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美유학 다녀온 프로농구 모비스 성준모 매니저

  • 등록 2010-07-29 오전 8:12:31

    수정 2010-07-29 오전 8:12:31

[조선일보 제공] 학원, 과외, 닥치는대로 공부 기어코 체육교육 대학원에…

강의 녹음해가며 A둘 B 하나 이젠 뭐라도 할 수 있을듯…

2008년 10월 한국농구연맹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합동 은퇴식을 열었다. 전희철 같은 스타들과 함께 코트를 떠나는 성준모(32·당시 오리온스)가 마이크를 잡고 떵떵 큰소리를 쳤다.

"저, 요즘 잠 3시간밖에 안 자요. 영어학원 다니면서 내년 1월 미국 유학 준비하고 있어요. 지도자 수업 마치고 당당하게 한국에 돌아오겠습니다." 당시 참석자들은 그 말을 운동만 한 선수의 '객기' 정도로 여겼다.

성준모는 올 1월 미국 UTPA(University of Texas, Pan America) 체육교육학 대학원 과정에 입학했다. 미국 주립대 대학원에 입학한 첫 번째 국내 농구선수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올 7월 귀국했다.

■영어에 도전하다

그의 유학소식에 어머니는 한 달간 단식하다 끝내 영양실조로 입원까지 했다. 하지만 전주 우석고 1학년 때 농구선수가 되겠다며 아버지 앞에서 학교 성적표를 찢어버리면서 뜻을 관철시켰던 아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미 주립대 UTPA를 목표로 삼았다. 우석고 농구동아리 선배(오중일)가 체육학과 교수로 있는 곳이었다. 그에게 다짜고짜 유학가겠다고 하니 한숨 소리와 함께 "일단 기본적인 영문법은 떼고 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2주 동안 하루도 안 빼고 미친듯이 술을 마신 뒤 고향에서 취직 준비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영어 문장 아는 건 'I am a boy' 하나뿐이다. 그래도 열심히 할 테니 문법 좀 가르쳐달라"고 했다.

친구는 "과외비 따로 안 받는다. 대신 나한테 배우는 동안 우리는 친구가 아니다. 각오하라"고 했다. 성준모는 2개월 동안 그 친구에게 "넌, 그것도 모르냐"는 말과 함께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그때마다 허벅지를 손으로 꼬집으며 참았다. 2개월 동안 그의 오른쪽 허벅지는 시퍼런 멍이 사라지지 않았다. 속성 과정을 마치니 '주어, 동사, 형용사가 뭔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 정도가 됐다.

성준모는 5월부터 토플 전문 학원을 찾았다.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문법 강의를 들었다. 그 뒤엔 학원 자습실에서 10시까지, 학원 문이 닫히면 24시간 문을 여는 한양대 도서관에서 새벽 2시까지 책에 파묻혔다.

끼니는 김밥과 라면으로 때웠다. 제일 어려운 것은 단어시험이었다. 하루 250개 단어 시험을 봐서 1개 틀리면 50원을 내는데 2000~3000원이 그냥 지갑에서 빠져나갔다. 나중엔 성준모를 위해 벌금 상한제도(1000원)가 신설됐다.

30~40분만 지나면 근질거리던 엉덩이가 나중엔 자석 붙은 것처럼 변했다. 그 해 12월 말 성준모는 전주 집을 찾아 부모에게 "잘 다녀오겠다"며 큰절을 올렸다. 화가 안 풀린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다"며 끝내 그를 외면했다.

■토플에 도전하다

공항에 마중나온 오 교수는 그를 보고 처음 한 말은 이랬다. "너보다 내가 더 두렵다!" UTPA 어학원에 등록한 그의 레벨은 최하급인 4단계였다. 자기소개 때 한 말은 오로지 두 문장, "나는 한국에서 왔다. 한국프로농구 선수였다!"

성준모는 "무조건 들이댔다"고 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옆 사람을 붙잡고 늘어졌고 새벽 2시에 곤히 자는 친구를 깨워 난리가 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그를 "미쳤다"고 했다. 아무리 훈련해도 나오지 않던 코피가 좔좔 터졌다.

문법은 어느 정도 됐는데 듣기가 문제였다. 그때부터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다녔다. 나중엔 속이 거북해 토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5월엔 470점, 6월엔 498점으로 성적이 조금씩 올라갔다. 고지가 보였다.

드디어 7월, 성적표를 받으러 갔다. 차마 자기가 보지 못하고 함께 간 선배에게 성적표를 건네줬다. "준모야. 됐다!" 점수는 502점이었다. 성준모는 "살면서 그때처럼 눈물을 펑펑 흘려본 적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대학원 입학

그런데 학교에선 국내 학점이 형편없다며 입학허가서를 내주지 않았다. 학업을 '열외(列外)'로 치는 사정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를 구해준 것은 병역 연기를 위해 등록한 수원대 대학원 학점이었다.

그래도 미심쩍었는지 '3학기 내내 평균 B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입학허가에 붙었다. 올 1월 성준모는 드디어 첫 수업에 들어갔다. 너무 긴장한 데다 빠르게 말하는 교수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성준모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더 미치기로 결심했다. 강의내용은 소형 녹음기를 강단에 놓고 수업시간엔 빼곡히 노트 필기만 했다.

이상하게 쳐다보던 교수와 동료들이 나중엔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줬다. 첫 학기 세 과목 중 프레젠테이션과 온라인 강의는 A학점, 한 과목이 B학점이었다. 아르바이트로 농구를 가르치게 돼 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한국으로

굳은 결심 속에 미국을 건너간 그를 흔들리게 만든 것은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전(前) 소속팀이던 모비스로부터 "공부하는데 미안하지만 같이 일할 생각 없느냐"는 제의였다.

성준모는 "영어공부 하느라 죽을 고생을 다했더니 오히려 쉽게 결정이 내려지더라"고 했다. 미국 유학도 좋지만 팀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 밑바닥부터 일을 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짐을 싼 뒤 미국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성준모는 "영어보다는 노력을 하면 혼자 어떤 일을 해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게 최고의 소득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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