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 유감, 여성가족부와 19禁

  • 등록 2011-09-09 오후 1:40:58

    수정 2011-09-09 오후 1:40:58

[이데일리TV 조은송 PD] 대중가요가 청소년들에게 술과 담배를 권한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노래가사를 걸러내려는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보호위원회 그리고 이에 맞선 문화계의 반발. 과연 청소년 보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아니면 현실과 동떨어진 과잉 규제인가. 

 

지난 8월 31일 네 곡의 대중가요가 가사에 술과 담배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명 빨간딱지로 지정 받았다. ‘천상지희 다나&선데이’는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소주잔이라는 가사를 에스프레소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8월 29일 음반업계의 자율심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여성가족부의 발표가 있은 지 불과 이틀 만에 이뤄진 유해매체 지정이었다.

지난해 3월 19일 여성가족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 보호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 매체물 지정을 담당해왔다. 당시에도 심의 관련 논란은 존재했다. 비의 ‘레이니즘’의 가사 중 “떨리는 니 몸 안에 돌고 있는 나의 매직 스틱”은 성행위를 묘사한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받았다. 동방신기의 ‘미로틱’ 역시 법정소송까지 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출범하면서 ‘술’ ‘담배’가 들어간 노래 전부를 앞뒤 연관성 없이 무더기로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하기 시작했다. 최영일 대중문화 평론가는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보호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는데 이를 명분으로 지나치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감성밴드 여우비 역시 “추억은 가슴에 묻고서 가끔 술 한 잔에 그대 모습 비춰볼게요” 라는 가사 때문에 지난 6월 청소년유해물 판정을 받았고 이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을 여성가족부에 보냈다. 또한 군사정권 시절 가사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었던 ‘고래사냥’이 ‘나는 가수다’에서 자우림에 의해 리메이크됐지만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췄다는 가사 문제로 금지가 풀린 지 20년 만에 19금 판정을 받게 됐다. 이렇게 19금 판정이 내려진 곡은 올 들어서만 169곡. 작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기준도 뒤죽박죽이다. 똑같이 술이란 표현이 들어갔지만 보드카레인의 ‘심야식당’은 19금 판정을 받은 반면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은 무사히 심의를 비켜갔다. “쓰고 독한 술을 마셔도”라는 소녀시대의 ‘여자친구’의 가사는 괜찮지만 술을 못 마신다는 백지영의 노래 ‘아이캔트 드링크’는 19금 판정을 받았다.

‘감성밴드 여우비’의 정근영 씨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조건 그런 단어들이 들어간다고 19금이라고 판정해버리면 예술을 하지 말라는 거죠”라며 표현의 자유에 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여성가족부 음반심의에 대해 본격적인 반대 여론이 일기 시작한 건 지난 7월. 비스트의 정규1집 수록곡 ‘비가 오는 날엔’의 가사 중 “취했나 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를 유해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비스트 팬들이 난리가 나서 여성가족부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언론에서도 계속 보도를 하니까 그제야 여성가족부에서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최근 한 공연기획사가 준비 중인 콘서트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콘서트의 슬로건은 표현의 자유. 최종목표는 여성가족부 폐지다. 또한 힙합그룹 메가디스 멤버들은 이런 상황을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써니는 고딩이 술 먹고, 1박2일은 막걸리 마시고, 최고의 사랑 주제가는 아예 술 얘기던데 바쁘신가요.” 제목은 ‘여가부 땡큐’인 이 노래에는 여성가족부의 기준 없는 음반심의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는 심의 문제로 인해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이 되면 방송과 음원 다운로드 등 수익 면에서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따라서 가요기획사와 가수들은 법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는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심의 기준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송을 냈으며 지난 8월 법원은 SM의 손을 들어줬다. 비스트 역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요계가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줄 소송을 벌일 움직임도 있다. 이와 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의 심의 세칙을 마련하여 술이나 담배 등을 직접적으로 권하는 내용에 한해서만 유해 매체물로 지정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송사마다도 심의 기준이 다른 것도 문제다. 지나의 ‘바나나’라는 곡은 MBC에서는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다른 지상파에서는 무사히 심의를 통과했다. 또한 포미닛의 현아는 춤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KBS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규제대상이 됐다.

최영일 대중문화 평론가는 “심의에 걸리는 것 아닐까 걱정하며 조금 더 수위를 낮추다 보면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자기 검열하게 되고, 이것이 굳어지면 예술적 창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문화의 경쟁력을 스스로 위축시키기 보다는 문화의 주체자들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고 문화 소비자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개방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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