 운용이라는 것이 단기 트레이딩이 전부였는데 이게 진정한 의미의 운용은 아니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증권회사 사람들의 꿈은 진정한 운용을 해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처럼 자신의 펀드를 가지고 전략과 포트폴리오를 짜서 운용하는 것 말이죠. 또한가지는 그동안 나름대로 갈고 닦았던 채권관련지식을 공익을 위하여 바치고 싶었어요 .
제가 채권을 시작하기 전에 그 분야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바로 한국 채권시장의 1세대시죠. 저는 2세대쯤 되겠죠. 그 당시 운용은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운용이라고 해야 호가, 매매단가계산, 가격체결 그 정도가 전부여서 단가계산하는 것이 커다란 노하우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단가계산하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죠.
-계산법을 안 가르쳐준다?
▲네. 채권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에 계산프로그램이 생겼죠. 샤프계산기인가? 그 계산기에 수식을 입력해서 마음대로 계산하는 선배들이 정말 부럽더군요.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입니까?
▲80년대 후반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증권시장이 펀더멘털을 중시하지도 않았고, 금리를 예측해서 채권을 사고 판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국고채도 없었고 그나마 회사채가 거래됐지만 대개 발행시장에서 소화된 게 대부분이었어요. 무보증사채도 없어서 회사채종류가 은행보증/기타보증 두 종류만 있어서 발행사의 신용도와 관계없이 호가가 두가지 밖에 없었어요.
은행이나 투신 같은 운용기관은 바이 앤 홀드(buy and hold:만기보유) 전략만 사용했구요. 채권을 매집해서 편입하기만 해놓는 시스템말입니다. 그런 것만 보고 배우다가 미국에 갔더니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대단했죠. 운용툴이 좍 펼쳐져 있고 프로그램이 저절로 움직이는데다 포지션을 가지고 매매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포지션을 가지고 운용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의 트레이딩이라고 하는 기법은 증권회사에서 맨 먼저 도입한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IMF 외환위기이후 채권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시가평가제도입, 인터넷기법의 활용등으로…
-국민연금에 입사하고는 몇 분이서 같이 운용을 했나요.
▲1년간은 저 혼자 했습니다. 그 후 반년간 둘이 하다가 99년 11월에 기금운용본부가 생겨 자산운용조직으로 면모를 갖추었고. 지금은 채권운용팀에 5명이 있습니다.(미들, 백오피스 제외) 상반기중 4-5명을 충원할 계획입니다.
국민연금 입사 초기, 인프라 구축에 주력
-초기 홀로 운용할 때는 지금처럼 딜을 활발하게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 당시에는 채권운용에 배정된 자금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실제 딜보다는 운용관련 인프라 구축에 힘을 많이 쏟았어요. 무보증회사채 매입근거를 마련하고 선진운용기법도 도입하고 그전에는 매입만 있었어요. 제가 운용을 맡으면서 처음 매도를 한 거죠. 결제방식도 개선하고 운용관련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운용을 하게 된 것은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입니다.
- 그 당시 채권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처음에 제가 맡았을 때는 3조5000억이었고 본부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6조5000억이었습니다. 지금이 23조5000억이니까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익성, 안정성, 직접투자의 원칙
-기금운용이 운용본부로 통합되면서 많은 부분이 채권으로 바뀐거군요.
▲본부를 설립하면서 내건 운용방침은 수익성, 안정성이었습니다. 같은 fixed income 이라면 가장 수익이 높고 안정한 방법을 하겠다는 거죠. 그러면 예금을 들 이유가 없습니다. 요즘 국고채 금리가 떨어져서 좀 그렇지만 당시에는 예금과 채권의 금리차가 엄청났어요.
또 우리는 채권의 경우 간접투자는 안하고 직접투자만 합니다. 공사채형 수익증권과 은행금전신탁을 안하는 이유는 시가평가제하에서 시장위험을 무릅쓰면서 굳이 수수료를 줘가면서까지 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이건 저희 뿐 아니라 캘퍼스(CalPERS) 같은 해외유명 팬션(연금)펀드들이 동일합니다.
사족이지만 지난 2년간 국민연금의 채권운용수익률이 국내에서 제일 높습니다. 부실채권도 전혀 없구요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국고채 55%, 회사채 45%” 우량 ABS에 투자
-채권운용규모가 23조나 되는데 그 포트폴리오가 어떤지 좀 알려주시죠
▲절대치로 봐서 현재의 23조는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닙니다. 보험료수입과 운용수익이 급증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되던 자금이 없어져 국민연금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돼 있어요. 국민연금의 성격상 그중 상당부분은 채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고 현재는 국공채에 55%를, 회사채에 45%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회사채중 절반이상이 우량ABS이구요.
-회사채의 투자등급은 어디까지입니까?
▲실질적으로 A등급이상에만 투자합니다. 규정상으로는 BBB등급에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 내부기금운용규정에 의하면 예외투자로 투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사장님의 승인을 받으면 BBB등급 회사채 투자가 가능합니다. 저희가 보수적으로 A급 이상에만 투자한 결과 부실채권이 전혀 없게 된거죠
“가장 중요한 투자전략은 저평가 채권을 발굴하고 고평가 채권을 매도하는 것”
-그런 거대규모의 자금을 움직이면서 생각하신 큰 밑그림은 뭡니까.
▲기본적인 운용방침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용수익을 올리는 겁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원칙은 디폴트 프리(default free)이구요. 그 원칙 하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짜서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죠. 그 중 가장 중요한 전략은 저평가채권을 발굴하여 매입하고 고평가채권을 매도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다른 금융기관의 운용전략과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단순한 의미의 딜링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는 금리의 변동에 따른 단기트레이딩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터닝포인트에는 과감히 매매도 합니다. 지난 2월의 금리 급락기에는 많이 팔았어요.
ABS 6조원 보유, 수익성 측면에서 주목하는 채권
-국민연금에서 주목하고 있는 채권은 어떤 것인가요?
▲저희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채권은 ABS 입니다. 우리나라 채권 중 ABS가 안정성과 수익성이 가장 높아요. 하지만 유동성이 낮아서 거래가 잘 안되니까 그동안 우리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죠. 기금의 성격상 장기보유전략을 지향하는 국민연금으로서는 ABS가 가장 좋은 상품이지요.
기억에 남는 게 99년말부터 우리나라 시장에서 ABS가 본격적으로 발행되면서 여러분들을 설득하여 99년 12월에 규정을 바꾸고 그달에 처음으로 5000억을 투자한 것입니다. 초기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과 낮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약 6조원 정도의 ABS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①오석태 씨티은행 부장(상)
- [edaily] 채권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최근 금리가 급등하면서 정책당국자들은 서둘러 시장을 안정시키기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는 주식시장이나 외환위기를 통해 상식이 풍부해진 외환시장과 달리 채권시장은 아직도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우리나라 채권시장은 전체규모가 300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채권시장은 한 나라의 경제지표중 가장 중요한 금리를 결정한다. 이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 기관에서 특별히(?) 훈련받은 정예 요원들이다.
edaily는 “300조를 움직이는” 채권시장의 중요 인물들을 찾아 거래경험과 철학, 운용중 겪었던 재미있는 경험 등을 들어보는 연속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으로는 지난해말과 올해초 “경기경착륙”과 “V자형 회복”을 가장 먼저 주장,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씨티은행의 오석태 부장이다.(약력은 기사하단 참조)
오 부장은 채권시장에 몇 안되는 전문 이코노미스트로서 서울대 경제학과을 수석으로 입학하고 하바드에서 수학한 “수재형”경제분석가중 한명이다. 그는 통상적인 애널리스트들과 달리 단순한 경제전망에 그치지않고 경제현상과 경제정책에 대해 주관적이고 직설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채권 이코노미스트로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또 다른 희망이 있습니까.
▲이코노미스트를 70세까지 하는 것입니다.
-직업인으로서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라..일종의 비전 같은 것을 여쭤본 것인데요.
▲새로운 비전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평일날은 일에 치여서 살고 있고 게다가 요즘엔 아침에 헬스클럽 다닌답시고 6시에 집에서 나와요. 그게 일과입니다. 어차피 이코노미스트라는 게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이 일을 오래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전에 어디 기관에서 세미나를 하고 오셨다면서요. 그 얘기좀 해주시죠.
▲우리 경제 상황이나 현장 분위기가 미국에 의해 이끌려가는게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한 구조조정은 미국에서 독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선언을 하려니까 산업생산지수도 안 좋게 나오고 미국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도 많이 안 좋다는게 문제입니다.
지금 방향 제시를 해주어야 하는데 V자 모양이 확실한 것도 아니니 6개월 후에 금리가 4.5%다 뭐다 하는 게 무슨 필요가 있겠나 싶습니다. 전 6개월이나 12개월 전망 따위는 믿지도 않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6개월 후의 전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중요한 건 지금 당장의 방향이 뭐냐하는 것이지요. 과감하게 말하자면 "한국경제는 올해 하반기에도 반등없다" 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됩니다. 왜냐하면 확인이 안 되니까요.
"V자 회복은 전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V자 회복에 대해서는 전망이 아니라 일종의 희망사항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지금 문제는 한국경제가 아니라 미국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쓰러지면 한국은 없습니다. 미국이 어떻게 되느냐가 지금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입니다.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초과성장을 이끌어 온 건 결국은 IT산업입니다. 그런데 이게 흔들리고 있어요. IT가 무너지면 전 세계경제는 없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어떤 부분이 취약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금융시장이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목 매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취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스닥이 하루에 4-5%씩 내렸다 올랐다 하는데 이건 정상이 아니거든요. 한국은 주가가 1월에 많이 올랐을 때도 "이걸로는 안된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인데 미국은 이나마도 없지 않습니까.
-시티그룹의 미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지 않습니까.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긴 합니다. 처음에는 시티도 부정적으로 보긴 했는데 그 다음 다른데서도 다 그런 식으로 따라오고...그러니 차마 "미국 경제 올해 내년 별볼일 없다" 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게다가 내가 봐도 미국 사람이 미국 경제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쓰는 것이 상당히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전에 씨티은행이라는 기관이 한국 금융 시장에서 일정한 롤이 정해져있어서 리서치 페이퍼가 제약받는 부분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좋을 수도 있습니다. 내부자가 하나는 있어야 하니까요. 한국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제 위치가 무척 특별합니다. 저는 외국기관에서 일하지만 한국인이고 그래서 “외국기관이 한국을 좋게 본다” 라는 점이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매주 리포트를 쓰셔야하는데요. 부담이 되시죠.
▲쓰다가 쓰다가 안되면 “이번주에 아무것도 없다" 라고 보내면 그만인데 그럴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기자들처럼 다음 리포트를 뭘로 써야할지 늘 고민합니다.(웃음) 사실 생각이야 많지만 그걸 일일이 다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사실 인플레이션, 인구증가율, 자본축적 이미 이 세개 그래프가 꺾였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금리를 끌어내린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채권수익률 급락 이유있다
-지금까지 채권시장이 이유있는 강세장이라는 의미인가요.
▲예. 사실 지금 아무도 작년 올해초 금리가 떨어진 이유를 말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코스닥거품처럼 쉽게 꺼지는 것도 아니고. 금리가 내려갔다는 사실의 70-80%는 (펀더멘털로) 인정을 해줘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연초 랠리는 좀 과하지 않나 싶어요. 미국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만약 2월에도 경제가 안 살아난다면 좀 더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써야합니다.
-리포트를 쓰실 때 여러가지 경제지표를 참고하실 텐데요. 무엇을 주로 보십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지표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숫자의 오류 가능성이 너무 높아요. 일례로 산업생산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이상인데 이것으로 진정한 산업생산을 평가할 수는 없죠. 미국처럼 다양한 데이터를 모두 봅니다. 남들이 잘 안보는 고용지표도 참고하구요. 저는 어떤 지표를 보느냐보다는 그 지표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뜻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애널리스트라는 것이 한쪽이 약하다고 하면 연쇄적으로 약하다고 하는 군중심리 같은 것이 있는데요.
▲그런 묘한 심리가 있습니다. 한 쪽에서 나쁘다고 쓰고 뒤따라서 또 쓰고 그러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마저도 "아닌가" 하고 갸우뚱하게 되고 그래서 상승작용을 일으키죠.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 애널리스트들이 기술주에 대해 누가누가 더 나쁘게 보나 하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성이 생길만도 한데. 그 사람들은 아마 70달러 하던 시스코가 10달러가 돼도 직성이 안 풀린 듯 합니다. 이미 닷컴들은 다 맛이 간 상태고 남아있는 것도 거의 없어서 지금 그 쪽에서는 그런 주식들을 “ex-블루칩” 이라 부릅니다. 예전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애물단지에 불과하다는 의미죠.
물론 IBM, GE 등 진짜 블루칩들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한 때 뉴블루칩이라 불리며 미 경제의 상승을 주도했던 선마이크로시스템즈 같은 기업들의 주가가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아직 PER가 높다는 게 미국의 문제죠.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전망이 수정될 가능성도 있습니까.
▲수정은 언제든지 될 수 있습니다. 원래 V자 회복 전망은 성장률에 기인한건데 비관적 시나리오로 보면 2% 대로 간다는 전망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일부 국내 증권사에서는 성장률이 2.8%까지 내려간다고 강한 어조로 썼지만. 저도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
홍콩에 있는 아시아리서치팀 보스한테 "까짓거 성장률 2%대 라고 쓸까요" 라고 물었더니 "네가 나설 필요 없다. 어차피 안 좋다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적당히 깎아라"라고 하더군요. 나와있는 수치나 싸이클상으로 보면 올해 하반기쯤에는 반등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반기에는 V자 회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쓴 겁니다. 한국에서는 이제까지 V자 회복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보다 경기부양이 우선이다"
-지금까지 써낸 리포트는 제목 등이 무척 강렬해서 마치 주식쪽에 있던 “스티브 마빈”을 연상시킨다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뭐가 그렇게 강렬하죠?(웃음)
-시장이 기억하는 문제작이 2편이나 있지 않습니까. “하드랜딩”과 “V자회복”. 두가지 주제 모두 오부장께서 먼저 언급한 것 아닌가요.
▲앞뒤말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V자 회복이 되려면 하드랜딩이 앞서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하죠. 골이 깊어야 산도 높아지는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지난해말에는 분명 하드랜딩을 이야기하셨는데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걸 안 하면 시장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과 둘째는 정부에게 신경 좀 쓰라는 의미였죠.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 때 정부는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니 뭐니 한다며 거기에만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restructuring”이라는 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왜 그렇죠?
▲restructuring이라는 게 말이 쉽죠. 한 꺼풀만 벗겨서 "대체 restructuring이 뭐냐" 고 물어보면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경제학을 배운 사람인데 경제학 교과서에는 restructuring이라는 단어를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요.
지금 노조는 구조조정 결사반대를 외치고, 정부는 구조조정 해야한다고 난리고, 외국 사람들은 한국은 구조조정이 안 돼서 문제라고 하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그럼 이게 대체 뭐냐는 말이죠. 시티 내부적으로는 restructuring에 대해 경기반등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restructuring이 안돼서 “너희는 꽝이다”라는 건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고 오히려 우리는 경기가 반등했을 때 restructuring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restructuring을 제대로 안 할 바에는 경기부양이라도 하라는 거죠. 근데 그걸 못하니...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식은 곤란하다는 겁니다.
-손놓고 있지만 말고 뭔가 해야한다는 뜻입니까.
▲물론입니다. 사실 경기부양책을 쓰면 국내에서는 체감하기 힘들지 몰라도 외국투자자들은 더 좋아해요. 그 단적인 예가 일본이죠. 자기들이 다 일본주식 사 놨는데 주식 값이 올라야 할 거 아닙니까. 사실 외국인들이 무척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중요한 건 성장이지 구조조정이 아닙니다. 자기가 투자한 돈이 아깝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건 수익성(earnings)인 것 같네요.
▲earning이든 뭐든 무엇보다도 기업경기전망(Business outlook)이 밝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earning도 나오게 되죠. 사람 자르는 식의 구조조정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사람을 많이 자르기도 했고.
심리적인 안정이 중요
-오부장께서 쓰신 “경기부양을 선택하라”는 보고서는 edaily내에서도 논란이 됐습니다. 경기부양이든 구조조정이든 둘 중 하나는 해야하는데 하려면 경기부양을 해야한다는 내용을 보고 씨티가 정부를 도와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그 보고서 이후 정부측에서 만나자는 제의는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웃음) 기본적으로 씨티에서도 현대전자 문제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다 나쁘다, 쓰러진다 말할 때 우리까지 그러면 안된다는 건 있을 수 있죠. 그렇게 하면 완전히 숨 넘어가는 사람에게 칼 꽂는거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씨티에서 정부보다 먼저 현대전자가 괜찮다고 판단한 거죠. 사실상의 경기부양 효과를 일으켜 사람들의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단기적이지만 일조를 했다고 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에요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쏠리는 이유말입니다. 지금 당장의 금리인하가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안정감을 얻고 싶은 심리죠.
-다른 이코노미스트들과 교류가 있습니까.
▲없어요. 저는 제 직업을 청기와장수같다고 생각합니다. 교류할 시간도 없고, 사실 주식시장의 애널들을 보면 서로에 대해서 경쟁심리도 많이 느끼는 것 같은데 그런 건 별로 없어요.
-하바드에서 공부할 때 전공분야는 뭐였습니까.
▲거시경제, 특히 소비 관련을 공부했습니다. 소비가 무엇에 의해서 결정되느냐 같은 주제로. 박사학위를 끝내지는 못했어요.
-유학을 하게 된 동기는 뭐였습니까. 고등학교때부터 대학졸업때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거의없다고 들었는데요.
▲학력고사 수석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에요. 그거 말고는 뭐...원래는 이과쪽을 지망하려했습니다. 아버님이 서울대 법대를 나오셔서 공무원 생활을 하셨는데 공무원 생활이라는게 빤해서 어머니가 힘들어하셨어요.
아버님을 보면서 법대갈 생각은 추호도 안했죠. 공무원은 돈 못 번다는 생각이 뼈속 깊이 박혀 있어서. 나중에 보니까 서울대 법대가 무척 좋은 학교더라구요.(웃음)
자연계로 가려니 아버님이 과학자해서는 한국에서 출세하기 힘들다고 극구 말리시고, 솔직히 지금 철들고 나니까 아버님의 그 말씀이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전공을 결정하려고 보니 남는 건 경제학밖에 없었어요. 요즘에야 젊은 사람들이 생각이 바뀌어서 경영학과도 많이 가지만 우리 때만 해도 문과생들이 택할 수 있는 과는 법대, 그게 싫으면 경제학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학교 졸업하고 보니 뭔가 허전했습니다. 바로 취직하기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처럼 고시 볼 마음도 없고, 그래서 유학을 선택했죠.
"자네는 교수될 것 같지는 않은데"
-대학시절에도 역시 공부를 잘 했다던데 교수님들의 주목도 많이 받았겠어요. 어떤 분들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습니까.
▲정운찬 교수님, 한승수 교수님 등이죠. 뭐 맨날 일등만 한 건 아니었고 성적은 그런대로 잘 나온 편이었어요. 어쨌든 주목을 받고 장도에 오르긴 했는데 한승수 교수님이 악수하면서 그러시더라구요. 그 때 막 비서실장 하시고 주목을 많이 받으시던 때인데 그분이 그러셨어요. "자네는 교수될 것 같지는 않은데...뭔지는 모르지만 무척 재미있는 일 할 것 같구만" 이라고.
-유학생활은 어땠나요?
▲가서 공부를 따라가는 건 사실 어렵지 않았어요. 그러다 중간에 군대 문제가 걸려있어 다시 한국에 들어와 입대했죠. 군대에 갔을 때 사수가 하버드 MBA를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선배가 투자은행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가서 이코노미스트라는 걸 하면 별로 하는 것 없이 돈도 많이 준다고 하더라구요. 가뜩이나 교수는 싫고 뭐 딴 거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그런 것도 있나 싶었죠.
교수만 해야하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일이 생긴거죠. 군대 마치고 돌아갔더니 2년의 공백기간 때문인지 공부가 잘 안됐어요. 논문도 잘 안 써지고. 박사 수료까지는 논문만 남았었는데 이 논문 쓴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게다가 지도교수라는 사람이 "너는 박사하는 것 보다 딴 거 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 고 말하더군요.
그 말은 즉 "너는 여기 적당하지 않으니 딴 데가서 딴 길 알아봐라" 이거죠. 그래서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한국에 들어가고 보자. 연봉 천만원을 받더라도 들어가서 일 하는게 낫지 여기선 폐인되겠다" 라는 생각에 귀국했습니다. 그 때 우연찮게 지금 삼성증권 상무로 계시는 박진회 상무를 만나 씨티은행 입사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게 언제죠
▲96년이죠. 그리고 97년 말에 IMF가 터지면서 이코노미스트로서의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뭐 이코노미스트라는 것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98년부터 현장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실전 경험이 풍부해야
-학위를 목전에 두고 귀국했는데 거기에 대해 일말의 미련이나 후회는 없습니까.
▲없어요. 현장에서 배우는 게 거기서 허송세월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 계통의 사람들 보면 박사학위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어요.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대부분 IMF나 세계은행에서 커리어를 쌓고 돈 벌겠다고 투자은행쪽으로 발길을 돌린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얘기들어보니 IMF나 세계은행도 거의 제2의 재경부나 마찬가지더라구요. 상당히 관료적인 조직이라 연줄이 중요하고 위로 올라가는 거 바늘구멍 뚫기보다 힘들고. 그러니 연봉 몇 십만불 주는 투자은행에 오는 거죠. 박사학위 목전에서 관둔 나같은 사람도 무척 많아요. 따지고 보면 그린스펀도 나랑 똑같은 경우죠. 나중에 뉴욕대에서 박사학위를 주긴 했지만. 우리 리서치 헤드도 박사학위가 없습니다.(웃음) 내가 대학교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면 모르겠는데 그럴 맘도 겨를도 없고...그냥 이거 70세까지 할 생각입니다.
-학문으로서 경제학을 택한 것은 만족하십니까.
▲경제학 이론과 금융시장에서 이코노미스트가 봐야할 것은 전혀 별개입니다. 경제학원론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는 첨단을 달리는 실무 현장에서 결론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죠. 경제는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대학에서 배운 건 오직 그거 하나죠. 저는 정말로 이코노미스트가 연예인이랑 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자산운용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아직은 이코노미스트로 할 일이 남았기에 그런 생각 없습니다. 전혀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닌데. 글쎄...만일 하게 된다면 스트레티지스트 정도? 이렇게 해라 저저렇게 해라 전략을 제시해주고 실무는 밑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그런 방식으로 한다면 모르죠. 내가 직접 한다? 우선 나이가 걸려요. 대부분의 딜러가 30대 초반이 아닙니까. 30대 후반 40대 초반 돼서 오면 누가 받아줄까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내은행에서 일할 생각도 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쪽은 경험이 없어서. 사실 글로벌 리서치조직의 일원으로 있다는 것이 아직 제게는 많은 이득이 됩니다. 배울점도 훨씬 많고. 저를 씨티에 입사하게 만든 박 상무께선 그런 고민 끝에 회사를 옮기셨습니다. 물론 저도 그 분이 삼성증권으로 옮길 때 하셨던 고민을 할 때가 오겠죠.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데이터를 의심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아라"
-다른 이코노미스트들과 자신의 차별점이랄까 장점은 무어라고 보십니까.
▲앞서 말했듯이 숫자를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잘은 모르지만 결과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데이타가 나오면 우선 의심을 해봐야하는데 배운 이론이라던가 과거 경험이라던가 그런데 얽매여서 단순하게 생각한다” 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로서의 한국의 프로페션은 내가 만든다" 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이코노미스트는 무조건 극단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 수없이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이 수많은 리포트를 써내는데 극단적으로 쓰지 않으면 누가 그걸 읽어주겠습니까.
-리포트를 쓰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없나요?
▲인터넷이 발달한 후 이코노미스트들의 리포트를 쉽게 쉽게 받아보는 건 좋은데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부담이 됩니다. 저번에도 이 정도면 조정을 받을 것 같다고 썼더니 딜러가 전화해 "오부장. 그런거 쓸거면 미리 얘기나 해주고 쓰지. 어제 채권 샀는데 어떡하라구" 라고 하더라구요. 그거 말고는 글쎄? 아마 옛날에 쓴 리포트 지금 읽으면 부끄러워서 못 볼겁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 "현대,쌍용 원칙대로 처리"- 김대통령 발언(전문)
- 김대중 대통령은 7일 "아무리 덩치가 큰 기업도 돈을 못 벌면 기업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현대, 쌍용양회도 이런 원칙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또 "이번에 실업자가 5만명 정도가 늘어날 것이지만 정보통신만 20만명의 고용 효과가 있기 때문에 15만명의 일자리가 더 늘어나는 셈"이라면서 "실업문제도 정부가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울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미군이 있어야 한다"면서 "북한의 안전을 지켜주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이며 남북관계가 아무리 잘 돼도 미·북관계가 잘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여수 돌산체육관에서 전남지역인사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청와대 공보수석실이 전했다.
다음은 발언 전문.
▲이기호 경제수석 : 전남 발전계획과 중요 경제 쟁점에 대해 설명하겠다.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렵다. 체감경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구조조정을 철저히 하고 내부에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을 하면 안정성장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외국 전문가의 의견이다.
▲ 대통령 : 존경하는 허경만 지사, 전남 각계인사 여러분, 이렇게 찾아와 만나니 진심으로 감격스럽고 또 오랜만에 와서 감회가 깊은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여수에서 전남 일을 같이 상의하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0년 세계해양박람회가 가장 큰 관심사인데 정부도 유치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
제가 여러분께 한없이 감사드려야겠다. 전남도가 어느 도 못지않게 나를 지지해 마침내 대통령이 돼 이 나라 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세울 수 있었다. 당선은 내가 했지만 여러분이 한 것이다. 여러분의 지지, 투표가 없었던들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외환위기는 아니다. 외환보유고가 35억달러가 975억달러로 바뀌었다. 세계에서 가장 외환을 많이 가진 5개 나라에 들었다. 순채권 국가로 바뀌고 있다. 이제 다시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금 모으기 심정으로 돌아가자. 고유가, 반도체가격 하락, 미국 증시 폭락 등 악재가 있는데 외환위기를 이겨낸 마음이라면 자신을 갖고 이길 수 있다.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시켰다. 최고의 성과는 북한이 50년동안 일관되게 주장하던 미군철수를 철회한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과 얘기할 때 "할 얘기는 다 하자"고 했다. "합의한 것은 하고, 안 된 것은 의견을 나눈 만큼 덕이다"고 했다.
"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 대륙에 붙어있는 위치에서 동북아가 안정이 된다. 미군이 나가면 엄청난 국방비가 든다. 러시아, 중국, 일본 이런 거대한 나라에 싸여 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이 나고 일본에 당했다.
민족의 장래를 위해 미군이 있어야 한다. 미군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몽고, 시베리아, 동북아에서 방대한 이익을 위해서다. 우리와 이해가 맞아 떨어져 있는 것이다. 동구에서 공산주의가 망해도 나토가 있지 않느냐. 유럽은 같은 민주주의고 문화적으로 같은데도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되겠나"라고 했다.
그러니까 김위원장이 내가 남쪽 신문에서 김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봤다. 어쩌면 나 자신과 그렇게 생각이 같으냐.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있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다 됐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통일된 후에 미군이 있으면 동북아가 안정된다. 이것이 우리 이익이다. 이점에서 역시 같은 민족으로서 민족의 운명을 같이 걱정하는구나 생각했다.
한·미·일이 공조하면서 러시아, 중국과 잘 지내지 않느냐. 북한은 왜 못 그러느냐고 말했다. 북한의 안전을 지켜주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이다. 핵무기를 갖고 있고, 국제 금융기관들에 미국이 대주주다. 미국이 OK 안 하면 안 된다. 일본, 유럽도 투자를 못한다. 관계를 개선하라. 생각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를 만나서도 얘기했다. 북한이 미군이 있어도 좋다고 했다. 조명록 차수가 미국 가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에 가고, 미사일 협상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미국과 북한은 상당한 개선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잘 돼야 한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잘 돼도 미·북관계가 잘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도 같이 가야 한다. 이제까지 안보상황에 공조했지만 북한과 관계개선에도 공조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자유롭게 오가며 문화, 체육, 경제교류를 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이 모든 것을 시작했는데 이것도 여러분이 지지하지 않았다면 이뤄내지 못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남북문제에 진정을 갖고 접근한 것은 사형언도를 받아 공부한 때문 아니겠느냐. 무엇보다 기쁜 것은 우리 민족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민족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지역이 무슨 의미냐. 북한 미사일이 부산도 때리고 목포도 때린다.
적화통일도 안되고 흡수통일도 안 된다. 20년이고 30년이고 평화공존하다가 통일을 하자고 했다. 통일은 함께 잘 살자는 것이지, 어느 한쪽을 지배하자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해 두 가지로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하나는 긴장완화, 또 하나는 교류협력(이산가족,경제, 사회문화)이다. 이렇게 가는 것이 자랑스러운 데 그 공은 여러분이 가져야 한다. 그런 정책을 갖고 여러분이 대통령으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제 세계를 다니면서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노벨상이 나왔다고 얼마나 해외 500만 교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나. 그것이 기쁘다. 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다시 한번 감사하다.
ASEM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을 만나니 당신은 그 어려운 세월을 감옥 가고 박해 받고 했는데 어떻게 이겼느냐고 물었다. 하나는 신앙이다.하나는 역사에 대한 믿음이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군 당국자들이 우리와 협력하라, 안 하면 죽이겠다. 대통령만 포기하면 뭐든 시켜주겠다고 할 때 나도 살기만 하면 좋겠다는 유혹도 느꼈다. 그러나 그 유혹을 뿌리친 것은 역사에 대한 믿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의롭게 산 사람은 당대는 성공하지 못해도 역사에서 이긴다. 불의하게 산 사람은 반드시 패자가 된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살아서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까지 받아 다시없는 영광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IMF를 극복했다. 물가도 과거 10%정도 올라간 것이 올해 2.5%정도 올랐다. 피부 체감과 지수물가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수는 지수다. 환율이 안정돼 있다. 동남아가 다 불안한데 그렇다. 금리도 금년 초까지 10%이다가 8%로 떨어졌다.
우리는 무역에서도 금년의 여러 어려운 조건에서도 흑자가 전망된다. 외자유치도 62년부터 32년간 246억달러 투자 유치했는데, 지난 2년반 동안 323억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허경만 지사에게서 전남에도 외국에서 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단계의 체감경기에 문제가 많다. 내외조건이 다 있다. 개혁을 충분히 완성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금년말까지 금융개혁, 내년 2월까지 공공, 노사개혁을 철저히 완수하겠다. 생존, 발전 가망이 있는 기업은 과감히 살려내고, 가망이 없는 기업은 단호히 퇴출할 것이다. 돈 못 버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다. 아무리 덩치가 큰 기업도 돈을 못 벌면 기업이 아니다. 현대, 쌍용양회도 이런 원칙에서 처리할 것이다.
내년부터는 우리 경제가 힘차게 일어설 것이다. 현재 IMF, OECD 등 세계의 권위있는 기관들은 한국경제를 위기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건전하지만 개혁을 서두르는 바람에 철저하지 못할 경우 그때는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외환위기를 극복했는데 다시 4대 개혁을 마무리하겠다.
이번에 실업자가 5만명 정도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만 20만명의 고용 효과가 있다. 15만명의 일자리가 더 늘어나는 셈이다. 실업문제도 정부가 해결해 나갈 것이다.
재래시장도 이제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백화점 등과 어떻게 경쟁할지 생각해야 한다. 과거와 같이 해서는 아무리 정부가 지원해도 소용없다.
노력을 했지만 아직도 지방색을 탈피 못하고 있다. 세계가 하나로 되고 있다. 남북이 결국 하나로 왕래 교류하고, 장차 통일이 될 것이다. 이런 때 국내에서 융합을 못하면 되겠나. 여러분 모두가 상대방이 잘 하면 나도 잘 한다는 생각을 말고 같은 국민으로서, 같은 민족으로서 지역감정에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해결하는데 도와주고, 앞장서 달라.
임기동안 여러분의 성원대로 최선을 다해 나라를 바로 세워 나갈 것이다. 세계의 모범적 민주국가로 만드는데 노력하겠다.
2000년 11월 07일
청와대 공보수석실
- 한컴, "인터넷 오피스 사업 주력하겠다"-인터넷IR
- 한글과컴퓨터 전하진 사장은 6일 향후 한컴의 사업은 인터넷 오피스 사업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전하진 사장은 이날 인터넷을 통해 주주들을 대상으로 가진 IR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제는 PC시대에서 인터넷 시대로 변하고 있는 만큼 전략적으로 인터넷 오피스 사업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사장은 "한컴은 인터넷 오피스 사업의 프론트 엔드 부분을 담당하고 나머지 백엔드 부분은 관련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최적의 비지니스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전사장은 또 "한컴은 인터넷 시대에 맞는 솔루션화를 추진, 이를 판매하는 회사가 되겠다"고 말하고 "주주들이 한컴의 주가하락으로 인해 상당한 재산적 피해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한컴의 장기적인 비전을 이해하고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넷을 통해 진행된 IR에서의 전하진 사장등 임원진들의 일문일답이다.
-3분기 실적이 저조했던 이유는.
▲한컴은 상반기 17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말까지 4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이다. 3분기 실적이 2분기 대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이는 워디안 발표가 늦어졌고, 상당부분의 수요가 정부납품분이었고, 정부의 예산발표가 늦어졌기 때문에 납품도 늦어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연말까지 빠른 시일내에 진행할 것이므로 연말 매출 400억원은 문제없다.
-한글을 계속 개발할 것인가.
▲한글과 같은 제품을 보유한 회사가 없다. 한컴처럼 많은 고객을 확보한 기업도 없다.
MS가 전세계에서 가장 싸게 소프트웨어를 파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이것은 한컴 아래아 한글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기술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워드 프로세서 기능은 분명히 필요하다. 단지 환경변화에 따라 변이될 뿐이다. 이에따라 우리가 인터넷 환경에 따라 인터넷 오피스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의 개발을 통해 여러분에게 편이를 제공하겠다.
-기업에는 MS 오피스 사용 많다. 이 시장 공략은 어떻게할 것인가.
▲MS는 전세계 독점체계 갖추고 있는 회사다. 한컴처럼 자국 업체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다. MS가 아무리 독점적이더라도 다 점유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니치마켓을 공략할 것이다. 기업시장도 PC에서 인터넷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따. 이에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굳이 MS와 싸우면서 나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MS가 못따라가는 점이 인터넷 오피스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
-신프라, 넷피스, 한글 등의 솔루션이 아웃소싱되었다. 한컴의 기술력에 문제 있는 것이 아닌가.
▲한컴은 이미 기술로 승부하는 단계 뛰어넘어 시장을 관리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이는 우리의 연구소 인력만으로 승부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고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객만족을 위해 우리는 아웃소싱이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방송국 시스템과 비교해도 이는 설명된다. 방송국들이 자체 제작에서 프로덕션을 이용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물론 자체 연구소를 통한 핵심 부분의 연구를 계속할 것이지만 제휴 모델을 통해 다른 벤처기업의 판로를 개척해 줄 수도 있다.
-자사주 매입 현황은.
▲자사주 매입을 해달라는 요청 많았다. 그러나 사실 자사주 매입의 역할은 가격조정이 아니다. 이를통해 좋은 환경일때 주가의 꼬임을 막는 역할을 할 뿐이다. 현재 35만주 정도를 매입했다. 단계적으로 내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매입시기를 상의해 가면서 매입해왔으나, 많은 손실을 보아왔다. 태풍이 부는데 우산을 들고 막을 수는 없다. 좋은 시절이 왔을때 힘을 모아 갈 수 있는 내부역량을 모으는 단계다. 따라서 작은 기반을 마련하는 정도의 자사주 매입에 주력하지는 않겠다.
-워디안 출시이후 판매량은.
▲워디안출시가 많이 지연됐다. 10월 9일 런칭됐지만 판매는 8월부터 예약팩 판매로 시작됐다. 4만 5000카피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현재 전달되고 있다. 우리의 주고객의 60% 이상이 공공기관쪽이다. 이부분이 현재 발생되고 있다. 따라서 연말까지의 매출목표는 가능할 것이다. 또 차기버전까지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한컴 주가가 외국인과 기관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한 이유는.
▲민감한 질문이다. 그러나 한컴 주가가 투자자들로부터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99년에 가장 많이 상승한 주식이 한컴이다. 당시 124배 성장했다. 따라서 더 많은 하락이 오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국내 주식시장은 10수년간 상승과 하락을 거듭했다. 상승기에는 외국인(기관)이 견인차 역할을 했고, 하락기 역시 이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현재 외국인 관심 끌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한컴은 작년 10월 이후 주가가 상승세였다. 외국인들의 IR요청 끊임없이 이어졌다. 금년 3월들어 이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현재 없어졌다가 다시 찾고 있다. 이에따라 한컴에도 하루 2-3팀 정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방문하고 있다. 현재 한컴이 닦고 있는 내부적인 역량이 언젠가 반영될 것으로 믿기 때문에 외국인이 찾아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넷피스의 구체적인 계획은.
▲넷피스는 이미 유료화해 현재 연간 2만 5000원의 회비를 내고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 기업의 컨텐츠 유료화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PC방이라는 인터넷 시대의 중요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PC방에 있어서도 컨텐츠 유료화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이에따라 한컴과 가족사들이 전자화폐 활성화 방안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양질의 컨텐츠가 유료로 서비스됨으로써 재투자될 수 이는 선순환 과정을 구축중이다. 넷피스도 지속적으로 11월중으로 넷피와 함께 영어공부할 수 있는 유료 컨텐츠를 제공하는 등 업데이트해 나가겠다.
-자회사 투자 상황에 대해 밝혀 달라.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회사들이 항간에서는 재벌을 흉내낸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벤처기업이란 잘 짜여진 기업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아쉬운 구조다. 따라서 제휴가 필수적이다. 당연히 한컴과 하늘사랑이 합쳐지면 오피스가 커뮤니케이션 환경과 결합, 시너지 효과가 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투자는 "피를 섞는 것"처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한컴이 1대 주주로 있는 곳이 하늘사랑, 네띠앙, 예카 스테이션 등 6개 회사가 있다. 나머지 또한 긴밀한 협력을 위해 작은 투자가 이뤄졌다. 한컴 내 투자기획실이 이러한 투자 및 경영컨설팅을 철저히 하고 있다.
-워디안이 호환이 어렵다는 평가가 있는데
▲공공기관에서 한글97과 호환이 잘 안되는 부분이 아주 작은 부분이다. 엔진이 전혀 다른 제품이므로 약간의 차이는 있다. 이런 부분들은 다음 패치에서 고쳐 나갈 것이므로 안심해달라.
-네띠앙과의 합병을 고려중인가
▲솔직히 말하면 인터넷 분야는 어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우리도 처음 가는 길이고, 잘 알 수 없는 길이다. 네띠앙에 관해서는 합병할지 안할지 내부적으로 상당히 고민중이지만 결론을 쉽게 낼 수가 없다. 필요하다면 할 것이고, 아니면 전략적 파트너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변수가 있다. 단지 1대 주주이므로 합병에 큰 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파트너가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예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해달라.
▲예카 사업은 내부적으로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이 점은 죄송하다. 그러나 e-마켓플레이스를 빨리 만들어야 인터넷 사업을 할 수 있다. 또 고객관리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CRM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필수적이지만 서두르다보니 빨리 제휴를 맺어야 했고, 내부적으로 정리도 잘 되지 않았다. 현재 약 20억 정도 투자해 인프라를 구추했고, 시스템 도입 등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앞으로 구조적인 사업 변화가 일어나면서 점진적으로 이를 추진할 방침이다. 시장이 성숙되지 않고는 매출이 어렵다. 따라서 조금 더 장기적인 계획으로 진행하려 한다.
-메디슨의 지분매각건이나 CB문제 등 현재의 문제점들에 대해
▲대주주(메디슨)의 지분매각건은 결정된 것 없이 공개되는 바람에 놀랐다. 이후 오랜시간 난항을 겪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면서 한컴에 문제가 있느냐고 우려하시는 분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은 우리도 피해자다.
CB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로인해 500억 정도의 자금이 마련됐지만 상당부분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투자를 통한 유가증권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이 주가에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쓰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 이에대해 차환용도로 신규 CB를 발행할 계획도 있다. 사실 한컴은 98년도의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는 못했다. 지금도 후유증을 겪으면서 해결중이다. 상황이 좋지 못해 한글개발도 지난해 4월 넘어서야 재추진했다는 점을 감안해 달라.
-한컴의 마케팅이나 홍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보도자료 배포 건수는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이나 주주들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코스닥의 주가 움직임이라는 것이 과연 기업의 실적과 함께 움직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실적 위주의 움직임이 된다면 이런 점들은 지적받지 않으리라고 본다. 회사의 내재가치에 관심을 가져달라.
-한컴은 유동성 위기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컴 건물 매입은 왜 했는가.
▲현금 유동성은 전혀 문제 없다. 개인투자자의 상당수가 회사의 가치나 비지니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건물매입은 118억에 했다. 현재 건물 개보수중이다. 테헤란로의 임차료가 지난해 비해 무려 2.5배 올랐다. 그러다보니 올해 계약 갱신 시점에서 자금 흐름측면도 고려해야 했고, 따라서 건물을 좋은 값에 산다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모 은행을 통해 8.5%의 자금을 조달, 매입했는데 이는 임차료의 절반 정도의 금액이었다. 또 한컴 가족사들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건물 매입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 이와함께 다른 벤처기업에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개보수중이다.
-현 주가에 대한 한컴의 답변은.
▲현재 주가와 기업가치와의 관계는 거의 없다고 본다. 이는 단지 시장의 상황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주가 예측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주가는 시장 수급과 판세문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기업을 이끌고, 이를 소상히 알리는 것 뿐이다. 이는 주주들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주가 안올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진출 현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중국 진출은 합작을 통한 웹스테이션(PC방 개념의 프랜차이즈 사업)과 한소프트내 독자법인 형태의 "문걸" 판매 두가지로 행해지고 있다. "문걸"은 현재 현지화 작업중이고, 이달 중순부터 중국내 런칭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PC회사중 장성과 번들 계약을 추진중이다. 또 인터넷 쇼핑몰로 유명한 업체와도 계약이 완료됐다. 우선 "문걸" 번들 판매로 인지도를 높일 생각이다.
-예카 사업은 하늘사랑과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
▲예카 엔진 개발은 어려움이 많다. 이에따라 실리콘밸리 회사에 투자, 이에맞는 CRM솔루션을 개발중이다. 이를 하늘사랑에 유료로 제공할 생각이다.
-나스닥에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가. 내년 유무상 증자계획은.
▲한컴의 나스닥 상장설이 금년초부터 나왔다. 내부적으로는 준비중이었고, 준비 자체는 거의 완료되었다. 그러나 나스닥 상장전에 이를 흘려서도 안되고, 주주들에게 알려서도 안되는 규정이 있다. 이에따라 알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준비 끝날 시점에 한국의 주식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따라서 준비는 되어 있지만 현재의 주가 상황에서는 이를 추진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국내 주식시장이 호전되면 적당한 시기에 상장할 수도 있다.
한컴은 97년 이후로 유상증자를 한 적이 없다. 기업의 자금조달은 원활한 현금흐름을 위한 것이다. 그동안 98년 이후 외자조달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제는 자금조달의 필요가 없다. 지금도 해외CB 차환발행 이외에는 유상증자할 이유가 없다. 절대 기업의 자금운용 차원에서 증자할 필요가 없다. 자금압박설은 사실무근이다.
-한컴의 앞으로의 방향은.
▲우리 모두는 디지털 경제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고민중이다. 접대비까지도 모두 공개하는 오픈 경영을 하고 있다. 이같은 공유와 투명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98년의 어려움 이후 2년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땀흘렸다. 하루아침에 이를 매도하지 말아달라. 주가가 빠지든 올라가든 우리는 연연하지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디지털 경제의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주주여러분께서우리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평가해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