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분석-4)미 테러, 서구· 이슬람 대립의 역사가 낳은 참극

  • 등록 2001-10-03 오후 3:10:21

    수정 2001-10-03 오후 3:10:21

[edaily] 미국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사우디 출신 이슬람 근본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그가 은신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력보복 방침을 천명한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이번 사태가 이슬람 대 기독교의 ‘종교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테러 응징이란 명분을 거듭 강조하면서 이슬람 측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입장은 정반대다. 탈레반은 미국이 무력보복을 감행할 경우 전세계 이슬람교도들이 단결해 ‘지하드’(성전)’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탈레반 측은 최근 미국의 아프간 무력보복 방침을 두고 “십자군의 침략에 맞서 싸울 것”을 국민들에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과 아프간 사이의 갈등을 종교적 갈등으로 치환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테러 피해국과 혐의자 비호국 사이의 정치적 긴장이란 것만으로는 사태의 본질을 해명하기 어렵다. 항공기 폭발로 초고층 빌딩이 붕괴되는 장면이 주는 충격이 차츰 만성화돼가는 지금 미국에 대해 전세계는 “왜 그런 참혹한 테러의 표적이 돼야 했는가”란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 이슬람, 그 오해와 편견 잔혹한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종교 이슬람은 뜻밖에도 아랍어로 "평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손에는 꾸란 한손에는 칼"이라는 상징적인 문구도 사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이 아니라 이슬람의 팽창을 두려워 한 서구인들의 입에서 나왔다. 사실 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만을 일컫는 "종교"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활동 전체를 포함하는 생활 그 자체로 "종교와 세속 모두를 포함하는 신앙과 실천의 완결된 체계"다.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드 라수룰라(하나님 외에는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않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이다)"라는 문구 한 번만 암송하면 누구든지 이슬람교도가 된다는 단순하고도 평등한 교리가 이슬람 전파력의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자주 지적한다. 물론 "이교도"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무장폭탄테러를 고집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각 중동국가마다 여럿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일반의 선입견이 근거도 없이 제기됐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분쟁을 보다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하는 온건세력의 노력을 무시해선 안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 여론의 반응, 그리고 미국정부의 입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미 항공기 테러사건의 핵으로 미국 측이 아랍과 이슬람을 일차적으로 지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이슬람과 기독교(혹은 유대교)라는 종교적 갈등보다는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 역학관계가 만들어낸 "상징적 종교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이미 몇 년 전 "문명의 충돌"이란 저서에서 이슬람과 서구라는 "문명의 단층선論"을 제시하면서 앞으로 이슬람 세력의 단결이 "문명간의 피묻은 경계선"을 불러올 것이고 서구는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번 미국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와 국방부 펜타곤에 발생한 항공기 테러를 계기로 "사단(事端)은 이슬람의 일부 극단주의자(extremist)가 아니라 극단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슬람 전체"라는 논리가 전국민적인 승인을 얻은 셈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문명 충돌론은 그러나 미국의 대외적 명분을 훼손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수십억의 무슬림들을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단결시켜 이로울 것이 하나 없는 미국정부는 "우리의 공격목표는 테러리즘일 뿐"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중동국가들의 협력을 약속받기 위해 2일 부시 대통령의 지시 아래 중동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했다. 이 모두가 이번 미국의 "對테러전쟁(war against terror)"이 이슬람과 벌이는 일종의 "종교전쟁"이라는 빈 라덴 지지자들의 주장을 뒤집어 엎기 위해서는 이슬람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야할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측이 자신들의 근본 목표는 용의자 빈 라덴을 비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테러리즘 자체를 근절시키는 것이라고 언명한 만큼, 전쟁이 아프가니스탄 이외의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 현재, 과거의 진행형 : 미국의 외교정책과 중동분쟁 그리고 미국과 모슬림이 대립하고 있는 최전선에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놓여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나라를 세워주겠다는 이중적, 모순적인 약속을 유대인과 아랍인 양측 모두에게 했던 것이 사태의 시발(始發)이었다.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그 지역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집을 잃고 난민이 됐고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은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을 지닌 채 지리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얼핏보면 이스라엘과 아랍 양측의 싸움같은 이 분쟁의 역사에 미국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중동지역의 전략적 가치와 이스라엘과의 미국과의 밀월관계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의 신경을 여전히 건드리고 있다. 미 지성계에서 조차 미국의 이같은 외교정책이 중동분쟁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최근 번역된 노암 촘스키의 저작 "숙명의 트라이앵글(원제 : Fateful Triangle)"도 그 중 하나다.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은 상당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태다. 전략적 근간으로 삼았던 "문명의 충돌론"을 고수해서는 이번 對테러 군사행동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동국가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탈레반 정권의 지하드를 돕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최우선적인 협력이 필요한 이란에게서는 별 약속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경제재제를 해제하는 당근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이같은 이해득실에 따른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단기간일 뿐이라는 것은 미국측과 아랍측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명의 충돌"을 막아보려는 미국과 "문명의 충돌"을 부추겨 열세를 면해보려는 탈레반의 싸움의 핵은 결국 미국이 심은 씨앗이라는 비난이 현재 많이 일고 있다. 물론 무고한 수천의 목숨을 보복의 담보로 삼은 테러리즘을 옹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중세의 십자군 전쟁 이래 이슬람과 기독교가 벌이는 최대의 전쟁"이라는 종교적 논리가 세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이 진두지휘한 중동지역의 정치경제적 역학관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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