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꺾인 거리전기..'中 여성파워 No.1'의 위기

[베이징= 이데일리 김대웅 특파원] 세계 최대 에어콘 생산업체인 중국 거리전기(格力電器)가 지난해 실적이 부진하자 둥밍주(董明珠·62) 회장이 위기론 진화를 위해 직접 나섰다. 일시적인 성장 둔화라는 설명이지만 일각에선 둥 회장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거리전기, 사상 첫 매출·이익 동반 감소

둥밍주 거리전기 회장.

2일(현지시간) 제일재경일보에 따르면 거리전기의 2015년 매출은 977억위안(약 17조원)으로 전년 대비 29% 급감했다. 순이익은 11.5% 감소한 125억위안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줄어든 것이다.

심상치 않은 위기감이 감돌자 이 회사의 수장이자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꼽히는 둥밍주 회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최근 3년간 매출이 200억위안씩 증가한 뒤 숨고르기 기간에 접어든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둥 회장은 “매출이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이익률은 상승하고 있고 이는 경영관리의 효율성 향상에서 온 것”이라며 “그간 성장기를 거치며 7개의 연구소와 8000명 이상의 연구 인력을 확보한 만큼 일시적인 실적 부진으로 전혀 긴장하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에어콘 업계는 경기둔화의 압력과 함께 부진한 한 해를 보냈다. 2015년 중국 가정용 에어콘 생산은 1억385만대를 기록해 전년 대비 12% 감소했고, 판매량 역시 1660만대에 그치며 8.6% 줄었다. 중국 에어콘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에어콘 시장의 전체 규모는 660억위안으로 9.6% 감소한 가운데 환경보호 및 스마트 가전 제품 등이 부각되며 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둥 회장의 ‘마이웨이’..반전 가능할까

지난해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거리전기는 오히려 연구개발(R&D)에 더욱 비중을 실었다. 그러면서 에어콘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가전인 압력밥솥, 주방용 환풍기 등으로도 발을 넓혔다. 스마트 가전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며 휴대폰 앱을 연결해 에너지 사용, 공기, 물 사용, 조명 등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거리전기의 스마트화는 둥 회장이 경영의 키를 쥐기 시작한 4년 전 시작돼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2012년 자동화생산 전략을 도입한 데 이어 2013에는 스마트기기 연구개발팀을 신설했고 지난해에는 스마트기기 회사를 별도로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거리전기는 현재 5개의 스마트기기 관련 자회사와 7개 연구소, 700여개의 실험실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거리전기 경영의 핵심도 빅데이터를 통해 스마트기기 분야를 강화하고 적용 분야를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둥 회장의 주도 하에 거리전기가 스마트 디바이스 분야로 빠르게 체질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실적 악화가 둥 회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반응도 내놓고 있다. 그녀가 회장직에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적이 급격하게 꺾였기 때문이다.

1990년 거리의 판매원으로 입사한 둥 회장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승진을 거듭해 지난 2012년 주장훙(朱江紅) 창업주가 은퇴하면서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이후 기술개발과 사업확장에 힘쓰며 ‘중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기업인’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불황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진한 성적을 내고 말았다. 지난해 말 중국인수보험의 자본이 거리전기 주식 4756만주를 매수해 9대 주주에 오르면서 둥 회장이 10대주주 밖으로 밀려나게 되자 경영권을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