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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줌인]암세포 발견하면 스위치 'ON'..국내 연구진, 나노 MRI 램프 개발
-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유방암이나 대장암은 물론이고 동맥경화, 알츠하이머 등의 병든 세포 만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 ‘나노 MRI(자기공명영상장치) 램프’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별도의 조직검사 없이도 체내 질병인자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게 된다.기초과학연구원(IBS) 천진우 나노의학연구단장 연구팀은 자기공명튜너(MRET; 엠레트) 현상을 세계 최초로 발견, 질병을 선택적으로 찾아내 강한 MRI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나노 MRI 램프’를 개발했다고 6일 밝혔다. MRET는 두 개의 자성물질이 어느 정도 근접한지에 따라 MRI 신호 강도가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 MRI 램프는 MRET를 기반으로 작동하는데, 자성나노입자와 상자성물질을 끈 같은 형태의 생체인자 인식물질이 연결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램프가 질병인자 같은 특정 단백질과 결합하면 자성나노입자와 상자성물질 사이의 생체인자 인식물질이 일정 길이 이상으로 길어지거나 끊겨 램프가 켜지는 원리다.나노 MRI 램프 구성요소. IBS 제공현재 상용화된 MRI 조영제는 이미 자성물질이 켜져 있는 상태로 몸 안에 주입되기 때문에 주변 조직과 병든 조직의 명확한 구분이 어려웠다. PET/CT(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의 경우는 기존 MRI보다 민감성이 뛰어나지만, 해상도가 많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노 MRI 램프는 특정 질병과 연관된 생체 인자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10배 더 밝게 병든 조직 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나노 MRI 램프를 암 진단에 적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서 나노 MRI 램프가 암전이 인자 ‘MMP-2’와 결합하자 자성나노입자와 상자성물질 사이의 생체인자 인식물질이 끊겼고, MRI 신호가 켜지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나노 몰(nM) 농도 이하 극미량의 MMP-2를 선택적으로 검출하고, 암에 걸린 동물 모델의 암 부위에서만 강한 MRI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천 단장은 “기존 MRI 조영제가 밝은 대낮에 램프를 켜는 것이라면, 나노 MRI 램프는 밤에 램프를 하나 켜는 것과 같다”며 “MRI 조영 진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나노 MRI 램프(좌측)와 기존 MRI 조영제 차별성 비교. IBS 제공연구팀이 개발한 나노 MRI 램프는 생체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염기서열의 유전자나 펩타이드, 효소, 화학분자, 단백질, 금속, 산도(pH) 등의 생체인자 인식 물질만 바꿔주면 다방면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생검(biopsy)과 같은 침습적 조직검사 없이도 암 관련 질병인자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연구팀은 나노 MRI 램프가 임상에서 사용 가능한 산화철 나노입자와 가돌리늄(MRI 조영제)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향후 임상 적용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나노 MRI 램프가 개발 초기 단계인 만큼, 체내에 주입되었을 때의 흡수나 분포, 대사, 배출 등 약동학과 안전성 테스트 등의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아울러 연구팀은 생체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하게 일어나는 만큼 동시에 여러가지를 관찰할 수 있는 후속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천 단장은 “나노 MRI 램프는 원리가 간단하면서 높은 정확도와 민감도를 나타내 더욱 정밀하고 정확한 진단을 가능하게 한다. 분자 수준에서 관찰하고 진단하는 영상진단의 신개념을 제시한 것”이라고 자평했다.IBS 나노의학연구단 연구진. (왼쪽부터) 천진우 단장, 김수진 제1저자, 신태현 참여저자. IBS 제공
- 서울호서전문학교 애완동물학과, 정시추가 진학 설명회 개최
- 사진-서울호서전문학교[이데일리 e뉴스 김민정 기자] 서울호서전문학교 애완동물학과가 오는 18일 파주 캠퍼스 및 곤충과학관에서 애완동물 관련 학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고3 졸업예정자 학생 또는 N수생을 대상으로 2017학년도 마지막 정시추가 진학체험 설명회를 무료로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이번 애완동물 진학체험 설명회는 서울호서 파주캠퍼스 실습장에서 개최되며 어질리티, 프리스비(원반 던지기), 복종훈련, 클리커 훈련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참가 신청은 해당학교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며 선착순 50명에 한해서만 참여 가능하다.현재 서울호서전문학교는 전문학교 중 최초로 애완동물 관련 전공을 개설한 학교로 시설과 규모, 등 지원 시스템이 활성화 되어 있다. 9개 전공으로 구성된 이 학교 애완동물계열은 서울캠퍼스와 파주캠퍼스에서 동시에 수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파주캠퍼스 내 곤충과학관은 교육 기관 중 국내 최대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각 과정별로 전문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학교 관계자는 “서울캠퍼스와 파주캠퍼스에 곤충박물관을 비롯해, 동물매개치료센터, 특수동물사육장 및 동물사육장, 실험동물실, 애견훈련장, 애견미용실습장 등등 각 전문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각 전공별로 동아리가 모두 운영되고 있어, 다른 전공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동아리를 통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한편 서울호서전문학교는 100% 면접 선발로만 2017학년도 신입생 모집 중에 있다.
- '대장 속 세포 재생물질' 지나친 상호작용이 '대장암' 유발
-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세포를 재생시키는 역할을 하는 대장 내 물질들이 상호 작용이 지나치면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대장암 발생률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다른 암에 비해 효과적인 치료제가 적은 상황에서, 이번 연구로 새로운 대장암 발병 기전이 규명돼 차세대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명승재 교수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임대식 교수 공동 연구팀은 인체 내 세포를 재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생리활성물질 PGE2와 유전자 YAP1이 대장 내에서 지나치게 상호작용해 과하게 발현될 경우 대장 용종과 대장암세포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이번 연구는 소화기질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지인 ‘가스트로엔테롤로지’에 최근 실렸다. 일반적으로 PGE2라는 물질은 세포를 재생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항염증제인 아스피린이 PGE2의 발현을 억제해 대장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또한 세포 재생 유전자인 YAP1이 대장암 환자 3명 중 약 1명에게서 발견된다는 통계 연구 결과도 최근 발표되는 등 PGE2와 YAP1이 각각 대장암 발병에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존재했다. 하지만 PGE2와 YAP1이 정확하게 어떤 기전을 통해 대장암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이에 연구팀은 두 물질과 관련된 명확한 대장암 발병 기전을 밝히기 위해, PGE2와 YAP1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 가능성에 주목해 두 물질 사이의 연결고리를 규명했다.연구팀은 쥐의 유전자를 변형해 PGE2를 증가시킨 경우, YAP1이 약 1.5∼2.5배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대장 염증을 일으키는 약물을 쥐에 주입한 후 PGE2의 활동을 줄이기 위해 항염증제를 사용한 결과, YAP1 유전자의 활동이 약 40% 줄어드는 것도 발견했다. 반대로 YAP1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증가시킨 쥐의 대장에서는 PGE2가 정상 쥐보다 약 2.5배 증가하는 것이 발견됐고, 유전자를 조작해 YAP1을 없앤 경우 PGE2를 생성하는 유전자 발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이를 통해 PGE2와 YAP1은 한 물질이 증가하면 다른 물질도 증가하고, 한 물질이 감소하면 다른 물질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두 물질의 상호작용이 대장암과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동물 모델에서 두 물질이 지나친 상호작용으로 과하게 발현되도록 쥐의 유전자를 조작한 결과, 12∼16주 만에 대장 용종이 생겼고 24주 내에는 대장암세포가 발생했다.반면 유전자를 조작해 YAP1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항염증제를 사용해 PGE2의 활동을 억제해 두 물질이 상호작용하지 못하게 한 경우에는 24주 이내에 암세포가 발생하지 않았다.추가적으로 연구팀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대장암 환자 77명의 조직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PGE2와 YAP1이 지나치게 상호작용해 과발현된 것으로 나타나 동물 실험 결과를 뒷받침했다.명승재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를 재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PGE2와 YAP1이 지나치게 상호작용해 과발현됐을 때 대장암세포가 발생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연구로, 효과적인 대장암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밝혔다.그는 또 “지금까지 PGE2를 억제하는 항염증제가 대장암 항암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왔었지만 심혈관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하지만 새로운 발병 기전으로 두 물질의 상호작용을 끊을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된다면 부작용 없이 대장암을 억제할 수 있는 신약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IR라운지]동아ST, 글로벌 잭팟 성큼 다가서다
-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지난 연말 동아에스티는 세상에서 가장 기쁜 종무식을 맞았다. 후보물질 단계에 불과한 초기 신약 기술을 6000억원이 넘는 돈에 팔았기 때문이다. 동아에스티는 지난해 두 건의 굵직한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며 기업분할로 그동안 빼앗겼던 ‘연구·개발(R&D) 강자’의 자리를 다시 차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초기 단계 후보물질 6000억원 대에 기술수출지난달 28일 동아에스티는 미국계 제약사인 애브비와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DA-4501’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암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정상적인 면역시스템을 억제하는 MerTK라는 단백질을 분비하는데, DA-4501은 MerTK 단백질을 억제해 면역시스템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약이다. 이번 계약의 전체 규모는 계약금과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를 합쳐 5억2500만 달러(약 6250억원)로, 두 회사는 공동으로 전임상시험을 진행하게 된다. 전임상 완료 후 글로벌 임상시험과 허가는 애브비가 담당한다.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나 상용화되면 한국의 독점권은 동아에스티가,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판매권은 애브비가 각각 갖게 되며 동아에스티는 제품 판매에 따른 10%의 로열티를 받게 된다.최근 한미약품과 유한양행의 기술수출계약이 파기되면서 동아에스티의 기술수출에 대해서도 ‘실현이 불확실한 마일스톤이 대부분이니 미리 김칫국 마실 필요가 없다’, ‘동물실험도 시작하지 않은 단계인데 언제 상용화되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해마다 두자릿 수의 매출 증가율로 세계 10위의 제약사로 자리잡은 면역질환 전문 회사가 한 번도 항암제를 개발해 본 적이 없는 제약사가 만든 물질 탐색이라는 초기 단계에, 그것도 먼저 접촉을 해서 입도선매했다는 것은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MerTK 억제제의 기술수출 발표로 시장은 동아에스티의 실적 턴어라운드를 예측하고 있다. 2016년 3분기 동아에스티의 영업이익은 17억원, 영업이익률 1.2%에 불과해 2013년 기업 분할 이후의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 기술수출로 시장의 우려를 단번에 씻게 됐다. 시장에서는 동아에스티의 4분기 실적을 매출 1400억원대, 영업이익 50억원 대로 예상했지만 계약 발표 이후 각 증권사의 예상은 1500억원대 매출에 영업이익은 170억원대로 수직상승했다.◇자체 개발한 당뇨병 신약 美서 지방간 치료제로 연구 중동아에스티는 지난해 4월 국산신약 26호 ‘슈가논’을 미국 중소 바이오제약사 토비라社에 6150만 달러(약 686억원)에 기술수출했다. 이 약은 우리나라에서 당뇨병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인슐린 분비를 늘리면서도 신장에 미치는 영향이나 약물상호작용이 적어 신장기능이 떨어진 환자나 고혈압·고지혈증 등 동반질환이 있는 환자가 안심하고 쓸 수 있다.토비라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슈가논은 동물실험에서 혈당치 감소 뿐만 아니라 간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는 부수적인 효과가 나왔다. 토비라는 자체 개발 중인 지방간치료제와 슈가논을 함께 쓰면 비알코올성지방간 치료에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이 약의 개발권을 사들였다. 슈가논은 개발 단계부터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약이다. 전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가 많고 당뇨병치료제 중 가장 많이 쓰는 DPP4억제제 계열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브라질,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슈가논이 기술수출된 나라가 57개국에 이른다.◇R&D 집중…국내 최다 신약 보유 역량2013년 이전까지 동아제약은 국내 최대 제약사로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 27개 중 가장 많은 4개를 개발했을 정도로 연구개발(R&D)에 강점을 가진 회사였다. 동아에스티가 지난해 체결한 기술수출이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미래가치라면 항생제인 시벡스트로는 글로벌 잭팟에 성큼 다가섰다는 평가를 듣는 약이다. ‘인류 최후의 항생제’를 목표로 1996년부터 연구가 시작된 시벡스트로는 지난해 국산 신약 24(알약)·25호(주사제)로 승인받았다. 이 약은 2007년 미국 트리어스社에 1720만 달러(약 192억원)에 기술이전됐다. 이후 진행된 글로벌 임상시험을 거쳐 시벡스트로는 피부감염증 치료제로 2014년 미 식품의약국(FDA), 올해 초 유럽 인증을 받았고 현재 폐렴 치료제로 쓰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시벡스트로의 글로벌 판권을 가지고 있는 MSD는 “경쟁약 대비 항균효과가 우수하고 약을 쓰는 기간도 짧아 글로벌 무대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세계 항생제 시장 규모는 13억 달러(약 1조4000억원) 정도 되는데, MSD는 시벡스트로가 기존 시장의 절반 정도는 충분히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판매액의 5~7%를 로열티로 받게 되는 계약조건에 따라 동아ST는 매년 300억~400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될 전망이다.2013년 동아제약은 일반의약품 중심의 동아제약, 전문의약품중심의 동아에스티,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 등으로 분할됐다. 동아에스티는 기업 분리 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금액은 줄어들었지만 비중은 기업분할 후 매출의 10% 이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민장성 사장은 “전체 R&D 인련 300여 명 중 상당수가 10년 이상 신약 R&D에 매달리고 있다”며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시적인 성과가 지속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리뷰] 유리 상자에 갇힌 ‘한낱’ 인간들, 연극 ‘인간’
- 유리 상자에 갇힌 남녀. 거기엔 지급되는 먹이와 물이 있고, 운동을 위한 쳇바퀴가 있다. 생존 조건은 충분하지만 갇힌 채 사육되는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이 난다. 연극 ‘인간’은 첫 시작부터 거대한 유리상자 안에 주인공 남녀를 가둠으로써, 인간은 존엄해야 한다는 인식에 칼끝을 겨눈다. 객석 위에서 내려다본 그들은 흡사 사육장의 토끼 같기도,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나 꾸물대는 벌레 같기도 하다. 허세와 권위가 벗겨지고 권능과 자본을 약탈당한 존재, ‘한낱’ 인간의 모습이다. 그 동안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며 자연 위에 군림해 온 인류 문명을 반성적 시각에서 비판한 소설과 영화들은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 신과 우주를 향한 독특한 세계관과 기발한 상상력이 주목받아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연극 ‘인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유일한 희곡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2010년 충무아트홀에서 초연한 바 있다. 이번 공연은 6년 만에 문삼화 연출의 손을 거쳐 한국 상황과 정서에 맞게 원작이 일부 각색됐다. 인간 이성을 파괴하는 새 질서, ‘인간 길들이기’ 라울은 화장품 회사에서 동물 실험으로 인체안전성을 연구해 온 과학자다. 그는 거대한 유리상자에 갇힌 현재의 상황을 이성적 논리와 지성을 동원해 최대한 이해하려 한다. 결국 자신이 시청자들에게 생중계되는 서바이벌 생존 프로그램의 출연자일 것이라 판단 내린 라울. 함께 갇힌 서커스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 또한 그의 말에 따라 대중을 향한 우스꽝스러운 자기 어필을 시도한다. 화려한 스타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만타의 유쾌한 꿈은 바닥을 흐르는 전기 충격과 함께 산산이 깨진다. 누군가에 의해 원치 않는 모습에는 가학이, 원하는 모습에는 먹이와 부상이 주어지는 유리 상자 속 질서는 갇힌 인간을 철저히 길들여간다. 남녀는 생존을 위해 인간의 이성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필사적으로 습득한다. 먹이를 얻기 위해 사이좋은 척 연기를 하거나, 가까스로 얻은 식량을 두고 먹이 다툼을 벌인다. 지구에서 동물을 학대해 온 두 남녀가 지구 밖에서 외계인의 가학적 취미 대상이 된다는 설정. 여기에는 그간 반전 질서를 구축해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해 온 작가 특유의 시선이 잘 녹아 있다. ‘인간’에 의한 ‘인류 재판’, 그 모순의 무딘 칼날 연극 ‘인간’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인류라는 종족의 보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인류 재판’ 장면에서 가장 또렷이 드러난다. 라울과 사만다는 스스로 변호사와 검사, 증인과 판사가 되어가며 인류의 죄악을 폭로하거나, 그 존속 가치를 열변한다. 라울은 지구가 이렇게 파괴된 것이 인류의 책임이라 지적하며 폭력과 침략의 인류 역사, 인간의 악랄한 범죄 행태를 그 근거로 삼는다. 한편, 사만타는 인류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정의의 편에 서고자 했던 선한 인물들을 예로 들어 인류가 시행착오를 거쳐 성장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또한, 인간이 추구하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타인을 사랑하며 유머를 나눌 줄 아는 고차원적인 특성을 통해 인류의 보존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인간’에 의한 ‘인류 재판’이라는 점은 그 자체로 모순을 가진다. 용의자가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심판할 수 없기에 애초에 그들의 논쟁 또한 무의미하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의 목에 겨누는 이 무딘 칼날이야말로 인간성(humanity)에 대한 관용과 애정을 끝까지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식을 보여준다. 라울과 사만타가 논쟁 끝에 “감히 우리가 같은 종족을 심판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인간만이 가진 차별적인 특성을 발견한다. 결국 인간은 이렇듯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깊이 성찰하며,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 ‘반성적 존재’라는 것이다. 미래적인 아담과 이브가 펼치는 2인극의 묘미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2인극의 묘미를 잘 살린 전개를 보여준다. 무대의 별다른 전환 없이도 처음 보는 남녀가 알 수 없는 한 공간에 갑자기 갇히게 되었다는 설정 자체가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흰 가운을 걸친 남자와, 화려하고 파격적인 의상의 여자는 등장부터 그들의 정체에 주목하게 만든다. 그들이 서로의 수상한 정체를 탐색해나가는 동시에 관객 역시 그들의 정체를 하나둘씩 파악하게 된다. 갇힌 상황에 대한 그들의 엉뚱한 추리 역시 그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 관객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라울과 사만타는 최후의 인류이자 또 다른 인류 문명의 시작을 여는 유일무이한 남녀라는 점에서 성서 속 아담과 이브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한 남과 여의 이끌림이 아닌, 서로에 대한 철저한 비난과 폭로로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은 태초의 순수한 아담과 이브와는 대조적이다. 그들은 다른 동물을 희생시켜 인류 생존에 기여해 온 과학자(라울)나 다른 동물을 길들여 인간의 유희로 삼은 동물조련사(사만타)로 살아왔다는 정체성을 근거로 서로를 비난하고, 스스로의 치부를 까발린다. 계속되는 그들의 치열한 탐색과 논쟁이야말로 극 전개의 동력인 동시에, 관객에게 인간에 대한 풍자적 메시지를 날카롭게 감지하게 하는 장치로써 기능한다. 감시하는 객석, 가학적이거나 이입하는 이중 시선 연극 ‘인간’의 객석은 무대의 양방향에서 무대를 둘러싸는 듯한 형태를 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이 자연스레 노골적인 감시자의 그것이 되게끔 한다. 갇힌 두 사람이 객석을 향해 유리벽을 두드려대며 절박한 얼굴을 할 때마다 관객은 그들을 가둔 가해자의 시선을 함께 체험한다. 마치 자신의 아바타가 발버둥 치는 것을 조종석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기묘한 체험이다. 극의 초반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아닐 때 지켜보는 감각은 다소 유쾌하다. 그러나 나 또한 미래에 그들의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현실감이 점차 다가올 때 그들의 불안은 객석에까지 확장 전이된다. 인간이 핵무기로 지구를 폭발시켜 자멸한다는 것, 최후에 살아남은 인류가 외계인의 한낱 애완용 가축으로 사육당한다는 설정은 그다지 신선한 반전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극단적인 설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류에 대한 그간의 오만한 착시들을 깨끗이 닦아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파슈미르 분쟁이라는 실제 사건에 근거한 보도 영상 역시 생생한 현실감으로 객석의 웃음기를 지운다. 최후의 인류가 쳇바퀴나 돌리며 먹이를 구걸해야 하는 처지라니. 그 가차 없는 대우에도 어느덧 객석은 웃을 수가 없게 된다. 연극 ‘인간’은 그간 당연하게 여겨 온 ‘군림하는 인간’의 지위를 철저히 나약한 ‘사육당하는 존재’로 역전시킴으로써 인류의 본질과 존재 이유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물론 날카로운 질문에 비해 ‘인간이 결국 반성적인 존재이기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무른 결론은 끝내 인류의 이기적 자기애를 놓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가 사라진 이후 살아남은 최후의 인류를 개성적인 남녀 캐릭터로 재현했다는 점, 외계 존재가 인간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려 한 점은 충분히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오만은 늘 파멸 직전에 찾아온다’는 스위스 철학자 카를 힐티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오만함이 불러올 끔찍한 미래를 마치 시뮬레이션해 보여주는 듯한 이 작품을 우리는 진정성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극의 마지막에서 라울과 사만타가 “대를 이어 인류를 구하자”, “우리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잘 해낼 것”이라고 말하는 막연한 낙관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관객은 그 안에서 충분히 뼈아픈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진출처_(주)그룹에이트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