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광폭 행보’…3월 주총 앞둔 재계 '촉각'

3월 주총 앞두고…"배당 확 늘리고 이사진 교체" 요구 봇물
'표 대결'에 긴장…재계 "사실상 헤지펀드, 방어장치 절실"
행동주의 펀드 공세 1~2년 뒤 기업들 R&D·설비·고용 급감
재계 "단기 주가부양만 집중해…기업 미래 성장동력 상실"
  • 등록 2023-02-20 오전 6:00:00

    수정 2023-02-20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준기 김응열 이다원 이은정 기자] “결국 행동주의 펀드가 활동할 여지를 주지 않도록 경영을 잘하는 게 답이 아닐까요.”(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요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한 K팝 대표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사태 등에서 봤듯, 거침없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광폭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여기에 목소리가 커진 소액주주들 움직임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강화 우려까지 겹치며 올해 주총장은 배당 확대, 이사·감사 선임, 경영진 교체 등의 주주제안을 놓고 뜨거운 표 대결의 장이 될 공산이 커졌다. 재계는 행동주의 펀드가 중장기적으로 경영권 침해 시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 제도·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 방어장치 구축이 절실하다고 본다. 다만,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순기능도 분명히 작용하는 만큼 제대로 된 경영과 더불어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주주환원 정책·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강화 등 선제적·자체적 정화작업을 통해 빈틈을 주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경영권 방어용 지출→잉여현금 감소 ‘부작용’

19일 재계에 따르면 SM엔터테인먼트 이사회에 진입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최근 국내 7대 금융지주에 주주환원 정책 도입을 요구했다. 태광산업(003240) 지분을 보유한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에 △배당성향 20% 이상으로 상향 △자신들이 추천하는 조인식 전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CIO) 직무대리를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로 선임 △액면분할 등을 제시했다. 플래시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은 KT&G(033780)에 한국인삼공사(KGC) 분리상장과 함께 자신들이 추천하는 인물의 사외이사 선임 등을 제안했다.

물론 쥐꼬리 배당(7대 금융지주), 후진적 지배구조(SM), 계열사 편법지원(태광) 느슨한 내부통제(오스템임플란트) 등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대상이 된 이들 기업은 스스로 화를 부른 측면이 크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대로 경영이 작동하는 기업은 행동주의 펀드 관련 리스크가 없다”며 “누가 공격을 하겠나”라고 했다.

그러나 재계 안팎에선 행동주의 펀드의 주장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할 경우 장기적 연구·개발(R&D) 등 투자와 고용이 줄어 기업의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2015년 초 미국 행동주의 펀드 서드 포인트는 일본의 산업용 로봇 제조기업 화낙에 배당확대와 자사주 매입, 사외이사 진출 등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한 적이 있다. 서드 포인트의 경영 개입 전만 해도 화낙은 매년 40%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1조엔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화낙은 서드 포인트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5년간 이익의 최대 80%를 주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주환원에 치우친 나머지 화낙의 잉여현금흐름은 2015년 3분기 2억5600만달러에서 이듬해 3분기 7700만달러로 급감했고, R&D 투자 위축 우려도 커졌다.

국내에선 ‘SK 소버린 경영권 분쟁’ 사태가 행동주의 펀드의 대표 사례 중 하나다. 2003년 모나코 기반 소버린자산운용이 SK(034730) 주식을 대량 매입하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사회 사퇴를 요구했다. 소버린은 투자금의 약 4배 가까운 수익을 얻어 떠났고 SK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 등에 1조원 가까이 지출했다.

상법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행동주의 펀드의 주된 요구 중 하나는 배당 확대인데, 배당이 늘면 기업 현금이 줄어든다”며 “기술이나 설비 투자 등에 쓸 돈이 줄어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래 산업에 대비하지 못하고 결국 기업가치가 떨어져 중장기적 주주가치도 하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도 “행동주의 펀드로 인해 기업 자율성이 떨어지고, 기업의 성장 동력이나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설비·기술·인적 투자 감소…순익·영업익 하락

부작용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2013·2014년도에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 개입을 시작했다가 마친 해외 기업 48곳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개입은 기업의 성장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설비투자의 경우 행동주의 펀드 경영 개입 전 해당 기업들은 투자가 매년 늘었으나 경영 개입 후에는 감소세가 뚜렷해졌다. 경영 개입 전 해당 기업들의 설비 투자액은 총 392억9000만달러였는데, 경영 개입이 이뤄진 해의 투자액은 383억5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4% 줄어든 것이다. 1년 뒤엔 이보다 23.8% 깎였고, 이듬해에도 전년 대비 21.2% 축소됐다. R&D 투자도 마찬가지였다.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개입 기간에는 한 해의 R&D 투자액이 52억2000만달러였으나 이듬해 41억4000만달러로 20.8% 낮아졌고 그다음 해에도 37억4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9.7% 하락했다.

고용 효과 역시 감소했다. 경영 개입 기간 1년 전 고용인원은 107만7570명으로 전년 대비 5.3% 늘었으나, 경영 개입 기간에는 102만5979명으로 4.8% 줄었고, 이듬해 84만557명까지 적어졌다. 그다음 해 94만976명으로 증가했지만, 경영 개입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는 못했다.

기업 실적도 나빠졌다. 경영 개입 1년 전 기업들의 당기순이익은 150억4000만달러였으나 경영개입 기간 80억9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6.2%가 빠졌다. 1년 뒤에는 13억2000만달러로 83.6% 급락했다. 경영 개입 2~3년 뒤 각각 25억3000만달러, 58억9000만달러로 증가세를 그렸지만,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소액주주+국민연금까지 합세 땐 더 위협 느낄 것”

이처럼 재계 안팎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이름만 바꿨지 과거 ‘헤지펀드’와 다를 바 없다며 결국 그들의 목표는 주가 부양을 통한 단기 시세차익 확보에 불과하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박성록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연구팀장은 “행동주의 펀드는 배당 등 주주환원은 기본이고 이제는 이사회 축출까지 요구한다”며 “기업 입장에선 단기적 주주 환원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만큼 중장기 성장은 취약해질 것”이라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 여기에 국민연금까지 가세하면 기업은 경영권 위협까지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며 “국민연금의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를 다루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총 9명 중 3명이 정치색이 뚜렷한 노동단체 추천인사로 꾸려진 만큼 사회적 여론에 휩쓸릴 공산이 있다”고 했다.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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