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무르익는 은행합병 여건

  • 등록 2000-06-02 오후 7:41:13

    수정 2000-06-02 오후 7:41:13

은행 합병논의가 식지않고 이어지고 있다. 궁극적인 논의의 초점은 어느 은행이 합병을 할 것인가에 있지만 현재까지는 합병을 위한 여건조성에 더 무게가 쏠린 듯하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2일 10개 은행장과의 조찬에서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밑그림은 없다"고 강조하고 "은행합병에 대한 의견과 건의사항을 기탄없이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겠다는 의도다. 행장들은 구체적인 속내를 내보이기 보다는 아직 은행들이 주도적으로 나설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요지의 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너지 효과를 보는 쪽으로 합병을 해야 하는데 정부가 말하는 우량은행간 합병도 막연하고 합병시 정부가 어떤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장들은 은행들이 스스로 노조와 주주들을 설득하고 합병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먼저 여건을 조성해 줄 것을 건의했다. 현재 금융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은행합병의 모델과 합병에 주도적으로 나서기 위해 요구되는 여건은 무엇인지, 또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본다. ◆합병모델은 무엇 = 현재 은행에서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합병방식중 가장 유력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모델은 일본의 미즈호 금융그룹. 다이이치강교(第一勸業)와 후지(富士), 코교(興業) 등 3개 은행이 합치는 미즈호 금융그룹의 경우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2단계 분할 방식에 의해 이뤄진다. 1단계로 세 은행은 전 주식을 현물출자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지주회사와 각 은행의 주식을 1:1:1로 바꾸는 주식교환 방식을 이용, 스스로 자회사로 편입된다. 지주회사는 전략본부와 사업단위본부로 나눠진다. 전략본부는 전략팀, 금융-회계팀, 위험관리팀, 인사팀, IT시스템 운영팀 등으로 구성되고 사업단위본부는 소비자은행팀, 중소개인은행팀, 기업은행팀, 공공부문은행팀, 국제은행팀, 증권-투자은행팀 등으로 구성된다. 2단계로 지주회사는 회사분할제도를 이용해 3개 자회사를 개인-소비자은행과 기업은행, 증권 및 투자은행 등으로 흡수분할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최근 이헌재 장관이 언급한 공적자금 투입 3개은행, 즉 조흥 한빛 외환 등의 합병에 이 방식이 적용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주회사를 통해 3개 은행을 합친 뒤 개인과 기업, 국제쪽으로 전문화시킨다는 복안인데 외환의 경우 대주주인 코메르쯔방크의 의지가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와는 별도로 국민과 주택을 중심으로 이중 한 은행과 재무구조가 건실한 중형 우량은행의 합병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은행이 요구하는 여건 = 가장 확실한 것은 정부의 자금지원이다. 합병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위해 자본확충 등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정부의 호주머니 사정이다. 공적자금 투입은 엄두를 못내는 형편이고 합병후 정히 어려우면 후순위채 매입정도는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 은행들도 이같은 사정을 익히 알고 있고, 결국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인센티브 건의는 정부 사정이야 어떻든 일단 자금지원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행장은 "구체적으로 정부에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고 예를 들어 A은행과 B은행이 합쳤는데 BIS비율이 떨어진다면 자본확충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에 대해 정부가 무언가 인센티브를 주면 합병이 수월해지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나온 얘기"라고 말했다. 금감위는 이같은 사정을 감안한 듯 인센티브의 내용에 대해 정부가 돈을 안들이고 합병을 활성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돈은 안된다고 미리 못을 박은 셈이다. 따라서 행장들이 건의한 인센티브의 내용중 수용가능한 부분은 합병시 세제상의 특례인정이나 합병후 일정기간 기존조직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해주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금과 조직형태의 유지도 실제 합병추진과정에서는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한다. 미즈호 금융그룹의 경우 1단계에서 지주회사는 회사설립에 따른 등록면허세, 발행주식 인지세 등을 부담해야 하고 2단계에서도 부동산소유권이나 저당권 등의 이전에 따른 등록세, 각종 자산의 양수도에 따른 양도세, 취득세 등의 세금부담을 안게 된다. 금융연구원의 김동환 부연구위원은 “일본과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은행도 합병에 따른 각종 세금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은행들이 과세특례 등의 요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합병추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불거질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합병후 기존조직의 형태를 일정기간 유지하도록 해주는 방안도 행장들이 원하는 것중의 하나다. 김영재 금감위 대변인도 이날 간담회 결과를 설명하면서 “합병시 노조와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인센티브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행장들이 건의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행장들은 정부가 금융지주회사 등 제도적인 여건마련과 함께 합병후 자본확충 문제, 합병추진과정에서의 세금문제, 합병후 조직형태 등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판을 만들어줘야 합병에 나설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계획은 = 합병논의가 가시화된 것도 아니고 은행들이 공식적으로 인센티브 방안을 제시하지도 않은 만큼 아직은 내놓을 것이 입다는 입장이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법을 추진, 은행의 자율합병을 유도하되 지주회사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은행들의 합병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합병추진 과정에서 나타날 각종 문제들을 제거해 나간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부 생각이다. 합병을 한다고 해서 당장 몇개의 은행이 하나로 합쳐지고 나머지는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합병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해결은 먼저 합병을 선언한 후 합병추진 과정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도 여전하다. 제도적 장치마련을 위한 발걸음은 다소 바빠지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서는 재경부와 금감위가 대강의 밑그림을 그린 상태. 따라서 정부는 오는 15일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리는 금융지주회사 제도개선에 대한 공청회에서 세부사항을 보완, 6월중 법제화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공청회에서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이 집중 논의된다. 주된 토의내용은 완전지주회사 설립을 용이하게 하는 방안, 은행지주회사의 소유구조 문제, 조직형태의 자율성 제고 방안,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요건 및 절차 등이다. 정부는 공청회를 전후로 수렴되는 의견을 지주회사법에 반영, 법제화 작업을 완료해 판을 만들어 놓으면 하반기부터는 그동안 수면밑을 맴돌던 은행합병이 점차 가시권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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