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따상' 꿈꿨는데…IPO 보릿고개에 눈물의 바겐세일

FI 엑시트 기한 도래…투자 유치·지분 매각 '선회'
IPO 추진하며 꿈꾸던 기업가치 급격히 쪼그라들어
원금 손실 구간에서 섣불리 회수 요구 어려워
IPO시장 올해 13곳 상장 철회…SPAC도 '침체'
  • 등록 2022-12-27 오전 5:50:00

    수정 2022-12-27 오전 7:17:26

[이데일리 김근우 기자] ‘따상‘(공모가 두배에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 ’따상상‘의 주인공을 꿈꾸며 상장 전 몸값 올리기에 한창이었던 기업들이 눈물의 바겐세일에 나서고 있다. 급격한 금리인상에 유동성이 마르면서 기업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주요 투자회수 수단이었던 기업공개(IPO)마저 여의치 않아진 탓에 지분을 매각하거나 낮은 밸류에이션에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분위기다. 특히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약속한 엑시트(투자금회수) 기한이 도래한 곳들은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기업가치에 끼었던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익모델을 입증하지 못하고 적자의 수렁에 머물고 있는 기업들이 유동성 덕에 과도하게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평가받았던 게 비정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시간은 내편이 아니다…보릿고개 놓인 비상장사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4분기 라이온하트스튜디오, 골프존커머스, 밀리의서재, 제이오, 바이오인프라, 자람테크놀로지 등 6곳을 포함해 올해만 13곳이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 문턱을 넘지 못해 IPO 절차를 중단하거나, 일정을 연기한 곳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금리가 오르면서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게 된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역시 올해 네 곳이 상장을 철회했다. 우회 상장 통로인 스팩과의 합병 상장이 2011년 이후 약 11년 만에 무산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세라 대신증권 선임연구원은 “유동성 지표인 청약 증거금과 공모주펀드 설정액도 2020년 수준으로 돌아갔다”며 “수요예측 공모가 분포는 하단미달 기업 비중이 50%를 차지하면서 양극화가 더욱 심해졌다”고 평가했다.

그간 IPO는 투자가들의 주요 회수 통로였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유동성이 풀리는 과정에서는 상장 후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초기(시드) 단계부터 프리 IPO 단계까지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금리인상과 함께 기업 몸값이 빠지고 원하는 기업가치로 IPO하기가 힘들어지자 일단 보릿고개부터 넘기고 보자는 분위기다.

낮은 밸류에라도…지분매각·투자자유치

SK스퀘어(402340) 계열 e커머스 업체인 11번가는 내년 코스피 상장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전략 선회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FI 등과 내년 9월까지 상장을 약속한 가운데 아직까지 IPO를 통해 기업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만큼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아서다. 지분 매각이나 투자 유치로의 방향 전환이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지난 2018년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가 참여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은 11번가에 5000억원을 출자하며, 기한 내에 상장하지 못할 시 FI측에서 대주주(SK스퀘어) 지분까지 묶어 처분할 수 있는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조항까지 넣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이 기한 연장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내년 9월이 되기 전 상장을 끝내거나 지분 매각 등의 방법으로 FI들의 엑시트를 보장해야 하는 처지다. 상장 시 4조~5조원까지도 점쳐지던 기업가치는 1조원 남짓까지 내려앉았다는 평가다.

SK쉴더스는 스웨덴 발렌베리그룹 계열 사모펀드(PEF) 운용사 EQT파트너스(EQT)로부터 투자 유치 논의를 진행 중이다. EQT가 맥쿼리자산운용(36.87%) 지분 전부와 SK스퀘어(63.13%) 지분 일부에 신주까지 인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SK쉴더스는 올 상반기 3조5000억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책정해 수요예측까지 진행했지만 기대 이하의 결과를 받고 상장을 철회한 바 있다. 이후 SK쉴더스가 IPO가 아닌 투자 유치로 방향을 바꾼 건 기존 FI의 자금 회수를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이 SK쉴더스의 전신인 ADT캡스 인수 당시 FI를 유치하며 엑시트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대주주가 지분매각에 나선 경우도 있다. 최근 보령바이오파마가 승계 자금 마련 등을 이유로 앞서 추진하던 IPO를 뒤로 하고 기업 지분 100%를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우전기전 역시 FI의 엑시트와 기발행 CB의 이자부담 등을 이유로 IPO를 미루고 에이루트(62.7%)와 장창익 대표(37.3%)의 지분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다.

LG유플러스(032640)는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의 경영권 인수를 검토했지만, 왓챠 FI들의 반발과 기발행 전환사채(CB) 상환 부담 등을 이유로 논의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마케팅 사업을 하는 모비데이즈(363260) 역시 100억~2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지난 7월부터 매각설이 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자본잠식 상태의 왓챠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쉽지 않은 상태다.

왓챠는 지난해 말 490억원의 CB를 발행하며 기업가치를 3000억원 수준으로 인정받았다. 이어 올 상반기 1000억원 규모의 상장전투자유치(프리IPO)를 추진하며 기업가치가 5000억원까지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OTT시장의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된 점이 뼈아팠다. 2년 연속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며 창업주 박태훈 대표의 네트워크를 통해 개인투자조합으로부터 38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고, 그 과정에서 책정된 기업가치는 100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석가리기 시작

결국 금리가 오르고 유동성이 마르면서 거품이 낀 기업가치가 원상복구되고 옥석가리기가 시작됐다는 평가다. IPO 추진을 포기하거나 미룬 기업들은 엑시트를 원하는 FI들의 창구를 열어주려 애쓰거나, 시장 정상화를 기다리며 투자 재원 확보에 나서는 등 전열을 가다듬는 모양새다.

다만 국민연금 등 LP(출자자)들의 입장에서 엑시트를 바라더라도, 시장 상황으로 인해 손해를 봐야한다면 섣불리 회수를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내 한 주요 투자기관의 최고책임자는 “투자원금 회수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LP들이 실제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며 “PEF나 VC(벤처캐피탈)로의 출자가 유동성이 있는 투자는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서 원하는 값에 받아줄 대상이 없다면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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