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크리스마스'' 전쟁중

진보-보수 세력의 ''Merry Chirstmas'' 인사말 힘겨루기
  • 등록 2006-12-18 오후 10:08:54

    수정 2006-12-18 오후 10:08:54

[오마이뉴스 제공] 미국이 이라크에 이어 또 하나의 전쟁에 돌입했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여 앞두고 '크리스마스 전쟁(War on Christmas)'에 돌입한 것. 물론 이라크 전처럼 총과 폭탄이 난무하는 전쟁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기독교 보수 세력과,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고자 하는 진보 세력이 맞붙은 만만치 않은 전쟁이다.

발단은 전통적인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말. 예수(Chirst)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크리스마스인 만큼 이 인사말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게 보수파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진보파는 이미 여러 종교를 가진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에서 특정 종교의 교주 이름을 사용하는 인사말은 더 이상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신 'Happy Holidays' 또는 'Season's Greetings'이라는 인사말을 권장하고 있다.

"미국을 변질시키려는 시도"

'크리스마스 전쟁(War on Christmas 또는 War Against Christmas)'이라는 표현은 보수적인 문화 비평 온라인 매체 'VDARE.com'의 편집장 피터 브라임로우에 의해 지난 1999년 고안됐다. 그는 기독교의 오래된 전통인 크리스마스를 세속화 시키려고 하는 모든 진보주의자들의 도전과 이에 대한 보수파의 응전을 '전쟁'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브라임로우의 주도 하에 이 온라인 매체는 올해까지 7년 동안 줄곧 'Merry Christmas'를 고수하기 위한 운동을 해 오고 있다.

올해 이 매체의 게시판에 실린 뉴욕주 변호사 하워드 수더랜드의 글은 "크리스마스 전쟁, 즉 기독교에 대항하는 모든 도전은 미국 대부분 시민의 뜻에 반해 미국을 변질시키려고 하는 일련의 운동 중 한 부분"이라며 "미국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독립선언서부터 미국의 헌법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가 줄곧 미국 정신의 핵심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끝맺고 있다.

'크리스마스 전쟁'이라는 표현이 널리 퍼지게 된 데는 국제 언론재벌 루퍼드 머독이 운영하는 폭스뉴스(Fox News)의 'The O'Reilly Factor'라는 인기 시사 프로그램의 역할이 컸다. 유명한 보수파 방송인인 빌 오릴리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2004년에 이어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에도 크리스마스 전쟁과 관련한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이 프로그램은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를 제한하는 규정을 둔 학교나 자치단체들을 찾아내 보여주며, 이런 현상들이 기독교의 전통과 배치되고 있다고 전했다. 비록 이 방송이 예를 든 미시간주 새그노 마을은 "방송의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이 방송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방송 내용이 "크리스마스의 전통이 정치적 '좌파'들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라고 와전되면서 인터넷과 블로그 세계에 급속도로 퍼져간 것.

결과적으로 크리스마스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에 익숙하지 않던 미국 시민들은 2005년 폭스 뉴스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42%나 "오늘날 미국에 크리스마스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마스' 단어 사용 않는 기업 불매운동

보수파들의 움직임은 저작물과 물리적인 행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폭스 뉴스의 또 다른 보수파 방송인 존 깁슨은 2005년 '크리스마스 전쟁 - 신성한 크리스마스를 금지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음모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얼마나 더 나쁜가'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서는 그는 "유대인, 휴머니스트, 법률가, 문화 상대주의자, 자유주의자, 죄악에 빠진 기독교인 등으로 불리는 모든 세속주의자들의 비밀 결사가 크리스마스를 세속화 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릴리와 깁슨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 "마약, 안락사, 낙태, 그리고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단체 중 하나인 '미국가족협회'는 2005년 "연말 세일 행사에 크리스마스라는 용어 대신 '홀리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미국 대표적인 소매업체 '타겟'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압력에 따라 작년까지 '홀리데이 세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월마트는 올해 연말 광고문구에 'Merry Christmas'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세가 되고 있는 'Happy Holidays'

이들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은 미국에서는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말보다 'Happy Holidays'라는 인사말이 더 자주 쓰이고 있다. 거의 모든 공중파 방송의 진행자들은 'Happy Holidays'를 사용하고 있고,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광고 방송은 'Holiday Sale'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매일 아침 지역신문에 실려오는 광고 전단지에도 'Holiday'라는 표현이 더 자주 쓰인다. 12월에 들어서면 화려한 전등불로 외관을 장식하는 미국 주택가에도 올해는 'Happy Holidays'라는 문구로 장식한 집들을 자주 볼 수 있다.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말이 이렇게 바뀐 데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비방반대연맹' 등과 같은 진보주의 시민단체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미국식 권리장전인 수정헌법 제1조 "의회는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자유로운 종교의식을 규제하는 어떠한 법도 제정할 수 없다"는 내용을 교회와 국가는 분리돼야 한다는 의미로 규정했다.

이런 해석하에 이들은 공공장소에서 국가가 지원하는 특정 종교의 상징 전시 반대, 공립학교에서의 공중 기도, 종교 의식, 묵상 등의 절차 반대 등 기독교 보수파들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활동들을 해 왔다. 이들에 의해 특정 종교의 색채가 묻어 있는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말이 서서히 다른 중립적인 인사말로 대체되게 된 것.

유대인의 물타기 전략?

하지만 또 다른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Christmas'라는 말이 미국에서 힘을 잃어가는 주 원인을 유대인에게서 찾고 있다. 60년대 미국 보수 정치인이었던 제럴드 스미스는 "유대인들이 신약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를 대체하기 위해서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를 도입했다"며 "UN이 그리스도 이름의 사용을 억제한 것도 유대인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이 지금까지도 미국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이어져 오고 있는 것.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기독교와 달리 유대교는 예수를 인간인 선지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유대인에게는 이방인의 명절일 뿐. 대신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시기에 유대인들은 '하누카'라는 명절을 기념한다. 크리스마스와 같이 12월 25일이 하누카이지만 음력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매년 날짜가 변한다. 유대인들은 하누카의 시작부터 8일 동안을 명절로 보낸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유태인들이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희석하고 자기네 명절인 하누카를 드러내기 위해 수정헌법 1조를 이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올해 워싱턴주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이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하누카를 기념하는 메노라(9개의 촛대로 구성된 이스라엘 전통 장식물)를 이용해 공항을 장식하기로 한 사실은 보수주의자들을 크게 자극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돼 인기를 끈 풍자 영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에서도 이들 보수주의자들의 뿌리 깊은 유대인 혐오를 볼 수 있다. 이들의 주장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등 미국의 정치,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에 대한 견제와 시기심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겨울이 주는 평화와 안식의 시간을 보내야 할 12월, 미국은 또 하나의 전쟁에 돌입해 있다. '21세기의 십자군 전쟁'인 양 당당했던 이라크전에서 수모를 면치 못하고 있는 미국이 '크리스마스 전쟁'에서는 어떤 결과를 보일 지 자못 궁금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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