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와인 해프닝’이 남긴 씁쓸한 뒷맛

  • 등록 2012-09-25 오전 9:16:05

    수정 2012-09-25 오전 9:16:05

[이데일리 문정현 기자]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인터넷을 통한 와인 판매’가 결국 무산됐다. 공정위가 24일 공개한 20개의 경쟁 제한적 규제 방안에는 와인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10리터짜리 대용량 막걸리 판매 허용, 면세점 주류 판매 복수 사업자 허용 등 술과 관련된 규제 개선 방안이 담겼지만 핵심이 빠지다 보니 공정위도 “임팩트가 없을 것 같다”며 풀죽은 모습이다. 앞으로 계속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국세청이 ‘결사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와인 수입 규모는 작년 1억3500만달러로, 전체 수입 주류 가운데 30% 정도를 차지한다. 국내 시장 규모가 최근 10년 새 7배 이상 급성장했다.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가격 거품 논란도 컸다. 특히 작년과 올해 체결된 미국·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15%의 관세가 즉시 사라졌음에도 수입업자들이 과도한 유통 마진을 남기면서 소비자들만 봉취급 받는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보다 못한 공정위가 꺼낸 카드가 바로 인터넷 판매였고, 이후 국세청과의 기싸움이 노골화됐다. 공정위는 20~30%에 달하는 수입·도소매업체의 유통마진으로 소비자 가격이 수입원가의 2.6배를 넘는다며, 인터넷 판매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국세청과 주류 수입업체는 무자료 거래로 인한 탈세 우려와 청소년 음주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공정위는 다시 반대 논리를 폈고,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졌다.

옥신각신하던 양 측을 두고보다 못해 청와대가 중재에 나서는 진풍경까지 벌어졌으나, 매듭을 짓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두 기관이 사활을 걸만큼 와인이 중요한 품목이냐는 쓴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다.

와인을 둘러싼 공방이 국세청의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FTA로 싼 와인이 국내로 들어오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수입 원가보다 몇 배 비싼 와인을 계속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소리는 요란했는데 나아진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다. 와인을 포함한 수입제품 가격 안정화를 위해 병행 수입을 활성화하겠다던 방안도 별다른 후속 대책 없이 조용하다. 플랜A를 추진할 수 없다면 원인이 뭔지 규명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제 밥그릇 지키는 데만 여념이 없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안없는 소모전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비용은 비용대로 부담하고 허탈감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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