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도전과 비전)⑦SK, 해외로 나가야 산다

에너지 정보통신 중국에 승부..철저한 현지화 추구
글로벌리티 개념 도입..세계로 나가지 않으면 죽는다
  • 등록 2007-01-15 오후 1:10:00

    수정 2007-01-15 오후 1:10:00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SK㈜ 사옥. 35층짜리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에는 작은 TV 모니터가 달려있다. 엘리베이터에 TV 모니터를 달아 놓은 것은 새롭지 않다.
 
그런데 이 모니터에서는 끊임없이 중국어 강의가 흘러나와 오고가는 이의 눈길을 끈다. 건물을 오르내리면서 중국어 표현을 하나씩 익힐 수 있게 한 것이다. SK그룹이 얼마나 중국에 `올인`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SK그룹 사옥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TV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중국어 강의

◇ "짜장면 먹을때도 생각나"

SK 직원들에게는 중국어가 영어보다 중요한 제1외국어다. SK가스 같은 계열사에서는 아침 7시부터 중국어 강의를 들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SK 직원들은 점심때 중국음식을 가능하면 먹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밥 먹을 때만이라도 맘 편하게 먹고 싶다는 것. 중국어에 대한 부담이 그만큼 심하다는 뜻이다.

최태원 회장이 얼마나 중국에 몰두하고 있는가는 16살, 11살인 최 회장의 두 자녀가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에서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SK그룹 정도의 규모라면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최근 SK
그룹의 해외 진출을 보면 그룹 총수의 의지와 방향제시가 여전히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SK그룹의 글로벌화는 이미 전신인 선경그룹 시절에서 시작됐다. 97년 선경그룹을 SK그룹으로 바꾼 것도 선경(鮮京)이 중국에서는 '센징'으로, 일본에서는 '센쿄'로 각각 다르게 발음되고 표기도 달라 기업 아이덴티티의 혼선이 생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중국에 진출한 것도 이미 15년이 넘었다.

사실 SK그룹의 숙제와 고민은 해외진출의 자체보다는 그 '깊이'와 '속도'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국에 진출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의미있는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나 글로벌리티(globality)라는 영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신조어가 최태원 회장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글로벌화(Globalization)가 단순히 사업의 영역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개념이라면 글로벌리티는 글로벌화의 구체적 수준과 역량을 의미하는 실체적인 단어다. 글로벌화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얼마나 글로벌화되어 있는가'의 측정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태원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할 것인지를 구체화하고 이를 신속하게 실행에 옮겨야 하는 상황에 돌입했으며 조직, 제도와 프로세스(Process), 스킬(Skill), 문화, 사람 등 회사의 모든 차원에서 글로벌 역량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최 회장의 생각보다 구체화된 실행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그룹의 글로벌화 과정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홈그라운드에(서만) 강하다?

SK그룹이 글로벌화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룹의 두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과 SK㈜가 '더할나위 없이' 잘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계열사 모두 명실상부한 국내 1위업체지만 통신산업과 정유산업이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게 고민이다.
 
가입자가 4000만명이 넘어선 이동통신 시장과 소비가 줄어들기 시작한 휘발유 시장에서 국내 1위를 지키는 것은 내일의 먹거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판단이다.

지난 6월 경기 용인 SK아카데미에서 최 회장과 임원들이 가진 대화의 시간에서 최 회장은 "자신이 속한 계열사가 국내에서 매년 10%씩 10년 동안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임원은 손을 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100여명의 임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손을 들지 못했다.

최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글로벌리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SK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 글로벌리티를 높여야 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글로벌리티를 높이지 못하면 SK는 낙오될 수 밖에 없다는 절박감 마저 느껴지는 대목이다

내수 중심의 사업구조를 두고 국내에서만 강한 '홈그라운드 형' 기업이라고 폄하하거나 알짜 공기업을 인수해서 성장한 이력을 들어 '단독돌파'보다는 '가로채기'에 능한 선수라고 비꼬는 세간의 평가는 걸음마 단계의 기업을 세계적인 수준의 일류기업으로 키워낸 SK그룹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편견들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길 역시 해외에서 보란듯이 제대로 된 사업을 일궈내는 것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SK의 주력사업인 정유·통신·화학 사업이 글로벌화에 치명적인 핸디캡을 갖고 있다는 건 늘 SK를 괴롭히는 고민이다.

대규모 설비를 필요로하는 사업 특성상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처럼 배로 실어 날라 해외 시장에 파는 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SK㈜는 중국 수교 이후 14년 동안 정제시설과 NCC설비 등을 중국에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통신사업 역시 정부의 규제를 가장 심하게 받는 사업분야여서 해외로 진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SK의 해외 진출 사례가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눈에 띄게 많지는 않지만 한건 한건이 모두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와 계획대로 해외 사업이 풀리지 않거나 성과가 크지 않다고 '실패'나 '좌절'로 평가해서는 안되는 까닭이 바로 그래서다.

◇ SK(주)·SK텔레콤 등 주력 계열사 해외진출 활발

석유를 정제해서 시장에 내다파는 사업을 하는 SK는 세계 각국의 유전개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마중가 광구에 대한 탐사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6월에는 영국 북해의 4개 해상광구에 대한 탐사에 나섰다. 지난해 8월에는 자원의 보고로 불리는 카자흐스탄 8광구 탐사에 참여했다.

현재 SK㈜가 참여하고 있는 페루 카미시아 광구의 경우 원유 6억 배럴, 천연가스 8조7000억㎥가 매장된 것으로 확인돼 앞으로 30여 년 동안 수조원의 수익을 안겨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제조하는 석유제품도 이제는 내수시장보다 해외시장에서 더 많이 팔린다.
 
▲ SK그룹은 대기업 가운데 인터넷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이다.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도 활발한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6월 차이나유니콤의 10억 달러 규모의 전환사채를 사들이고 양사가 3세대 중국식 이동통신(TDSCDMA) 서비스를 추진키로 했다. SK텔레콤 중국법인 관계자는 이를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또 미국에서는 어스링크와 합작해 가상망사업자(MVNO:통신사업자로부터 망을 빌려 독자적 서비스를 하는 업체)인 '힐리오'를 설립, 작년 5월부터 서비스에 들어갔다.

베트남은 SK텔레콤의 해외 진출사례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호치민과 하노이를 포함한 39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 에스폰(S-Fone)' 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S-Fone’의 가입자는 지난해 9월 베트남 진출 3년 3개월만에 100만명(시장 점유율 5.3%)을 돌파했다.

SK케미칼도 그룹 최초의 유럽생산기지인 폴란드 유로켐 공장의 준공으로 유럽지역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SK케미칼의 매출액대비 수출 비중은 그룹 내에서 최고 수준인 70%를 넘어섰다.

SK그룹의 2005년 수출액은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2004년 총수출액 131억 달러보다 약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2003년 100억 달러 수출시대를 연지 1년 만에 다시 200억 달러 시대로 올라선 것. 마치 7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수출 급증세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다.

최태원 회장도 '가장 큰 실패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는데 애를 쓰고 있다. 당장 국내시장에서 수익이 잘 나고 있는 회사들을 온실 밖으로 밀어내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적으로 평가받는 전문경영인들은 리스크를 애써 지고 싶어하지 않는 게 인지상정이다.

작년 11월 계열사 CEO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내려가 그룹 전략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최 회장은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로는 한계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들이 다른 측면에서 보면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리스크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도전과 성장을 통한 진화의 기회도 될 것이며 이런 측면에서 설사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묻기 보단 그 성과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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