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포커스]재벌개혁은 나무일 뿐..숲을 봐야 한다

  • 등록 2012-03-03 오전 9:12:19

    수정 2012-03-03 오전 10:09:56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돌더니 이번엔 우측 깜빡이 켜고 왼쪽으로 돌고 있다."

개방의 상징인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뒤늦게 동반성장 정책을 밀어부친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이 더 이상 `이념`의 시대가 아닌 이상 나라의 경제 정책이 오른쪽으로 돌든, 왼쪽으로 가든 대놓고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방식`과 `절차`가 잘못돼 `배가 산으로 간다`면 큰 일이다.

요즘 재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좌파 정권`이라 불리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이 지금보다 낫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무엇보다 예측이 가능했고, 정부도 권한 밖의 일에 대해서는 기업들에게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달랐다. 지난 2009년 9월 이후 정치권발(發) 통신비 통제 기조를 유지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통신비 몇 백원, 몇 천원 내리려다 재판매·별정 업체들 다 죽인다"는 중소 통신업체들의 비명은 소리없이 묻혔다. 당시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정부는 원가 분석을 통해 국내 요금 수준이 적정한 지 살피고 요금이 내려가는 정책을 써야지 발신자번호표시(CID)같은 부가서비스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대기업 때리기`는 경제를 살리겠다며 `친기업`을 자처했던 현 정부가 중산층으로부터의 인기가 떨어지자 느닷없이 `친서민`으로 돌아서면서부터 시작됐다. 정치적 목적에 의한 즉흥적인 `변신`인 탓에 진정성 측면에서 의심을 받아야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호적인 언론 환경 덕을 톡톡히 봤다. 만약 지금처럼 기름값이나 수수료를 낮춘다며 기업들 모아놓고 인하 압력을 가하는 행위가 지난 정권에서 벌어졌다면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어떤 `욕`을 먹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어쨌든 최근 여야 정치권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꺼내들었다. 재벌개혁이 화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누가 차기 정권을 잡든지 `이번엔 왼쪽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갈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재벌개혁만으로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인 `사회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산업 생태계는 현재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한계에 직면해 있으며,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비중은 지나치게 높다. 날로 심각해지는 `부익부 빈익부` 현상은 우리 사회의 절대 과제인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정부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양극화 해결을 위한 중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나서야 할 때다. 재벌 기업 몇 개 군기잡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2일 오전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13차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동반위 주도 아래 이익공유제의 이름을 바꿔 "협력이익배분제"로 통과시켰지만,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재계는 "협력사와 함께해 나온 결과물을 나누자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나, 정운찬 위원장은 "대기업의 이익에는 협력사로부터 갈취한 부분이 들어가 있으니 이를 나누라는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다. 사진=한대욱 기자

◇개혁대상이 된 재벌…필요조건일 뿐?

재벌 개혁은 양극화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 차는 엄연히 존재한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 실장은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돼 시장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기업패권론은 통계적으로 검증이 안 돼 80년대 이후 지배구조 이슈로 바뀌었다"면서 "그런데 이 마저도 오너 일가가 경영하는 삼성이나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결과를 내놓자 비판을 증명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황 실장은 "양극화 문제 역시 상·하위층의 소득격차가 아닌 하위소득층의 소득증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다른 처방이 내려진다"면서 "그런 점에서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중산층이 약화되고 붕괴되는 것을 모두 재벌 탓으로 돌리긴 무리라는 얘기다.

그는 "대기업에 규제를 강화한다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고 이는 경제성장률 둔화와 과세기반 약화로 이어져 남유럽의 길로 갈 수 있다. 원래의 감세,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업 규제 완화가 능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여실히 증명됐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의 불씨가 남는다.

이재희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 문화확산팀 리더는 "재벌이 과도하게 가져가는 데 대한 규제 조항도 필요하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라면서 "정부와 노동자가 조합주의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으니,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 개혁은 선거 때 구호로 이뤄지기는 쉽지만 이후 정책으로 추진되기엔 현실성이 부족한 면이 많다"면서 "고환율로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쓰던 이 정부가 왜 동반성장을 말하게 됐는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기협력센터에 있던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임무와 지식경제부의 동반성장지수 개발 역할,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적합 업종 선정 등이 동반위로 넘어오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동반위는 지난 2010년 12월 출범이후 정부 의도와 달리 이익공유제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정운찬 동반위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꺼내 들자, 재계 대표격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뭔지 도대체 들어본 적 없는 용어"라고 공개비판하면서, 논쟁이 가열됐다. 최근 `협력이익배분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대기업 합의를 이끌어 내긴 했지만, 재벌의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차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 리더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은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정착해야 하고, 업종별로 생산, 유통, 판매 등 벨류체인별로 구체화돼야 한다"면서 "각종 논란 끝에 이뤄진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 효과가 있었는지, 외국계 대기업에 시장을 내 준 건 없는 지 등도 긴 호흡으로 평가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수부진 타개 위해 소득분배 개선해야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수출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매출과 순익을 올려도 서민의 삶은 그닥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산업연구원은 `한국경제의 장기 내수부진 현상의 원인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국민들의 지갑 사정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총소득(GDI) 성장이 부진하고 특히 가계와 기업 간 소득 성장이 양극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만큼 GDI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 선임연구위원은 "2000년대 들어 국제유가가 장기상승국면으로 전환하면서 교역조건이 크게 악화돼 GDP와 GDI간 성장률 격차가 커졌고, 이게 내수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가계 소득의 양극화는 고스란히 개인 소득의 양극화로 전이됐다. 소득 재분배의 혜택을 받는 대기업 종사자와 혜택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이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진행한 `2011년 가계금융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 3월 기준 소득 1분위 가구(소득이 가장 낮은 20% 가구)의 평균 자산은 1억846만원이었다.

하지만 소득 5분위 가구의 평균 자산은 6억5281만원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 자산 격차는 5억4435만원에 달했다. 특히 1년 전에 비해 1분기 가구의 평균 자산은 2.6% 감소한 반면, 소득 5분위 가구는 3.2% 늘었다.

임금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 사내 임원과 최저임금 근로자의 평균 임금 격차는 87배에 달한다. 연봉 1000만~2000만원 저소득 근로자가 크게 증가하는 동시에 연봉 1억원 이상 고액 봉급자 또한 급증하고 있다. 연봉 1억원 이상 고액 봉급자 수는 2005년 8만3800명이었으나 2008년 19만7000명, 2010년 27만9500명으로 5년새 무려 3배나 늘었다.

소득 양극화 문제는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내수부진의 이유로 가계소득 감소가 원인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수출 위주의 우리 산업 환경에서 글로벌 시장의 침체는 즉각 우리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밖에 없다. `천수답` 식 경제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내수가 살아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산다.

강 위원은 "가계는 생산요소의 공급자인 동시에, 상품의 수요자라는 점에서 내수를 살리려면, 임금소득 등 고용환경에 대한 개선노력을 강화해 가계소득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비정규직 확대를 억제하고, 생산성 수준의 임금 상승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며, 자영소득의 침체를 막기 위해 소상공인, 재래시장에 대한 지원정책을 강화하고 자영업 계층을 위한 사회보장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강 연구위원은 "조세 역시 가계와 기업 간 소득 양극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현행 조세체계가 가계소득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선될 여지는 없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래 일자리…서비스업·융합산업 키우자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시스템화하고, 가계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쓴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일자리 문제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산업구조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자본집약적인 것으로 지식집약적인 것으로 변하면서 대중소기업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면서 "산업구조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채 대기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민심을 이유로 과도하게 기업을 규제하면, 자국이 아닌 전세계 공장에서 부품을 아웃소싱하는 애플과 같은 사례가 우리 기업에도 많아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로봇을 이용한 공장 자동화와 개발도상국의 임금 경쟁력 때문에 줄고 있는 제조업 대신 서비스업으로 일자리를 키우고, 세계 최고 수준인 정보기술(IT) 업종과 굴뚝 산업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연구본부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하락 추세에 있는 고용률을 높이려면 법률, 의료, 관광 같은 서비스업의 일자리를 늘리고 고부가가치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용섭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은 "중국 관광객이 넘쳐나지만 호텔은 부족한 상황인데, 호텔신라로 창출되는 유관 고용인원은 삼성전자보다 많다"면서 "일자리는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로 대표되는 서비스에서 나오는 만큼, 정부는 이 부분을 키우는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수 살리기, 서비스업 육성 등의 정책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양극화 해결책으로 추진돼 왔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

이 때문에 양극화 해결은 국가적 차원에서 중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미 우리 사회 양극화가 임계점을 넘은 만큼 때를 놓치면 더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차기 정권에서는 양극화 해결 방안을 국정 과제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시장 내에서의 극단적인 불균형은 노동 시장의 양극화와 대·중소기업 양극화에서 비롯된 만큼 이에 대한 개선 의지와 함께 증세를 통한 복지 정책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면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이어지는 정책적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6호 M+` 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6호 M+는 2012년 3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44,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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